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이기는 이름
페이지 정보
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318회 작성일 2016-11-02 09:58본문
사무엘상 17:45-47 세상을 이기는 이름
이름은 사람이나 사물에 붙이는 고유한 칭호입니다.
인격이나 성격, 특성을 근거로 붙여집니다.
히브리인들은 대개 생후 8일째 할례 시에 이름을 지었다.
이름을 짓는 일은 그 대상에 대해 소유권이나 지배권을 가진 존재만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며 또 무슨 뜻을 갖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다.
영어의 God은 good에서 인출되었다고도 하고 페르시아어로 소유자란 뜻에서 유래했다고도 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14가지로 불리어 집니다.
엘로힘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엘 엘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주재자
아도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 우리의 주 하나님
엘 오람 신비로운 하나님 계시하시는 하나님
이레 구원하시는 하나님 예비하시는 하나님
로피 치료하시는 하나님
니시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 우리의 깃발이신 하나님
예카디아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 거룩케 하시는 주
샬롬 평화를 주시는 하나님 평화의 왕 하나님
사바오스 수유하시는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지드케누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의(義)이신 주님
삼마 현존하시는 하나님 가까이 계시는 주님
엘욘 축복하시는 하나님
로이 보호해주시는 하나님 우리의 목자이신 주님
아무튼, 구약성경에 언급된 하나님을 지칭하는 여러 이름들에는 기본적으로 중요한 세 개의 단어들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엘, 엘로힘, 여호와입니다.
엘(El)은 강한 자 하나님을 나타내는 셈족 최고의 그리고 가장 널리 알려진 하나님에 대한 히브리인들의 공식 명칭이었다.
엘과 결합된 이름을 보면, 엘 로이는 감찰하시는 하나님
엘 샤다이는 전능하신 하나님 등으로 나타납니다.
엘로힘(Elohim)은 엘의 복수형이지만 떼로는 단수로 취급되어 온 우주와 세상과의 관계에서 탁월하고 절대적이며 참된 하나님을 지칭합니다.
여호와(Jehovah)는 영원 자존자를 의미하며 가장 신성하고 가장 탁월한 성호(聖號)로 인정되어 왔습니다.
유대인들은 3계명을 엄수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기 위해 B.C.300년경에 이것을 전혀 발음하지 않기로 했다.
만약 피치 못해 발음할 경우 주님(Lord)을 뜻하는 아도나이로 읽었습니다
바벨론 포로 이후에 여호와와 결합된 이름이 나타났는데
여호와 닛시, 여호와 삼마, 여호와 샬롬, 여호와 이레 등으로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이렇습니다.
데오스 즉 하나님이란 뜻으로 구약의 엘, 엘로힘을 대치하는 신약적 표현이다.
퀴리오스는 주, 주인이란 뜻으로 전능자 또는 통치자의 뜻을 가지며,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하나님이시자 신앙과 예배의 대상으로서 적용되었다
파테르는 성부 하나님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성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소개되었다
마태복음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우리는 기도를 마칠 때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한다고 말하며 끝을 맺는다.
예수님의 이름이라는 의미는 종교적인 관행이 아니라, 모든 기도가 예수님이 하신 것과 같다는 대표성을 갖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를 끝마친다면 예수님의 기도가 되는 것이다.
내가 기도해도 예수님이 하신 것 같은 효력을 갖는다는 의미로 예수님이 기도하는 것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예수님이 기도한 것은 예외 없이 기적이 일어났고 놀라운 역사가 펼쳐졌습니다.
그런데 왜 그 놀라운 능력의 이름은 나에게는 별로 능력이 없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그 이름의 능력을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의 능력을 힘입은 다윗이 있습니다.
45절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인생의 많은 것들이 골리앗처럼 우리를 압도합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 떨게 된 근거로 두 가지를 들었습니다.
한 가지는 듣고 떨었다고 했고 또 다른 하나는 보고 떨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들은 귀로 듣고 낙심했고, 눈으로 보고 절망했습니다.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상황들에 대하여 귀로 들었기에 절망합니다.
눈으로 보았기에 좌절합니다.
이것이 문제의 상황 앞에 선 우리의 인생, 곧 골리앗 앞에선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었습니다.
