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복이 될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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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09회 작성일 2016-09-18 20:45본문
창세기12:1-3 너는 복이 될지라
오스카 와일드가 쓴 그날 이후라는 글에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가장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감명하던 자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살펴보기 위해 세상에 내려왔습니다.
한 알코올 중독자를 만났는데 거의 폐인이 되어 손발이 심히 떨고 있었는데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소? 라고 물었습니다.
내가 절름발이였을 때 당신이 건강한 다리로 고쳐 주셨지요.
절름발이일 때는 구걸하며 살아도 부끄럽지 않고 그런대로 살았는데 두 발로 뛰면서부터는 얻어먹을 수도 없고 마음에 맞는 직장은 없고 하여 방황하다가 이처럼 되었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갈릴리로 가셨는데 한 불량자가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나면서 소경된 자로 눈을 뜨게 하여 준 자였는데 그때는 정말 기뻤고 감사하여 어쩔 줄을 몰라 하였는데 정작 눈을 뜨고서 세상이 감당이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니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결국 화풀이를 하다 보니 이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혜가 무슨 복이 되었습니까?
걷게 해주고 눈을 뜨게 하면 무슨 복이 되었겠습니까?
이런 자들은 그냥 그대로 살도록 해 주어냐 복이 됩니다.
이런 자 일수록 무엇을 구하는 것이 그렇게 많은 줄 모르겠어요
예수를 믿고 구원의 은혜를 받으면 무엇합니까?
축복해 주면 무엇하겠다는 말입니까?
주님이 보실 때에 억장이 무너질 것 같습니다.
극작가 셰익스피어는 은혜를 모르는 자식을 두기란 독사에게 물리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다고 말하였습니다.
은혜가 복이 되지 못하면 은혜가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은혜를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은혜를 베풀어도 복되게 살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까?
오늘 본문에도 복을 받은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은 아브람입니다
아브라함은 4천년동안 신앙의 인물로 전무후무한 사람입니다.
세계 3대종교인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모두 아브라함을 자신들의 뿌리로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유대교는 아브라함을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라 말합니다.
이슬람교는 모하메드에 이어 아브라함을 제2인자로 여깁니다.
이슬람의 경전인 코란에 아브라함을 188회나 언급할 정도입니다.
역시 기독교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존경합니다.
아브라함을 성경에서 크게 세 가지로 불립니다.
첫째,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친구로 불립니다.
역대하20:7, 주의 벗 아브라함
야고보서2:23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성경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친구로 불린 이가 아브라함입니다.
둘째, 아브라함은 천국의 관리인으로 불립니다.
누가복음16:22,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거지 나사로가 죽은 다음에 낙원에 가는데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고 말씀합니다.
셋째,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으로 불립니다.
2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하나님에게 약속을 받아 믿음으로 의롭게 된 아브라함은 모든 복의 조상이 된 거지요.
아브라함이 받은 복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복을 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복이 복되게 사용되지 못한 것입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은 복을 복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앉은벵이가 일어나 걸으면 무엇하고 장님이 눈을 뜨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받은 은혜가 복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복은 창세기 12:2-3에 나옵니다.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공동번역성경에는 이렇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 너에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떨치게 하리라 네 이름은 남에게 복을 끼쳐 주는 이름이 될 것이다
복을 받는데 남에게 복을 끼쳐 주는 이름이 되는 복입니다.
나 때문에 내 가족이 복을 받고 나 때문에 내가 속한 사회가 복을 받고 나 때문에 내 교회가 복을 받는 다는 그런 복입니다.
사람에게는 3종류가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소이 있으나 마나 한 사람.
그 사람 때문에 남에게 해를 끼치는 자,
또한 사람은 남에게 축복을 주는 사람 즉 위로와 평강과 힘이 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우리 가운데는 상당히 잘 못 믿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무조건 내게만 유익이 되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사는 삶이 겨우 남에게도 도움도 안 받고 도움도 안주겠다는 것이 최고의 선이 되고 어디 그것이 쉽습니까?
