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하는 지혜로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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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272회 작성일 2015-10-0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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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2:1-3 분별하는 지혜로운 삶
이 가을에 배우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너무나도 풍성한 결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열매들은 그냥 생겨 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열매를 위하여 온 식물들이 자신의 온 생을 다 바쳤다는 것입니다.
이 열매를 사람들은 너무 기뻐하며 즐기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가난한 병자들을 치료하던 슈바이처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아프리카를 떠나 파리에 왔습니다.
그는 파리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덴마크로 갈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파리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신문기자들이 취재를 하려고 그가 탄 기차로 몰려들었습니다.
슈바이처는 영국 황실로부터 백작 칭호를 받은 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취재경쟁에 열중한 기자들이 한꺼번에 특등실로 우르르 몰려 들어가 슈바이처 박사를 찾아보았으나,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다시 일등칸으로 몰려가서 찾아보았으나, 거기에도 없었습니다.
또 다시 이등칸으로 가 봤으나, 거기서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기자들은 모두 허탈한 나머지 그대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영국 기자 한 사람만이 혹시나 하고 3등 칸을 기웃거리다가 뜻밖에 거기서 슈바이처 박사를 찾아냈습니다.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 딱딱한 나무 의자에 꽉 끼어 앉아 있는 퀴퀴한 악취로 가득한 3등 칸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슈바이처 박사는 그들을 진찰하고 있었습니다.
놀란 기자가 그에게 특등실로 자리를 옮기기를 권했으나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3등 칸에 타셨습니까?
예, 이 기차는 4등 칸이 없어서요.
아니 그게 아니고 선생님께서 어쩌자고 불편한 곳에서 고생하며 가십니까?
슈바이처 박사는 잠시 후 이마의 땀을 닦으며 대답했습니다.
저는 편안한 곳을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저의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다닙니다.
특등실의 사람들은 저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주어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분별해서 지혜로운 삶을 일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삶
1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산 제물이 되는 삶을 드리라고 합니다.
인류 최초의 조상 아담에게는 대표되는 아들 두 명이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입니다
이들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놀랍게 달라졌습니다.
아벨의 제물은 하나님이 기뻐하셨고 가인의 예물은 받지 아예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창4:1-5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와 삶이 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값없이 얻는 구원입니다.
최초의 인류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벌거벗음의 수치를 가리기 위하여 나뭇잎으로 만든 옷대신 가죽으로 옷을 입혀주셔서 수치를 영원히 가리게 했습니다.
거저 주시는 구원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람의 행위가 아닙니다.
가인의 재물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고 아벨의 예물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가인의 제물은 가인의 자랑이 있었고 자신의 공로가 있었습니다.
반면에 아벨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니 자신을 다드려도 부족 할 뿐입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은 믿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증거가 자신을 드리는 헌신이 없었습니다.
이런 믿음은 귀신의 믿음입니다.
약2:17-22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가인의 믿음을 정리해 보면
그가 쌓아 놓은 제단 위에서 주여, 저는 제 양심에 따라 주님께 경배하나이다. 제가 가져온 이 탐스러운 곡식들을 보십시오. 이것은 제가 키웠습니다. 엄청 수고도 많이 했습니다.
제가 수고 한 것을 알아주십시오
아시지요
그런데 이 기도와 간구에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아벨의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제단위에 오장 육부를 들어내고 각을 뜯어 목이 잘려나간 자신이 키운 양이 놓여 있었습니다.
주여, 이 양을 저를 대신해서 받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할 때 저는 죽기까지 주님을 사랑해야 하지만, 저는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주님은 하늘과 땅의 주이시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더 주님을 높여 드려야 하지만, 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저는 늘 제 자신을 첫 번째에 놓았습니다.
제물로 드린 이 양은 당신이 먹이시고 키우셨습니다.
주님께서 제 대신 이 양을 받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의 피 대신 이 양의 피를 받으십시오.
저는 저의 죄로 인해 마땅히 죽어야 하지만 이 양을 대속 물을 받아주시겠습니까?
이 기도가 끝나자 즉시로 기도의 응답이 왔습니다.
아벨의 구원은 분명하다.
그가 드린 제물은 즉시로 그 증거를 얻었다.
히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인간이 의를 드러내는 제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들이 선하다는 느낌을 원하거나 자신을 믿고 싶어 하거나 혹은 모든 사람에게 선함을 찾아내려 한다
이제는 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나타나게 하는 것입니다.
갈2:19-21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하나님의 은혜는 그리스도께서 내 몸 안으로 들어오시게 하려고 당신의 몸을 하나님께 내어드렸다.
하나님께 몸을 온전히 헌신되어 짐으로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생명을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생활에 들어오신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아직도 우리는 율법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행위로가 아닌 그리스도를 믿음 즉 내 인격에 영접함으로 구원함에 이르는 것입니다,
딛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생명은 몸에 주어지는 것이지 삶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몸 즉 내 인격을 바치는 것은 더 이상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내 온전한 것을 드려라 함이 아니라 부족하고 죄 많은 인생을 드리라는 것이다
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마음과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새로운 생명의 삶은 시작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그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눅6:43-45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그리고 그 혀는 인생이라는 항해의 배에 있어서 키와 같은 역할을 한다.
약3: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말 사용을 지혜롭게 한다면 그의 인생도 성공적이 될 것이다.
내 삶을 바꾸고 싶으면, 말을 바꾸어야 하는데, 아무리 말을 바꾸고 싶어도 바뀌지 않으니 문제인 것이다. 바뀌지 않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바로 내 마음에 가득찬 것이 바로 지금 말하고 있는 그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에 가득 찬 그것이 새롭게 되고, 변화를 받아야지만, 즉 마음의 이전에 있던 그것이 비워지고, 하나님의 뜻과 생각 즉 그분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채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 분별해야 하는데
분별하라는 헬라어의 의미는 입증하다. 증명하다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라면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요구하고 계시는지를 증명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삶은 추상적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본문을 통하여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2절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께서 구원을 받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증명하라는 뜻은 무엇입니까?
선하라고 하십니다.
헬라어의 의미 자체가 선한 것, 좋은 것, 유용한 것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지만 특별한 의미로 사용될 때는 이 단어는 정직한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산다는 증명은 정직하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사는 사람들은 정직하게 산다는 말이 됩니다.
정직하지 않게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하게 사는 사람이라는 말이 됩니다.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기뻐하시는 것이란 문자적인 의미가 완전히 일치한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다 드린 후 기브온의 산당에서 꿈으로 하나님이 현현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소원을 말하라고 하셨을 때 솔로몬이 구한 것은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이때에 하나님은 마음에 들었다는 것입니다.
일치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왕상3:4-13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됩니다.
영적인 지식은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영적인 교만 때문입니다.
인간의 교만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고백하면서도 자신의 힘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굳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의지도 필요도 그리고 회개도 없으니 이것이 교만입니다.
지혜로운 삶은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다.
3절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생각이라는 말이 3번이나 강조되어 있습니다.
모든 행동은 생각의 산물입니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라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분량이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말씀함이 아니고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은사대로 하는 것입니다.
섬기는 직분과 받은 은사들까지 각각 다른 교인들이 모여 있으니 하나의 공동체'로 세워지고 유지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그와 같은 외면적으로 조금씩 다른 차이점들이 오히려 서로 잘 조화됨으로써 전체적으로는 온전하고도 아름다운 신앙공동체가 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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