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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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95회 작성일 2015-08-24 10:01본문
마가복음6:35-44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어네스트 고든는 영국군 장교인데 2차 4대전 때에 일본군의 포로가 되어 포로수용소에서 생활을 하면서 콰이강을 가로지르는 철교 건설 공사에 강제 동원되었다.
고든이 수용소에서 직접 겪은 이야기를 콰이 계곡을 통하여라 는 책을 통하여 콰이강의 기적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포로수용소는 환경도 아주 비위생적이었고 식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포로들은 모두 배고팠는데 영국군 중에 대식가인 앵거스라는 덩치 큰 친구가 있었는데 마침 그의 친구가 정글병으로 죽어가고 있었을 때 앵거스는 자기가 먹을 것을 친구에게 주었고, 자기가 덮을 담요로 친구를 덮어 주었다.
극진히 간호를 한 결과, 친구가 정글병을 이겨내고 살아났는데 간호하던 앵거스가 죽고 말았습니다.
의사가 앵거스의 시신을 검진하니 그가 병이 나서 죽은 것이 아니라 굶어서 죽었다는 겁니다.
이 사실을 안 중대원들은 깊은 감동을 받았고 앞으로는 한 사람이 한 사람씩 책임을 지기로 결의하고 협동정신을 발휘한 결과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그 중대원은 한 사람도 죽지 않고 모두 살아남아서 연합군의 승리를 맛보았습니다.
작가 어네스트 고든은 이를 가리켜 콰이강의 기적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적과 대치해 싸우는 전쟁터에서는 적에 의해 생명을 잃는 안타까운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 그러나 한 사람이 작정하고 자기 생명을 내던지게 되면 수많은 동료들의 생명을 구할 수가 있다.
그리스도인은 생명을 해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주어 다른 이의 생명을 살리는 사람입니다.
본문에 예수를 따르는 큰 무리가 배고품으로 음식을 필요로 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각자 해결 하도록 해결책을 냈는데 예수님은 이 엄청난 요구를 제자들이 하게 했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입니다.
이 사명 앞에 많은 당황이 되겠지만 결론은 풍성한 배불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의 먹을 것을 이미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마6:30-33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게는 기근과 곤핍함이 생기는 것은 이같은 하나님을 믿기 보다는 사람의 욕심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보십시오
다른 한편에서는 차고 넘치는 먹을거리로 인하여 처분하지 못하여 고민하기까지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서 기아로 죽기까지 하는 세상입니다.
사람들 주변에 가난하고 약한 자가 항상 있습니다.
그것은 가난한 자를 주변에 두신 것은 언제나 내게 놀라운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려고 두신 것입니다.
대체로 이들을 볼 때에 상당히 부담감을 느끼는 것이 사실입니다.
누가 진정한 이웃인가? 라는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비유가 있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자칭 거룩성에 충만한 제사장과 바리새인은 상당히 부담을 느끼고 피하여 갔습니다.
한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영생에 관하여 질문을 했습니다.
그는 율법을 잘 지켜 착한자라 칭찬을 받는지 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는 질문에 네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라 그리하면 네게 하늘의 보화가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는 그 청년 역시 고민하였습니다.
그렇게 할까 말까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이유는 무엇을 얻기 위함이 아닙니까
배가 부르도록 먹고 난 후에도 여전히 그 다음 먹거리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고민하는 자가 사람입니다.
도저히 오늘 하루로 만족을 못하고 있습니다.
내일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내게 당한 은혜를 족하지 못합니다.
더 많이 가져야만 합니다.
그런데 더욱이 자신을 준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기독교는 사랑이라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과는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목적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극히 제한적이고 조건적이지만 기독교의 사랑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무조건적이요 한이 없는 점에서 전혀 차원이 다릅니다.
요15:12-13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기독교 사랑의 구체적 실현은 나눔과 헌신입니다.
막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말씀으로 배부른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양식 아닌 것을 위한 수고는 그만해야 합니다.
참된 양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아 출소한 모그룹 회장이 회사 돈 수백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지난 8월 14일 출소 당시 성경책을 손에 들고 출소하여 화제가 되었습니다.
님의 신앙이 계속 장성하길 기대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최고의 진리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요약된 사랑의 이중 계명입니다
님의 결단이 개인적으로는 삭개오를 넘어서고, 기업 경영을 통해 희년 사회 실현에 앞장선다면 당신의 생애는 하나님나라에서 찬연히 빛날 것입니다. 아마도 10년이 못 가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새롭게 쓰는 주인공의 반열에 서게 될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너희가 먹을 주라 하였을 때 계산에만 집중하였습니다.
