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이기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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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16회 작성일 2016-07-19 19:26본문
요한일서 5:1-5 세상을 이기는 자
동남아시아에 코끼리를 키우는데 5-7톤 되는 코끼리가 쇠사슬에 묶어서 지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충분히 코끼리 힘으로 끊을 수 있지만 끊지 않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코끼리가 어릴 때부터 쇠사슬에 메어 있었기 때문에 절대로 끊을 수 없다는 믿음이 어릴 때에 가졌던 그 믿음이 장성해서도 끊을 수 없다는 믿음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래 전에 우리나라에서 코끼리가 쇼 동물원을 탈출하여 온통 시내를 난장판을 만든 적이 있었는데 어찌하여 코끼리가 쇠사슬을 끊고 나왔겠습니까?
이 코끼리는 이리 저리 움직이다가 그만 담장 벽을 건들려 약한 담장이 무너져 내리니 그만 이 담장이 무너짐을 보고 놀라서 스스로 도망을 가다가 그만 쇠사슬이 끊어져 버렸다고 합니다.
이제 이 코끼리는 쇠사슬로 묶어 놓지 못한다고 합니다.
왜요 나 코끼리도 쇠사슬을 끊을 수 있다는 새로운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여태까지 세상을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사람이 어찌 세상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담장이 무너지면 곧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으면 세상을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간혹 현장 중계를 놓치고 녹화된 경기를 볼 때에 이미 이긴 사실을 알고 보게 되면 내 편이 아무리 지는 장면이 나오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역전의 기회가 언제 나올까 기대하며 반드시 이길 줄로 알고 믿습니다.
이미 예수님이 세상을 승리하신 이런 믿음을 가진다면 어떠한 어려운 삶 가운데서도 살아 갈 수 있는 믿음이 될 줄로 믿습니다.
요1서5:4-5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물론 그 믿음은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은 전쟁 마당에 내던져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존을 위한 투쟁이 시작되고 일생 연속됩니다.
아이가 태어나 우는 것은 아이고 어떻게 살아 갈까하고 우는 것입니다
온갖 질병과 각종 사고 그리고 전쟁과 천재지변의 위협이 상존하는 세상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은 매 순간 계속됩니다.
이러한 싸움은 육신의 생존을 위한 것입니다.
사람은 영혼을 가진 존재임으로 영적인 싸움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반드시 영혼의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구원을 얻지 못하도록 훼방하는 영적 존재가 있습니다.
이 영적 존재와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자란 이 영적 싸움에서 이기는 자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다 이기길 원하고 승리하길 원합니다.
아마 이 세상에 지길 원하고 패배하길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생존경쟁이란 말도 지면 살아남지 못한다. 이겨야 살아남는다는 메시지를 줍니다.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인생은 아름다운 일이며 반드시 그러해야 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이기느냐 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가 세상을 이깁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이김을 보장 받은 사람들입니다.
4-5절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이기느니라의 헬라어 원의미는 현재 직설법으로서 계속해서 이겨나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이 세상과의 투쟁 속에서 이러한 계속적인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기신 이김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할 때 그 이김은 우리의 것이 되고 우리는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롬8:35-37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믿음이 세상을 이길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께 속한 자입니다.
이긴다는 단어가 있음은 패배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렇게 세상에서 성공하고 승리하려고 발버둥치고 이를 악물고 살아 왔는데 결국은 어떠하십니까?
그런데 세상으로 인하여 크게 두려워하고 놀라워하고 세상에 항복하고 패배하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패배하면 어떻게 됩니까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립니다.
그리고는 승리자의 종이 되어 살아갑니다.
고대에 노예제도는 국가와 민족을 불문했습니다. 동양과 서양을 불문하고 노예들을 많이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전쟁 때문입니다. 전쟁에서 패하면 왕으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사람들이 노예로 전락했습니다. 헬라 사람들 사이에서 포로와 죄인들과 채무자들은 종의 신분으로 전락했습니다. Delos 섬에서는 종종 10000명이나 되는 노예들이 하루에 팔렸다고 합니다.
로마제국에서 노예는 헬라사회에서 보다 더 참혹했다고 합니다.
노예는 사람이지만 사람의 아무런 권리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국법도 노예들을 보호하지 않았습니다.
