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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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08회 작성일 2016-07-04 12:11본문
빌립보서 4:4-6 감사의 기도
오늘은 특별히 하나님이 감사를 하라고 가르친 감사절입니다.
평상시에 얼마나 감사의 생활이 되었는지요
헬렌 켈러(Helen Keller, 1880.6.27~1968) 앨라배마 주 터스컴비아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지 19개월 되었을 때 심한 병에 걸려 목숨을 잃을 뻔 하다 간신히 살아났으나 그 여파로 청각과 시각을 잃었다
헬렌 켈러는 내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유일한 소망 하나 있다고 하면 그것은 죽기직전에 꼭 3일 동안만 눈을 뜨고 보는 것이다만약 내가 눈을 뜨고 볼 수 있다면 나는 나의 눈을 뜨는 그 첫 순간 나를 이만큼 가르쳐주고 교육을 시켜준 나의 선생 설리반을 찾아가겠다.
지금까지 그의 특징과 얼굴모습을 내손 끝으로 만져서 알던 그의 인자한 얼굴 그리고 아리따운 몸매 등을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보면서 그의 모습을 나의 마음속 깊이 간직해 두겠다.
다음엔 친구들을 찾아가고 그 다음엔 들로 산으로 산보를 가겠다.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나뭇잎사귀들, 들에 피어 있는 예쁜 꽃들과 풀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석양에 빛나는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싶다.
다음날 이른 새벽에는 먼동이 트는 웅장한 장면, 아침에는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박물관 오후에는 미술관 그리고 저녁에는 보석 같은 밤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하루를 지내고, 마지막 날에는 일찍 큰길가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들. 아침에는 오페라하우스. 오후엔 영화관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싶다.
그러다 어느덧 저녁이 되면 나는 건물의 숲을 이루고 있는 도시한복판으로 나와서 네온사인이 반작거리는 거리, 쇼윈도에 진열돼 있는 아름다운 상품들을 보면서 집에 돌아와 내가 눈을 감아야 할 마지막 순간에 나는 이 3일 동안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하여준 나의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기도를 드리고 영원히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겠다.
본문은 감사에 대하여 일러 주고 있습니다.
6절 Don't worry about anything(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 instead, pray about everything(대신에 모든 것에 대하여 기도하라)은 말씀으로, 나의 worry lists(염려 목록들)가 있으면 prayer lists(기도 목록들)로 바꾸라는 말씀입니다.
동시에 이 구절에서는 with a thankful heart/ thank him 이라고 기도에서 감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감사가 기도에도 왜 필요한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염려되는 것들에 대한 기도에도 오히려 감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음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해 오신 것들에 생각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의 어떠한 응답에 대하여 미리 감사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나의 방법대로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 생각대로 그대로의 응답이 오지 않더라고 해도, 하나님의 응답은 항상 BEST임을 생각하면 우리의 기도는 근심함으로 나아 왔다가도 감사함으로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응답을 근심이 아닌 감사함과 평강으로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는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에서 옵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환경이나 소유 때문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이 문제입니다.
지금의 환경에서도 마음과 생각을 바꾸면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거리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과 감사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생각의 차이입니다.
생각을 바꾸면 누구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다의 Thanks 생각하다의 Think에서 나옵니다.
감사하다의 Thank는 생각하다의 Think와 그 어원이 같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누구나 감사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고쳐먹으면 누구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는 내 삶을 기쁘게 합니다.
4절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세상을 살아가면서 기쁜 일을 언제 경험하게 되는 것 같습니까?