얼마인가? 이백데라리온
세상은 무엇이든지 돈으로 계산됩니다.
자녀한명이 대학 졸업 할 때까지 얼마 남녀가 결혼하려면 얼마 죽을 때까지 평안이 살려면 얼마
이 계산에서 아무도 자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계산과는 아무 상관없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계산을 허무하게 만듭니다.
하면 계산할수록 더욱 복잡해질 뿐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계산하기를 좋아합니다.
계산을 그토록 신뢰하는 것은 세상을 그만큼 정확하게 살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계산이 정확하긴 하지만 계산 그 이상의 무엇이 될 수 없음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은 돈으로 계산 할 수 없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믿음은 계산으로는 산술적인 수치가 나오지 않지만 계산 그 이상의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자들이 계산한 것은 한 사람의 정확한 한 끼 값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무리의 수를 곱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렇게 곱하기 한 후에 나온 계산은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라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가진 것은 계산상으로 일인분입니다.
세상적으로 제아무리 주산 알을 두들겨도 계산기를 두드려도 답이 없습니다.
이백 데나리온이 있을 리도 없겠지만 있다 하여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당장 구입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예수님이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신 말씀은 황당하게 들릴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황당하게 듣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성에 먹을 양식이 없을 때에 엘리사를 통하여 양식의 소식을 들려 주었을 때에 한 장관은 황당하게 들었습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양식이 쏟아지는 놀라운 일이 일어 났습니다.
계산상으로도, 확률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당장에 이루어질 수 없는 요구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이백 데나리온이 없어도, 이백 데나리온으로 떡을 사지 않아도 얼마든지 제자들로 하여금 먹을 것을 줄 수 있는 분이십니다.
믿어야지요
말씀 앞에 자신의 헌신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믿어야지요
히11:1-6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바로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먹을 것을 주게 하시겠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나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바로 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만큼 대단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나를 요구하시니 감사한 것입니다.
참부족하고 연약하고 가난하고 병들고 고집 세고 미련하고 추하고 하더라도 이것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 378장 천하고 무능한 나에게도 귀중한 직분을 맡기셨다 그 은혜 고맙고 고마와라 이생명 바쳐서 충성하리
내하는 일들이 하도 적어 큰 열매 눈앞에 안 뵈어도 주님께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 얻으리라
나를 원하시는 내 형편을 한번 봅시다
물론 주님은 알고 계십니다.
38절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이런 나를 요구하심은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어떤 분이심을 보요 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말씀 앞에서의 믿음이 얼마나 놀라운 일을 하는 지 나타내십니다
잔치 상의 전을 펴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나를 드렸더니 받으시고는 하시기는 주님이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너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노라
고전1:27-28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주신 사명은 말씀으로 감당하자
무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목자 없는 양에서 목자 있는 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여러 가지로 가르치신 것입니다.
육신의 먹거리는 이후에라도 먹으면 되지만 영혼을 위한 먹거리는 이후에 전혀 먹지 못할 수도 있기에 해가 저물 때까지 가르치고 또 가르친 것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한 끼의 음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게 하였습니다.
눅5:3-7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말씀은 배부르게 하며 부족함이 없다
요4:31-34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예수님의 말씀은 그 뜻을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이 말씀 한마다는 나로 하여금 만족하게 하십니다.
전쟁 고아의 아버지 죠지뮬러는 고아들에 대한 강한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그는 전쟁 속에 고아들을 보고 어찌하든지 그들을 먹이고자 하는 강한 책임감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만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매달려 오로지 믿음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93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까지 42개국 20만 마일을 여행하며 300만의 영혼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제 말씀 앞에 내가 드려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왜 불러 왜 불러 하지 마십시오
왜하고 부정 적이지 마십시오
그냥 자신을 드려보십시오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듣겟습니다. 배부름니다 하십시오
그러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전혀 나를 드리지 못하니 그냥 나라는 제한되고 힘들어하고 추하고 그리고 더 이상 할 수 없어서 소리치는 나인간만 나타 날 것뿐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둡니다
이제라도 잘 심어시기 바랍니다.
갈6:7-10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이제는 나 자신을 말씀 앞에 드리는 것을 즐거워하고 자원하고 그리고 영광으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내가 행하는 일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 날 것입니다.