자기를 위하다 보니 남에게 피해만 주고 상처만 주고 사는 자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복은 나를 가지고 남에게 은혜를 나누는 자입니다.
주는 자가 복이 되고 흩어 구제 하여도 부유하게 되며 더 풍성하게 되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요셉은 은혜를 입은 만큼 잘 섬겼다고 합니다.
현재적으로 요셉은 노예로서 진실하게, 정직하게 살아서 주인의 신임을 받는 자되어 그 주인이 가정의 모든 것을 다 마길 정도로 주인의 손발이 되었습니다.
롬12:5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었습니다.
나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괴로워하는 자를 만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만족하고 편안해 하며 만족해하는 자를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남을 위한 관심을 가지고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그 이름을 복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복된 요셉이가 가는 곳은 요셉이 때문에 다 복이 되어 요셉이라는 이름이 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들어 온 나라를 주관하는 총리로 세우시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의 행하는 일에 하나님이 축복을 해 주시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온 애급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복된 자는 다른 이에게 하나님을 믿는 자로 인정을 받은 자입니다.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주인이 보았는데, 틀림없이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계셨습니다.
돈 벌어서 남 주느냐? 아니요. 돈 벌어서 남 주자는 겁니다.
공부해서 남 주느냐? 공부해서 남 주자는 거예요.
이제 내 것 챙기는 복되지 못한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에게 베푸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좀 안타까운 일이 있다면 베푸는 일에 훈련이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많이 있어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자신을 드려 베푸는 일이 그렇게 복인 줄 몰랐습니다.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사람은 10만원이면 10만원 아침에 주머니에 넣고 이렇게 기도한다고 해요하나님 오늘 이 돈이 꼭 필요한 사람을 만나게 해 주세요 하고 나간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세상 덕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브라함 덕 보고 사는 복입니다.
아브라함이 부모덕에 출세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 때문에 부모가 유명해 진 복입니다.
아브라함이 자식들 때문에 수지맞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 때문에 자식이 수지맞는 복입니다.
아브라함 때문에 세상이 구원의 길을 알게 되는 큰 복입니다.
나 때문에 아내를 행복하게 하고, 나 때문에 부모가 유명해 지고, 나 때문에 교회가 부흥하고, 나 때문에 민족이 덕 보며, 나 때문에 세상이 구원받는 겁니다.
창세기19:29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나를 생각하사 나의 가족을, 교회를, 이웃을, 민족을 살리신다면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최고의 복은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복입니다.
이제 아브라함의 복이 무엇인지 알았으니 모두 이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 이 하늘의 음성을 모두 듣고 복 있는 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된 자는 자기중심의 삶이 아닙니다.
자기에게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떠나라
1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아브람이 살던 고향은 갈대아 우르입니다.
우르 왕조가 B.C 약 2160-2000년 경에 찬란한 문화를 형성했습니다.
문화의 발달과 함께, 수많은 우상들이 넘쳐 당시 섬기던 우상의 종류가 3천이나 되었습니다.
그 중 달의 신이 우르성의 주신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데라 역시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이런 고향과 아비 집을 떠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갑자기 이민을 가라는 거예요.
아브람의 이민은 고생이 아니라 죽을 각오가 필요했습니다.
아브람은 무엇 때문에 떠났을까요?
하나님은 이민을 명령하시면서 아브람의 눈을 번쩍이게 한 매력적인 한 글자가 있었어요. 무엇일까요?
복입니다.
죽음으로 얻는 복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서커스를 참 좋아했어요.
공중에서 그네를 타는 장면인데 한 사람은 공중에 나는 역할이고 한 사람은 잡아 주는 역할입니다.
나는 사람이 공중으로 치솟으면 떨어지기 전에 붙잡아 주어야 합니다.
이것을 바라보는 청중은 아쓸아쓸 합니다
신앙도 그네타기 곡예와 같습니다.
이쪽 그네를 놓아야 저쪽에 있는 그네로 넘어 가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잡고 있었던 그네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이었고, 멋진 광야 곡예를 한 후에 잡아야 할 그네는 약속의 새 땅이었지요.
