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만 의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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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16회 작성일 2015-10-1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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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1: 8-11 하나님만 의지하라
목적이 이끄는 삶으로 한국에 이름을 알린 릭 워렌 목사가 아들의 죽음 후 4개월 만에 전한 첫 설교에서 삶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안에서 소망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전했다.
워렌 목사는 지난 27년간 나는 매일 아들의 질환을 치유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고, 왜 이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는 힘든 일이 있으면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에 대해 답을 찾으려고 하지만, 사실 어떠한 설명도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어떠한 설명이 아닌 하나님의 존재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그는 아들 매튜 워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 자신과 아내가 붙들었던 세 가지 성경적 진리를 꼽았다.
첫째는 삶이란 부조리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는 그 가운데서 평안을 누릴 수 있다.
둘째는 이 땅의 모든 것은 불완전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더 위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알기에 우리는 그 가운데서 기뻐할 수 있다.
셋째는 삶이란 전투와 같지만 우리가 아는 그 이상의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기에 우리는 소망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인생이 부조리하고 불완전하지만 그 것은 모두 하나님으로 평안과 기쁨과 소망을 가질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들 매튜 워렌이 떠난 날 아내 케이 워렌은 그의 목에는 기쁨을 택하라(Choose Joy)는 글귀가 새겨진 목걸이를 꼈다고 밝혔다.
그리고 비극적 소식이 전해졌을 때 떨리는 손으로 목걸이를 들어 남편에게 보여주며 비록 내 마음은 산산조각 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쁨을 택하리라고 말하려 했다고 전했다.
그녀는 내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고, 또 남편 릭 워렌은 어떻게 내게 동의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우리가 50년 가까이 되는 세월을 사는 가운데 가장 깊고, 어둡고, 괴로운 문제들을 대하면서도 우리의 영적 뿌리를 하나님의 은혜의 토양 깊이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며 하나님의 자비와, 그의 신실하심, 그의 선하심 위에 우리가 서 있었다고 은혜를 나눴다.
오늘 본문에서도 사도 바울 역시 그가 당한 고난을 소개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고난이 하나님을 더 필요로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으나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합니다.
고후11:23-27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사실 고난은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욥5:6-7 재난은 티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고생은 흙에서 나는 것이 아니니라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 가는 것 같으니라
인생은 태어난 후 일생을 살아 노년이 될 때까지 살기위한 경쟁 속에서 수많은 심신에 고통을 당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경제적인 사회적, 인간관계, 육신의 질병, 그리고 최후에는 죽음의 고난을 겪게 됩니다.
고난을 즐기는 사람 봤어요? 고난당할 때 그것을 환영하고 기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하지 않고 살수 없다는 사실은 모두 다 알고 있지요.
그렇다면 고난의 의미를 확실히 알면 우리 삶을 훨씬 잘 살아 갈 수 있습니다.
고난이 나를 죄를 짓게 하고 절망하게 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도구가 되게 만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고난을 유익이 되게 만들 수가 있고 정당한 인식을 가지고 받아들이면 큰 축복이 될 수가 있습니다.
페스탈로찌는 나를 높은 예지로 이끌어 준 것은 보석과 즐거움이 아니라 고난과 눈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톨스토이는 고난은 생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인간의 성장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괴테는 고난이 있을 때마다 그것이 참된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임을 기억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브라우닝 웨어 목사는 최악의 환경은 우리 삶에 새로운 의미를 주시려는 하나님의 가장 좋은 기회일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J. B. 필립스는 인간의 역경은 하나님의 기회라고 말했습니다.
고난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요 그냥 지나가는 것도 아니다. 전부 믿음을 수업하는 과정이다.
8-9절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이제 아셔야 합니다.
모든 일들은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려고 일어나는 일이다.
사람의 희로애락은 말 그대로 육신의 충족에서 오는 반응이다.
모든 문제에 육신을 의지하고 있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통해 이런 내 모습이 확인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문제는 다 끝났어, 때가 되면 지나간다고 생각한다고 문제가 그냥 지나가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믿음을 가져야 지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를 허용하는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래서 모든 문제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들어가야 은혜가 됩니다.
믿음이 없으면 소망도 없습니다,
인생의 마지노선 믿음이 무너지면 소망이 없습니다.
마지노선이 무엇입니까? 프랑스 사람들은 마지노 요새를 믿었습니다.
너무 튼튼하게 지었기 때문에 난공불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요새선만 있으면 독일군을 막을 수 있다고 자신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요새에 약점이 하나 있었는데, 공중 공격에는 취약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설마하며 방심하는 사이 결국 독일이 공중에서 프랑스를 공격해서 마지노가 무너진 것입니다.
흔히 최후의 선을 일컬어 마지노선이라는 말을 쓰는 것입니다.
사람은 미련해서 인생의 마지노선이 무너져야 소망이 없는 자임을 그때야 알게 됩니다.
