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정하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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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38회 작성일 2015-08-30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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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23:10-14 작정하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
영국의 도버해협을 왕복으로 헤엄쳐서 세간을 놀라게 한 플로렌스 채드윅이라는 여성 수영선수가 36세가 되던 해인 캘리포니아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카타리나 섬에서부터 캘리포니아 해변까지 헤엄쳐 가겠다고 선언을 하고 TV는 전국에 이 광경을 방영했습니다.
도착 시간을 전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해변으로 나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16시간이나 계속 수영을 하는데 갑자기 짙은 안개가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안개를 헤치고 나아가던 플로렌스는 사력을 다했지만 힘이 점점 빠지는 것을 느끼고는 결국 기권을 하고 말았습니다.
구조선에 승선하고 배로 육지에 도착해보니 안개 때문에 못 보았던 거리가 불과 육지에서 500미터도 안 되는 거리였습니다.
왜 실패했다고 생각하느냐? 는 질문에 그녀는 매우 교훈적인 대답을 했습니다.
추위 때문도 아니고 피곤함도 아니요 사실은 안개 때문이었습니다.
안개 때문에 목표를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플로렌스는 수영 횡단에 실패하고 꼭 두 달 후에 재도전을 시도했을 땐 바닷물도 이전보다 더 차가웠고 지난번보다 안개는 더 짙게 끼었습니다.
훨씬 더 악조건 속에서의 시도에서 성공을 했습니다.
어떻게 이번에는 성공할 수가 있었습니까?
이번에는 마음에 분명한 목표가 보였고 안개 너머의 아름다운 캘리포니아 해변의 광경을 마음으로 그리며 미리 내다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생의 삶도 분명한 목표가 설정 된다면 잘 살아 갈 수가 있습니다.
인생의 위기가 언제입니까?
내 길을 잃어버릴 때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를 때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의 위기는 언제입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 질 때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입니다.
8-9절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하나님을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고 내가 어떤 일을 해도 열매가 없고 마치 기도는 허공을 치는 것 같고 육신의 모든 수고가 헛되고 결실이 없어 답답한 것입니다.
길은 점점 없어지는 것 같고
기도하여 옮긴 산을 봤습니까라는 이만규 교수의 칼럼에서 결론은 옮긴 산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참으로 많은 기독교인의 관심이다.
기도에 관한 수많은 체험적인 이야기들은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한다.
나도 기도하고 싶어진다. 기도는 정말 유익하다.
그러나 방향과 기대가 잘못되면 부작용도 그 이상이다. 틀린 것에 열심을 낼 때 눈에 뭐를 씌워 사람을 어리석게 만들기 때문이다.
시중에 나온 기도에 관한 많은 책이 있다. 필자도 여러 책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책들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들에도 관심이 간다. 사실 답하기도 어려운 것들이지만 나름 정리를 해 보았다.
현실에선 기도를 삶으로 살아내는 고수일수록, 체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기도에 관해 입을 열기 꺼린다.
깊이 알면 알수록 기도의 응답에 관해 모르는 부분들이 진짜 많기 때문이다.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게 하는 길이다. 이 말은 참으로 맞는 말이다.
인간의 능력으로 해결된다면 하나님을 의지할 필요도 없다. 하나님에겐 불가능이란 없다.
기도는 산을 옮길 수 있다. 그러나 난 아직 산이 옮겨진 경우를 못 보았다.
예수님이나 사도들조차 문자적으로 산을 옮기신 적이 없다.
물론 성경에서 산을 옮긴다는 것은 불가능이 없다는 것에 관한 은유다.
그래도 내 수준에서는 아무리 하나님을 오랫동안, 많이, 그리고 깊게 체험해도 불가능이 너무 많다.
아니 내가 바라는 것 대부분은 불가능한 것들이다.
인생의 진정한 기도 구함은 내가 바라는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중을 구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욥은 자신에게 임한 고난의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많은 이들이 신앙의 유무를 불문하고 자신의 소욕을 구하다가 죽게 생겼습니다.
물론 기독인들 역시 자신들의 소욕의 필요를 구하다가 믿음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일반적으로 고난에 고난이 겹쳐올 때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하필이면 나에게
언제까지 입니까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그런 고통 가운데에도 욥의 기도 내용을 보면 참으로 신기합니다.
욥은 여러 가지 고통을 당할 때 그 문제를 붙잡고 간구하지 않습니다.
욥은 자신의 잃어버린 재산을 다시 회복해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고, 자신의 건강을 회복시켜 달라고 부르짖는 장면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욥은 주로 무엇을 중심으로 기도합니까?
2-3절 오늘도 내게 반항하는 마음과 근심이 있나니 내가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무거움이라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
현실의 고통의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을꼬!
내가 어떻게 하면 그의 처소에 나아갈 수 있는가?
8-9절에서는 하나님을 찾는 구체적으로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왜 욥은 자기의 고통의 문제를 가지고 부르짖지 않고 하나님을 찾는데 몸부림치고 있습니까?
나는 무엇을 그렇게 부르짖습니까? 그리고 힘들어 하고 있습니까?