신앙은 떠나는 것입니다. 과거에서 떠나고 익숙했던 것에서 떠나는 거예요.
이사야51:2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
모든 것을 버리고 혼자 있을 때에 불러 복되게 하셨습니다.
복된 신앙은 오직 주 밖에 나의 소망이 있을 뿐입니다입니다.
가라입니다.
그네타기의 고수는 나는 사람이 아니라 잡아 주는 자라고 합니다.
내가 이 그네를 놓으면 분명히 저쪽에서 나를 잡아줄 거라는 믿음으로 곡예사는 떠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떠나 하나님의 붙잡아 주시는 손을 믿은 것입니다.
히브리서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아브라함이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인간적인 그 어떤 것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아직 내려놓지 못함은 그 만큼 믿음이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세상에 나를 걸어 놓고 돈아 날 살려라 세상아 나를 제발 붙잡아 달라는 것입니다.
한번 믿음으로 죽어야 삽니다.
내가 스스로 죽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세상을 향하여 나를 한번 죽여 놓습니다.
그런데 나는 내 아직 안 죽어서 하고 나옵니다 그러면 하나님 또 죽이십니다
설 죽으면 힘듭니다 완전히 죽어야 그래야 편합니다.
이제는 이런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갈라디아서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제는 복되게 삽시다 하나님이 복이고 내가 복입니다.
특별한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설교자 스펄전은 은혜로 인한 구원을 경험하고 거리로 뛰쳐나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십니까?
오늘도 그 은혜가 나에게 있음을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요.
당신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까? 할렐루야!
은혜는 지금도 풍성하십니다.
태평양 물속에 있는 물고기가 목이 말라죽고, 곡식이 가득한 창고에 있는 쥐가 굶어죽었다면, 얼마나 어이없고 우스꽝스런 일인가?
지독히 나만을 생각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받는 복이 아니라 주는 복을 받았습니다.
나 때문에 모든 자가 복을 받으니 내가 얼마나 복된 자입니까
복동이 복녀 복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잠언11:24-25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내 쓸 것은 없어도 주를 위하여 남을 위하여 항상 쓸 것이 있는 복된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스카 와일드가 쓴 그날 이후라는 글에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가장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감명하던 자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살펴보기 위해 세상에 내려왔습니다.
한 알코올 중독자를 만났는데 거의 폐인이 되어 손발이 심히 떨고 있었는데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소? 라고 물었습니다.
내가 절름발이였을 때 당신이 건강한 다리로 고쳐 주셨지요.
절름발이일 때는 구걸하며 살아도 부끄럽지 않고 그런대로 살았는데 두 발로 뛰면서부터는 얻어먹을 수도 없고 마음에 맞는 직장은 없고 하여 방황하다가 이처럼 되었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갈릴리로 가셨는데 한 불량자가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나면서 소경된 자로 눈을 뜨게 하여 준 자였는데 그때는 정말 기뻤고 감사하여 어쩔 줄을 몰라 하였는데 정작 눈을 뜨고서 세상이 감당이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니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결국 화풀이를 하다 보니 이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혜가 무슨 복이 되었습니까?
걷게 해주고 눈을 뜨게 하면 무슨 복이 되었겠습니까?
이런 자들은 그냥 그대로 살도록 해 주어냐 복이 됩니다.
이런 자 일수록 무엇을 구하는 것이 그렇게 많은 줄 모르겠어요
예수를 믿고 구원의 은혜를 받으면 무엇합니까?
축복해 주면 무엇하겠다는 말입니까?
주님이 보실 때에 억장이 무너질 것 같습니다.
극작가 셰익스피어는 은혜를 모르는 자식을 두기란 독사에게 물리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다고 말하였습니다.
은혜가 복이 되지 못하면 은혜가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은혜를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은혜를 베풀어도 복되게 살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까?
오늘 본문에도 복을 받은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은 아브람입니다
아브라함은 4천년동안 신앙의 인물로 전무후무한 사람입니다.
세계 3대종교인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모두 아브라함을 자신들의 뿌리로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유대교는 아브라함을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라 말합니다.
