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바라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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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258회 작성일 2016-08-08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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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6:14-19 믿음으로 바라봅시다
참으로 더운 날씨가 연일 계속되고 있습니다 열기가 땅에서 후끈 후끈 올라오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습기가 많으니 아예 도시 전체가 스팀으로된 찜질방입니다.
계속 이렇게 더우며 서울에 살고 싶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더위도 얼마 있지 않으면 그 풀이 꺾일 것입니다.
지식적으로 알고 있고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이 24계절 중에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다는 입추입니다.
미리 바라 볼 수 있는 지식의 눈 경험적인 눈을 가졌기 때문에 그 사실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믿음으로 바라보는 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5-17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당시대의 아람 왕이 신하들과 함께 이스라엘의 침략을 위하여 전략을 세우면 이스라엘은 언제나 그들의 전략을 미리 알아차리고 대비를 함으로 아람의 전략은 언제나 실패로 끝났다.
아람왕은 이와 같은 상황을 자신의 신하들 가운데 이스라엘의 정탐꾼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신하 중 한 사람이 왕에게 나와서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이렇게 말해 주었다
11-12절 .이러므로 아람 왕의 마음이 불안하여 그 신복들을 불러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과 내통하는 것을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하니 그 신복 중의 한 사람이 이르되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을 이스라엘의 왕에게 고하나이다 하는지라
왕은 신하의 말을 듣고 선지자 엘리사를 잡기 위하여 밤에 선지자가 머무르고 있는 도단성에 군사들을 보내어 그 성을 에워쌌습니다.
선지자의 사환이 아침 일찍 일어나 밖에 나갔을 때 아람의 군사들이 있는 것을 보고 심히 놀랐고 또한 두려워서 속히 선지자 엘리사에게 가서 이와 같은 사실을 알려 주었다.
사환은 아람 군사를 보고 놀라워했는데 엘리사는 하늘의 군사를 보고 놀라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육적인 눈을 가진 자와 영적인 눈을 가진 자가 이렇게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마28:20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눈에는 육안이 있고 이렇게 여러 개의 눈이 있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영안이 있습니다.
왜 그리스도인에게는 믿음의 눈인 영안이 중요합니까?
영적인 세계가 실재하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우리의 눈에 보이는 세계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까지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영적인 세계가 실제로 존재합니다.
성경은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영적 세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영안이 열려 하나님의 보좌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이사야6:1-3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초대교회 첫 순교자인 스데반 집사도 돌에 맞아 순교할 때 영안이 열려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사도행전7:55-56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이렇게 성경이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영안이 더 중요합니다.
영안은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사람은 지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고 또한 그것을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엘리사는 아람이 이스라엘을 침략할 것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언제 어디로 어떻게 침략할 것인지도 알았고 또한 그들의 침략을 막을 수 있는 방법까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 왕에게 육적인 아람의 침략을 대비하도록 함으로 언제나 승리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요셉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애굽에 칠년 동안은 유래 없는 풍년이 들 것을 알 수 있었고 또한 그 후 칠년 동안 극심한 흉년이 들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풍년이 든 7년 동안 앞으로 다가올 기근을 위하여 곡식을 비축해 놓을 수 있었다.
바벨론 왕이 이상한 꿈을 꾼 후 그 꿈이 예사롭지 않은 꿈이라는 것을 알고 바벨론의 모든 박수와 술객과 점장이를 불러 놓고 자신이 무슨 꿈을 꾸었는지 말하고 그 꿈을 해석하라고 명했다.
그러나 그들 중 한 사람도 이 꿈을 알 수가 없었고 그들은 왕의 분노를 샀고 이로 인하여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었던 다니엘은 왕이 꾼 꿈이 무엇인지 알았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 꿈의 해석까지도 알고 있었음으로 왕에게 일러 줌으로서 죽음의 위기에 처해 있던 바벨론의 모든 박수들과 술객과 점장이들을 살릴 수 있었다.
사도 요한도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장차 세상에 이루어질 일들과 구원의 길을 말할 수 있었다.
