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히 여기시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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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71회 작성일 2016-06-05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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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9:35-38 불쌍히 여기시는 주님
사람은 그 어떤 사람도 다 상처를 받은 한 인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생이라는 삶에 큰 부담을 느끼고 짐이 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허허 벌판에 던져진 것 같은 고독함 속에서 무엇인가 모르게 쫓기며 불안함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연약한 존재이다.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는 예수님에게는 불쌍히 여겨 보였습니다.
가진 자나 못가진 자나 배운 자나 지식이 없는 자나 자칭 의롭다고 여기는 자나 다른 이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악한 자라 할지라도 주님의 긍휼을 받아야 하는 불쌍한 자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36절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불쌍히 여긴다는 의미는 원뜻은 내장, 심장, 창자 등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을 바라보실 때에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긍휼하는 마음이 솟아 나오셨다는 뜻입니다.
우리말의 애는 창자를 의미합니다.
애가 끊어지도록, 애가 타도록,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그렇게 불쌍히 여기셨던 것입니다.
일반적인 동정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을 보고 그들이 고생하며 기진하는 것을 보셨어요.
고생이란 단어는 추운 겨울에 발가벗겨진 나무를 뜻하는데 그리고 동강동강 완전히 토막 나버린 그런 상태를 말하는 겁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염려와 근심으로 마음이 초조한 상태를 뜻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염려와 근심으로 마음이 바짝 말라버린 상태, 그것을 고생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보셨어요.
겉모습은 그럴싸하게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수많은 근심, 걱정, 잘못된 가치관으로 인해 영혼이 완전히 시들어서 바짝 말라버린 그들의 상태를 예수님은 보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기진함이란 개역 한글판에는 유리함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기진이라 함은 양들이 푸른 초장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찾지 못하고 완전히 지쳐버린 상태입니다.
얼마나 실망하고 더 이상 기력을 회복 할 수 없어 어쩔 수 없는 처지입니다.
가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거의 무표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눅7:32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의 모습은 아닙니까?
많은 이들은 행복의 푸른 초장을 찾아 온갖 곳을 헤매고 다닙니다.
화려한 경력을 쌓으면 자기 인생에 초장이 이루어질 것 같아서, 목숨을 다 바쳐 경력을 쌓습니다.
그러나 경력을 쌓으면 쌓을수록 그들의 마음에 공허함이 있습니다.
어떤 이의 이력서를 보면 굉장합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결국은 모두가 실망하고 말 것입니다.
마치 솔로몬은 더욱 크게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전1:6-8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진정한 그 무엇을 찾지 못하고 있는 이런 불쌍한 인생들에게 예수님은 찾아 가십니다
누구든지 어디든지 찾아 가십니다
35절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시셨다고 하십니다
한번은 빈들에 모인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오병 이어의 역사로 그들의 만족케 하신 일이 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 두 사람이 예수님에게 고침을 간청했을 때, 예수께서 역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었습니다.
한 나병환자가 꿇어 엎드려 간구했을 때, 예수께서 또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외동아들을 잃고 울고 있는 나인성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리 말라 하시고 그 아이를 살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온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병들고 악한 것을 고쳐주시고, 천국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왜 애 간장을 끊는 것 같은 불쌍히 여기시는 심정을 가지고 쉬지도 못하시고 다녔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삶은 그 당시 소외 계층에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큰 위로와 소망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보여주신 불쌍히 여기심은 어떠하십니까
그 대상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보호를 받고 도움을 구하고 싶어도 거기에 합한 조건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애수님에게는 연령조건도 또 무슨 어떤 조건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원하면 됩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인생의 짐이 무거워 하는 자는 다 내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주변에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얻지 못하고 아니 사람들이 어찌 할 수 없는 자들이 모두 모여 들었습니다.
영육 간에 치유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들의 진정한 소원을 다 들어 주십니다.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주를 원하고 나오는 자는 참으로 만족하게 하십니다.
마7:7-11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누가복음에서의 좋은 것은 성령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을 받으면 무엇이든지 예수 이름으로 구하면 다 허락 하십니다.
예수로 인하여 진정한 만족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실망함이 사라져 버립니다
부족함이 사려져 버립니다.
인생에 가장 부족함을 많이 느꼈던 다윗은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시23:1-5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세상에서 많이 가진 자 이었지만 그게 자신을 만족하게 하지 못함을 알은 사도 바울은 진정한 만족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오히려 세상 것을 채우려는 것을 다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채우지 않았습니까
빌3:4-7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예수그리스도를 얻는 것이 가장 고상하다는 것입니다.
고상함이란 품위나 몸가짐이 속되지 아니하고 훌륭하다.
