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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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07회 작성일 2016-02-07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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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11:13-16 더 나은 본향
어김없이 올해도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설날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마도 수천만의 사람들이 이동을 할 것입니다.
중국은 춘절이라고도 하는데 올해는 약 30억 명이 이동 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동안 베이징과 상하이 등 대도시는 유령 도시로 변하고, 전국의 고속도로와 기차역은 귀성 행렬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몇날 며칠을 기차를 타고 혹은 오토바이를 타고 며칠을 수백 수천키로를 달려갑니다.
고향이 대단한 힘이 있습니다.
이 춘절동안에 돼지가 약500만 마리가 도축된다고 하니 시골에서는 춘제가 되면 돼지 비명이 끊이지 않는다.
중국 어른들은 빨간 봉투(훙바오·紅包)에 세뱃돈을 담아 아이들에게 나눠 주는데 모바일 인터넷에 등장하여 지난해 춘제 기간에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세뱃돈을 주고받은 사람 수는 23억 1000만명(중복 계산)에 이르렀다 그 돈 액수는 수 조억에 달한다고 합니다.
오늘 성경에는 사람들이 그렇게 그리워하고 좋아하는 고향보다 더 나은 본향이 있다고 합니다.
15-16절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왜 고향보다 더 나은 본향을 말해 봅시다
이 세상은 진정 고향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외국인이요 나그네이기 때문입니다.
13절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외국인이라는 말은 손님, 또는 낯선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본국 사람들에게 좀 이상하게 보이는 경멸의 대상이 되고 언어, 풍속, 생활양식이 달라서 이방인시 되고 이질적으로 취급되고 멸시받는 사람을 통틀어 외국인이라고 합니다.
나그네라는 말은 임시로 거주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나그네는 고향이 따로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타향에 얼마 동안 머물러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 생활은 항상 임시적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삶은 늘 돌아갈 고향을 생각하며 생활합니다.
이 명절에 고향을 찾은 온 가족들이 자신들은 더 나은 본향을 향해 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야합니다.
명절에 가족들이 다 모이는 것도 좋지만, 그 가족들을 모두 하나님 나라에서 볼 수 있게 되는 것이 더 좋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이 무엇인지 정의하고는 그러한 믿음을 따라서 살았던 사람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아벨부터 아브라함까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사느냐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느냐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그럼 어떻게 죽는 것이 잘 죽는 것일까요?
자기 명대로 천수를 살다가 죽으면 잘 죽는 것일까요?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믿음을 따라 죽는 사람입니다.
성적 따라, 일의 성패에 따라, 사정과 형편에 따라 죽어서는 안 되고, 믿음을 따라 죽어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고방식이 다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약속의 실현을 보지는 못했지만 믿음의 눈으로 미래에 되어 질 것들을 현재적인 실체처럼 바라보고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장차 이르게 될 본향을 현재적 실체로서 느끼며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가르쳐 이 땅의 삶은 잠시 머무르는 나그네라고 말하며 살았습니다.
우리도 자신을 나는 무엇이다 나는 나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나는 나그네다고 해야 합니다.
나그네는 주어진 삶을 살아가지만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나그네 즉 인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윗의 고백입니다.
대상29:15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
정처가 없다는 말입니다
야곱의 고백입니다.
창47: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괴로운 생활의 연속이다
모세의 고백입니다
시90:9-10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정처도 없고 힘도 들지만 그리고 짧은 생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진정한 본향이 아닙니다
본향은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한국이 70년대에 원양어선을 시작하여 참치 잡이를 가서 외화를 많이 벌어드렸다고 합니다.
독일 간호사 광부가 고향 산천을 떠나 외국에서 나그네 생활하며 고생하여 10여 년 동안 한국에 벌어드린 외화는 1억불이 조금 넘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 참치 잡이를 해서 벌어드린 돈은 20억불이 넘는다고 하니 독일의 간호사 광부보다 20배 가까이 외화를 벌어드렸습니다.
그 원양어선의 기항지인 서사모아가 첫 번째 한국 어선의 기항지인데 20대 초반에 간자들이 70을 넘고 80이 된 자들이 거기에서 원주민과 결혼하여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한국으로 가고 싶지 않느냐 하고 물었더니 가고 싶다는 말보다는 한국은 공기가 나빠서 안 간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미주에 있는 교포들 중에는 한국의 이미지가 고국은 음식 값이 너무 비싸 배고파서 못 오겠다는 거예요
요사이 명절은 고향에 안 갑니다.
여행 해외여행을 가버립니다.
별로 고향은 인기가 없고 더 좋은 곳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믿음의 조상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서조차 외국인과 나그네라 증거 하면서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냈는데, 그것은 자기들의 난 본향에 돌아갈 기회가 있었음에도 가지 않음으로 인해 사실은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고 사는 것을 증거 한다고 하였다.
돌아 갈 기회가 있어도 더 나는 곳이 있기에 고향에 안 간다는 것입니다.