골리앗을 보는 것, 골리앗의 고함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정말 그렇게 치명적인 위협이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과 군대, 그들의 지도자마저도 눈이 있어도 진정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눈이 두려움에 멀어버려서 하나님이 주신 약속과 소망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런 모욕을 하나님의 백성이 블레셋 사람으로부터 받을 이유가 없다고 분노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믿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을 믿었습니다.
이 이름의 호칭은 주로 사무엘서와 열왕기서 그리고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 및 시편 등에 사용되어 있는 바, 이스라엘이 왕국의 체계를 갖추게 되었을 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호칭은 천군천사를 뜻하는 것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천군천사를 동원하여 자기의 영광과 나라 및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열심을 다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천사들은 하나님이 부리시는 영들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나라와 영광을 위하여 언제라도 부리실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다윗의 이 고백은 하나님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신뢰의 마음을 골리앗뿐만 아니라 온 이스라엘 군대와 적군까지 다 듣고 보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심을 알리십니다 할렐루야!
46절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습니까
주가 되시는 예수와 임마누엘은 동격이 된다는 것이다.
임마누엘의 뜻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이므로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계심을 설명 해 주는 확실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다른 표현으로 한다면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어서 사람과 함께 계심입니다.
이러한 신비스러운 일은 오직 단 한번만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 안에 계십니다.
나와 함께 게시면 함께 계심을 만민이 알게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돈키호테를 쓴 세르반테스가 이런 말을 합니다.
재산을 잃은 사람은 많은 것을 잃은 것이다. 친구를 잃은 사람은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잃어버린 사람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로마의 정치가였으며 철학자였던 세네카도 이런 말을 합니다.
힘들어서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용기를 내지 않기 때문에 힘든 것이다.
우리에게 참된 용기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다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일어섭시다.
패배 당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 일어나 용기 있게 나아갑시다.
우리는 본문에서 당시의 상황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 세 사람을 살펴봅시다.
첫째는 사울 왕은 누가 봐도 용맹스러운 외모와 모습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는 갑옷과 투구와 칼로 무장한 그야말로 용사다운 면모가 다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골리앗이라고 하는 거대한 문제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두번째 골리앗은 어려서부터 장수요 용사였다고 말합니다.
그의 키는 2미터 70이나 되고, 그가 입은 갑옷은 화살과 칼로도 뚫리지 않는 57kg나 되는 갑옷을 입었고 긴 창과 칼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훈련된 사람이며 수없는 많은 전쟁을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다윗이라는 어린 소년 앞에 꼬꾸라져 목이 잘려 엎드려져 있습니다.
셋째 다윗은 블레셋 장수에 비하면 외소하고 상대가 되지 않는 정말로 연약한 존재였습니다.
어떤 전쟁의 면모를 갖추어 있지도 않습니다. 전쟁의 경험도 없었습니다.
최후의 승자는 누구입니까?
모든 것을 다 갖춘 사울도 아니었습니다. 전쟁의 경험이 풍부한 골리앗도 아니었습니다.
최후의 승자는 오직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간 다윗이었습니다.
47절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다윗은 일찍이 그의 가치관은 달랐습니다.
33-37절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34.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37.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그의 의지는 자신이 가진 세상적인 소유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 그의 의지 이었습니다.
그의 삶은 오로지 여호와의 이름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나아갔습니다.
사무엘하22:30-33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진으로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넘나이다
31.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진실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
32.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
33. 하나님은 나의 견고한 요새시며 나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시며
하나님의 이름 앞에 자신을 다 드릴 수 있으며 어떤 상황 앞에서도 자신은 당당하게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당시의 최고의 권력자 로마의 황제 앞에 복음을 들고 당당히 서는 것이 그의 삶의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사도행전27:24-25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내 인생을 세상을 보고 듣고 어찌 할 수 없는 자로만 던져두겠습니까
이거 너무 불안하고 확신이 없는 것 아닙니까?
내 인생 아니 내 생명까지도 드릴 수 있는 하나님의 이름 주의 이름 앞에 드린다는 것은 너무나도 확정적인 삶이 아니겠습니까
사도행전20:22-24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내 귀한 인생 나의 삶을 전적으로 드릴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간다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또 하나의 의미는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그 이름이 너무나도 나에게는 귀하기 때문에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갈라디아서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빌립보서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제 예수 이름 앞에 무릅을 끓고 그의 이름을 의지합시다
빌립보서2:9-11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골로새서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요한복음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름은 사람이나 사물에 붙이는 고유한 칭호입니다.
