당신이 준비한 성전에 하나님의 눈길과 마음이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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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624회 작성일 2009-05-2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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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9:1-5 당신이 준비한 성전에 하나님의 눈길과 마음이 함께합니다.
폭설이 내리는 자정이 지난 시간, 주말여행을 마친 한 부인이 뉴욕 맨해튼 전철역에 내렸습니다.
그는 추운 밤길을 혼자서 가야 할 것을 생각하며 몹시 긴장하였습니다. 그 길은 대 낮에도 혼자 걷기가 무서운 곳입니다. 그녀가 사는 아파트까지는 아직 거리가 좀 떨어져 있는데 누군가 뒤따라오는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녀가 발걸음을 재촉하자 그도 빠르게 뒤 쫓아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무서워서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이 때 지혜가 생겼습니다. 험상궂게 생긴 사람이 그녀에게 바싹 다가왔을 때 자기의 짐을 그에게 담담히 맡기며 좀 도와주시겠어요, 선생님, 짐이 아주 무거워요.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짐을 받아들더니 그녀와 나란히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집 아파트에 도착해서 그녀가 팁을 주려고 하자 그는 머리를 저어며 말하기를 부인, 당신에게서는 아무 것도 받지 않겠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나는 당신의 핸드백을 날치기하려는 마음을 먹고 따라 왔는데 부인께서 저를 믿으시고 짐을 맡기셨기 때문에 차마 그런 짓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에게 어떻게 해를 끼칠 수가 있겠습니까?
고객 감동, 아니 날 강도에게 감동을 주어버린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사람은 감동을 준다면 놀라운 일이 일어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감동시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헌신과 희생이 따르고 정직히 행하고 그리고 신뢰가 따라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떤 이는 현대사회는 감동부재의 시대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도 누군가를 감동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능력이고 힘을 가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으면 움직입니다.
감동을 받으면 헌신합니다. 또 감동을 받으면 목숨이라도 내어놓습니다.
이처럼 사람을 감동시키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감동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내가 드린 헌신과 충성에 감동하신다면 얼마나 신나는 일들이 벌어질 것인가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감동시킨다는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닙니다.
아직도 하나님에게 이런 기도를 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나를 감동 시켜 보십시오 라고 말합니다.
왜 저에게 감동되는 일을 행하시지 않습니까? 하고 불만을 늘어놓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하나님이 나에게 감동을 주시지 않는다고 여기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 하시는 줄 아십니까?
더 이상 나는 너를 감동 시킬 능력이 없구나 내 아들까지 네 죽을 생명을 대신하여 주었는데도 감동이 되지 않는다고 하니 더 이상 무엇을 주겠느냐? 줄 것이 없다 다른 곳에 가서 알아보라 하십니다.
그래서 다른 곳에 가서 감동을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감동적인 선물로 이미 받으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내가 하나님을 감동 시켜야 할 때입니다.
내가 이제 하나님을 감동시키면 내 기도도 응답이 되고 내 소원도 이루게 될 것이요 귀하게 사용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는 도구를 하나님은 나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가 그것이고 찬양도, 헌신도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는 강력한 도구들입니다.
수많은 순교자들이 왜 그렇게 주를 위해 순교하였을까요?
주님의 그 위대하신 사랑에 감동되었고 그 사랑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려는 마음이 생기기에 목숨도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왜 마리아가 옥합을 주님께 아끼지 않고 베풀었을까요? 주님의 그 위대한 사랑에 감동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내 모든 것을 다 드려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성전 봉헌을 통하여 하나님을 감동시킨 솔로몬의 기도와 그리고 감동하신 하나님의 응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오늘 새벽 기도에 본문 대상 21장에 보니 다윗과 아들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위하여 온 생애와 전 재산을 다 드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의 표요 그리고 감사의 표현입니다.
제가 보기에도 감동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감동입니다.
저는 오늘 새 성전 헌당은 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처음으로 입당하여 첫 예배를 드림이 감동적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헌당이란 성전준비 할 때에 드린 빚을 다 청산하였을 때에 하나님께 이 성전을 드립니다 할때에 헌당 예배를 드립니다.
헌당이 되지 못 할 시에 입당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아마도 함께 수고한 저희 성도들도 감동일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성전은 돈으로 만들지 아니하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성도들이 정성을 다하는 감동적인 믿음입니다. 사실 감동적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목사를 여러 번 감동 시켰습니다.
많은 액수의 헌금이라기보다는 그 자신들에게 있어서 최선을 다하였다는 것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드리는 적은 액수도 감동적입니다.
왜요 그것은 그들의 신앙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사연을 다 이야기 할 수는 없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도 성도들이 성심껏 새 성전을 꾸미는 것을 보시고 감동을 하셨습니다.
지난 금요기도 시간에 일부 기도회를 마치고 다 새 성전에 내려 와서 합심 기도를 하는데 성령의 큰 감동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임재 하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저는 새 성전에 기대를 걸고 싶습니다.
솔로몬의 새 성전을 건축하고 난 뒤에 그가 드린 기도가 응답이 된 것과 같이 새 성전을 통하여 성도들의 기도도 응답이 되기를 원합니다. 할렐루야!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마친 후에 기브온에 나타나심과 같이 나타 나사 네 기도와 네가 내 앞에서 간구한 바를 내가 들었은즉 할렐루야!
하나님이 얼마나 성전이 건축되시기를 기다렸을까?
거의 감동을 받으신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기브온은 어떤 곳입니까? 천 번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구한 곳이요 그 곳에서 하나님은 솔로몬의 믿음에 감동을 받으시고 솔로몬에게 구하지 아니한 것 까지도 축복 하신 것 아닙니까?
