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과 좋은 것으로 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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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256회 작성일 2016-08-21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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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07:4-9 만족과 좋은 것으로 주심
고든 맥도날드란의 인생의 궤도를 수정할 때라는 책에서 인간은 누구나 인생의 어두운 그늘 속에 들어가는 시기가 있다고 합니다.
그 책의 결론은 그러나 나는 결국 똑바로 난 길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즉 그 길은 인생을 사는데 모든 문제는 신앙의 회복이 먼저 되면 인생의 문제도 풀리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어두운 그늘의 시기는 삶의 불만족이 시작되는 침체기와 삶에 대한 실망을 하는 좌절의 시기, 삶이 와해가 되는 포기의 경우입니다
삶의 불만족이 시작되는 침체의 경우는 사업부진, 신체장애, 무직, 불화…… 등
삶의 실망에 빠져 좌절의 경우는 별거, 퇴직, 학업중태, 무능
삶의 와해가 되는 포기의 경우는 사별, 불치의 병, 사업 파산 등을 말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상황은 반드시 삶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60세가 넘어서 이 책을 쓰면서 회고하기를 자기 자신도 인생의 캄캄한 동굴 속에 여러 번 처했기 때문에 이 글을 쓰고 결론은 불만족과 실망과 인생 파산의 자리에서 체인지 업 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았는데 곧 그것은 신앙의 회복이라는 말입니다.
영혼의 만족이 있어야 합니다.
그 만족은 사모하는 자에게 만족을 주십니다.
9절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사람의 마음은 늘 구하고 사모합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은 사람의 욕망의 본성입니다.
가난한 자는 돈을 원하고, 무식한 자는 지혜를 원하고 힘없는 자는 권세 있기를 원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그 현재의 처지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더 나은 것, 더 좋은 것을 한없이 찾고 있습니다.
현대인은 무엇을 구합니까
삶에 대한 애착입니다.
잘 살아보겠다고 나름대로 목표를 정하고 필요한 것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자기의 목표한 바를 찾기 위해 일생을 온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다비치는 중 다행하게도 찾은 자도 있으나 바라고 찾는 것을 얻지 못하여 인생을 마치는 자가 더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목표한 바를 얻었다고 해서 만족과 기쁨을 누린 사람이라고 과연 얼마나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이상의 것을 찾아다니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그들의 마음에는 언제나 원함만이 있을 뿐입니다.
지옥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늘 부족하여 헐떡거리는 곳이 지옥입니다
잠언30:15-16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스올과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
육적으로도 인생이 만족하지 못함도 큰 일이지만 자기 영혼하나 만족을 하지 못 합니다
어떤 부자가 농사를 많이 지어 놓고 이제 이 만큼 하면 내 영혼이 만족하겠지 하고 스스로 자족을 해 보려고 하는데 아니었습니다.
누가복음12:16-21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독인의 시인 괴테는 나의 전 생애 중에 진정으로 즐거운 날은 하루 밖에 없었다고 한탄했습니다.
나폴레옹이 모스크바를 불태우고 승리의 기쁨 속에 있을 때도 흐느껴 울면서 인생의 허전함을 한탄했으며 마지막에 세인트 헬에나 섬 감방에서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칼과 방패로 세웠던 나의 제국이 어디로 갔느냐 하고 비통하게 탄식을 하였다고 합니다.
또 진시왕이 서산에 넘어가는 달을 왕의 호령으로 머물게 못하여서 비통에 잠겨 자신의 나약함을 탄식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 사모해야 하는 것은 내 영혼의 만족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4-7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부분적인 욕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리 속사람이 간절히 사모하는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세상의 것을 구하여 얻었다 할지라도 영혼의 사모하는 것을 아직 얻지 못함이 고통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찾는 것은 영혼의 만족이어야 하는데 대부분 그렇지 못합니다.
내가 원하는 기도의 대상만 바뀌어 있을 뿐입니다.
떡을 얻기 위하여 온 무리들에게 예수님이 알린 진정한 생명의 떡은 예수님 자신이라고 하였을 때 사람들은 실망하였습니다.
여태까지의 예수를 향하여 공들인 믿음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들은 왜 가지 아니하느냐
너무나도 놀라운 대답을 합니다
요한복음6:66-68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무디는 말하기를 후일에 아마 신문을 보면 동부 노스필드 출생인 디엘 무디가 죽었다는 기사가 날 것이다.
