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새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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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287회 작성일 2017-01-01 18:33본문
로마서12:1-2 새해 새마음
또 하나님은 2017년 한해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12달 365일을 주셨습니다.
새해가 되면 이 한해를 어떻게 살아갈까를 고민하지 않습니다.
새해를 주셨으니 사도 바울은 새마음으로 살아 갈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권면한다고 합니다.
1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무엇입니까
그러므로는 단어를 보면 12장 앞의 11장에 나오는 내용이 하나님의 자비하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자비를 살펴 보면 은 모두가 하나님 앞에 죽어야 마땅한 죄인이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3:10-18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이러한 죄인이 어떻게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요?
무엇을 깨달음으로 할 수 없고 어떤 착한 행실로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자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여러 가지 교훈으로 깨우쳐주실 뿐만 아니라 최후에는 그의 몸으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인간이 죄사함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교리를 분명하게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믿는 이들은 이 진리를 다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믿습니까.
그가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그래서 이제 이런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받았으니 그 격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베풀어 주신 그 은혜는 헛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비하심에 합한 새로운 삶은 어떤 삶입니까
하나님께 내 자신을 드리는 삶입니다.
1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헬라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오늘날에도 이 몸 곧 육신을 도에 지나치게 생각합니다.
심지어 육신의 노에가 되기도 합니다.
헬라 사람들 가운데는 육신을 숭배한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고대 신들을 보면 거의 육신의 미를 나타냈습니다.
그래서 가령 주피터는 남자의 미를 표현했고,
여신 비너스는 여자의 미를 표현하였습니다.
육신은 물론 귀하지만 숭배의 대상은 될 수 없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고대 사상 가운데는 육신을 너무 천대하는 사상도 없지 않았습니다.
가령 그노시스 사상 영지주의자들은 육신을 학대하고 고행하는 사상을 교회 역사에서 더러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육신 자체를 악으로 여기고 육신을 괴롭히는 것이 영적 생활을 돕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교회 역사를 돌아보면 고행주의적인 노력이 적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래서 가령 지금 들으면 웃을 일이지만, 육신을 괴롭히기 위해서 내복에 뾰족뾰족한 작은 못을 박아서 입고 다녔다고 합니다.
육신을 괴롭히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또 오랫동안 목욕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육신에 대하여 잘못된 생각으로 극과 극으로 대하였습니다.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격멸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성육신으로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말씀으로 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육신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을 당하시며 만민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육신은 참으로 귀하다는 사실을 또한 증거하여 주셨습니다.
육신이 이렇게 귀합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육신과 영혼이 아울러 구원을 받습니다.
육신은 숭배의 대상도 아니요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사용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육신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십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육신으로 드리는 제사가 예배입니다.
그런데 그 제물은 살아 있는 인격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죽은 제물이 드려졌습니다.
사실 사람들의 인격이 구원함에 이르게 된 것은 짐승들이 사람들의 잘못 때문에 재물이 되어 죽어 갔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육신을 드림으로 인하여 더 이상 짐승이 죽을 필요가 없는 온전한 제물이 되셨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서 구원함에 이르렀으니 이제 그 격에 합당하게 살라는 말입니다.
죽어서 영광을 돌림이 아니라 살아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고 권면합니다.
산제사는 말 그대로 살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 뜻은 온전히 우리 생활을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순복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닮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도 거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십니다.
우리도 진실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도 사랑의 삶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십니다.
우리도 긍휼히 여기며 가난한 사람과 불우한 이들을 불쌍히 여길 줄 알고, 죄 짓는 이라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면서 살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이루고자 하시는 일들이 많습니다.
아무런 필요가 없는 자가 아니라 아주 존귀한 자입니다.
내 가정에서도, 내 직장에서도, 내 나라에서도, 아니 전 세계에서 어디서라도 내 한 몸을 드려 하나님을 드려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몸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림에 대하여 놀라운 경험을 말합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2:19-20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로마서14:8-9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사실 그는 자신을 표현 하기를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이라고 하였습니다.