그리고 이 예수로 인생을 얼마든지 만족할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빌4: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지 못하는 인생들을 애간장이 다 탄다는 것입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들이 영접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영접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실 것입니다.
당연히 믿고 따라야 하는데 따르지 않음을 예수님은 이상하게 여기시기도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인생도 예수를 따르는 믿음이 있으면 내 인생 만족함으로 살아 갈 것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할렐루야!
불쌍히 여김을 받은 자는 다른 이도 불쌍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마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어떤 종이 1만 달란트 빚진 자가 있는데 평생을 갚아도 다 못 갚은 돈입니다.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길을 가다가 1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못살게 굴고 옥에 가두었을 때 그 주인이 그 종을 불러다가,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는 주인이 노하여 그 종을 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가 있습니다.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강도를 만나 거의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겨 자신의 모든 것을 그 사람을 위해 희생합니다.
위태로운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하여 모든 재물과 시간과 힘을 더 소비합니다 그것도 부족하여 앞으로 더 필요하면 또 자신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애프터서비스까지 책임집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평생을 책임져 주십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앞서간 못 본 체하고 피하여 지나쳐버린 제사장과 레위인은 안됐다는 마음을 가졌지만 참으로 마음에서 애간장이 타는 그런 불쌍히 여김이 없으니 못 본체하고 지나 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찾아간 사람이 사마리아 사람이었어요.
민족 간에 서로 원수 된 사람끼리인데, 사마리아인이 유대인에게 불쌍히 여겼다고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또한 탕자의 비유에서,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불효를 했습니다.
아버지에게 유산을 얻어서 먼 나라에 가서 그 돈을 다 써버리고, 먹을 것이 없어서 돼지와 함께 지내다가 거지가 되어 아버지에게 찾아옵니다.
내가 이제 아들이라 칭함을 감당치 못하겠으니, 아버지여! 나를 종으로 보십시오! 이렇게 얘기하리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이 말씀 중에 측은히 여겨라 는 구절에서도 바로 이 단어가 써졌습니다.
불쌍하게 여긴 겁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내적 상태를 보시고, 예수님의 마음이 굉장히 아팠다는 겁니다.
그들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같이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거지를 볼 때만 생기는 마음이 아니라, 예수를 모르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볼 때 생기는 마음이다.
예수를 알지 못하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 자체가 불쌍한 한 영혼입니다.
인간을 덮고 있는 모든 양파 껍질을 다 벗기고 인간 안으로 들어가면, 인간은 다 불쌍한 존재이다.
그들의 영혼은 심히 고통스러워하고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예수님처럼 상처를 많이 받고 사셨던 분도 없습니다.
동족에게 버림을 받으시고, 제자들에게 팔리고, 외면당하시고, 마지막에 십자가에서 못 박히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상처를 받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인간이 갖고 사는 상처의 아픔과 고통, 외로움을 아시고, 그 상처의 무거움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히4:14-15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리고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인류의 상처를 치유하는 치유자(治癒者)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나 역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밤낮 내가 받은 상처 생각하다가 끝나는 인생이 아니라 내가 받은 상처를 통해서 나같이 아파하고 나같이 힘들어 하고 나같이 고통스러워하는 자들을 이해하고, 오히려 사랑해 주어야 하지 않겟습니까
그 상처를 끌어안고 보듬어 주는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상처 입은 치유자로 살 수 있겠습니까?
왜 내 사랑하는 자를 내 주위의 인물들을 강권하지 못하십니까
그들의 고통을 깊이 느끼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루라도 술에 취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자의 마음을 헤아려 본 적이 있습니까?
술주정뱅이라고 그에게 손가락질하기 이전에 말입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쉰들러가 한 사람의 헌신이 수백 수천의 목숨을 구한 것입니다.
그 수백 명을 구해낸 후, 그는 마침내 무일푼이 됩니다. 그들을 구하기 위해 그의 모든 재산을 다 써버렸기 때문입니다. 그의 마지막 돈을 다 털어 유태인을 안전한 곳으로 보내기 위해 기차를 태워서 떠나보낸 후, 그는 선로에 앉아 하염없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로를 터벅터벅 걸어오다가 무심코 자기의 손가락에 끼어진 금반지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소리칩니다. 내가 이것을 왜 끼고 있지? 이 금반지를 팔았더라면 한사람의 생명을 더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이것을 내가 왜 끼고 있지? 하며 앉아서 통곡합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주어진 중요한 사명은 저 영혼들을 예수님의 심정을 가지고 불쌍히 여겨 죄로 말미암아 죽어 가는 저 영혼들을 주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사망의 길에서 구해 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추수할 일꾼을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세상을 불쌍히 여겨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시려는 마음임을 깨닫고 내가 추수할 일꾼으로 먼저 헌신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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