그럴지라도 그 말을 믿지 말기를 바란다. 그때에는 지금의 나보다 더 생생하게 살 것이다.
그때에는 나는 낡은 육체를 떠나서 영원한 높은 집으로 올라가 있을 것이다.
그때 나의 몸은 사망이 나를 침범하지 못하고 죄가 더럽히지 못하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될 것이다.
나의 육체는 1837년에 출생하였고 영혼으로는 1856년에 출생하였다.
육신으로 난 나의 육은 죽을 것이나 영혼으로 난 나는 영원히 살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무디는 명확한 미래관과 죽음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전도 생활에 전력을 기울이던 중 1899년 12월 22일을 마지막으로 임종하였습니다.
그는 임종 시에 침대에 누운 채로 말하기를 땅이 물러나고 내 앞에는 하늘 문이 열렸구나.
만일 이것이 죽음이라면 내 어찌 이것을 싫어할까 저 나라는 음침한 골짜기가 없다.
아,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있구나, 어서 가봐야 겠다.
오늘은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쓰는 날이다라고 하면서 운명하였습니다.
무디 선생의 비석에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사느니라
이제는 진정 사모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셔야 합니다.
시119:72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산상 보훈에서 8복을 말씀하셨는데 이 8복이 전부가 영적인 복입니다.
그 중에 하나인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라고 하였다.
비록 의롭지 못하더라도 복이 있는 이유는 의를 사모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곳에서 영적인 사모함이 없다면 너무 늦어 돌이 킬 수 없는 때에 사모함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 세상으로 목말라 어찌 할 바를 알지 못했을 때에 진정 갈망하는 것은 세상의 그 무엇이 아니라 내 영혼이 기갈 되어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내 영혼의 기갈을 해소해야 합니다.
고라 자손의 영혼의 갈망은 너무나도 긴박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42:2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이렇게 사모하는 자는 곧 의에 주리고 목이 말라하는 자는 저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9절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내 영혼이 잘되기 위해서는 영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현실적 관심사의 일을 다 처리한 후에 영적 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생활을 가정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영혼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영적인 갈망을 하는 자가 가는 곳이 천국이지만 그렇지 못함은 지옥입니다
구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옥은 아직도 세상적인 것만 갈망하는 삶이 지옥입니다.
나사로와 함께한 부자는 육신의 사후에서도 지긋지긋한 간구를 또 세상적인 간구에만 몰돌하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16:19-24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그렇게도 세상적인 것으로만 그의 영혼을 만족 시킨 이 부자는 다른 세상에서도 그가 필요로 한 것은 그가 그렇게도 사모하는 것은 한 방울의 물이라고 생각만 들었습니다
거의 인생의 전 경험과 삶의 결과가 세상적인 것뿐이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육신의 몸을 유지하기 위하여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수고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만을 위하여 살아가다가 끝난다면 얼마나 슬프고 비극적이겠습니까
폐지를 주워 생활을 영위하시는 분들이 우리 가까이에 참으로 많습니다.
누가 도와줘야 하는데 사회가 도와주지 않는다고 나무라기만 하고 진작 나는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도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있지 않습니까
비록 이들 뿐이겠습니까
젊은이들도 심각합니다.
생존에 힘듭니다
저는 무엇을 하든 어렵든 어떻게 살든지 그것을 말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을 위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복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삶을 맡기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옥 달리 봐야합니다
아직도 육신의 소욕만을 위하여 살아간다면 지옥입니다,
천국은 어디입니까
자신의 모든 것을 주를 위하여 내어 놓는 곳입니다.
아직도 세상적인 나를 위하여는 후덕하고 주를 위하여 나를 드리는 것에는 계산적이지 않습니까
계시록4:1-1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에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여기서 관은 상금과 존귀의 댓가를 인정하는 면류관입니다.
이것 까지도 천국에서는 주께 드려도 너무 나도 만족하여 어쩔 줄을 모르는 곳이 천국입니다.
아직도 자신의 입장을 위하여 한 방울 물을 구하는 그곳이 아직도 만족이 되지 않는 지옥입니다.
사람은 누구의 말을 따라 사느냐에 따라 그 사람과 같이 될 수 있습니다.
시19:7-8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내 믿음이 그 사람 예수 믿어 육신이 잘 되었다는 소리에만 귀 기울이지 말고 예수 믿어 영혼이 잘 되었다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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