빌립보서2:1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디모데후서4: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로마서9:1-3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제사의 종류의 여러 가지가 있으니, 대표적인 제사로 번제, 소제, 전제가 있습니다.
번제는 고기를 불에 태워 드리는 제사이고 (燔祭, 태울 번, 제사 제)
소제는 곡식 가루를 불에 태워 드리는 제사이며 (素祭, 흴 소, 제사 제)
전제는 술을 드리는 제사입니다. (奠祭, 제사 전, 제사 제)
특히 전제는 모든 제사의 마무리 격입니다.
번제는 스테이크에 해당되며, 소제는 밥이나 빵에 해당되고, 전제는 반주에 해당됩니다.
예를 들면 스테이크와 빵으로 식사를 하면서 포도주를 곁들이는 것이 비유될 수 있습니다.
이 재도는 참형상이 아니요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이니 (히10:1)
술을 부어 드리는 제사인 전제는 장치 예수 그리스도가 드려지는 그림자였고 성도들이 드려지는 그림자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 일생의 삶을 하나님의 제단 위에 붓는 제사의 행위로 드려진 것입니다.
그의 삶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깨달은 후에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제단에 부어 바쳤습니다.
그의 재능도 하나님의 제단에 부었습니다.
하나님의 지식도 그의 제단에 부었습니다.
그의 문벌도, 그의 청춘도, 그의 지력도, 온갖 재능도 그에게 있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하나님의 제단에 부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당시에 모든 믿는 이들에게, 아니 앞으로 오는 세대의 모든 믿는 이들을 향하여 지금도 권면합니다.
너희들도 나와 같이 산 제사를 드려라.
하나님의 제단에 너희의 온 삶을 부어서 바쳐라.
이제는 더 이상 나만을 위하여 산다는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이게 얼마나 어리석은 발상인지 모릅니다
이제는 그리스도를 위한 삶이 인생이구나를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어떻게 주를 위하여 살까
내가 어떤 모습으로 주을 위하다가 죽을까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자
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세대라고 함은 이 세상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주축이 되어 지배하는 이 세상을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창조 자체는 좋은 것이지만 이것을 더럽히고 타락하게 만드는 것이 인간들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1:20-32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따라서 이 세대는 멸망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세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세상의 삶의 양식을 따라 살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 세상의 삶의 양식은 앞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하나님 없이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자
변화를 받아라 마음의 새로움으로라고 합니다.
베푸신 은혜에 합당하게 내 자신을 드림으로 변화된 삶을 산다면 하나님이 너무 기뻐하십니다.
이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신앙인으로서 항상 고민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내 중심의 삶을 살고 있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있느냐 분별하는 삶이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또 하나님은 2017년 한해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12달 365일을 주셨습니다.
새해가 되면 이 한해를 어떻게 살아갈까를 고민하지 않습니다.
새해를 주셨으니 사도 바울은 새마음으로 살아 갈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권면한다고 합니다.
1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무엇입니까
그러므로는 단어를 보면 12장 앞의 11장에 나오는 내용이 하나님의 자비하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자비를 살펴 보면 은 모두가 하나님 앞에 죽어야 마땅한 죄인이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3:10-18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이러한 죄인이 어떻게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구원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요?
무엇을 깨달음으로 할 수 없고 어떤 착한 행실로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자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여러 가지 교훈으로 깨우쳐주실 뿐만 아니라 최후에는 그의 몸으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인간이 죄사함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교리를 분명하게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믿는 이들은 이 진리를 다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믿습니까.
그가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그래서 이제 이런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받았으니 그 격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베풀어 주신 그 은혜는 헛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면 그 자비하심에 합한 새로운 삶은 어떤 삶입니까
하나님께 내 자신을 드리는 삶입니다.
1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헬라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오늘날에도 이 몸 곧 육신을 도에 지나치게 생각합니다.
심지어 육신의 노에가 되기도 합니다.
헬라 사람들 가운데는 육신을 숭배한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고대 신들을 보면 거의 육신의 미를 나타냈습니다.
