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추절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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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293회 작성일 2016-06-26 21:46본문
신명기 16:9-12 맥추절의 감사
한번은 하나님께서는 두 천사를 세상으로 보내시면서 사람들의 기도를 모아오라고 하셨습니다.
한 천사에게는 바구니에 자신들의 소원을 담아오도록 하셨고 한 천사에게는 감사를 담아오도록 하셨습니다.
얼마 후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왔을 때 한 천사의 바구니는 하나님께 대한 무수히 많은 소원으로 철철 넘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천사는 슬프고 무거운 마음으로 거의 비어있는 바구니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 천사가 아무리 열심히 찾아다녔어도 세상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좀처럼 찾기 힘들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서도 볼 때에도 감사가 너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이 되어집니다.
사실 나 자신을 한번 살펴보십시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는 아예 빠져있고 오직 하나님은 나의 소원만을 들어주는 대상으로만 그리고 들어주시지 않으면 불만의 대상으로 남아 있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감사 할 일이나 감사 할 사건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받은 은혜는 아주 당연하게 여기니 감사가 없고 내가 원하는 것만을 구하니 불평하고 당연히 불만해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불평과 원망이 우리들을 살리느냐? 하면 살리기는커녕 다 죽이고 망하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 주일은 올 한해 하반기를 은혜 가운데 지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맥추 감사 절기입니다.
왜 맥추절에 감사하라고 하셨는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밀이나 보리를 수확한 후 하나님께 첫 열매를 드리는 추수의 감사절입니다.
출23: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첫 열매를 거둔 날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민28:26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날에
유월절이 지나고 7주째 지켰다고 해서 칠칠절이라고 합니다.
유월절 절기중 누룩 없는 떡을 먹는 둘째 날부터 계산해서 제50일째 지켰기 때문에 오순절이라고도 했다
행2: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많은 교회들이 맥추절을 지킵니다.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켰던 중요한 세 가지 절기는 모두 예수님과 연결이 됩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해방되던 날 밤에 양의 피를 문에 발라서 죽음의 저주에서 벗어나 구원을 얻은 사건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유월절 기간에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죽으심으로 유월절을 완성하셨습니다.
맥추절 즉 오순절은 유월절이 지나고 50일 째 되는 날이기 때문에 오순절이라고 하는데, 밀을 추수하고 지키는 감사절기이기에 맥추절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오순절 날에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이후 광야 40년 생활을 마치고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서 이전의 광야 생활을 추억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초막절의 궁극적인 의미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성이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전통적인 오순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에 모였던 수많은 유대인들이 성령의 역사와 방언 설교에 은혜를 받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그 결과 신약교회가 탄생하였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의 오순절이 성령강림절이 되었고, 그 날이 교회가 탄생하니 교회의 생일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것입니다.
맥추절의 감사는 이미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만큼 아니 내가 받았다고 여겨지는 만큼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10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이 말씀이 너무나도 합당합니다
감사 할 것이 없는데 어찌 감사 하겠습니까
많은 것을 가졌어도 내가 받은 것이 없고 여기거나 적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감사하지 못합니다.
적게 가졌어도 내가 받은 복이 크다고 믿고 사는 사람은 감사가 넘치게 마련입니다.
맥추 감사의 절기의 특징은 이미 주신 것에 대한 감사라는 말입니다.
유월절은 구원에 대한 감사요,
맥추절과 수장절은 풍성하게 주신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그래서 주신 복에 대한 감사가 절기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첫 번째 곡식을 추수하고 감사하는 초실절, 그리고 그 초실절에서 안식일이 일곱 번 지나고 그 다음 날을 칠칠절, 혹은 맥추절, 신약에서는 오순절이라고 부릅니다.
출애굽기가 절기 자체를 지키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고, 레위기는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면 신명기는 어떤 마음으로 지켜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게 복을 주신 대로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기독교는 이미 주신 것에서 시작하는 종교입니다.
유월절도 이미 받은 구원에 대한 감사인 것처럼 아직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 첫 수확을 하고 또 보리 수확을 하고 더 나아가 풍성한 추수를 해서 창고에 들인 후에 어떤 감사를 표현하라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네게 복을 주셨다고 생각하는 믿음대로 감사할 줄 알라는 것입니다.
감사는 궁색하게 하지 말고 후하게 해야 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리는 물질이 필요하신 분은 아닙니다.