고대의 전쟁사에 그들의 장군들이 전쟁에 나아 갈 때에 수하 병사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나의 전사들이여 살아서 승리의 전쟁터에서 만나자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서 만나자
승리하도록 끝까지 싸우자 목숨을 걸고 싸우자 패배 할 바에는 살아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패배자의 치욕은 죽느니 못하다는 것입니다. 죽으면 죽었지 패배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역시 세상으로 패배 의식 속에서 살아 갈자가 아닙니다.
세상에서 승리감을 가지고 승리를 확신하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세상을 이기는 자는 계명을 지키는 자
하나님이 주신 세상은 말씀으로 정복해야 할 대상입니다.
수1:7-9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믿음으로 이깁니다 말씀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지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누룩이 가루 속에 침투하여 부풀게 합니다.
루터는 신앙이 없는 사람은 바다를 건너야 하는데 겁에 질려 배를 타지 못하는 사람과 같다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을 가로막고 있는 두려움에 막혀 믿음의 출발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변해야 될 부분이 무엇일까?
말씀에 의지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의지하고 살아가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두려움은 사탄을 활동하게 만듭니다.
믿음은 하나님으로 역사하게 만듭니다.
마음과 생각에 시야에 들어오는 고백을 말하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말씀에 비추어 보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내 생각인지 아니면 사탄으로부터 온 것일 수 있습니다.
시119:89 여호와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하나님의 말씀은 확증되었습니다.
이제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내 안에 있습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주의 말씀에 있습니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종교 개혁자 존 녹스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라. 그리하면 육체의 죽음에도 두려움이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담대하게 용기 있게 사는 사람이 누굽니까?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또한 더 이상 육신을 따라 메어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8:10-14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죄 가운데 있던 불완전해 보이는 육신은 이미 죽었고, 아직 볼 수 없지만 이미 부활한 몸을 입은 것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비록 약한 육신의 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회복한 인간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어떤 환자가 몸이 많이 좋지 않아 요양원으로 향하면서 함께 있던 병동 환자들에게 떠나가면서 하는 말이 여러분 천국에서 만납시다
이게 얼마나 귀한 모습입니까
이미 육신의 나약함을 극복하고 승리를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더 나은 육신을 통해 더 나은 인간의 가치를 추구하려는 세상적인 것 만을 추구하는 생각을 거부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이미 세상을 이긴 것입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영으로써 육신을 죽이며 사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에도 여전히 육신을 따르려는 미혹을 분별하지 못하고 흔들린다면 세상의 패배자가 될 것입니다.
그 어떤 육신적인 것도 능히 이기는 자입니다.
세상을 이긴 믿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세상을 이긴다는 말씀은 곧 사랑하는 자가 세상을 이긴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디자인은 우리가 싸워 이기는 게 아니라 사랑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굳이 이것을 싸움이란 단어를 넣어서 표현해야 한다면 이것은 선한 싸움입니다.
딤후4:7-8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라고 했습니다.
세상은 혈육으로 싸워서 이기라고 요구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랑해서 이기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성경보다 세상의 말을 더 따르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은 유약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은 그 명령이 지키기 어렵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단순히 귀찮기 때문입니까?
아니라면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우습게 여겨서 그의 명령을 무시하기 때문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지키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답니다.
그의 계명이 무겁지 않답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우리가 이 계명을 지키지 못해서 지옥으로 가도록 만들기 위해 계명을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아들로 살아가는 사람과 영원히 종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사는 모습이 다르고, 느끼는 맛이 다르고, 사는 목적이 다른 것입니다.
인생을 살되 자기가 자기의 삶을 사는 사람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사람은 차원이 다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다고 하는 고백은, 왕이신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기 위해서 잘 복종하고, 선지자이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 잘 배우고, 제사장 되시는 예수님 앞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서 그에게 모든 짐을 위탁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의 모든 것을 다스릴 나의 왕, 공평과 정의와 완전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를 통치하고 다스려 주실 수 있는 나의 왕으로서의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메시야로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모든 진리로 가르치시고 온전한 진리 가운데 나를 인도하실 수 있는 선지자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죄와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대제사장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참된 고백입니다.
평생을 교회에 다녀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발견하지 못한 사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응답하지 못한 사람은 교인이라고는 말할 수 있어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몰라서 생기는 비극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승리했고, 축복이 있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놀라운 신앙의 자원들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고 인생의 패배자처럼 살고 있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면 우리는 이미 승리자입니다.
우리는 승리는 했지만 지금도 계속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마귀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이미 패배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끔 패잔병에게 받는 공격이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와의 싸움에서 계속 이겨나가야 합니다.
