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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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04회 작성일 2016-04-24 20:23본문
사도행전4:5-10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뉴욕의 한 메디칼센타 외과의사가 7,000km 떨어진 대서양 건너 프랑스 한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의 담낭을 떼어내는 수술에 성공을 했습니다.
광섬유로 연결된 아주 작은 수술 칼을 원격 조정을 이용해 미국에 앉아서 프랑스에 누운 환자를 수술했다는 것입니다.
빛은 1초에 30만 Km를 가기 때문에 원격수술은 시간차가 0.15초에 불과해 실제 수술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수술의 이름을 1927년 최초로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했던 찰스 린드버그의 이름을 따 린드버그 수술이라고 명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과학의 힘을 실감케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인 빌 게이츠는 생각의 속도라는 책에서 정보의 힘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현대는 정보가 힘이요 돈이요 재산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그리스도인의 교회의 힘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에게는 세상이 가지지 못한 힘이 있습니다.
이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신령한 힘이 있습니다.
인간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영원의 문제, 영생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힘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이름의 능력이요,
성령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사람들이 생각지 않는 놀라는 힘을 보았습니다.
예수의 제자인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시간에 성전에 갔다가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걷게 한다.
돈이 힘인 줄 알고 돈을 구걸하던 장애인인 이 사람이 일어나는 엄청난 기적을 경험하고 기뻐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하나님을 찬송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사렛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앉은뱅이가 걷게 되었다는 것에 긍정적인 반응을 가지고 좋아하며 놀라워했다.
당시 이 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남자만 약 5천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한 그 선한 일에 대해 못마땅하게 여긴 자들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세상에서 이름께나 날리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사회의 모든 일이 자기들 조직체의 권세와 자기들의 이름으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감히 누구의 권세로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고 호통을 치는 것입니다.
여기에 베드로와 요한은 성령이 충만하여 분명하게 말합니다.
예수 이름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또 아주 상세하게 말합니다.
10절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예수 이름은 어떤 권세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권세이다
일어나 걸은 사람은 40년 동안 걸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걸어보지 못한 자이기 때문에 아니 걸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걷는 다는 생각은 그는 아예 가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할 수 없다
이게 그에게 삶의 방향을 돈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세상이 전부 돈으로 생각합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돈으로 보입니다
아예 현대인의 삶의 모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역사 이래로 돈은 인간을 지배하였고 종교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로보암의 길이라고도 하는데
여로보암은 이스라엘의 분열을 주도한 자요 북이스라엘 왕국의 초대 왕(B.C.930-910년)인 여로보암의 악행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버리고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워 예배 처로 삼고, 하나님의 법도를 마음껏 유린하고, 산당을 세워 백성을 타락시킨 죄악을 그대로 답습했던 북이스라엘의 통치자들을 가리켜 한 말로, 죄악의 길, 우상 숭배의 악습을 가리킨다
돈이 하나님입니다.
이 돈이 하나님께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것입니다.
돈을 너무 사랑하면 일만 악의 뿌리가 됩니다.
그때 베드로가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행3:1-6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40년 동안 한 번도 일어나 보지 못한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돈만 구걸했다면 이 사람은 새로운 세상을 맛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구걸한 그 돈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직도 나 하나를 만족 시킬 수 없는 돈에 내 인생을 투자하고 종이 되어 살아가는 비극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이름으로 여태까지 얽매이었던 그 자리에서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이 권세가 어디에서 나왔느뇨.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 될 때에 베드로는 하나님의 권세라고 말하였습니다.
예수 이름은 하나님의 권세입니다.
막9:17-23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예수의 권세는 선한 권세다
베풀어 주는 생명을 주는 권세다
9절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독일의 사회 심리학자인 에릭 프롬이 그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양식을 따라 소유 지향적인 삶과 존재 지향적인 삶의 두 가지로 나누어서 분석을 했습니다.
소유 지향적인 삶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소유(to have)의 대상으로 여기면서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될수록 행복해지리라는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삶의 양식을 말합니다.