그런데 왜 후히 드리라고 하시고 힘대로 감사하라고 하시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들에 대한 감사가 사람답게 만들고 삶을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삶은 사람됨을 파괴시키고 삶이 불행해 집니다.
감사를 모르면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을 잊어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추수 감사절에 초막을 짓고 들어가 거기서 어렵게 한 주간을 보내라고 말씀합니다.
가장 풍요로운 시절에 초막에 들어가 과거 광야에서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려웠던 시절을 돌아 지금 이렇게 곡식을 수확하고 저장하고 풍요를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직 풍요의 약속의 땅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감사에 미리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땅에서 얻는 그 풍요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잊지 말기를 원하시고 원하시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 시절이 찾아왔을 때 풍요에 길들여지지 말고 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눈을 들어 지난 6개월의 삶을 돌아보십시오.
결핍을 보는 눈으로 내 삶을 보면 나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온통 불행한 것뿐입니다.
그렇게 지난 삶을 마무리하면 나는 올 한해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들에 주목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 주신 것들에 대한 감사로 삶을 채워보십시오.
가슴이 풍성해지면서 기쁨이 회복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감사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감사의 생활화가 성도의 기본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귀하고 좋은 일이 생길 때, 이것을 자기의 수고의 결과라고 하면서 당연시 여깁니다.
그러므로 감사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기에 감사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신의 주인인 사람은 미래가 항상 불안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의 삶을 이끄시고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만이 우리의 감사의 대상이란 사실입니다.
불평은 더 큰 불평을 낳습니다.
불평을 하는 사람은 계속 불평스러운 것만 보이고 결국 누가 봐도 불평스러운 생을 살아갑니다.
화는 더 큰 화를 낳습니다.
화를 내는 사람은 병이 생기고, 고통을 당합니다.
마찬가지로 감사하는 삶은 더 큰 감사가 넘치고 감사의 생으로 변화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맥추절의 감사는 하나님 앞에서 하는 감사입니다.
11절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곳, 즉 성막이 있는 곳입니다.
그곳까지 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기 즉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보리를 추수하고 곡식을 추수한 후에 그 곡식들 앞에서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할 줄 아는 성도가 되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에 대한 감사를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고 누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감사로 말미암는 축제가 있습니다.
즐거움이 있습니다.
맥추절 감사는 모두가 함께하는 즐거움입니다
11절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들에 대한 감사의 축제입니다.
그 축제를 나 혼자서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는 것입니다.
가족과 그리고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는 즐거움은 이기적이고 내 배만 즐거운 즐거움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에 대한 감사는 반드시 내 가족은 물론이요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새로운 사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는 즐거운 예배는 신분이나 빈부귀천을 뛰어넘는 새로운 사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레위인들 입니다.
자기 소유의 땅이 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는 것이 하나님의 새로운 사회입니다.
이 사람들은 사회에서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풍요의 절기에 소외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주신 것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옳게 이해하는 것이요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맥추절 감사는 최선을 다하는 감사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미리 이렇게 말씀하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풍요의 삶이 찾아왔을 때에 이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너무 쉽게 변했습니다.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았습니다.
자기 기분대로 감정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도 않았습니다.
세속화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감사로 받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에 사용되기를 원하십니다.
점점 세상을 닮은 모습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진정한 맥추의 감사가 내 삶에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는 여러분을 살립니다.
마귀와 사탄은 감사하지 못합니다.
여기에 사로잡힌 자는 감사가 없습니다.
그러니 죽을 지경이지요
감사는 감사 할 일들을 불러 드립니다.
쉬지 않은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응답을 받게 되며 범사에 드리는 감사는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며 더욱 풍성하게 만들에 주시는 것입니다.
칼.힐터는 행복론에서 감사하는 사람은 젊어진다고 하였습니다.
감사는 마음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젊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아브라함 링컨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발전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감사는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발전을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성공하는 비결 중에 하나가 바로 감사입니다.
유대인의 탈무드에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
인간의 신체구조와 감정도 감사할수록 맥박이 고르고 위장도 활발하게 소화력을 증진시켜 줍니다. 반면 불평은 혈액순환을 방해하여 맥박을 급하게 하는 동시에 소화 기능까지 저하시킵니다.
감사의 수준에 따라 사람의 크기도 달라집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다.
사람들은 행복하면 감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행복하기 때문에 감사하기보다는, 감사가 넘치니까 더욱 행복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은 소유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에 정비례합니다.
15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감사의 수준을 높여갈수록 인격의 수준도 하나님의 축복의 수준도 높아지고 높아집니다.