계시록1:1-3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이처럼 육적으로는 볼 수 없는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은 지금 이 세상을 바로 직시하고 영안으로 바라 볼 때에 바른 처신을 할 수 있다
동일한 상황 가운데서 엘리사는 담대했지만, 그의 종은 두려워서 떨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라보는 것이 굉장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엘리사의 종은 자신을 해하려는 문제만을 보았지만, 엘리사는 그 큰 문제 가운데서 자신을 구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보았던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을 향하여 가던 중 홍해를 만났습니다.
여기에서 믿음으로 바라보는 모세와 인간적으로 바라보는 홍해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 백성들은 죽게 생겼다는 전제아래 세상을 바라보니 온갖 죽을상을 짓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모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멋지고 멋진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보고 상기되어 있었습니다.
출에굽기14:10-14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가만히 믿음으로 구원의 손길을 기다릴 인생을 소리치며 괴로워 할 일이 절대 아닙니다.
이제는 믿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하나님의 구원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그 세계를 본다는 것은 하나님과 말씀과 성령의 교통하며 사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줄 알았다.
그래서 이들은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께 나가 도움을 구할 수 있었고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반드시 구원을 이루실 것을 믿었기 때문에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16-17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음으로 볼 수 있다.
여기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 말씀을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안다.
그래서 우리는 그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히브리서11:1-3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또한 믿음으로 주님은 항상 나와 함께 하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모든 것을 믿고 있습니다.
마태복음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 날 위하여 오시었네
내 모든 죄 다 사하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나의 구세주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 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선지자의 사환은 자신의 능력으로 하늘의 군대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의 기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눈을 열어 주셨을 때 그는 하늘의 군대를 볼 수 있었다.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믿음의 세계를 보여 주십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하여 하란으로 향하고 가고 있는 중에 날이 저물어 한 곳에서 야영(野營)해야 했는데 그곳에는 어두움과 짐승의 소리와 두려움과 외로움 외에 무엇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밤에 야곱의 눈을 열어 주심으로 그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도록 해 주셨다.
창세기28:10-17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그가 이처럼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았을 때 그곳은 육신의 눈으로 볼 때와 전혀 다른 곳으로 보였다.
이 세상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은혜에 살아야 잘 살아 갈 수 있고 참으로 복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은혜의 줄이 끊어지면 가장 불행한 인간적으로만 살아가는 자가 됩니다.
자칫하면 눈에 보이는 대로 살기 쉽습니다.
평생을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인간적으로만 보이는 대로 살아가는 어리석음을 청산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인간적인 조건들을 선택하고 있음으로 인하여 당장은 축복을 받은 것 같지만 멀지 않아 축복이 아니라 멸망의 조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 볼 때에 동서남북 어디든지 사람의 조건으로는 합당치 아니하였지만 축복의 땅이었습니다.
성도들의 축복이 동서사방에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베드로를 생각해 보십시오.
갈릴리 바다를 걸어 주님을 향해 가던 베드로는 자기를 덮쳐오는 풍랑과 바람을 보고도 두려움에 사로잡혀 현실적인 눈으로 상황을 보게 되므로 그만 물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사도행전 12장에 나타나는 베드로의 모습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헤롯의 칼에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절대 절명의 순간에도 베드로는 감옥에서 편안히 잠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시각으로 현실을 바라보는가? 거기에 따라 어떤 사람은 평안을 소유하며 어떤 사람은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실패를 보고 어떤 사람은 승리를 보게 됩니다.
엘리사의 사환은 아람군대의 많은 군사와 병거를 보았습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군대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불행합니까? 행복합니까?
불안합니까? 평안하십니까? 실패만 보이십니까? 인생 승리가 보이십니까?
영국의 유명한 작가 버나드 쇼우는 어느 날 어떤 사람이 그에게 선생님! 어떤 사람이 낙천주의자이고, 어떤 사람이 염세주의자입니까? 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버나드쇼우는 말하기를 자, 여기에 내가 한 컵의 물을 반만 먹고 놓아두었습니다. 이때 그 반 정도 남은 물 컵을 바라보고 아직도 반이나 남았는데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낙천주의자이고, 반밖에 안 남았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염세주의자입니다. 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낙천주의자와 염세주의자는 같은 물 컵을 바라보지만 생각하고, 표현하고, 대처하는 방법이 전혀 다릅니다.
오늘 내게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고 바라보고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내 인생은 좌절 되거나 실패하거나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시편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할렐루야!
오늘 이런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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