이슬람교는 모하메드에 이어 아브라함을 제2인자로 여깁니다.
이슬람의 경전인 코란에 아브라함을 188회나 언급할 정도입니다.
역시 기독교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존경합니다.
아브라함을 성경에서 크게 세 가지로 불립니다.
첫째,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친구로 불립니다.
역대하20:7, 주의 벗 아브라함
야고보서2:23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성경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친구로 불린 이가 아브라함입니다.
둘째, 아브라함은 천국의 관리인으로 불립니다.
누가복음16:22,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거지 나사로가 죽은 다음에 낙원에 가는데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고 말씀합니다.
셋째,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으로 불립니다.
2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하나님에게 약속을 받아 믿음으로 의롭게 된 아브라함은 모든 복의 조상이 된 거지요.
아브라함이 받은 복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복을 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복이 복되게 사용되지 못한 것입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은 복을 복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앉은벵이가 일어나 걸으면 무엇하고 장님이 눈을 뜨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받은 은혜가 복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복은 창세기 12:2-3에 나옵니다.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공동번역성경에는 이렇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 너에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떨치게 하리라 네 이름은 남에게 복을 끼쳐 주는 이름이 될 것이다
복을 받는데 남에게 복을 끼쳐 주는 이름이 되는 복입니다.
나 때문에 내 가족이 복을 받고 나 때문에 내가 속한 사회가 복을 받고 나 때문에 내 교회가 복을 받는 다는 그런 복입니다.
사람에게는 3종류가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소이 있으나 마나 한 사람.
그 사람 때문에 남에게 해를 끼치는 자,
또한 사람은 남에게 축복을 주는 사람 즉 위로와 평강과 힘이 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우리 가운데는 상당히 잘 못 믿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무조건 내게만 유익이 되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사는 삶이 겨우 남에게도 도움도 안 받고 도움도 안주겠다는 것이 최고의 선이 되고 어디 그것이 쉽습니까?
자기를 위하다 보니 남에게 피해만 주고 상처만 주고 사는 자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복은 나를 가지고 남에게 은혜를 나누는 자입니다.
주는 자가 복이 되고 흩어 구제 하여도 부유하게 되며 더 풍성하게 되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요셉은 은혜를 입은 만큼 잘 섬겼다고 합니다.
현재적으로 요셉은 노예로서 진실하게, 정직하게 살아서 주인의 신임을 받는 자되어 그 주인이 가정의 모든 것을 다 마길 정도로 주인의 손발이 되었습니다.
롬12:5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었습니다.
나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괴로워하는 자를 만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만족하고 편안해 하며 만족해하는 자를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남을 위한 관심을 가지고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그 이름을 복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복된 요셉이가 가는 곳은 요셉이 때문에 다 복이 되어 요셉이라는 이름이 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들어 온 나라를 주관하는 총리로 세우시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의 행하는 일에 하나님이 축복을 해 주시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온 애급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복된 자는 다른 이에게 하나님을 믿는 자로 인정을 받은 자입니다.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주인이 보았는데, 틀림없이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계셨습니다.
돈 벌어서 남 주느냐? 아니요. 돈 벌어서 남 주자는 겁니다.
공부해서 남 주느냐? 공부해서 남 주자는 거예요.
이제 내 것 챙기는 복되지 못한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에게 베푸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좀 안타까운 일이 있다면 베푸는 일에 훈련이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많이 있어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자신을 드려 베푸는 일이 그렇게 복인 줄 몰랐습니다.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사람은 10만원이면 10만원 아침에 주머니에 넣고 이렇게 기도한다고 해요하나님 오늘 이 돈이 꼭 필요한 사람을 만나게 해 주세요 하고 나간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세상 덕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브라함 덕 보고 사는 복입니다.
아브라함이 부모덕에 출세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 때문에 부모가 유명해 진 복입니다.
아브라함이 자식들 때문에 수지맞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 때문에 자식이 수지맞는 복입니다.
아브라함 때문에 세상이 구원의 길을 알게 되는 큰 복입니다.
