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가 자유롭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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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31회 작성일 2016-03-06 20:45본문
요한복음8:32-36 진리가 자유롭게 하리라
이 세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유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인류의 역사는 억압과 구속에서 벗어나려는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사람다운 삶은 자유하는 삶입니다.
그런데 자유하지 못해서 불편해 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 민족이 일본 사람들을 그렇게 싫어합니까
민족의 자유를 빼앗아 갔다는 것 아닙니까
정치 문화 경제 인권까지 다 빼앗긴 것 아닙니까
기독교인등은 신앙의 자유까지 빼앗긴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이 민족이 견딜 수 없어서 만주 벌판에서는 민족의 투사들이 독립군을 결속하여 일군과 싸우고 국내에서는 3월 1일은 자유를 위하여 억압에서 자유 독립을 외치지 않았습니까
수많은 생명을 희생하지 않았습니까
미국 독립혁명의 지도자 헬리 페트릭은 그의 연설에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쳤습니다.
자유는 생명만큼 아니 생명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이렇게도 원하는 참 자유가 무엇인가
본문은 자유에 대하여 잘 말하고 있습니다.
32절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리를 알아야 자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유하려면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미국 중앙정보부(CIA)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를 정보국의 모토로 삼고 있다고 합니다.
자유에는 항상 진리가 따르는 것입니다.
자유케 하는 진리란 무엇입니까?
국어 사전는 참된 이치. 또는 참된 도리라 말하는 너무 추상적입니다
논리적으로는 어떤 명제가 사실에 정확하게 들어맞음. 또는 논리의 법칙에 모순되지 아니하는 바른 판단. 형식적 의미로 사유의 법칙에 맞는다는 의미에서의 사고의 정당함을 의미한다.
이 역시 명제나 논리의 법칙 혹은 사유의 법칙 자체가 애매한 것입니다
철학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승인할 수 있는 보편적인 법칙이나 사실.
조금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는 것 같지만 역시 철학일 줄 뿐입니다
그러니 그 진리는 인간이 지닌 근본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고 만족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이런 진리가 어디 있습니까
국회에서 제 아무리 법을 만들고 정부에서 집행을 해도 사람들은 이 법이 맞지 않다고 행동함으로 사법에는 법을 어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나와 법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세상에서는 자유 할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 성경에서는 진리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요17: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입니다.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리고 예수님은 진리를 정의하였습니다.
진리는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진리를 잘 아는 것처럼 말고 증언하고 있지만 실제로 진리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번에 국회에서 9일 째 이어온 테러 방지법 필리버스터란 무제한 토론 여야한 자신의 지유를 말하고 있으니 참으로 무의미 한 것 아닙니까
나 자신이 자유롭지 못하다면 진리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단순히 지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는 나를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무엇에서 자유롭게 하느냐
세상에 그 무엇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죄에서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죄에서의 자유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의 종이다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가 자신이 죄의 종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종이 된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자유하고 있다고 여기니 자유함이 없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33-34절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는 이 말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과연 종이 된 적이 없습니까?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하는 유대인들은 애굽에서 430년간이나 종노릇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와 사사시대에도 적어도 일곱 번이나 이방 나라의 지배를 받으며 종으로 있었습니다.
왕정시대에는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여 70년간이나 포로생활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을 하고 있는 유대인들은 그 당시도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말하는 자유개념은 비록 육신적으로 속박을 당했다고 할지라도 다른 개념으로 자유를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유란 죄의 지배를 받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자유는 죄에서의 자유입니다.
죄는 사람을 이래라 저래라 부립니다.
아무도 나는 죄에서 자유로운 자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 자신을 보십시오
자기의 욕심이나 이 세상의 가치관이나 지나치게 강한 자의지에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무엇에 자신을 드려 순종하여 지배를 받고 있다면 그것은 거기에 종노릇하고 있는 것입니다.
롬6:16-18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유대인은 율법에 대하여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은 진리를 아는 민족이라고 진리에 속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리가 되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배척하였습니다.
죄가 진리를 배척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진리에 속했다면 예수님을 배척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진리에 속하지 않고, 어둠에 속했기 때문에 진리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영광의 예수를 알았더라면 십자가에 못밖에 내어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35-36절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율법 아래 있는 자는 다 죄의 종입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할 자가 없습니다.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자유를 준다
갈4:4-9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더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
예수 안에서 아들 안에서의 자유입니다.
이제 예수 안에서 선택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인생에서는 무수히 많은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분노하고 절망의 생각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동일한 사건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신뢰한다는 긍정적 생각을 선택합니다.
롬7:5-6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시련도 복 받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시련을 복으로 승화합니다.
다윗 왕이 아들의 쿠데타를 피하여 갈 때에
삼하16:11-12절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바울은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선을 바라보았습니다.