인격이나 성격, 특성을 근거로 붙여집니다.
히브리인들은 대개 생후 8일째 할례 시에 이름을 지었다.
이름을 짓는 일은 그 대상에 대해 소유권이나 지배권을 가진 존재만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며 또 무슨 뜻을 갖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다.
영어의 God은 good에서 인출되었다고도 하고 페르시아어로 소유자란 뜻에서 유래했다고도 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14가지로 불리어 집니다.
엘로힘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엘 엘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주재자
아도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 우리의 주 하나님
엘 오람 신비로운 하나님 계시하시는 하나님
이레 구원하시는 하나님 예비하시는 하나님
로피 치료하시는 하나님
니시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 우리의 깃발이신 하나님
예카디아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 거룩케 하시는 주
샬롬 평화를 주시는 하나님 평화의 왕 하나님
사바오스 수유하시는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지드케누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의(義)이신 주님
삼마 현존하시는 하나님 가까이 계시는 주님
엘욘 축복하시는 하나님
로이 보호해주시는 하나님 우리의 목자이신 주님
아무튼, 구약성경에 언급된 하나님을 지칭하는 여러 이름들에는 기본적으로 중요한 세 개의 단어들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엘, 엘로힘, 여호와입니다.
엘(El)은 강한 자 하나님을 나타내는 셈족 최고의 그리고 가장 널리 알려진 하나님에 대한 히브리인들의 공식 명칭이었다.
엘과 결합된 이름을 보면, 엘 로이는 감찰하시는 하나님
엘 샤다이는 전능하신 하나님 등으로 나타납니다.
엘로힘(Elohim)은 엘의 복수형이지만 떼로는 단수로 취급되어 온 우주와 세상과의 관계에서 탁월하고 절대적이며 참된 하나님을 지칭합니다.
여호와(Jehovah)는 영원 자존자를 의미하며 가장 신성하고 가장 탁월한 성호(聖號)로 인정되어 왔습니다.
유대인들은 3계명을 엄수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기 위해 B.C.300년경에 이것을 전혀 발음하지 않기로 했다.
만약 피치 못해 발음할 경우 주님(Lord)을 뜻하는 아도나이로 읽었습니다
바벨론 포로 이후에 여호와와 결합된 이름이 나타났는데
여호와 닛시, 여호와 삼마, 여호와 샬롬, 여호와 이레 등으로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이렇습니다.
데오스 즉 하나님이란 뜻으로 구약의 엘, 엘로힘을 대치하는 신약적 표현이다.
퀴리오스는 주, 주인이란 뜻으로 전능자 또는 통치자의 뜻을 가지며,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하나님이시자 신앙과 예배의 대상으로서 적용되었다
파테르는 성부 하나님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성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소개되었다
마태복음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우리는 기도를 마칠 때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한다고 말하며 끝을 맺는다.
예수님의 이름이라는 의미는 종교적인 관행이 아니라, 모든 기도가 예수님이 하신 것과 같다는 대표성을 갖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를 끝마친다면 예수님의 기도가 되는 것이다.
내가 기도해도 예수님이 하신 것 같은 효력을 갖는다는 의미로 예수님이 기도하는 것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예수님이 기도한 것은 예외 없이 기적이 일어났고 놀라운 역사가 펼쳐졌습니다.
그런데 왜 그 놀라운 능력의 이름은 나에게는 별로 능력이 없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그 이름의 능력을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의 능력을 힘입은 다윗이 있습니다.
45절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인생의 많은 것들이 골리앗처럼 우리를 압도합니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 떨게 된 근거로 두 가지를 들었습니다.
한 가지는 듣고 떨었다고 했고 또 다른 하나는 보고 떨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들은 귀로 듣고 낙심했고, 눈으로 보고 절망했습니다.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상황들에 대하여 귀로 들었기에 절망합니다.
눈으로 보았기에 좌절합니다.
이것이 문제의 상황 앞에 선 우리의 인생, 곧 골리앗 앞에선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었습니다.