기쁨은 기쁜 사건을 만나게 될 때에 찾아오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기뻐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너무나 기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죄인들을 위하여 이 땅에 보내주시고 그리고 죽으신 사건은 죄인들에게 가장 기쁜 사건이요 가장 기쁜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목자들이 예수 탄생 소식을 듣을 때에 큰 기쁨이의 소식이 라고 천사가 일러 주었습니다
누가복음2:8-10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은 모두가 복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감사하게도 누구나 큰 감동과 기쁨을 가지고 살아갈수 있는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기뻐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기뻐하면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런데 이 글의 제목이 빌립보라는 의미는 저자 사도 바울이 빌립보 옥중에서 쓴 것이기 때문에 빌립보라는 이름을 붙였고 신기하게도 기뻐 할 이유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이 글의 주제중에 하나는 기쁨입니다,
빌립보서에는 기쁨과 관련된 단어가 16번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기쁨의 사건 이유는 세상에 다른 사람들이 기뻐하는 그런 기쁨의 종류가 아니었습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일을 생각하면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주를 떠나서는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너희가 주님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기뻐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하니까 주님을 생각하고 기쁨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찬송가 85장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얼굴 뵈올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만민의 구주 예수여 귀하신 이름은 천지에 온갖 이름중 비할 데 없도다
참 회개하는 자에게 소망이 되시고 구하고 찾는자에게 기쁨이 되도다.
예수의 넓은 사랑을 어찌다말하랴 그 사랑받은 사람만 그 사랑알도다
사랑의 구주 예수여 내 기쁨되시고 이제와 또한 영원히 영광이되소서.
주님을 생각할때마다 기뻐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쁨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는 세상 염려와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감사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귀하고 좋은 일이 생길 때, 이것을 자기의 수고의 결과라고 하면서 당연시 여깁니다.
그러므로 감사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기에 감사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신의 주인인 사람은 미래가 항상 불안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의 삶을 이끄시고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만이 우리의 감사의 대상이란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내 삶에서 빼 버리는 자는 불평을 가지고 살고 계속 불평스러운 것만 보이고 결국 불평스러운 생을 살아갑니다.
마찬가지로 감사하는 삶은 더 큰 감사가 넘치고 감사의 생으로 변화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함으로 기도하면 내 생각을 바르게 가지게 됩니다.
6-7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마음과 생각을 평강으로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기도응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 염려와 근심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기도응답에만 관심을 가졌지 먼저 내 마음을 바로 내 생각을 바로 가지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기도는 응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바로 가지는 것이 더 중요 한 것입니다.
응답에만 관심을 가지면 기도 할수록 더 염려에 빠지게 되고 더 큰 불안에 빠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염려스러운 일이 생길 때 그냥 응답을 위한 기도하기보다 하나님이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고 돌보심을 믿고 감사함으로 기도할 때 우리의 마음에서 염려에서 벗어나 있고 내 셍활에 기쁨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는 관용한 생활을 하게 합니다
관용은 내 삶이 더욱 풍요로워지게 합니다
인생을 옹졸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으로 할 말을 하라면 무슨 말을 하시겠습니까?
독일에서 혀 암에 걸려 혀를 잘라야만 하는 환자가 있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혀로 발음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의사가 혀를 자르기 전에 이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는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며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이윽고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생애 마지막 말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 예수여 감사합니다.
이렇게 3번을 외치고 인생의 마지막 말을 감사로 남겼습니다.
비록 혀는 잘렸지만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다고 하지만 지금까지의 그의 삶은 너무나도 여유 잇고 풍성하지 않습니까
화를 내고 불만의 말을 쏟았다면 말도 못하는 그의 인생은 더 더욱 불만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과연 나는 내 삶의 마지막 말을 감사합니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말로 형용 할 수 없는 독한 말을 쏟아 놓지는 않을까요? 걱정스럽습니다.
아니 지금 감사가 있습니까
아니면 악독함이 내 속에서 이글거리는 화로 가득차십니까
유오디아와 순두개는 빌립보교회의 핵심적인 일꾼들이었습니다.
아마 교회의 많은 성도들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사이가 멀어지게 된 것입니다.
갈등의 이유는 모르지만 이러한 일로 인해서 두 사람 뿐만 아니라 교인들 모두 기쁨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들에게 바울은 주님의 마음인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바울은 여기서 주님의 마음을 한 단어로 관용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좀 너그럽고 넉넉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좀 관대하고 상대방의 잘못에 대해서 너그럽게 대하라는 것입니다.
관용은 내 권리를 다 찾지 않고 때로는 손해도 감수하고 양보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손해나 양보가 아니라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주셨습니다.
그런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은 우리는 조금도 손해를 보려고 하지 않고 끝까지 양보하지 않는 자세로 살아간다면 주께 감사를 잃어버린 자 일 것입니다.