어네스트 고든는 영국군 장교인데 2차 4대전 때에 일본군의 포로가 되어 포로수용소에서 생활을 하면서 콰이강을 가로지르는 철교 건설 공사에 강제 동원되었다.
고든이 수용소에서 직접 겪은 이야기를 콰이 계곡을 통하여라 는 책을 통하여 콰이강의 기적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포로수용소는 환경도 아주 비위생적이었고 식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포로들은 모두 배고팠는데 영국군 중에 대식가인 앵거스라는 덩치 큰 친구가 있었는데 마침 그의 친구가 정글병으로 죽어가고 있었을 때 앵거스는 자기가 먹을 것을 친구에게 주었고, 자기가 덮을 담요로 친구를 덮어 주었다.
극진히 간호를 한 결과, 친구가 정글병을 이겨내고 살아났는데 간호하던 앵거스가 죽고 말았습니다.
의사가 앵거스의 시신을 검진하니 그가 병이 나서 죽은 것이 아니라 굶어서 죽었다는 겁니다.
이 사실을 안 중대원들은 깊은 감동을 받았고 앞으로는 한 사람이 한 사람씩 책임을 지기로 결의하고 협동정신을 발휘한 결과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그 중대원은 한 사람도 죽지 않고 모두 살아남아서 연합군의 승리를 맛보았습니다.
작가 어네스트 고든은 이를 가리켜 콰이강의 기적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적과 대치해 싸우는 전쟁터에서는 적에 의해 생명을 잃는 안타까운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 그러나 한 사람이 작정하고 자기 생명을 내던지게 되면 수많은 동료들의 생명을 구할 수가 있다.
그리스도인은 생명을 해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주어 다른 이의 생명을 살리는 사람입니다.
본문에 예수를 따르는 큰 무리가 배고품으로 음식을 필요로 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각자 해결 하도록 해결책을 냈는데 예수님은 이 엄청난 요구를 제자들이 하게 했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입니다.
이 사명 앞에 많은 당황이 되겠지만 결론은 풍성한 배불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의 먹을 것을 이미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마6:30-33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게는 기근과 곤핍함이 생기는 것은 이같은 하나님을 믿기 보다는 사람의 욕심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보십시오
다른 한편에서는 차고 넘치는 먹을거리로 인하여 처분하지 못하여 고민하기까지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서 기아로 죽기까지 하는 세상입니다.
사람들 주변에 가난하고 약한 자가 항상 있습니다.
그것은 가난한 자를 주변에 두신 것은 언제나 내게 놀라운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려고 두신 것입니다.
대체로 이들을 볼 때에 상당히 부담감을 느끼는 것이 사실입니다.
누가 진정한 이웃인가? 라는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비유가 있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자칭 거룩성에 충만한 제사장과 바리새인은 상당히 부담을 느끼고 피하여 갔습니다.
한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영생에 관하여 질문을 했습니다.
그는 율법을 잘 지켜 착한자라 칭찬을 받는지 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는 질문에 네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라 그리하면 네게 하늘의 보화가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는 그 청년 역시 고민하였습니다.
그렇게 할까 말까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이유는 무엇을 얻기 위함이 아닙니까
배가 부르도록 먹고 난 후에도 여전히 그 다음 먹거리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고민하는 자가 사람입니다.
도저히 오늘 하루로 만족을 못하고 있습니다.
내일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내게 당한 은혜를 족하지 못합니다.
더 많이 가져야만 합니다.
그런데 더욱이 자신을 준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기독교는 사랑이라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과는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목적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극히 제한적이고 조건적이지만 기독교의 사랑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무조건적이요 한이 없는 점에서 전혀 차원이 다릅니다.
요15:12-13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기독교 사랑의 구체적 실현은 나눔과 헌신입니다.
막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말씀으로 배부른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양식 아닌 것을 위한 수고는 그만해야 합니다.
참된 양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아 출소한 모그룹 회장이 회사 돈 수백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지난 8월 14일 출소 당시 성경책을 손에 들고 출소하여 화제가 되었습니다.
님의 신앙이 계속 장성하길 기대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최고의 진리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요약된 사랑의 이중 계명입니다
님의 결단이 개인적으로는 삭개오를 넘어서고, 기업 경영을 통해 희년 사회 실현에 앞장선다면 당신의 생애는 하나님나라에서 찬연히 빛날 것입니다. 아마도 10년이 못 가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새롭게 쓰는 주인공의 반열에 서게 될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너희가 먹을 주라 하였을 때 계산에만 집중하였습니다.
