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해방과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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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18회 작성일 2015-08-16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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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26:1-6 진정한 해방과 자유
올해는 조국의 광복 70주기를 맞아 여느 해보다 기념행사가 성대하고 축하하는 행사도 많았습니다.
우리 민족은 그 어떠한 일이 있어도 최소한의 권리도 보호받을 수 없는 나라 없는 백성들의 그 아픔을 역사 속에서 체험한 민족입니다.
아시아에서 일찍 근대화를 이루었던 일본은 그 힘으로 우리나라와 중국과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시아를 점령하며 세력을 넓혀가다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맞음으로 1945년 8월 15일 미국에 무조건 항복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1910년 8월 29일 일본이 우리나라에 강제로 체결한 한일합방 이후, 36년간의 일제치하에서 종살이하며 지내던 민족이 해방을 맞은 것입니다.
이 날이 얼마나 감격스러웠으면 광복절이라고 이름을 붙였겠습니까? 빛을 다시 찾은 날이라는 말입니다.
그간 우리민족의 고통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습니까?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에 끌려 나가 죽었습니다.
아직도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 올수 없는 재일동포와 사할린동포들이 아직도 있습니다.
어린 여자들이 끌려가 일본군의 위안부로 치욕과 고통을 당했습니다.
전쟁 말기에는 식량과 금속품들을 수없이 수탈하며 심지어는 각 집에 있는 제사제기 놋그릇과 수저, 각종 쇠붙이와 교회의 종까지 모두 거두어 갔습니다. 어린이들까지 노역에 동원했습니다.
1940년, 우리나라를 말살하려고 창씨개명(創氏改名)을 단행하여 우리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었습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신앙의 자유를 잃게 되었고, 신사참배(神社參拜)의 강요로 수난을 당했습니다.
이 문제로 지금 우리나라의 남북분단의 비극과 6.25 동란의 아픔도 그 원인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당시의 조선인들은 그야말로 일제의 압제 하에 세월이 36년을 흘러가는 동안 조선이 스스로 해방을 쟁취할 수 있는 가망성이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어갔던 것이었습니다.
국가적으로도 그랬지만 기독교 신앙적인 면에서는 더욱 비참하고 위태로웠습니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친일파가 되었고, 신사참배 강요를 통하여 약 2천 명의 목사와 기독신자들이 체포 및 구금되었고 더러는 옥중에서 순교했습니다.
기독교 지도자 다수를 한꺼번에 학살할 음모가 당시 조선총독부 보호 관찰령 제3호에 기록되어 있는 지령에 의하면 그 예정일은 1945년 8월 18일이었습니다.
그처럼 우리나라 민족의 소망이 사라지고 우리 선조 기독신자들의 명맥이 끊어지기 직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십니까?
그것이 바로 미군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사건이었습니다.
사실 미군이 원폭을 사용한 것은 필리핀 상륙 작전 등에서 일본의 가미가제(제2차 세계대전 때 폭탄이 장착된 비행기를 몰고 자살 공격을 한 일본군 특공대) 특공대의 자살 공격과 인간어뢰(일본 해군이 태평양 전쟁 당시 고안하여 사용한 병기의 하나. 어뢰에 한 사람이 타고 조종하여 적함(敵艦)에 부딪쳐 자폭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지상군의 소위 옥쇄(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진다는 뜻으로, 공명(功名)이나 충절(忠節)을 위(爲)하여 깨끗하게 죽음을 이르는 말) 를 각오한 결사적인 저항에 의하여 너무나 많은 병력 손실을 입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군은 순전히 자국 군인들의 생명을 보호하고자 원폭 투하를 감행했던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이 민족의 해방을 가져왔고 기독교 신자들의 생명을 살리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어디 우연이겠습니까?
그것이야말로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대사였으며 사람으로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절망의 끝에서 오직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신 기적이 아니었겠습니까?
사람들은 말합니다. 8.15 광복은 조국과 민족과 신앙의 선배들에게 있어서 꿈꾸는 듯한 기쁨이었습니다.