롬1:16-17절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내가 처한 위기 상황, 형편 속에서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이 믿음이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동남아시아에 코끼리를 키우는데 5-7톤 되는 코끼리가 쇠사슬에 묶어서 지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충분히 코끼리 힘으로 끊을 수 있지만 끊지 않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코끼리가 어릴 때부터 쇠사슬에 메어 있었기 때문에 절대로 끊을 수 없다는 믿음이 어릴 때에 가졌던 그 믿음이 장성해서도 끊을 수 없다는 믿음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래 전에 우리나라에서 코끼리가 쇼 동물원을 탈출하여 온통 시내를 난장판을 만든 적이 있었는데 어찌하여 코끼리가 쇠사슬을 끊고 나왔겠습니까?
이 코끼리는 이리 저리 움직이다가 그만 담장 벽을 건들려 약한 담장이 무너져 내리니 그만 이 담장이 무너짐을 보고 놀라서 스스로 도망을 가다가 그만 쇠사슬이 끊어져 버렸다고 합니다.
이제 이 코끼리는 쇠사슬로 묶어 놓지 못한다고 합니다.
왜요 나 코끼리도 쇠사슬을 끊을 수 있다는 새로운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여태까지 세상을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사람이 어찌 세상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담장이 무너지면 곧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으면 세상을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간혹 현장 중계를 놓치고 녹화된 경기를 볼 때에 이미 이긴 사실을 알고 보게 되면 내 편이 아무리 지는 장면이 나오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역전의 기회가 언제 나올까 기대하며 반드시 이길 줄로 알고 믿습니다.
이미 예수님이 세상을 승리하신 이런 믿음을 가진다면 어떠한 어려운 삶 가운데서도 살아 갈 수 있는 믿음이 될 줄로 믿습니다.
요1서5:4-5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물론 그 믿음은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은 전쟁 마당에 내던져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존을 위한 투쟁이 시작되고 일생 연속됩니다.
아이가 태어나 우는 것은 아이고 어떻게 살아 갈까하고 우는 것입니다
온갖 질병과 각종 사고 그리고 전쟁과 천재지변의 위협이 상존하는 세상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은 매 순간 계속됩니다.
이러한 싸움은 육신의 생존을 위한 것입니다.
사람은 영혼을 가진 존재임으로 영적인 싸움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반드시 영혼의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구원을 얻지 못하도록 훼방하는 영적 존재가 있습니다.
이 영적 존재와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자란 이 영적 싸움에서 이기는 자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다 이기길 원하고 승리하길 원합니다.
아마 이 세상에 지길 원하고 패배하길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생존경쟁이란 말도 지면 살아남지 못한다. 이겨야 살아남는다는 메시지를 줍니다.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인생은 아름다운 일이며 반드시 그러해야 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이기느냐 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가 세상을 이깁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이김을 보장 받은 사람들입니다.
4-5절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이기느니라의 헬라어 원의미는 현재 직설법으로서 계속해서 이겨나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이 세상과의 투쟁 속에서 이러한 계속적인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기신 이김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할 때 그 이김은 우리의 것이 되고 우리는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롬8:35-37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믿음이 세상을 이길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께 속한 자입니다.
이긴다는 단어가 있음은 패배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렇게 세상에서 성공하고 승리하려고 발버둥치고 이를 악물고 살아 왔는데 결국은 어떠하십니까?
그런데 세상으로 인하여 크게 두려워하고 놀라워하고 세상에 항복하고 패배하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패배하면 어떻게 됩니까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립니다.
그리고는 승리자의 종이 되어 살아갑니다.
고대에 노예제도는 국가와 민족을 불문했습니다. 동양과 서양을 불문하고 노예들을 많이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전쟁 때문입니다. 전쟁에서 패하면 왕으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사람들이 노예로 전락했습니다. 헬라 사람들 사이에서 포로와 죄인들과 채무자들은 종의 신분으로 전락했습니다. Delos 섬에서는 종종 10000명이나 되는 노예들이 하루에 팔렸다고 합니다.
로마제국에서 노예는 헬라사회에서 보다 더 참혹했다고 합니다.
노예는 사람이지만 사람의 아무런 권리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국법도 노예들을 보호하지 않았습니다.
고대의 전쟁사에 그들의 장군들이 전쟁에 나아 갈 때에 수하 병사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나의 전사들이여 살아서 승리의 전쟁터에서 만나자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서 만나자
승리하도록 끝까지 싸우자 목숨을 걸고 싸우자 패배 할 바에는 살아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패배자의 치욕은 죽느니 못하다는 것입니다. 죽으면 죽었지 패배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역시 세상으로 패배 의식 속에서 살아 갈자가 아닙니다.