무엇이든지 내 소유로 만들고 보자는 삶을 말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소유 지향적인 삶을 사는 자들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세상에서 끊임없이 무엇을 얻으려는 소유 지향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 그래서 예수를 통하여 끊임없이 무언가를 불만하고 불평하고 간구하고, 얻고자 하는 신앙인으로 남아 있습니다.
신앙생활이 즐겁지 않아
무엇인가 주면은 즐거울 것인데
잠30:15-16절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스올과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
늘 불만입니다.
한푼 두푼 받으려고만 하니 얼마나 심기가 불평하겠습니까
만약에 지나가는 가는 사람이 한 푼을 주지 않고 그냥 지나가면 욕이라도 하고 싶을 것입니다.
아니면 빼앗아 가기도 할 것입니다.
세상이 소유욕에만 가득차 있으면 그게 지옥입니다
반면에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를 깨닫고 그 존재로서의 위치를 지키려는 곧 부름심에 합한 자로 살려고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누가복음6:30-35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베드로가 은과 금은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겠다 하면서 예수의 이름으로 그 앉은뱅이를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랬더니 벌떡 일어서서 걷기도 하고 뛰어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돈 몇 푼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가 돈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거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남을 돕고 봉사하는 일에 서투릅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거지가 원하는 것의 차원에서는 베드로에게는 거지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거지에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것을 줄 수 있었습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가 교회를 비판하니까 교회가 세상을 향해 해야 할 유일한 책임이 사회봉사인 것처럼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웃 사랑의 명령에 따라 물질로 사회를 섬기는 책임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기억하실 사실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사회봉사는 교회 아닌 다른 단체에서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만이 세상을 향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지나간 역사에 소위 자유주의 신학이 창궐하던 시절 교회가 복음 증거의 사명을 잊고 사회봉사에만 열중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교회들은 위축되기 시작하였고 결과적으로 교회는 전도도 사회봉사도 못하는 영향력을 상실한 공동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교회에서 세상적인 무엇을 주어서가 아니요
세상적인 것이 없어서 무엇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행하십시오
거기에는 놀라운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는 많은 값을 치루어 얻는 권세다
사실 교회가 힘들지만은 예수만을 내어 놓을 수 있으니 이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이 교회가 무얼 내 놓을 만 한 것있습니까?
그러나 진짜 귀한 것을 내어 놓을 수 있게 된 줄로 믿습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예수 그리스도 이름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다른 거 내어 놓을 수 없다고 실망하지 말고 나의 부족함으로 오히려 예수님만을 자랑하게 된 것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원하는 자에게 누구에게나 줍니다
빌립보서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자기는 늘 받기만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받는 데만 익숙해진 사람은 가진 것이 많아도 내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 앉은뱅이 거지는 평생 남에게 받기만 했지 자기가 남을 도와준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내게 있는 것이 하나씩은 있습니다.
40년이라는 평생을 살아오면서 은금만 타령했지 그 은금이 자신을 구원해 주지를 못했습니다.
그는 성전이라는 미문 앞에 매일 앉아 있었지만 믿음에 대하여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실 교회 들락날락 하였지만 믿음에 대하여 관심이 없지 않았습니까?
믿음이 나의 인생의 문제에 해결해 줄 것이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앉은뱅이가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 이름입니다.
세이브라는 강철회사에 청소부로 들어갔다가 카네기의 비서실장이 되고 카네기가 은퇴하는 때에 그의 후임자로 세웠습니다. 세이브는 자신의 부족을 들어 한사코 거절했지만 카네기는 과학자가 필요하면 과학자를 불러다가 쓰고 돈을 주라 경제인이 필요하면 경제인을 불러다가 일시키고 돈을 주라 수학이 필요하면 계산 잘하는 사람을 불러다가 쓰고 돈을 주라 내가 자네를 선택한 것은 자네에게는 가장 좋은 무기가 있기 때문이라네 자네 속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시지 아니한가 나는 그것을 보고 자네를 이 회사를 맡긴다네 라고 하였던 겁니다. 이래서 전 세계가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빌립보서4: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뉴욕의 한 메디칼센타 외과의사가 7,000km 떨어진 대서양 건너 프랑스 한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의 담낭을 떼어내는 수술에 성공을 했습니다.