관용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갈등관계에서 빠지지 않고 상대방의 허물을 덮어주고 서로 한마음을 품고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꾸 옹졸하고 속 좁은 생각이 생기면 주님이 나에게 큰 관용을 베풀어주셔서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신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풀며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큰 기쁨과 감동을 더 풍성하게 누리시고 또 그 기쁨과 감동을 이웃들에게 전하시고 나누시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는 염려에서 자유합니다.
한 수도사가 올리브기름이 필요해서 올리브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무가 잘 자라도록 비를 내려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제 태양을 비춰주시옵소서
하나님! 나무가 단단하게 자라도록 서리를 내려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다 들어 주셨는데도 그런데 웬걸, 나무가 죽어 버렸습니다.
수도사는 동료 수도사에게 이 일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동료 수도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도 올리브 나무를 심었습니다. 내가심은 올리브 나무는 잘 자라고 있습니다.
나는 올리브 나무를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감사란 꼭 좋은 환경에서 오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뜻을 알고 깨달음에서 옵니다.
독일의 정치가 가운데 마티라는 사람이 정치적인 노선 때문에 관직에서 쫓겨나 어렵게 고생한 적이 있었는데 자기 잘못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해서 고생하는 것 같아 늘 불평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한 가지 사건을 경험한 후로는 불평을 버리고 감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나는 이제 나의 운명을 슬퍼하거나 불평하지 않겠다.
한번은 구두가 다 떨러졌는데도 구두를 사 신을 수 없는 극도로 어려운 때가 있었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불만이 가득한 가운데 예배를 드리고자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그때 나는 거기서 두 발 없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그는 두 발이 없이 목발 두 개 만을 옆에 둔 채 예배를 드리기 위해 앉아 있었다. 내 마음은 순식간에 변하고 말았다. 감사할 줄을 모르는 내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완전한 두발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까짓 구두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처럼 감사하는 마음이란,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환경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욕망의 충족으로서 감사하려 한다면 일평생 감사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감사한번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같은 환경이지만 있는 것에 대한 고귀함을 깨달을 때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감사는 자신의 삶이 전부가 감사의 소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하나님이 감사를 하라고 가르친 감사절입니다.
평상시에 얼마나 감사의 생활이 되었는지요
헬렌 켈러(Helen Keller, 1880.6.27~1968) 앨라배마 주 터스컴비아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지 19개월 되었을 때 심한 병에 걸려 목숨을 잃을 뻔 하다 간신히 살아났으나 그 여파로 청각과 시각을 잃었다
헬렌 켈러는 내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유일한 소망 하나 있다고 하면 그것은 죽기직전에 꼭 3일 동안만 눈을 뜨고 보는 것이다만약 내가 눈을 뜨고 볼 수 있다면 나는 나의 눈을 뜨는 그 첫 순간 나를 이만큼 가르쳐주고 교육을 시켜준 나의 선생 설리반을 찾아가겠다.
지금까지 그의 특징과 얼굴모습을 내손 끝으로 만져서 알던 그의 인자한 얼굴 그리고 아리따운 몸매 등을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보면서 그의 모습을 나의 마음속 깊이 간직해 두겠다.
다음엔 친구들을 찾아가고 그 다음엔 들로 산으로 산보를 가겠다.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나뭇잎사귀들, 들에 피어 있는 예쁜 꽃들과 풀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석양에 빛나는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싶다.
다음날 이른 새벽에는 먼동이 트는 웅장한 장면, 아침에는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박물관 오후에는 미술관 그리고 저녁에는 보석 같은 밤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하루를 지내고, 마지막 날에는 일찍 큰길가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들. 아침에는 오페라하우스. 오후엔 영화관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싶다.
그러다 어느덧 저녁이 되면 나는 건물의 숲을 이루고 있는 도시한복판으로 나와서 네온사인이 반작거리는 거리, 쇼윈도에 진열돼 있는 아름다운 상품들을 보면서 집에 돌아와 내가 눈을 감아야 할 마지막 순간에 나는 이 3일 동안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하여준 나의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기도를 드리고 영원히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겠다.
본문은 감사에 대하여 일러 주고 있습니다.