소이 절망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여기서는 일어나지 못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생 가운데 힘든 생활을 반영한 단어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생, 수고, 환난, 재앙, 역경, 고통, 한, 분노, 원망, 후회, 상처, 고난, 실패, 낙방, 불안, 두려움, 이별, 슬픔 그리고 죽음과 같은 말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단어 죽음보다 더 무서운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일이 없는 절망입니다. 이 절망은 모든 것을 삼켜 버립니다.
더 이상 살아 있어야 할 의미를 상실한 상태입니다.
그래도 소망이 있는 메시지가 있다면 큰 위로와 의지가 되지 않겠습니까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형을 집행하는 나라가 바로 중국입니다. 한해 1천 건이 넘는 사형 집행이 이뤄지는데 집행 아내와 내연 남을 무참히 살해한 사형수의 사형 집행 전 모습입니다.
유언 남길 말 있나요? 없습니다.
유품 정리를 마친 사형수는 가족이 기다리는 면회실로 들어섭니다.
영원한 작별의 순간이 오자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우리 갈게. 다음 생을 기약하자.
사형수의 마지막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중계함으로 공개처형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주목해야 단어가 무엇입니까?
간음, 증오, 살해, 구속, 이별, 회환, 사회적 물의 등등의 모습이 있지만 딱 한 단어가 지금까지 만들어 냈던 모든 단어를 압도해 버립니다.
다음 생을 기약하자입니다.
이 한마디에 소망이 그리고 모든 이들이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인생은 고난과 그 어떤 위기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 때문에 따라오는 절망이 문제입니다.
단태의 신곡에서 주인공이 지옥을 방문합니다.
그 지옥문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마지막 소망까지 끊어진 사람이 들어가는 집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더 이상 기대 할 곳이 없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절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절망이라는 단어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구원을 받은 자의 특권입니다.
고난이 문제가 아니라, 그 고난으로 절망하고 있음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고난의 절망 가운데 소망의 주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정말 견디기 힘든 고통의 순간들이 누구에게나 있었습니다.
이제 그 순간에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묵상한다.
그리고 묵상의 결론이 무엇이었는가?
하나님이 길이요 진리요 셍명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과거에 건져주신 은혜를 체험한 사람은 현재에도 건지실 것을 믿고, 미래에도 건져 주실 것을 믿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히12:1-3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절망을 이길 수 있는 돌파구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다.
인생의 소망은 주께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는 자기로서는 거의 견딜 수 없는 시련을 당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런 경우마다 한 친구로부터 받은 편지로 인해 안정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편지 내용은 믿음이란 것은 더 많은 믿음을 가져보겠다고 내 힘으로 애쓰는 데서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전적으로 내 자신을 맡기는 데서 강해진다는 말이었다.
그는 이 편지를 읽는 동안 디모데후서 2:13의 말씀을 묵상했다는 것입니다.
딤후2:13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사람은 신실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십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를 바라보며 나는 애타지 않으련다. 그가 친히 약속하신 것을 어길 리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구원의 길,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위로, 축복과 평안 등등은 너무나 좋아서 받아들이기 쉽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세상살이를 하는 동안 고난을 통하여 주를 얻은 것에는 귀한 것으로 받아 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욥은 멋있는 말을 했습니다.
아내가 잘 살다가 역경을 당 할 때에 하나님을 욕하고 차라리 죽어 버리라는 말에 너무 나도 감동적인 말을 했습니다.
욥2:7-10 사탄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롬8:17-18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이제 내 삶에 여러 가지 고난들을 주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보면 고난이 그렇게 저주스러운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고난이라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사망선고입니다.
고난이라는 것은 더 이상 나 자신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다는 것을 말씀해줍니다.
오직 소망은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고난은 회피하거나 저주 할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받아들여야할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고난이 마귀가 준 것이라고 하지 마십시오
다 하나님의 허락하심 가운데 있습니다.
고난이 하나님께서 주신 고난이라면 그 고난을 기뻐하시고 즐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 감당하는 가운데서 놀라운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고난가운데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고난가운데 하나님의뜻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기쁨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뜻 가운데 적극적으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즐거움이 있을 것입니다.
수동적으로 어쩔 수 없이 당하는 고난이 아니라 더 적극적인 고난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고난은 삶입니다.
여인에게서 태어난 인생은 고생을 위하여 태어 난 것입니다,
다윗만큼 고난이 많았지만 그 삶은 누구보다 적극적이었습니다.
시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 때문에 엉망진창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더 바르게 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확신하십시오
10절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건지 움에는 세 가지의 시제가 있는데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은 사실, 하나님의 자녀로 오늘도 복 받고 사는 사실, 그리고 영원한 삶을 사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과거에 있었던 사건이 아니요, 현재의 일에만 적용이 되는 사건이 아니며, 미래에까지 연결되는 완전한 구원이라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란다.
그러기에 지금 고난 가운데 있는 존재가 아니라 구원 가운데 있는 자요, 슬픔 가운데 있는 존재가 아니라 얼마든지 기뻐하며 살아가야 할 존재라는 사실을 믿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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