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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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518회 작성일 2015-09-13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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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16:9-14 여호와께서 아신다
유대인들이 학살당하고 아우수비치같은 수용소에서 죽어가던 그 현장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하나님이 왜 이런 사건을 허용하셨는지 모르겠다
하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마치 욥이 고난을 당 할 때에 그의 아내가 한 말과 같았습니다.
욥2:9-10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미국등 연합군이 승리하고 수용소를 탈환하고 이 수용소의 한쪽 벽에 쓰인 찬송가의 가사를 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어느 그리스도인이 그의 신앙의 고백으로 기록해 놓았던 구절이었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이 저주를 받아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하나님의 사랑이라니?
또 다른 곳에서는 이런 글자가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God is here, Gott ist hier, 하나님은 여기에 계십니다
제 아무리 힘들고 낙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도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삶은 모습은 달라집니다.
어떤 상황, 여건이라도 하나님은 계시고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되어지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을 떠난 환경은 존재 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 들어있습니다.
시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본문은 주변에서 사망의 음침한 자리 같은 어렵지만 삶에 큰 감동과 힘을 주는 믿음의 사람 다윗을 만나 봅니다.
내 몸에 난 아들의 쿠데타를 피해 가는데 그 보습을 보고 욕을 하고 저주를 하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다윗의 환경을 붙잡고 힘들게 하였을 때 아마 어떻게 해보고 싶은 심정 일 것입니다.
옆에 있던 아비새 장군은 목을 잘라 버리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참으로 놀라운 믿음의 말을 했습니다.
9-11절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하니 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어떻게 이렇게 이 역경을 피 할 수 있었는가?
이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계신다
이 상황도 하나님은 아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선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복이 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화라도 복이 되게 하십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어쩌면 내게 주어진 환경과 여건이 나를 만족하게 하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나로 화나게 하고 분내게 하여 힘이 들어 합니다.
그래서 당연히 화를 내고 분을 내니 삶이 만족하지 못하고 행복하지를 못하다고 합니다.
만족한 것만을 받아 드리려고 하니 만족이 되지 않습니다.
불만족 한 마음에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다윗은 이 부정된 것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 어려운 상황의 처지를 반전시킬 수 있습니다.
삶을 위대하게 만들게 됩니다.
이 믿음이 우리의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롬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롬11:33-36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다윗은 목숨을 노리는 아들을 피해 길에 올랐습니다.
가는 길에 시므이라는 자가 다윗을 따라다니며 먼지를 날리고, 돌을 던지고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이 시므이는 전왕인 사울의 친족이었습니다.
비난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5-8절 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친족 한 사람이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그가 나오면서 계속하여 저주하고 또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하들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 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 하는지라
이 말은 사울족속의 죽음의 모든 핏값을 너에게 돌리셨다.
너는 그 죄의 대가를 받아서 이제 그 나라를 빼앗길 것이다.
그러니 피 흘린 자여, 사악한자여 이제 떠나거라 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에게서는 끝인다 하나님이 너를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 비난의 내용은 전부 사실이 아닙니다.
다윗은 사울 왕을 죽인 적이 없습니다.
사울은 길보아전투에서 블레셋사람에게 화살을 맞아 중상을 입은 채로 자살했습니다.
또한, 그의 아들들은 전쟁터에서 죽고 나머지 아들들은 신하에게 모반을 당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집 그 누구에게도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울을 여러 번 죽을 자리에서 살려주었고, 요나단의 아들 절뚝발이 므비보셋을 성으로 데려와 한 식탁에서 밥을 먹게 하고, 재산을 돌려주는 등, 친아들처럼 대해주는 선을 행했습니다.
베냐민의 원로 시므이는 사울의 친족 베냐민 지파 사람으로서, 사울가문이 몰락한 것을 다윗에게 떠넘기는 것입니다.
그저 감정적인 화풀이에 불과한 것입니다.
시므이는 자신의 저주가 내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임을 주장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아들 압살롬에게 나라를 넘기실 것이라는 것이죠.
이러한 시므이의 저주는 전혀 하나님의 뜻과는 맞지 않는 것입니다.
시므이가 아무리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한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비난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보통 사람들의 비난은 내 자신의 주관이요 자신의 편견이요 극히 인간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비난하지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일로도
롬2:1-3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비난은 악이요. 마귀는 참소하는 영, 정죄의 영, 비난의 영입니다.
다윗은 도주 하는 중에 시므이는 다윗에 대해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비난을 퍼 붓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비난을 맞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잘 받아 드리는 것입니다.
다윗 왕이 저주하고 욕하는 시므이를 내버려 두라고 한 이유가 감동이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라면 내가 어찌 하겠는가?
내 몸에서 난 내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는데 베냐민 사람이랴
그리고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신다.
오늘 하나님은 나를 선으로 갚아 주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아시는 분이라고 믿음으로 이 환경이 오히려 얼마나 복이 된지 모릅니다.
가장 힘든 그곳에도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고 믿는 믿음입니다.
내가 잘한 것이든, 잘못한 것이든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원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 때문이라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때로는 어렵고 원통한 환경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환경을 통해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그 환경을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어떤 상황이라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믿고 순종하십시오.
그러니 내 주위에 일어나는 그 어떠한 일도 이해가 안 된다가 아니라 모두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다만 그 문제를 인간적으로 풀이하지 말고 하나님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받아 드린다면 버릴 것이 없습니다.
네 원수라도 화목하라고 하십니다.
마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이게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입니다
예배 때마다 암송을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형을 처한 로마 병사를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용서를 구합니다
눅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여기에 본받아 스데반 집사도 자신을 공개처형 하는 자들을 향하여 용서를 구합니다.
행7:59-60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자기에게 유익하면 하나님의 역사라고 하고, 자기를 알아주지 않으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고 합니다.
만사가 주 앞에 있습니다.
다만 믿음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일은 자신을 볼 수 있는 거울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에 자신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은 왕으로서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자존심이 상하는 일입니다.
자신의 수하에 있는 자들에게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시므이의 저주가 결코 우연이 아니라, 과거에 저질렀던 자신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은 신앙고백입니다.
인간에게 당한 억울함보다, 하나님 앞에 저질렀던 자기의 추악한 죄를 먼저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당하는 것은 내가 저지른 지난 일에 대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자신의 억울함보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세척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돌아봅니다
큰 은혜입니다.
내 몸에 자식도 이 모양인데 하물며 이 사람들이야 나둬라 이것입니다
11절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다윗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주신 결말을 보는 것입니다
12절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이렇게 할 때, 저주가 더 이상 저주가 아니요,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이 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저주에 저주로 응답하는 것은, 오히려 그 저주에 내가 묶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찰하십니다.
감찰의 뜻을 보면
단체의 규율과 구성원의 행동을 감독하여 살핌
법률적으로는 감사원의 직무 행위의 하나. 공무원의 위법ㆍ비위 사실에 대한 조사 및 징계 처분, 공무원을 수사 기관에 고발하는 것
하나님은 다 감찰하셔서 그대로 갚아 주시니 너무 주어진 삶을 힘들어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선을 베풀며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을 정리된 후에 왕위는 회복되고 난 후 그의 말년에 솔로몬에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대상28:9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만일 네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그들은 보통 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는 환경을 선으로 악을 이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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