6절 Don't worry about anything(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 instead, pray about everything(대신에 모든 것에 대하여 기도하라)은 말씀으로, 나의 worry lists(염려 목록들)가 있으면 prayer lists(기도 목록들)로 바꾸라는 말씀입니다.
동시에 이 구절에서는 with a thankful heart/ thank him 이라고 기도에서 감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감사가 기도에도 왜 필요한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염려되는 것들에 대한 기도에도 오히려 감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음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해 오신 것들에 생각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의 어떠한 응답에 대하여 미리 감사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나의 방법대로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 생각대로 그대로의 응답이 오지 않더라고 해도, 하나님의 응답은 항상 BEST임을 생각하면 우리의 기도는 근심함으로 나아 왔다가도 감사함으로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응답을 근심이 아닌 감사함과 평강으로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는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에서 옵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환경이나 소유 때문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이 문제입니다.
지금의 환경에서도 마음과 생각을 바꾸면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거리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과 감사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생각의 차이입니다.
생각을 바꾸면 누구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다의 Thanks 생각하다의 Think에서 나옵니다.
감사하다의 Thank는 생각하다의 Think와 그 어원이 같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누구나 감사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고쳐먹으면 누구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는 내 삶을 기쁘게 합니다.
4절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세상을 살아가면서 기쁜 일을 언제 경험하게 되는 것 같습니까?
기쁨은 기쁜 사건을 만나게 될 때에 찾아오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기뻐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너무나 기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죄인들을 위하여 이 땅에 보내주시고 그리고 죽으신 사건은 죄인들에게 가장 기쁜 사건이요 가장 기쁜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목자들이 예수 탄생 소식을 듣을 때에 큰 기쁨이의 소식이 라고 천사가 일러 주었습니다
누가복음2:8-10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은 모두가 복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감사하게도 누구나 큰 감동과 기쁨을 가지고 살아갈수 있는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기뻐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기뻐하면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런데 이 글의 제목이 빌립보라는 의미는 저자 사도 바울이 빌립보 옥중에서 쓴 것이기 때문에 빌립보라는 이름을 붙였고 신기하게도 기뻐 할 이유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이 글의 주제중에 하나는 기쁨입니다,
빌립보서에는 기쁨과 관련된 단어가 16번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기쁨의 사건 이유는 세상에 다른 사람들이 기뻐하는 그런 기쁨의 종류가 아니었습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일을 생각하면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주를 떠나서는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너희가 주님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기뻐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하니까 주님을 생각하고 기쁨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찬송가 85장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얼굴 뵈올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만민의 구주 예수여 귀하신 이름은 천지에 온갖 이름중 비할 데 없도다
참 회개하는 자에게 소망이 되시고 구하고 찾는자에게 기쁨이 되도다.
예수의 넓은 사랑을 어찌다말하랴 그 사랑받은 사람만 그 사랑알도다
사랑의 구주 예수여 내 기쁨되시고 이제와 또한 영원히 영광이되소서.
주님을 생각할때마다 기뻐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쁨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는 세상 염려와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감사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귀하고 좋은 일이 생길 때, 이것을 자기의 수고의 결과라고 하면서 당연시 여깁니다.
그러므로 감사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자신의 주인이기에 감사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신의 주인인 사람은 미래가 항상 불안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의 삶을 이끄시고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만이 우리의 감사의 대상이란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내 삶에서 빼 버리는 자는 불평을 가지고 살고 계속 불평스러운 것만 보이고 결국 불평스러운 생을 살아갑니다.
마찬가지로 감사하는 삶은 더 큰 감사가 넘치고 감사의 생으로 변화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함으로 기도하면 내 생각을 바르게 가지게 됩니다.
6-7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마음과 생각을 평강으로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기도응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 염려와 근심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기도응답에만 관심을 가졌지 먼저 내 마음을 바로 내 생각을 바로 가지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기도는 응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바로 가지는 것이 더 중요 한 것입니다.