이 다윗은 참으로 예수 안에서 자유함을 터득하였습니다.
시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신약의 사도 바울 역시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 역시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자유를 누렸습니다.
빌4: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삶에서 객관적인 사실은 10%에 불과하고 나머지 90%는 그 일에 대한 자신의 반응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선택하면 두려움과 불안의 감정이 밀려오고, 이점과 같은 긍정적인 생각을 선택하면 평안과 감사의 감정이 피어오르는 법입니다.
이와 같이 환경이 주는 자극에 대해 내가 자유의지를 갖고 해왔던 선택, 바로 그 결과물이 지금의 나입니다. 살면서 해 온 모든 선택의 총체적 결과물이 현재의 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특별한 선물은 자신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육신의 소욕을 쫒는 선택을 하지 않고 성령의 소욕을 쫒은 자유를 얻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롬8:1-6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예수님이 주실 자유는 근본적으로 죄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모두는 인류의 근본적인 죄에 매인 자들일 뿐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만이 인류의 죄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죄와 세상과 자아로부터 해방시키시고 자유하게 하시려고,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진리를 알려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므로 제자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라.
예수님은 혈통적인 자손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아브라함의 자손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하지만 아브라함이 행한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아브라함의 자손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말합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교제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자유가 없습니다.
태평양 한 가운데 괌 이라는 섬의 조그마한 굴에서 27년 동안을 혼자 산 일본군인 요코이 라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태평양 전쟁은 1945년8월15일에 일본의 항복으로 끝났습니다 만은 이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자기 혼자만 살아 있는 줄로 알고 그 굴속에 들어가서 일본의 천황 폐하를 섬기는 정신을 가지고 27년 동안을 청춘을 다 보내고 홀로 살아온 것입니다.
나무 열매를 따먹고 뿌리를 캐어 먹으면서 낡아빠진 총 한 자루를 의지하고 무수한 외로움과 전쟁의 두려움과 공포를 가지고 27년을 살아 왔다는 것 아닙니까?
벌써 전쟁이 끝났는데 왜 그렇게 살고 있느냐? 말입니다.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을 몰랐으니 그렇게 밖에 살아 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이 사람이 전쟁이 끝난 줄을 알았으면 그곳에서 바보처럼 살지는 않았을 것 입니다.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어리석은 세상에서 구속된 삶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상에서의 모든 삶에서 참 자유함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세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유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인류의 역사는 억압과 구속에서 벗어나려는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사람다운 삶은 자유하는 삶입니다.
그런데 자유하지 못해서 불편해 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 민족이 일본 사람들을 그렇게 싫어합니까
민족의 자유를 빼앗아 갔다는 것 아닙니까
정치 문화 경제 인권까지 다 빼앗긴 것 아닙니까
기독교인등은 신앙의 자유까지 빼앗긴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이 민족이 견딜 수 없어서 만주 벌판에서는 민족의 투사들이 독립군을 결속하여 일군과 싸우고 국내에서는 3월 1일은 자유를 위하여 억압에서 자유 독립을 외치지 않았습니까
수많은 생명을 희생하지 않았습니까
미국 독립혁명의 지도자 헬리 페트릭은 그의 연설에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쳤습니다.
자유는 생명만큼 아니 생명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이렇게도 원하는 참 자유가 무엇인가
본문은 자유에 대하여 잘 말하고 있습니다.
32절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리를 알아야 자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유하려면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미국 중앙정보부(CIA)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를 정보국의 모토로 삼고 있다고 합니다.
자유에는 항상 진리가 따르는 것입니다.
자유케 하는 진리란 무엇입니까?
국어 사전는 참된 이치. 또는 참된 도리라 말하는 너무 추상적입니다
논리적으로는 어떤 명제가 사실에 정확하게 들어맞음. 또는 논리의 법칙에 모순되지 아니하는 바른 판단. 형식적 의미로 사유의 법칙에 맞는다는 의미에서의 사고의 정당함을 의미한다.
이 역시 명제나 논리의 법칙 혹은 사유의 법칙 자체가 애매한 것입니다
철학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승인할 수 있는 보편적인 법칙이나 사실.
조금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는 것 같지만 역시 철학일 줄 뿐입니다
그러니 그 진리는 인간이 지닌 근본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고 만족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이런 진리가 어디 있습니까
국회에서 제 아무리 법을 만들고 정부에서 집행을 해도 사람들은 이 법이 맞지 않다고 행동함으로 사법에는 법을 어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나와 법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세상에서는 자유 할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 성경에서는 진리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요17: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입니다.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리고 예수님은 진리를 정의하였습니다.