한번은 하나님께서는 두 천사를 세상으로 보내시면서 사람들의 기도를 모아오라고 하셨습니다.
한 천사에게는 바구니에 자신들의 소원을 담아오도록 하셨고 한 천사에게는 감사를 담아오도록 하셨습니다.
얼마 후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왔을 때 한 천사의 바구니는 하나님께 대한 무수히 많은 소원으로 철철 넘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천사는 슬프고 무거운 마음으로 거의 비어있는 바구니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 천사가 아무리 열심히 찾아다녔어도 세상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좀처럼 찾기 힘들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서도 볼 때에도 감사가 너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이 되어집니다.
사실 나 자신을 한번 살펴보십시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는 아예 빠져있고 오직 하나님은 나의 소원만을 들어주는 대상으로만 그리고 들어주시지 않으면 불만의 대상으로 남아 있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감사 할 일이나 감사 할 사건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받은 은혜는 아주 당연하게 여기니 감사가 없고 내가 원하는 것만을 구하니 불평하고 당연히 불만해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불평과 원망이 우리들을 살리느냐? 하면 살리기는커녕 다 죽이고 망하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 주일은 올 한해 하반기를 은혜 가운데 지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맥추 감사 절기입니다.
왜 맥추절에 감사하라고 하셨는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밀이나 보리를 수확한 후 하나님께 첫 열매를 드리는 추수의 감사절입니다.
출23: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첫 열매를 거둔 날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민28:26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날에
유월절이 지나고 7주째 지켰다고 해서 칠칠절이라고 합니다.
유월절 절기중 누룩 없는 떡을 먹는 둘째 날부터 계산해서 제50일째 지켰기 때문에 오순절이라고도 했다
행2: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많은 교회들이 맥추절을 지킵니다.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켰던 중요한 세 가지 절기는 모두 예수님과 연결이 됩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해방되던 날 밤에 양의 피를 문에 발라서 죽음의 저주에서 벗어나 구원을 얻은 사건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유월절 기간에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죽으심으로 유월절을 완성하셨습니다.
맥추절 즉 오순절은 유월절이 지나고 50일 째 되는 날이기 때문에 오순절이라고 하는데, 밀을 추수하고 지키는 감사절기이기에 맥추절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오순절 날에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이후 광야 40년 생활을 마치고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서 이전의 광야 생활을 추억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초막절의 궁극적인 의미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성이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전통적인 오순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에 모였던 수많은 유대인들이 성령의 역사와 방언 설교에 은혜를 받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그 결과 신약교회가 탄생하였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의 오순절이 성령강림절이 되었고, 그 날이 교회가 탄생하니 교회의 생일이라는 별명을 갖게 된 것입니다.
맥추절의 감사는 이미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만큼 아니 내가 받았다고 여겨지는 만큼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10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이 말씀이 너무나도 합당합니다
감사 할 것이 없는데 어찌 감사 하겠습니까
많은 것을 가졌어도 내가 받은 것이 없고 여기거나 적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감사하지 못합니다.
적게 가졌어도 내가 받은 복이 크다고 믿고 사는 사람은 감사가 넘치게 마련입니다.
맥추 감사의 절기의 특징은 이미 주신 것에 대한 감사라는 말입니다.
유월절은 구원에 대한 감사요,
맥추절과 수장절은 풍성하게 주신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그래서 주신 복에 대한 감사가 절기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첫 번째 곡식을 추수하고 감사하는 초실절, 그리고 그 초실절에서 안식일이 일곱 번 지나고 그 다음 날을 칠칠절, 혹은 맥추절, 신약에서는 오순절이라고 부릅니다.
출애굽기가 절기 자체를 지키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고, 레위기는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면 신명기는 어떤 마음으로 지켜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게 복을 주신 대로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기독교는 이미 주신 것에서 시작하는 종교입니다.
유월절도 이미 받은 구원에 대한 감사인 것처럼 아직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 첫 수확을 하고 또 보리 수확을 하고 더 나아가 풍성한 추수를 해서 창고에 들인 후에 어떤 감사를 표현하라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네게 복을 주셨다고 생각하는 믿음대로 감사할 줄 알라는 것입니다.
감사는 궁색하게 하지 말고 후하게 해야 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리는 물질이 필요하신 분은 아닙니다.
그런데 왜 후히 드리라고 하시고 힘대로 감사하라고 하시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들에 대한 감사가 사람답게 만들고 삶을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삶은 사람됨을 파괴시키고 삶이 불행해 집니다.