내가 육신의 소욕을 구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것이 내 기도의 응답이 빠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새 성전에서 이런 축복이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반드시 일어 날 줄로 믿습니다.
어떻게 하니 하나님이 감동하셨습니까? 하나님을 내 삶의 가장 소중한 분으로 모셨다는 것입니다.
엘머 타운즈라는 분이 쓴 축복하는 자가 축복을 받는다는 책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아인슈타인은 성공하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말고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라 라고 말했습니다.
즉 다른 사람에게 가치 있는 사람이 될 때, 다른 사람들의 삶에 가치를 더해줄 때, 그들도 당신에게 끌릴 것입니다.
자기를 돕는 사람을 무시할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내가 다른 사람들을 도울 때, 그들이 나를 사랑할 것이요, 언제나 나와 함께하려고 할 것이다.
왜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십니까?
내가 다른 이를 사랑하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정말 가치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다른 사람들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삶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분이십니까?
그러면 하나님도 나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왜 다윗과 솔로몬이 성전 건축하기를 힘을 썼을까요?
성전은 말씀이 있는 곳입니다. 곧 말씀은 하나님 이십니다.
성전이 다 완성된 후 솔로몬은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 성 곧 시온에서 메어 올리고자 하였습니다.
솔로몬 왕과 그 앞에 모인 이스라엘 회중이 함께 궤 앞에 있어 양과 소로 제사를드렸는데 그 수가 많아 기록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었습니다.
궤 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두 돌판 외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두 돌판은 십계명을 하나님이 기록한 것으로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후에 여호와께서 저희와언약을 세우실 때에 모세가 호렙산에서 그 안에 넣은 것입니다.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기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구름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여졌습니다.
이 구름은 눈부시게 영광스러웠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게 했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자 사람들은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그의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여기서 성전의 중심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기도에 답하여 그가 건축한 성전에 당신께서 특별히 임재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내가 이전을 거룩하게 구별하노라.
내가 성심으로 하나님께 봉헌한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은혜로이 자기의 소유로 받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눈과 마음은 항상 거기 있을 것입니다.
이제 새 성전 내가 전심으로 드렸다면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네가 내 앞에서 간구한 바를 내가 들었다고 하십니다.
이제 믿음으로 달리는 대로 이루어집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짓기 위하여 온 국력을 다 기울이다시피 하였습니다.
이를테면 공사에 필요한 레바논의 백향목 나무 벌목을 위하여 3만 명의 군인들을 차출하였으며 일군으로 동원된 자의 수는 7만 명, 산에서 돌을 뜨는 인부는 8만 명이었으며, 그 많은 인원을 감독하는 관리의 숫자만도 3천 3백 명이나 되었습니다. 이처럼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동원된 공사가 무려 7년간이나 계속 되었으니, 그 공사의 규모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침내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웅대한 건축물인 예루살렘 성전이 완공되자 솔로몬은 하나님께 성전을 봉헌하면서 감격의 기도를 드렸는데, 왕상 8:27절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인간으로서 최초로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했던 솔로몬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무려 18만 여명이 넘는 사람들을 동원하여 7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건축한 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건축물 속에 갇히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온 우주도 그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용납할 수 없거늘, 하물며 자신이 지은 건축물이야 두 말할 나위가 없음을 솔로몬은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은 왜 그처럼 온 국력을 다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겠습니까?
그 해답은, 왕상 8:28-30절에 그러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종이 오늘날 주의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의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곳에만 계실 것이라 착각한 까닭이 아니라, 우주만물을 창조하셨기에 온 우주를 품고 계시는 하나님을 특별히 경배하는 장소로 성전을 이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전에서 예배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므로 성전 밖 일상생활 속에서, 언제 어디서나 인간과 함께 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며 살아가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봉헌기도를 끝낸 솔로몬은 성전에 모여든 백성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권면하였습니다. 그런즉 너희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화합하여 완전케 하여 오늘날과 같이 그 법도를 행하며 그 계명을 지킬지어다(왕상8:61) 즉 자신이 건축한 성전으로 인해 백성들이 매일의 삶 속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더욱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당부였습니다. 바로 그것이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주요 이유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솔로몬과 그 백성이 장래에 그들의 선한 행실에 좌우된다고 그에게 설명하시지 않으셨습니까?
4절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같이 행하면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며... 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들은 여호와의 전이 자기들 중에 있다고 하여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전은 그들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경우에 한하여 그들을 축복이 계획되고 그들이 반역하거나 불순종하는 경우에는 성전도 그들의 보호를 책임지지 않게끔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성전을 선용한다면 하나님은 나를 끝까지 견고히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떠나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과 함께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즉 성령의 교통하심입니다.
그 자신이 성전으로 세워진 사람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나를 영원한 새 성전으로 세워주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인생은 하나님의은혜가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다는 솔로몬의 고백대로 인간은 죄로 인해서 고통 합니다. 또한 죄로 인해서 여러 모양의 재앙들이 발생합니다. 죄로 인해서 문제가 생깁니다.
이런 저런 문제 있는 사람들이 기도하고 용서 받고 문제를 해결 받는 장소가 바로 성전입니다.
그런 점에서 성전은 치료하는 곳이요 요양하는 곳입니다. 쉼을 주는 장소입니다. 위로를 받는 곳입니다.
이런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거기 계시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구심점이었습니다.
요즈음은 사람들의 삶은 가정이 구심점이 되고 술집이 구심점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를 중심으로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
새 성전에 주님을 모시고 내 마음의 성전에 주님을 모시고 영원히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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