14-16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본향 찾는 이라고 번역했는데, 헬라어 성경에는 열심히 라는 말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나라인 본향을 열심히 찾는 자들임을 나타냈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찾는 자임을 나타내고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과 같이 열심히 돈이나 세상 지식과 세상적인 어떤 소유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 사람들에게서 믿음에 대해 질문에 대답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믿음이 세상의 필요를 채워 준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독교의 타락의 큰 원인이 예수 잘 믿으면 세상적인 모든 것이 잘 된다는 것에 있습니다.
세상적인 것보다 더 나는 것을 말해야 합니다.
육신의 소욕이 아니라 성령의 소욕임을 말해야 합니다.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라고 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나온 바 본향은 아브라함의 고향인 우상이 가득한 갈대아 우르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믿음의 선진들이 자기들이 나온 곳을 세상적인 고향만을 계속 기억하고 있었다면, 그리로 다시 돌아가기 위한 시간은 얼마든지 그들에게 있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선진들은 그들이 나온 곳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곳으로 돌아갈 시간이 그들에게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그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인 본향을 향해 가는 시간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그리스도인이 예수 믿기 전의 생활에 대해서 계속 기억하고 있으면 불신앙하던 옛 생활로 다시 돌아갈 시간은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 믿지 않던 자리의 기억은 없기를 바랍니다.
불신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시간들이 여러분에게는 없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믿기 전인 세상으로 돌아갈 시간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벧전4:2-3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더 나은 본향에 합한 자로 살아갑니다.
나를 위하여 예비된 것이 있습니다
고향과 생각되는 것은 죽음입니다. 조상 묘지를 방문합니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해진 사실입니다. 피할 수 없습니다.
물질이나 명예나 권력이나 그 어떤 것도 죽음으로 가는 인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합니다.
사후의 세계에 대해서 불투명하거나 확신이 없다면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아가게 될 뿐입니다.
김의신 박사가 미국인 암 환자도 치료해 보고 한국인 암 환자도 치료해 보았는데 한국인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고 한 강연에서 말한 바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그런 질문을 받아 본 적이 거의 없는데 한국인 암환자들이 꼭 묻는 질문이 있다고 합니다.
선생님, 제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만이 알 수 있는 영역이요 현대의학이 아무리 발달되어 있어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고, 또 여러 가변적인 요소도 있습니다.
31년 동안 숱하게 암 환자를 대하면서도 미국인 환자나 가족이 우는 걸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인 환자나 가족은 대화를 나누다가 울음이 복받쳐서 얘기를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미국인은 기본적으로 삶과 죽음은 하나님이 결정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병은 전적으로 의사에게 맡깁니다.
자신은 마음과 몸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집중하고 그래서 묵묵히 자신이 할 일을 합니다.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회사에 출근을 합니다.
죽기 전날까지 일을 하는 경우도 봤습니다.
그런데 한국인은 일단 하던 일부터 그만둡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암과 죽음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그건 환자의 상태를 더 악화시킬 뿐입니다.
죽음을 직면하신 분들을 많이 만나보지만 우리 민족은 세상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 아쉬움인지, 억울함인지 눈물을 많이 흘립니다.
믿음과 감사가 없이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삶과 죽음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성도는 내세의 확신이 가지고 감사와 평안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더 나은 삶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이유는
16절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받은 은혜는
하나님이 기뻐하심으로 저희 하나님이라 칭하심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부끄러워 한자는 하나님도 그를 부끄러워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인정하고 확신하는 자는 하나님도 그를 인정하고 기뻐하십니다
막8: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마10:32-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다고 합니다.
미국의 에담스 대통령이 노년에 청년들이 전직 대통령을 알아보고 각하,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때 에담스 대통령이 청년에게 들려준 유명한 얘기가 있습니다.
젊은이, 내가 안녕치를 못하네. 내 장막집이 무너지려고 해서 이사 갈 준비를 한다네
보다시피 내 집은 낡아서 지붕이 다 벗겨져 버렸고, 창은 낡아서 다 찢어지고, 기둥은 흔들거려 언덕을 오를 수 없고, 들보는 굽고, 쓰러지기 일보직전이라네
당황하는 젊은이들에게 이보게 내 지붕에 머리카락이 몇 개나 남았나. 내 눈이 창문인데 안경을 써도 이제는 더듬거려 기둥 같은 두 다리는 흔들거려 걸을 수가 없어. 들보는 내 허리인데 쇠하여 구부러졌어. 이 장막 집이 무너지면 저 세상으로 이사 가야 할 것 아닌가? 이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네
나를 맞아 주고 갈 곳이 없는 나그네 참으로 불행하지 않습니까?
장차 곧 갈 본향은
계21:2-4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21:18-21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지난 금요일 후배 목사의 장모께서 소천 하셨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발인하는 날이 설날입니다.
세상 고향가야 하는 날 더 나는 본향을 가시는 거예요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장차 영광스럽게 들어갈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확신할 때에 돌아갈 영원한 처소 더 나은 본향이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이 세상의 어떤 힘듦이 있어도 당당하게 주어진 삶을 감사하며 잘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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