지금의 세계에서 그래도 한류를 말하고 아이티를 말하는 이 나라가 있고 주권이 있음에 대한 자유민주주의 독립국으로서의 국권과 신앙의 자유를 누리는 것을 생각하면서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본문에도 우리 민족보다 더 놀라운 광복을 얻는 이스라엘 민족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역시 꿈꾸는 것과 같았다고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하셨다고 했습니다.
B.C. 586년 Babylon의 느부갓네살에 의해 이스라엘이 멸망당하고 백성이 포로로 Babylon에 끌려갔다가 B.C 538년 Persia의 Cyrus왕의 칙령으로 스룹바벨의 인도아래 제1차로 귀환한 이후, B.C 458년 에스라의 인도아래 제2차로 귀환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1차 귀환 이후 2차로 이루어진 귀환의 감격과 기쁨을 표현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남은 포로들도 돌아오도록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모든 고통과 절망 중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고 구원의 은총을 간구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역시 하나님은 죄인을 죄 아래서의 고통에서 구원을 주도하시고 계십니다
1-3절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러한 역사적 상황을 성경말씀을 통하여 전해주고 있습니다.
즉 출애굽 사건과 포로귀환 사건을 후손들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포로에서 해방된 일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행한 일이라고 다른 나라들이 말했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신들을 위해 하나님이 큰일을 행하신 것임을 선포하며 기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구원자이신 것을 이방인들의 입술로 증거하여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에는 진정한 기쁨이 함께 합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는 고향 땅을 밟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에 빠졌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마침내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이 꿈같은 현실이 너무 기뻐 입에서 웃음과 찬양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꿈에서나 그려 보던 민족 해방이 가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들의 기쁨은 그냥 억지의 기쁨이 아닙니다. 그들이 당한 고통만큼이나 큰 기쁨입니다.
해방70년 한일합방 106년이 되었는데 사실 이야기로만 들었지 우리 세대들은 잘모르는 자들이 많습니다.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기쁨이 그들이 당한 고통이 정도인가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큰 기쁨은 70년 동안의 바벨론 포로생활의 아픔이 겪었기 때문에 입에는 웃음이 나고 찬양이 나온 것입니다.
찬송가 죄악 벗은 우리 영혼은 기뻐 뛰며 주를 보겠네
기쁨의 크기는 고통의 크면 클수록 더 커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헛된 고통이 아니라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고통일 때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에덴의 즐거움을 주어도 그 즐거움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에 대한 감사도 없었습니다. 에덴을 잃고 죽음을 맛보았을 때에 그들은 에덴의 축복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죽을 맛을 보지요
그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맛이 얼마나 구한 것인지 구원을 받는 자는 알지 않습니까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셔야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그 일상의 생활이 얼마나 복된 것이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겨 본 자들은 다시는 나라를 잃지 말아야지 하는 각오가 생기고 나라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선구자의 노래를 아시지요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운봉길의사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날, 행사장에 폭탄을 던져 일본 상하이파견군 대장 시라카와 일본인 거류민단장 가와바다[河端貞次]는 즉사하였고, 제3함대 사령관 노무라[野村吉三郞] 중장과 제9사단장 우에다[植田謙吉] 중장, 주중공사 시케미쓰[重光癸] 등이 중상을 입었다
안중근 한말의 독립운동가로 삼흥학교(三興學校)를 세우는 등 인재양성에 힘썼으며, 만주 하얼빈에서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을 사살하고 사형되었다
그 외 많은 애국지사들의 헌신이 이 민족이 오늘날 한국을 만들게 합니다.
5-6절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어쩌면 자유와 해방은 내 자신에게 지금도 요구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모든 면에서 헌신이 나를 부르고 있고, 그런데 이제는 좀 벗어나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헌신을 그토록 싫어하고 있지 않습니까?
벗어날려고만 하지 헌신은 없습니다.