모든 인생길은 하나님 앞에 놓여 있습니다
욥은 확신합니다
전후좌우에 하나님이 보이시지 않아도, 하나님이 나의 전후좌우를 다 보고 계신다는 고백입니다.
내게 세상적으로 힘들어 하는 고난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나 자신의 인생을 통찰하고 계시니 이제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기꺼이 맡겨드리겠다는 결단이 들어있습니다.
역대의 이스라엘의 왕들의 사역에 언제든지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신다는 말입니다.
왕하3:2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의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그의 아버지가 만든 바알의 주상을 없이하였음이라
하나님이라는 그분을 생각 할 때에 만사가 용납이 되고 수납이 되고 이해가 되고 감당이 되는 것입니다
10절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하나님을 인정하기 전에 고난을 바라본 욥은 자신의 생일을 저주했습니다.
욥3:2-13 욥이 입을 열어 이르되 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 사내아이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더라면, 그 날이 캄캄하였더라면,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보지 않으셨더라면, 빛도 그 날을 비추지 않았더라면, 어둠과 죽음의 그늘이 그 날을 자기의 것이라 주장하였더라면, 구름이 그 위에 덮였더라면, 흑암이 그 날을 덮었더라면, 그 밤이 캄캄한 어둠에 잡혔더라면, 해의 날 수와 달의 수에 들지 않았더라면, 그 밤에 자식을 배지 못하였더라면, 그 밤에 즐거운 소리가 나지 않았더라면, 날을 저주하는 자들 곧 리워야단을 격동시키기에 익숙한 자들이 그 밤을 저주하였더라면, 그 밤에 새벽 별들이 어두웠더라면, 그 밤이 광명을 바랄지라도 얻지 못하며 동틈을 보지 못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는 내 모태의 문을 닫지 아니하여 내 눈으로 환난을 보게 하였음이로구나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젖을 빨았던가 그렇지 아니하였던들 이제는 내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니
축하 받을 생일날이 저주의 날로 얼마나 장탄식이었을 것입니까
이후 줄 곧 욥은 죽기를 구합니다.
고통에서 해방되기만을 구하지요. 고통이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그 인생에 함께하는 하나님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 인생이라는 삶을 통하여 세상의 그 무엇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살아야 이유 그리고 소망이 생기고 의욕이 생기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인생의 결국이 무엇인지를 알았지 않았습니까?
전12:13-14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인생을 나로 하여금 하나님께 합한자로 만드십니다.
10-12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이제 아셔야 합니다.
인생가운데 고난의 현상만을 놓고 논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정을 모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다 아시고 계십니다.
기도를 다 들으시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그 기도대로 다 이루어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다 들어주면 우리 인생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계획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작품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하여 나를 향한 주의 뜻을 이루기까지 이 모든 환경을 통하여 나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그 답을 다 일러주었습니다.
마6:31-34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오늘 하루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내일까지 염려하다가 오늘을 거스르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내 언대로 하는 인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데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의 샬롬과 평안 그리고 형통 승리는 세상의 그 무엇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턱대고 인도하시지 않습니까?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시32:8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어떻게 하나님은 인도하십니까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설교도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서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설교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은 말씀으로 인도하십니다.
말씀을 잘 모를 때에는 양심으로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영적지도자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고, 지금은 목사나 말씀을 인도하는 자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욥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은 말씀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일정한 음식을 먹듯이 섭취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곤란 중에 위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가장 잘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말씀을 받아 드리는 믿음이 생기면 인생과 고난에 대하여 잘 처리 할 수가 있습니다.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인생을 감사함으로 받을 것입니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으로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할 것입니다.
인생은 나를 위해 사는 삶이 아닌 하나님을 위한 삶이 됩니다.
서구 사람의 풍습가운데 시집가는 딸에게 엄마가 진주를 주는 전통이 있는데 이 진주를 얼어붙은 눈물(frozen tears)이라고 부릅니다.
왜 얼어붙은 눈물이라 하는가 하면 조개 속에 모래알 이 하나 들어가게 되면 이 모래알로 인한 상처를 견디기 위해서 나카라는 분비물을 내어 이 모래알을 코팅시켜 버립니다.
고통스럽지만 나카를 계속 뿜어내어 모래알과 싸우 고 대치하여 진주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모래알이 주는 아픔을 외면하거나 도피해 버리면 조개는 결국 이 모래가 주는 계속적인 상처로 인해 조개는 썩어 갑니다.
나카를 분비하여 진주를 만들어가는 조개도 고통이 있고 그 모래알이 주는 고통을 모른 척, 혹은 회피하며 대충 사는 조개에게도 아픔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전 혀 다릅니다.
조개가 생존의 몸부림을 하는 것처럼 성도들도 생존을 위해 눈물과 울부짖음으로 기도합니다. 하루 이 틀 사흘 기도하는 동안 하나님을 찾았던 그 시간 속에 진주가 커가듯 신앙의 성숙을 경험하지만, 아픔이 와도 기도할 줄 모르고 자신의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 도피하는 사람은 결국 썩어 갑니다
우리가 고난당할 때 하나님이 버리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사생자를 누가 징계합니까? 친자식은 징계하지 않을 부모가 없잖아요.
하나님이 아버지시기 때문에 고난이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약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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