골리앗을 보는 것, 골리앗의 고함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정말 그렇게 치명적인 위협이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과 군대, 그들의 지도자마저도 눈이 있어도 진정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눈이 두려움에 멀어버려서 하나님이 주신 약속과 소망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런 모욕을 하나님의 백성이 블레셋 사람으로부터 받을 이유가 없다고 분노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믿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을 믿었습니다.
이 이름의 호칭은 주로 사무엘서와 열왕기서 그리고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 및 시편 등에 사용되어 있는 바, 이스라엘이 왕국의 체계를 갖추게 되었을 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호칭은 천군천사를 뜻하는 것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천군천사를 동원하여 자기의 영광과 나라 및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열심을 다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천사들은 하나님이 부리시는 영들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나라와 영광을 위하여 언제라도 부리실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다윗의 이 고백은 하나님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신뢰의 마음을 골리앗뿐만 아니라 온 이스라엘 군대와 적군까지 다 듣고 보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심을 알리십니다 할렐루야!
46절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습니까
주가 되시는 예수와 임마누엘은 동격이 된다는 것이다.
임마누엘의 뜻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이므로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계심을 설명 해 주는 확실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다른 표현으로 한다면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어서 사람과 함께 계심입니다.
이러한 신비스러운 일은 오직 단 한번만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 안에 계십니다.
나와 함께 게시면 함께 계심을 만민이 알게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돈키호테를 쓴 세르반테스가 이런 말을 합니다.
재산을 잃은 사람은 많은 것을 잃은 것이다. 친구를 잃은 사람은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잃어버린 사람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로마의 정치가였으며 철학자였던 세네카도 이런 말을 합니다.
힘들어서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용기를 내지 않기 때문에 힘든 것이다.
우리에게 참된 용기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다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일어섭시다.
패배 당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시 일어나 용기 있게 나아갑시다.
우리는 본문에서 당시의 상황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 세 사람을 살펴봅시다.
첫째는 사울 왕은 누가 봐도 용맹스러운 외모와 모습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는 갑옷과 투구와 칼로 무장한 그야말로 용사다운 면모가 다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골리앗이라고 하는 거대한 문제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두번째 골리앗은 어려서부터 장수요 용사였다고 말합니다.
그의 키는 2미터 70이나 되고, 그가 입은 갑옷은 화살과 칼로도 뚫리지 않는 57kg나 되는 갑옷을 입었고 긴 창과 칼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훈련된 사람이며 수없는 많은 전쟁을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다윗이라는 어린 소년 앞에 꼬꾸라져 목이 잘려 엎드려져 있습니다.
셋째 다윗은 블레셋 장수에 비하면 외소하고 상대가 되지 않는 정말로 연약한 존재였습니다.
어떤 전쟁의 면모를 갖추어 있지도 않습니다. 전쟁의 경험도 없었습니다.
최후의 승자는 누구입니까?
모든 것을 다 갖춘 사울도 아니었습니다. 전쟁의 경험이 풍부한 골리앗도 아니었습니다.
최후의 승자는 오직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간 다윗이었습니다.
47절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다윗은 일찍이 그의 가치관은 달랐습니다.
33-37절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34.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37.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그의 의지는 자신이 가진 세상적인 소유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 그의 의지 이었습니다.
그의 삶은 오로지 여호와의 이름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나아갔습니다.
사무엘하22:30-33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진으로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넘나이다
31.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진실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
32.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
33. 하나님은 나의 견고한 요새시며 나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시며
하나님의 이름 앞에 자신을 다 드릴 수 있으며 어떤 상황 앞에서도 자신은 당당하게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당시의 최고의 권력자 로마의 황제 앞에 복음을 들고 당당히 서는 것이 그의 삶의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사도행전27:24-25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내 인생을 세상을 보고 듣고 어찌 할 수 없는 자로만 던져두겠습니까
이거 너무 불안하고 확신이 없는 것 아닙니까?
내 인생 아니 내 생명까지도 드릴 수 있는 하나님의 이름 주의 이름 앞에 드린다는 것은 너무나도 확정적인 삶이 아니겠습니까
사도행전20:22-24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내 귀한 인생 나의 삶을 전적으로 드릴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간다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또 하나의 의미는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그 이름이 너무나도 나에게는 귀하기 때문에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갈라디아서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빌립보서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제 예수 이름 앞에 무릅을 끓고 그의 이름을 의지합시다
빌립보서2:9-11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골로새서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요한복음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