얼마인가? 이백데라리온
세상은 무엇이든지 돈으로 계산됩니다.
자녀한명이 대학 졸업 할 때까지 얼마 남녀가 결혼하려면 얼마 죽을 때까지 평안이 살려면 얼마
이 계산에서 아무도 자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계산과는 아무 상관없을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계산을 허무하게 만듭니다.
하면 계산할수록 더욱 복잡해질 뿐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계산하기를 좋아합니다.
계산을 그토록 신뢰하는 것은 세상을 그만큼 정확하게 살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계산이 정확하긴 하지만 계산 그 이상의 무엇이 될 수 없음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은 돈으로 계산 할 수 없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믿음은 계산으로는 산술적인 수치가 나오지 않지만 계산 그 이상의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자들이 계산한 것은 한 사람의 정확한 한 끼 값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무리의 수를 곱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렇게 곱하기 한 후에 나온 계산은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라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가진 것은 계산상으로 일인분입니다.
세상적으로 제아무리 주산 알을 두들겨도 계산기를 두드려도 답이 없습니다.
이백 데나리온이 있을 리도 없겠지만 있다 하여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당장 구입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예수님이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신 말씀은 황당하게 들릴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황당하게 듣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성에 먹을 양식이 없을 때에 엘리사를 통하여 양식의 소식을 들려 주었을 때에 한 장관은 황당하게 들었습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양식이 쏟아지는 놀라운 일이 일어 났습니다.
계산상으로도, 확률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당장에 이루어질 수 없는 요구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이백 데나리온이 없어도, 이백 데나리온으로 떡을 사지 않아도 얼마든지 제자들로 하여금 먹을 것을 줄 수 있는 분이십니다.
믿어야지요
말씀 앞에 자신의 헌신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믿어야지요
히11:1-6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바로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먹을 것을 주게 하시겠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나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바로 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만큼 대단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나를 요구하시니 감사한 것입니다.
참부족하고 연약하고 가난하고 병들고 고집 세고 미련하고 추하고 하더라도 이것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 378장 천하고 무능한 나에게도 귀중한 직분을 맡기셨다 그 은혜 고맙고 고마와라 이생명 바쳐서 충성하리
내하는 일들이 하도 적어 큰 열매 눈앞에 안 뵈어도 주님께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 얻으리라
나를 원하시는 내 형편을 한번 봅시다
물론 주님은 알고 계십니다.
38절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이런 나를 요구하심은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어떤 분이심을 보요 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말씀 앞에서의 믿음이 얼마나 놀라운 일을 하는 지 나타내십니다
잔치 상의 전을 펴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나를 드렸더니 받으시고는 하시기는 주님이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너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노라
고전1:27-28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주신 사명은 말씀으로 감당하자
무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목자 없는 양에서 목자 있는 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여러 가지로 가르치신 것입니다.
육신의 먹거리는 이후에라도 먹으면 되지만 영혼을 위한 먹거리는 이후에 전혀 먹지 못할 수도 있기에 해가 저물 때까지 가르치고 또 가르친 것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한 끼의 음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게 하였습니다.
눅5:3-7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말씀은 배부르게 하며 부족함이 없다
요4:31-34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예수님의 말씀은 그 뜻을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이 말씀 한마다는 나로 하여금 만족하게 하십니다.
전쟁 고아의 아버지 죠지뮬러는 고아들에 대한 강한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그는 전쟁 속에 고아들을 보고 어찌하든지 그들을 먹이고자 하는 강한 책임감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만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매달려 오로지 믿음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93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까지 42개국 20만 마일을 여행하며 300만의 영혼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제 말씀 앞에 내가 드려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왜 불러 왜 불러 하지 마십시오
왜하고 부정 적이지 마십시오
그냥 자신을 드려보십시오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듣겟습니다. 배부름니다 하십시오
그러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전혀 나를 드리지 못하니 그냥 나라는 제한되고 힘들어하고 추하고 그리고 더 이상 할 수 없어서 소리치는 나인간만 나타 날 것뿐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둡니다
이제라도 잘 심어시기 바랍니다.
갈6:7-10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이제는 나 자신을 말씀 앞에 드리는 것을 즐거워하고 자원하고 그리고 영광으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내가 행하는 일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 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