광섬유로 연결된 아주 작은 수술 칼을 원격 조정을 이용해 미국에 앉아서 프랑스에 누운 환자를 수술했다는 것입니다.
빛은 1초에 30만 Km를 가기 때문에 원격수술은 시간차가 0.15초에 불과해 실제 수술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수술의 이름을 1927년 최초로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했던 찰스 린드버그의 이름을 따 린드버그 수술이라고 명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과학의 힘을 실감케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인 빌 게이츠는 생각의 속도라는 책에서 정보의 힘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현대는 정보가 힘이요 돈이요 재산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그리스도인의 교회의 힘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에게는 세상이 가지지 못한 힘이 있습니다.
이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신령한 힘이 있습니다.
인간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영원의 문제, 영생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힘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이름의 능력이요,
성령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사람들이 생각지 않는 놀라는 힘을 보았습니다.
예수의 제자인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시간에 성전에 갔다가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걷게 한다.
돈이 힘인 줄 알고 돈을 구걸하던 장애인인 이 사람이 일어나는 엄청난 기적을 경험하고 기뻐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하나님을 찬송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사렛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앉은뱅이가 걷게 되었다는 것에 긍정적인 반응을 가지고 좋아하며 놀라워했다.
당시 이 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남자만 약 5천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한 그 선한 일에 대해 못마땅하게 여긴 자들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세상에서 이름께나 날리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사회의 모든 일이 자기들 조직체의 권세와 자기들의 이름으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감히 누구의 권세로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고 호통을 치는 것입니다.
여기에 베드로와 요한은 성령이 충만하여 분명하게 말합니다.
예수 이름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또 아주 상세하게 말합니다.
10절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예수 이름은 어떤 권세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권세이다
일어나 걸은 사람은 40년 동안 걸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걸어보지 못한 자이기 때문에 아니 걸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걷는 다는 생각은 그는 아예 가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할 수 없다
이게 그에게 삶의 방향을 돈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세상이 전부 돈으로 생각합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돈으로 보입니다
아예 현대인의 삶의 모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역사 이래로 돈은 인간을 지배하였고 종교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로보암의 길이라고도 하는데
여로보암은 이스라엘의 분열을 주도한 자요 북이스라엘 왕국의 초대 왕(B.C.930-910년)인 여로보암의 악행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버리고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워 예배 처로 삼고, 하나님의 법도를 마음껏 유린하고, 산당을 세워 백성을 타락시킨 죄악을 그대로 답습했던 북이스라엘의 통치자들을 가리켜 한 말로, 죄악의 길, 우상 숭배의 악습을 가리킨다
돈이 하나님입니다.
이 돈이 하나님께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것입니다.
돈을 너무 사랑하면 일만 악의 뿌리가 됩니다.
그때 베드로가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행3:1-6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40년 동안 한 번도 일어나 보지 못한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돈만 구걸했다면 이 사람은 새로운 세상을 맛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구걸한 그 돈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직도 나 하나를 만족 시킬 수 없는 돈에 내 인생을 투자하고 종이 되어 살아가는 비극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이름으로 여태까지 얽매이었던 그 자리에서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이 권세가 어디에서 나왔느뇨.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 될 때에 베드로는 하나님의 권세라고 말하였습니다.
예수 이름은 하나님의 권세입니다.
막9:17-23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예수의 권세는 선한 권세다
베풀어 주는 생명을 주는 권세다
9절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독일의 사회 심리학자인 에릭 프롬이 그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양식을 따라 소유 지향적인 삶과 존재 지향적인 삶의 두 가지로 나누어서 분석을 했습니다.
소유 지향적인 삶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소유(to have)의 대상으로 여기면서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될수록 행복해지리라는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삶의 양식을 말합니다.