진리는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진리를 잘 아는 것처럼 말고 증언하고 있지만 실제로 진리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번에 국회에서 9일 째 이어온 테러 방지법 필리버스터란 무제한 토론 여야한 자신의 지유를 말하고 있으니 참으로 무의미 한 것 아닙니까
나 자신이 자유롭지 못하다면 진리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단순히 지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는 나를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무엇에서 자유롭게 하느냐
세상에 그 무엇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죄에서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죄에서의 자유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의 종이다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가 자신이 죄의 종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종이 된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자유하고 있다고 여기니 자유함이 없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33-34절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는 이 말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과연 종이 된 적이 없습니까?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하는 유대인들은 애굽에서 430년간이나 종노릇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와 사사시대에도 적어도 일곱 번이나 이방 나라의 지배를 받으며 종으로 있었습니다.
왕정시대에는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여 70년간이나 포로생활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을 하고 있는 유대인들은 그 당시도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말하는 자유개념은 비록 육신적으로 속박을 당했다고 할지라도 다른 개념으로 자유를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유란 죄의 지배를 받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자유는 죄에서의 자유입니다.
죄는 사람을 이래라 저래라 부립니다.
아무도 나는 죄에서 자유로운 자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 자신을 보십시오
자기의 욕심이나 이 세상의 가치관이나 지나치게 강한 자의지에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무엇에 자신을 드려 순종하여 지배를 받고 있다면 그것은 거기에 종노릇하고 있는 것입니다.
롬6:16-18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유대인은 율법에 대하여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은 진리를 아는 민족이라고 진리에 속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진리가 되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배척하였습니다.
죄가 진리를 배척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진리에 속했다면 예수님을 배척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진리에 속하지 않고, 어둠에 속했기 때문에 진리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영광의 예수를 알았더라면 십자가에 못밖에 내어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35-36절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율법 아래 있는 자는 다 죄의 종입니다
율법으로는 의롭다 할 자가 없습니다.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자유를 준다
갈4:4-9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더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
예수 안에서 아들 안에서의 자유입니다.
이제 예수 안에서 선택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인생에서는 무수히 많은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분노하고 절망의 생각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동일한 사건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신뢰한다는 긍정적 생각을 선택합니다.
롬7:5-6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시련도 복 받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시련을 복으로 승화합니다.
다윗 왕이 아들의 쿠데타를 피하여 갈 때에
삼하16:11-12절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바울은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선을 바라보았습니다.
이 다윗은 참으로 예수 안에서 자유함을 터득하였습니다.
시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신약의 사도 바울 역시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 역시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자유를 누렸습니다.
빌4: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삶에서 객관적인 사실은 10%에 불과하고 나머지 90%는 그 일에 대한 자신의 반응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선택하면 두려움과 불안의 감정이 밀려오고, 이점과 같은 긍정적인 생각을 선택하면 평안과 감사의 감정이 피어오르는 법입니다.
이와 같이 환경이 주는 자극에 대해 내가 자유의지를 갖고 해왔던 선택, 바로 그 결과물이 지금의 나입니다. 살면서 해 온 모든 선택의 총체적 결과물이 현재의 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특별한 선물은 자신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육신의 소욕을 쫒는 선택을 하지 않고 성령의 소욕을 쫒은 자유를 얻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롬8:1-6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예수님이 주실 자유는 근본적으로 죄로부터의 자유입니다.
모두는 인류의 근본적인 죄에 매인 자들일 뿐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만이 인류의 죄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죄와 세상과 자아로부터 해방시키시고 자유하게 하시려고,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진리를 알려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므로 제자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라.
예수님은 혈통적인 자손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아브라함의 자손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하지만 아브라함이 행한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아브라함의 자손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말합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교제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자유가 없습니다.
태평양 한 가운데 괌 이라는 섬의 조그마한 굴에서 27년 동안을 혼자 산 일본군인 요코이 라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태평양 전쟁은 1945년8월15일에 일본의 항복으로 끝났습니다 만은 이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자기 혼자만 살아 있는 줄로 알고 그 굴속에 들어가서 일본의 천황 폐하를 섬기는 정신을 가지고 27년 동안을 청춘을 다 보내고 홀로 살아온 것입니다.
나무 열매를 따먹고 뿌리를 캐어 먹으면서 낡아빠진 총 한 자루를 의지하고 무수한 외로움과 전쟁의 두려움과 공포를 가지고 27년을 살아 왔다는 것 아닙니까?
벌써 전쟁이 끝났는데 왜 그렇게 살고 있느냐? 말입니다.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을 몰랐으니 그렇게 밖에 살아 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이 사람이 전쟁이 끝난 줄을 알았으면 그곳에서 바보처럼 살지는 않았을 것 입니다.
우리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어리석은 세상에서 구속된 삶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상에서의 모든 삶에서 참 자유함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