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사는 하나님의 일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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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269회 작성일 2016-02-2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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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9:1-7 만사는 하나님의 일을 보여줍니다
후천성 시각 장애를 가졌지만 오히려 그 장애를 통하여 아름다운 삶을 만들었던 던 고 강영우 박사 유고작, 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 에서 이런 글을 썼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80퍼센트의 정보를 눈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내가 마지막으로 이 세상을 본 것이 50년이 넘었고, 내 머릿속의 세상은 그때 내가 마지막으로 본 세상의 이미지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니 상상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지금의 세상을 그대로 내 머릿속에 그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세상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느냐, 그것은 아니다.
내가 처음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무척이나 시끄러운 삼벌식 타자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컴퓨터로 글을 쓴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혼자서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 볼 수도 있고, 지인들이 보낸 이메일을 확인할 수도 있다. 그만큼 세상은 빠르게 변했다
1964년 나는 우연히 기독교방송의 인생 상담이라는 프로그램을 청취하게 되었다.
진행하시는 목사님을 통하여 왜 내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 것일까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노라고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준비하시는 일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두 곳을 인용해 주셨는데 이것이 나의 장애 극복의 첫 걸음이었고, 나의 신앙적 갈등을 해결하는 열쇠가 되었다.
첫 번째 말씀은 요한복음 9장1-3절이다.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어려서부터 그렇게 성경 구절을 외웠는데, 왜 이 부분은 기억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이 말씀을 듣는 순간 나는 커다란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왜 이 사실을 모르고 그렇게 나를 미워하며 열등감에 빠져 살았을까?
나의 실명은 죄의 대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우심을 드러내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두 번째 말씀은 고린도후서 12장7-10절의 말씀이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그제야 나는 나의 믿음이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사도 바울이 믿음이 부족해서 고쳐 주시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약함 속에서 주의 권능을 드러내시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분명히 나의 고난에도 주님의 계획과 목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단 한 번도 나의 눈을 고쳐 달라는 기도를 드리지 않았다.
드디어 나는 장애를 극복해야 할 이유를 찾았던 것이다.
나의 진짜 문제는 육체의 장애가 아니고 믿음의 장애다
췌장암 말기 선고를 받았을 때, 의사들은 나에게 한 달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부지런히 워싱턴에서의 일들을 정리하고, 나는 나의 제2의 고향을 방문하고 싶어졌다.
시카고 근교에 자리 잡고 있는 먼스터 인디애나는 나의 제2의 고향이다.
처음 일을 하게 된 곳도 그곳이요, 처음 내 집을 마련한 곳도 그곳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게도 나에게 편안하고 즐겁게 쉴 시간을 허락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축복 속에 마지막을 준비하는 나의 모습을 통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여전히 움직이고 계신다.
그렇다. 그래서 이번 생일에 나는 소원을 비는 대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지금의 시간을 허락하심에 감사드렸고, 가족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드렸다.
그리고 나의 삶의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도구로 써 주심을 감사드렸고, 이렇게 나의 마지막 책을 끝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심에 감사드렸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이 되지 않았습니까?
장애 문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 앞에서는 더 이상의 장애가 될 수 없고 더 이상의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장애와 문제 앞에 사람들이 손쉽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누구 때문인가 라는 책임 추궁입니다.
우리 사회가 인과율, 즉 원인과 결과라는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도식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모든 현상은 특정한 원인의 결과물이다, 이것이 인과율입니다.
이것 역시 믿음에도 적용을 시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이러한 인과론적 도식에 매우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수십 년간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인과론적 질문을 던집니다.
2절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이 질문에는 두 가지 인과론적인 전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모든 고난은 죄의 산물이다.
또 다른 하나는, 모든 고난은 누군가 책임져야 할 원인제공자가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전제를 일축하십니다.
3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우리는 대부분 고난의 원인을 과거에서 찾고자 합니다. 과거지향적인 인과율입니다.
지난날의 크고, 작은 죄가 현재 우리의 발목을 잡고, 또 그것이 망령이 되어 우리 미래를 빼앗아간다고 생각하면 자포자기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에 대한 시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고난의 이유는 과거가 아닌 미래에서 찾아져야 합니다.
또한 고난의 원인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고난의 목적에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내가 처한 고생스런 상황에서 미래를 향한 의미를 발견하고 시련과 역경의 의미를 전환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원인은 과거에 있지 않고 미래에 있다.
고난의 원인에서 찾기보다는 장래에 선한 결과에, 아름다운 목적에 시선을 돌리자.
산모의 고통과 같다.
목적 있는 고통
요16: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빅터 플랭클 고난 속에서 의미를 찾는 자에게 그 고난은 축복이다.