나 때문에 아내를 행복하게 하고, 나 때문에 부모가 유명해 지고, 나 때문에 교회가 부흥하고, 나 때문에 민족이 덕 보며, 나 때문에 세상이 구원받는 겁니다.
창세기19:29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나를 생각하사 나의 가족을, 교회를, 이웃을, 민족을 살리신다면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최고의 복은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복입니다.
이제 아브라함의 복이 무엇인지 알았으니 모두 이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 이 하늘의 음성을 모두 듣고 복 있는 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된 자는 자기중심의 삶이 아닙니다.
자기에게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떠나라
1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아브람이 살던 고향은 갈대아 우르입니다.
우르 왕조가 B.C 약 2160-2000년 경에 찬란한 문화를 형성했습니다.
문화의 발달과 함께, 수많은 우상들이 넘쳐 당시 섬기던 우상의 종류가 3천이나 되었습니다.
그 중 달의 신이 우르성의 주신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데라 역시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이런 고향과 아비 집을 떠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갑자기 이민을 가라는 거예요.
아브람의 이민은 고생이 아니라 죽을 각오가 필요했습니다.
아브람은 무엇 때문에 떠났을까요?
하나님은 이민을 명령하시면서 아브람의 눈을 번쩍이게 한 매력적인 한 글자가 있었어요. 무엇일까요?
복입니다.
죽음으로 얻는 복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서커스를 참 좋아했어요.
공중에서 그네를 타는 장면인데 한 사람은 공중에 나는 역할이고 한 사람은 잡아 주는 역할입니다.
나는 사람이 공중으로 치솟으면 떨어지기 전에 붙잡아 주어야 합니다.
이것을 바라보는 청중은 아쓸아쓸 합니다
신앙도 그네타기 곡예와 같습니다.
이쪽 그네를 놓아야 저쪽에 있는 그네로 넘어 가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잡고 있었던 그네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이었고, 멋진 광야 곡예를 한 후에 잡아야 할 그네는 약속의 새 땅이었지요.
신앙은 떠나는 것입니다. 과거에서 떠나고 익숙했던 것에서 떠나는 거예요.
이사야51:2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
모든 것을 버리고 혼자 있을 때에 불러 복되게 하셨습니다.
복된 신앙은 오직 주 밖에 나의 소망이 있을 뿐입니다입니다.
가라입니다.
그네타기의 고수는 나는 사람이 아니라 잡아 주는 자라고 합니다.
내가 이 그네를 놓으면 분명히 저쪽에서 나를 잡아줄 거라는 믿음으로 곡예사는 떠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떠나 하나님의 붙잡아 주시는 손을 믿은 것입니다.
히브리서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아브라함이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인간적인 그 어떤 것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아직 내려놓지 못함은 그 만큼 믿음이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세상에 나를 걸어 놓고 돈아 날 살려라 세상아 나를 제발 붙잡아 달라는 것입니다.
한번 믿음으로 죽어야 삽니다.
내가 스스로 죽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세상을 향하여 나를 한번 죽여 놓습니다.
그런데 나는 내 아직 안 죽어서 하고 나옵니다 그러면 하나님 또 죽이십니다
설 죽으면 힘듭니다 완전히 죽어야 그래야 편합니다.
이제는 이런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갈라디아서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제는 복되게 삽시다 하나님이 복이고 내가 복입니다.
특별한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설교자 스펄전은 은혜로 인한 구원을 경험하고 거리로 뛰쳐나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십니까?
오늘도 그 은혜가 나에게 있음을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요.
당신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까? 할렐루야!
은혜는 지금도 풍성하십니다.
태평양 물속에 있는 물고기가 목이 말라죽고, 곡식이 가득한 창고에 있는 쥐가 굶어죽었다면, 얼마나 어이없고 우스꽝스런 일인가?
지독히 나만을 생각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받는 복이 아니라 주는 복을 받았습니다.
나 때문에 모든 자가 복을 받으니 내가 얼마나 복된 자입니까
복동이 복녀 복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잠언11:24-25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내 쓸 것은 없어도 주를 위하여 남을 위하여 항상 쓸 것이 있는 복된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