응답에만 관심을 가지면 기도 할수록 더 염려에 빠지게 되고 더 큰 불안에 빠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염려스러운 일이 생길 때 그냥 응답을 위한 기도하기보다 하나님이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고 돌보심을 믿고 감사함으로 기도할 때 우리의 마음에서 염려에서 벗어나 있고 내 셍활에 기쁨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는 관용한 생활을 하게 합니다
관용은 내 삶이 더욱 풍요로워지게 합니다
인생을 옹졸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으로 할 말을 하라면 무슨 말을 하시겠습니까?
독일에서 혀 암에 걸려 혀를 잘라야만 하는 환자가 있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혀로 발음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의사가 혀를 자르기 전에 이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는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며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이윽고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생애 마지막 말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 예수여 감사합니다.
이렇게 3번을 외치고 인생의 마지막 말을 감사로 남겼습니다.
비록 혀는 잘렸지만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다고 하지만 지금까지의 그의 삶은 너무나도 여유 잇고 풍성하지 않습니까
화를 내고 불만의 말을 쏟았다면 말도 못하는 그의 인생은 더 더욱 불만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과연 나는 내 삶의 마지막 말을 감사합니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말로 형용 할 수 없는 독한 말을 쏟아 놓지는 않을까요? 걱정스럽습니다.
아니 지금 감사가 있습니까
아니면 악독함이 내 속에서 이글거리는 화로 가득차십니까
유오디아와 순두개는 빌립보교회의 핵심적인 일꾼들이었습니다.
아마 교회의 많은 성도들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사이가 멀어지게 된 것입니다.
갈등의 이유는 모르지만 이러한 일로 인해서 두 사람 뿐만 아니라 교인들 모두 기쁨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들에게 바울은 주님의 마음인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바울은 여기서 주님의 마음을 한 단어로 관용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좀 너그럽고 넉넉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좀 관대하고 상대방의 잘못에 대해서 너그럽게 대하라는 것입니다.
관용은 내 권리를 다 찾지 않고 때로는 손해도 감수하고 양보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손해나 양보가 아니라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주셨습니다.
그런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은 우리는 조금도 손해를 보려고 하지 않고 끝까지 양보하지 않는 자세로 살아간다면 주께 감사를 잃어버린 자 일 것입니다.
관용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갈등관계에서 빠지지 않고 상대방의 허물을 덮어주고 서로 한마음을 품고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꾸 옹졸하고 속 좁은 생각이 생기면 주님이 나에게 큰 관용을 베풀어주셔서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신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풀며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큰 기쁨과 감동을 더 풍성하게 누리시고 또 그 기쁨과 감동을 이웃들에게 전하시고 나누시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는 염려에서 자유합니다.
한 수도사가 올리브기름이 필요해서 올리브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무가 잘 자라도록 비를 내려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제 태양을 비춰주시옵소서
하나님! 나무가 단단하게 자라도록 서리를 내려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다 들어 주셨는데도 그런데 웬걸, 나무가 죽어 버렸습니다.
수도사는 동료 수도사에게 이 일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동료 수도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도 올리브 나무를 심었습니다. 내가심은 올리브 나무는 잘 자라고 있습니다.
나는 올리브 나무를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감사란 꼭 좋은 환경에서 오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뜻을 알고 깨달음에서 옵니다.
독일의 정치가 가운데 마티라는 사람이 정치적인 노선 때문에 관직에서 쫓겨나 어렵게 고생한 적이 있었는데 자기 잘못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해서 고생하는 것 같아 늘 불평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한 가지 사건을 경험한 후로는 불평을 버리고 감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나는 이제 나의 운명을 슬퍼하거나 불평하지 않겠다.
한번은 구두가 다 떨러졌는데도 구두를 사 신을 수 없는 극도로 어려운 때가 있었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불만이 가득한 가운데 예배를 드리고자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그때 나는 거기서 두 발 없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그는 두 발이 없이 목발 두 개 만을 옆에 둔 채 예배를 드리기 위해 앉아 있었다. 내 마음은 순식간에 변하고 말았다. 감사할 줄을 모르는 내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완전한 두발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까짓 구두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처럼 감사하는 마음이란,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환경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욕망의 충족으로서 감사하려 한다면 일평생 감사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감사한번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같은 환경이지만 있는 것에 대한 고귀함을 깨달을 때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감사는 자신의 삶이 전부가 감사의 소재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