그러므로 고난과 당한 문제는 정죄의 대상이 아니다
유대인 사회에서는 어떠한 신체장애나 고난은 죄의 결과라는 생각이 보편화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관념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범한 죄로 인하여 질병이나 고난을 초래하는 일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에는 질병과 고난이 모두 자기 죄로 말미암는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인생에게 일어나는 모든 슬픔과 고통의 최초 원인은 인류의 조상 아담에게서 비롯되었습니다.
아담이 범죄한 이후 인간의 역사는 시기, 질투, 살인, 전쟁, 천재지변, 질병 등으로 얼룩져 있으며, 인생과 고난은 항상 함께해 왔습니다.
내가 겪고 있는 온갖 고난을 누구의 죄 때문이라고 단순히 구분 짓거나 규정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 원인이 대체로 복합적 성격을 지니고 있거나, 이해가 미치지 못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려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죄와 고난의 관계를 다루시지 않았습니다.
이는 고난 중에 있는 사람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어떠한 일을 행하시는가를 보여주는 기회가 되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이미 죄에서 자유케 하셨습니다.
현장에서 잡힌 간음하던 여인에게 참으로 자유를 주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더 이상 나에게 당한 문제를 과거로 돌려 누구의 잘못 책임 전가를 시켜 과거도 악하게 만들고 현재도 악하게 받아 드리는 일이 없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가장 합당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면 미래를 밝게 보게 될 것입니다.
또한 과거의 원망이 없으면 현세를 감당하는 힘을 얻게 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은 날 때부터 소경이었습니다.
이 말은 인간의 실상을 형용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영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만물의 존재 근원과 이유와 목적에 대해서 온전한 이해나 지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우주 만물이 어떻게 하여 존재하게 되었는가를 알지 못합니다.
우연과 진화의 결과라는 가르침을 그대로 믿고 있습니다.
인류의 앞날에 대하여 낙관하든 비관하든 그 모두가 애매모호한 예측에 근거한 것입니다.
사람이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사람은 먹기 위해 살고 살기 위해 먹을 뿐이며 죽는 것이 싫고 두려우니 오래 살려고 발버둥 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암중모색의 터널이 끝이 납니다.
앞에서 말한 모든 것의 답이 명백하게 됩니다.
그 모든 답이 성경에 계시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영안이 열린 사람이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1장에 이런 기도가 있습니다.
엡1:17-1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머물 것이 아닙니다.
주의 뜻을 따름이 복된 삶이다
적어도 신앙인들은 고난의 현실에서 낙심하고 절망하는 낭비하는 삶이 되지 마시고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나의 고난 지금 겪는 아픔 속에서도 하나님의 일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만나야 합니다.
어떻게든 내 힘으로 버텨 보겠다고 세상을 향한 나의 길을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고난이 영광스런 소망으로 전환될 수 있지만, 그가 계시지 않는 자리에 머무른다면 현재의 고난은 더 큰 재난의 시작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방식을 수긍하고 수용해야 합니다.
거기에는 절대적인 순종이 요구됩니다.
하나님의 일은 늘 인간의 수고를 필요로 합니다.
인과보응적인 세상의 이치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순종의 믿음으로만 영적인 시야를 갖게 되고, 지금의 고난이 미래지향적 고난, 목적과 가치가 있는 고난, 아니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는 영광으로 승화될 것입니다.
롬8:17-18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예수께서 땅에 침을 뱉어서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침과 진흙에 어떤 효력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권능은 예수님으로부터 흘러나와 순종하는 나에게 임합니다.
예수께서 다만 말씀으로 그 소경을 고칠 수 있으시지만 이번 경우는 침과 진흙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셨을 뿐입니다.
이에 대하여 소경이 취한 행동과 그 결과는 매우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4-7절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소경의 태도는 매우 놀랍습니다.
예수님이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발랐을 때 기분을 상했거나 반발하지 아니했습니다.
소경은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주의 깊게 들었습니다.
그 순간 그의 마음에 굉장한 기대감이 생겨났습니다.
어떤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믿음이 생겼습니다.
강영우박사의 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
나는 믿는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삶들을 사람 생긴 대로 선택해서 사용하신다는 것을 믿는다
책 내용 중에 손녀딸이 우리할아버지 눈뜨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는데 할아버지는 그 딸에게 특별한 답변을 해준다 밤에 불 끄고 책 읽어 줄 수 있는 사람은 할아버지 밖에 없단다 할아버지는 절대 불편하지 않아
그때서야 긍휼한 마음을 가진 손녀딸이 안심하는 내용
긍정적인 순종의 삶이 이 세상에 큰 리더로 쓰시게 하는 하나님
그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만의 특권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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