세상에서 승리감을 가지고 승리를 확신하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세상을 이기는 자는 계명을 지키는 자
하나님이 주신 세상은 말씀으로 정복해야 할 대상입니다.
수1:7-9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믿음으로 이깁니다 말씀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지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누룩이 가루 속에 침투하여 부풀게 합니다.
루터는 신앙이 없는 사람은 바다를 건너야 하는데 겁에 질려 배를 타지 못하는 사람과 같다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을 가로막고 있는 두려움에 막혀 믿음의 출발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변해야 될 부분이 무엇일까?
말씀에 의지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의지하고 살아가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두려움은 사탄을 활동하게 만듭니다.
믿음은 하나님으로 역사하게 만듭니다.
마음과 생각에 시야에 들어오는 고백을 말하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말씀에 비추어 보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내 생각인지 아니면 사탄으로부터 온 것일 수 있습니다.
시119:89 여호와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하나님의 말씀은 확증되었습니다.
이제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내 안에 있습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주의 말씀에 있습니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종교 개혁자 존 녹스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라. 그리하면 육체의 죽음에도 두려움이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담대하게 용기 있게 사는 사람이 누굽니까?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또한 더 이상 육신을 따라 메어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8:10-14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죄 가운데 있던 불완전해 보이는 육신은 이미 죽었고, 아직 볼 수 없지만 이미 부활한 몸을 입은 것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비록 약한 육신의 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회복한 인간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어떤 환자가 몸이 많이 좋지 않아 요양원으로 향하면서 함께 있던 병동 환자들에게 떠나가면서 하는 말이 여러분 천국에서 만납시다
이게 얼마나 귀한 모습입니까
이미 육신의 나약함을 극복하고 승리를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더 나은 육신을 통해 더 나은 인간의 가치를 추구하려는 세상적인 것 만을 추구하는 생각을 거부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이미 세상을 이긴 것입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영으로써 육신을 죽이며 사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에도 여전히 육신을 따르려는 미혹을 분별하지 못하고 흔들린다면 세상의 패배자가 될 것입니다.
그 어떤 육신적인 것도 능히 이기는 자입니다.
세상을 이긴 믿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세상을 이긴다는 말씀은 곧 사랑하는 자가 세상을 이긴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디자인은 우리가 싸워 이기는 게 아니라 사랑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굳이 이것을 싸움이란 단어를 넣어서 표현해야 한다면 이것은 선한 싸움입니다.
딤후4:7-8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라고 했습니다.
세상은 혈육으로 싸워서 이기라고 요구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랑해서 이기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성경보다 세상의 말을 더 따르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은 유약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은 그 명령이 지키기 어렵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단순히 귀찮기 때문입니까?
아니라면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우습게 여겨서 그의 명령을 무시하기 때문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지키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답니다.
그의 계명이 무겁지 않답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우리가 이 계명을 지키지 못해서 지옥으로 가도록 만들기 위해 계명을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아들로 살아가는 사람과 영원히 종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사는 모습이 다르고, 느끼는 맛이 다르고, 사는 목적이 다른 것입니다.
인생을 살되 자기가 자기의 삶을 사는 사람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사람은 차원이 다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다고 하는 고백은, 왕이신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기 위해서 잘 복종하고, 선지자이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 잘 배우고, 제사장 되시는 예수님 앞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서 그에게 모든 짐을 위탁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의 모든 것을 다스릴 나의 왕, 공평과 정의와 완전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를 통치하고 다스려 주실 수 있는 나의 왕으로서의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메시야로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모든 진리로 가르치시고 온전한 진리 가운데 나를 인도하실 수 있는 선지자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죄와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대제사장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참된 고백입니다.
평생을 교회에 다녀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발견하지 못한 사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응답하지 못한 사람은 교인이라고는 말할 수 있어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몰라서 생기는 비극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승리했고, 축복이 있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놀라운 신앙의 자원들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고 인생의 패배자처럼 살고 있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면 우리는 이미 승리자입니다.
우리는 승리는 했지만 지금도 계속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마귀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이미 패배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끔 패잔병에게 받는 공격이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와의 싸움에서 계속 이겨나가야 합니다.
롬1:16-17절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내가 처한 위기 상황, 형편 속에서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이 믿음이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