무엇이든지 내 소유로 만들고 보자는 삶을 말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소유 지향적인 삶을 사는 자들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세상에서 끊임없이 무엇을 얻으려는 소유 지향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 그래서 예수를 통하여 끊임없이 무언가를 불만하고 불평하고 간구하고, 얻고자 하는 신앙인으로 남아 있습니다.
신앙생활이 즐겁지 않아
무엇인가 주면은 즐거울 것인데
잠30:15-16절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스올과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
늘 불만입니다.
한푼 두푼 받으려고만 하니 얼마나 심기가 불평하겠습니까
만약에 지나가는 가는 사람이 한 푼을 주지 않고 그냥 지나가면 욕이라도 하고 싶을 것입니다.
아니면 빼앗아 가기도 할 것입니다.
세상이 소유욕에만 가득차 있으면 그게 지옥입니다
반면에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를 깨닫고 그 존재로서의 위치를 지키려는 곧 부름심에 합한 자로 살려고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누가복음6:30-35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베드로가 은과 금은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겠다 하면서 예수의 이름으로 그 앉은뱅이를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랬더니 벌떡 일어서서 걷기도 하고 뛰어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돈 몇 푼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가 돈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거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남을 돕고 봉사하는 일에 서투릅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거지가 원하는 것의 차원에서는 베드로에게는 거지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거지에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것을 줄 수 있었습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가 교회를 비판하니까 교회가 세상을 향해 해야 할 유일한 책임이 사회봉사인 것처럼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웃 사랑의 명령에 따라 물질로 사회를 섬기는 책임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기억하실 사실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사회봉사는 교회 아닌 다른 단체에서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만이 세상을 향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지나간 역사에 소위 자유주의 신학이 창궐하던 시절 교회가 복음 증거의 사명을 잊고 사회봉사에만 열중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교회들은 위축되기 시작하였고 결과적으로 교회는 전도도 사회봉사도 못하는 영향력을 상실한 공동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교회에서 세상적인 무엇을 주어서가 아니요
세상적인 것이 없어서 무엇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행하십시오
거기에는 놀라운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는 많은 값을 치루어 얻는 권세다
사실 교회가 힘들지만은 예수만을 내어 놓을 수 있으니 이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이 교회가 무얼 내 놓을 만 한 것있습니까?
그러나 진짜 귀한 것을 내어 놓을 수 있게 된 줄로 믿습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예수 그리스도 이름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다른 거 내어 놓을 수 없다고 실망하지 말고 나의 부족함으로 오히려 예수님만을 자랑하게 된 것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원하는 자에게 누구에게나 줍니다
빌립보서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자기는 늘 받기만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받는 데만 익숙해진 사람은 가진 것이 많아도 내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 앉은뱅이 거지는 평생 남에게 받기만 했지 자기가 남을 도와준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내게 있는 것이 하나씩은 있습니다.
40년이라는 평생을 살아오면서 은금만 타령했지 그 은금이 자신을 구원해 주지를 못했습니다.
그는 성전이라는 미문 앞에 매일 앉아 있었지만 믿음에 대하여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실 교회 들락날락 하였지만 믿음에 대하여 관심이 없지 않았습니까?
믿음이 나의 인생의 문제에 해결해 줄 것이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앉은뱅이가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 이름입니다.
세이브라는 강철회사에 청소부로 들어갔다가 카네기의 비서실장이 되고 카네기가 은퇴하는 때에 그의 후임자로 세웠습니다. 세이브는 자신의 부족을 들어 한사코 거절했지만 카네기는 과학자가 필요하면 과학자를 불러다가 쓰고 돈을 주라 경제인이 필요하면 경제인을 불러다가 일시키고 돈을 주라 수학이 필요하면 계산 잘하는 사람을 불러다가 쓰고 돈을 주라 내가 자네를 선택한 것은 자네에게는 가장 좋은 무기가 있기 때문이라네 자네 속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시지 아니한가 나는 그것을 보고 자네를 이 회사를 맡긴다네 라고 하였던 겁니다. 이래서 전 세계가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빌립보서4: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