가정에서 인생에서의 굴레를 벗어 나려는 아우성만 있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큰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눈물을 흘리는 수고를 이제는 더 이상 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기쁨으로 거두는 일에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씨를 뿌리는 자의 수고가 기쁨이요 축복입니다.
이 수고를 눈물이 나도록 감당하도록 하신이가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수고하고 고생하는 것이 어떤 마귀가 아니고 어떤 사람도 아니고 하나님이시오 그게 나를 살리는 축복입니다.
수고하여 많은 결실을 얻게 된 것만 축복이 아니라 많이 수고하여 적은 것을 얻었다 할지라도 축복입니다.
축복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들이 누리는 특권입니다. 왜 수고에는 약속이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시84:10-12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믿음으로 이룹니다.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보여 주신 약속입니다.
렘29:10-14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믿음의 씨앗입니다.
이스라엘은 기원전 586년 바벨론왕 느브갓네살의 3차 침공을 끝으로, 완전히 망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이전인 604년에, 많은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이때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대의 포로들이 70년 후에 다시 돌아올 것이 라고 예언했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가 약속한 70년이 가까워 왔지만, 유대민족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희망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그들은 바벨론 사람들의 학정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나라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군대를 모을 형편도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70년 후에 포로들이 고국에 돌아갈 것이라는 예언이, 꿈에서나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꿈에서나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바벨론을 페르시아가 멸망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페르시아 왕 고레스는, 유대인들을 그들의 고향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전에 바벨론 왕들이, 유대에서 탈취해온 모든 보물까지 되돌려 주었습니다.
그 때가, 주전 536년이니까, 정확하게 예레미야가 예언한 70년 만에, 포로들이 고국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포로된 유대인들이 자존심 그리고 의지 희망 삶의 의미가 모두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와 그리고 그 약속에 자신들을 드리는 헌신이었다.
자신들이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는 결코 자신들을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나가기 시작했다.
먼 타국 땅에서 예루살렘쪽을 향하면서 다니엘같은 이는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가게 되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벤느고는 풀무불 앞에서도 에서도 어려움 속에 지킨 신앙은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귀환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무너진 성전을 재건토록 만들었습니다
4절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남방 시내는 이스라엘 헤브론 남쪽의 네겝(Negeb)시내를 말하는데 중동 사막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기(雨期)를 제외하고는 연중 말라있는 시내를 말합니다.
와디스(Wadis)라고 부르는 이 시내들은 1년 내내 비가 오지 않아서 말라 있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폭우가 내려서 강둑이 무너질 정도로 쏜살같이 흘러내린다고 합니다.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달라는 말은 우리를 바벨론으로부터 해방시켜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해주신 일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쏜살같이 이루어진 것 같이 구원해달라는 간구인 것입니다.
이제는 고백 합시다 믿음으로 살면 되겠다고 합시다
그 믿음은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주는 구원입니다.
요일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박헌성이 쓴 최고의 은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자랄 때, 세상에서 제일 높은 빌딩 하면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으로 알았습니다. 그 높이가 무려 102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건물이 102층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지난 1620년에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나선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북미로 처음 출발한 청교도들의 숫자입니다. 첫해 겨울에 굶주림과 질병, 인디언들의 습격으로 44명만 살아남았습니다. 지속되는 흉년에도 낙심하지 않던 그들에게 3년째 되던 해 풍년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추수를 얼마 앞두고 벌레들이 수없이 나타나 곡식을 갉아먹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벌레를 잡아도 소용이 없자, 그들은 한자리에 모여 손에 손을 잡고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면서 밤새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신앙의 자유를 찾아 이곳에 왔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않고 살았던 저희를 용서해 주소서. 다음 날 아침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새 떼가 하늘을 덮을 듯이 새까맣게 날아와 벌레들을 모조리 잡아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외쳤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노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노라.
하나님께서 우리민족에게 절망 중에서 해방의 감격과 기쁨,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수립이라는 감격과 기쁨을 주셨습니다.
제2의 해방 조국통일도 감격과 기쁨 속에서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내 인생을 하나님은 예수 안에서 진정한 자유와 광명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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