감사를 모르면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을 잊어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추수 감사절에 초막을 짓고 들어가 거기서 어렵게 한 주간을 보내라고 말씀합니다.
가장 풍요로운 시절에 초막에 들어가 과거 광야에서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려웠던 시절을 돌아 지금 이렇게 곡식을 수확하고 저장하고 풍요를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직 풍요의 약속의 땅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감사에 미리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땅에서 얻는 그 풍요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잊지 말기를 원하시고 원하시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 시절이 찾아왔을 때 풍요에 길들여지지 말고 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눈을 들어 지난 6개월의 삶을 돌아보십시오.
결핍을 보는 눈으로 내 삶을 보면 나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온통 불행한 것뿐입니다.
그렇게 지난 삶을 마무리하면 나는 올 한해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들에 주목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 주신 것들에 대한 감사로 삶을 채워보십시오.
가슴이 풍성해지면서 기쁨이 회복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감사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감사의 생활화가 성도의 기본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귀하고 좋은 일이 생길 때, 이것을 자기의 수고의 결과라고 하면서 당연시 여깁니다.
그러므로 감사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기에 감사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신의 주인인 사람은 미래가 항상 불안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의 삶을 이끄시고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만이 우리의 감사의 대상이란 사실입니다.
불평은 더 큰 불평을 낳습니다.
불평을 하는 사람은 계속 불평스러운 것만 보이고 결국 누가 봐도 불평스러운 생을 살아갑니다.
화는 더 큰 화를 낳습니다.
화를 내는 사람은 병이 생기고, 고통을 당합니다.
마찬가지로 감사하는 삶은 더 큰 감사가 넘치고 감사의 생으로 변화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맥추절의 감사는 하나님 앞에서 하는 감사입니다.
11절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곳, 즉 성막이 있는 곳입니다.
그곳까지 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기 즉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보리를 추수하고 곡식을 추수한 후에 그 곡식들 앞에서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할 줄 아는 성도가 되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에 대한 감사를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고 누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감사로 말미암는 축제가 있습니다.
즐거움이 있습니다.
맥추절 감사는 모두가 함께하는 즐거움입니다
11절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들에 대한 감사의 축제입니다.
그 축제를 나 혼자서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는 것입니다.
가족과 그리고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는 즐거움은 이기적이고 내 배만 즐거운 즐거움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에 대한 감사는 반드시 내 가족은 물론이요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새로운 사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는 즐거운 예배는 신분이나 빈부귀천을 뛰어넘는 새로운 사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레위인들 입니다.
자기 소유의 땅이 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는 것이 하나님의 새로운 사회입니다.
이 사람들은 사회에서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풍요의 절기에 소외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주신 것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옳게 이해하는 것이요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맥추절 감사는 최선을 다하는 감사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미리 이렇게 말씀하고 또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풍요의 삶이 찾아왔을 때에 이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너무 쉽게 변했습니다.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았습니다.
자기 기분대로 감정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도 않았습니다.
세속화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감사로 받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에 사용되기를 원하십니다.
점점 세상을 닮은 모습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진정한 맥추의 감사가 내 삶에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는 여러분을 살립니다.
마귀와 사탄은 감사하지 못합니다.
여기에 사로잡힌 자는 감사가 없습니다.
그러니 죽을 지경이지요
감사는 감사 할 일들을 불러 드립니다.
쉬지 않은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응답을 받게 되며 범사에 드리는 감사는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며 더욱 풍성하게 만들에 주시는 것입니다.
칼.힐터는 행복론에서 감사하는 사람은 젊어진다고 하였습니다.
감사는 마음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젊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아브라함 링컨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발전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감사는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발전을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성공하는 비결 중에 하나가 바로 감사입니다.
유대인의 탈무드에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
인간의 신체구조와 감정도 감사할수록 맥박이 고르고 위장도 활발하게 소화력을 증진시켜 줍니다. 반면 불평은 혈액순환을 방해하여 맥박을 급하게 하는 동시에 소화 기능까지 저하시킵니다.
감사의 수준에 따라 사람의 크기도 달라집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다.
사람들은 행복하면 감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행복하기 때문에 감사하기보다는, 감사가 넘치니까 더욱 행복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은 소유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에 정비례합니다.
15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감사의 수준을 높여갈수록 인격의 수준도 하나님의 축복의 수준도 높아지고 높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