그래서 가령 주피터는 남자의 미를 표현했고,
여신 비너스는 여자의 미를 표현하였습니다.
육신은 물론 귀하지만 숭배의 대상은 될 수 없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고대 사상 가운데는 육신을 너무 천대하는 사상도 없지 않았습니다.
가령 그노시스 사상 영지주의자들은 육신을 학대하고 고행하는 사상을 교회 역사에서 더러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육신 자체를 악으로 여기고 육신을 괴롭히는 것이 영적 생활을 돕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교회 역사를 돌아보면 고행주의적인 노력이 적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래서 가령 지금 들으면 웃을 일이지만, 육신을 괴롭히기 위해서 내복에 뾰족뾰족한 작은 못을 박아서 입고 다녔다고 합니다.
육신을 괴롭히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또 오랫동안 목욕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육신에 대하여 잘못된 생각으로 극과 극으로 대하였습니다.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격멸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성육신으로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말씀으로 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육신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을 당하시며 만민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육신은 참으로 귀하다는 사실을 또한 증거하여 주셨습니다.
육신이 이렇게 귀합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육신과 영혼이 아울러 구원을 받습니다.
육신은 숭배의 대상도 아니요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사용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육신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십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육신으로 드리는 제사가 예배입니다.
그런데 그 제물은 살아 있는 인격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죽은 제물이 드려졌습니다.
사실 사람들의 인격이 구원함에 이르게 된 것은 짐승들이 사람들의 잘못 때문에 재물이 되어 죽어 갔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육신을 드림으로 인하여 더 이상 짐승이 죽을 필요가 없는 온전한 제물이 되셨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서 구원함에 이르렀으니 이제 그 격에 합당하게 살라는 말입니다.
죽어서 영광을 돌림이 아니라 살아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고 권면합니다.
산제사는 말 그대로 살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 뜻은 온전히 우리 생활을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순복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닮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도 거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십니다.
우리도 진실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도 사랑의 삶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십니다.
우리도 긍휼히 여기며 가난한 사람과 불우한 이들을 불쌍히 여길 줄 알고, 죄 짓는 이라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면서 살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이루고자 하시는 일들이 많습니다.
아무런 필요가 없는 자가 아니라 아주 존귀한 자입니다.
내 가정에서도, 내 직장에서도, 내 나라에서도, 아니 전 세계에서 어디서라도 내 한 몸을 드려 하나님을 드려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몸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림에 대하여 놀라운 경험을 말합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2:19-20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로마서14:8-9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사실 그는 자신을 표현 하기를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이라고 하였습니다.
빌립보서2:1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디모데후서4: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로마서9:1-3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제사의 종류의 여러 가지가 있으니, 대표적인 제사로 번제, 소제, 전제가 있습니다.
번제는 고기를 불에 태워 드리는 제사이고 (燔祭, 태울 번, 제사 제)
소제는 곡식 가루를 불에 태워 드리는 제사이며 (素祭, 흴 소, 제사 제)
전제는 술을 드리는 제사입니다. (奠祭, 제사 전, 제사 제)
특히 전제는 모든 제사의 마무리 격입니다.
번제는 스테이크에 해당되며, 소제는 밥이나 빵에 해당되고, 전제는 반주에 해당됩니다.
예를 들면 스테이크와 빵으로 식사를 하면서 포도주를 곁들이는 것이 비유될 수 있습니다.
이 재도는 참형상이 아니요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이니 (히10:1)
술을 부어 드리는 제사인 전제는 장치 예수 그리스도가 드려지는 그림자였고 성도들이 드려지는 그림자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 일생의 삶을 하나님의 제단 위에 붓는 제사의 행위로 드려진 것입니다.
그의 삶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깨달은 후에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제단에 부어 바쳤습니다.
그의 재능도 하나님의 제단에 부었습니다.
하나님의 지식도 그의 제단에 부었습니다.
그의 문벌도, 그의 청춘도, 그의 지력도, 온갖 재능도 그에게 있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하나님의 제단에 부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당시에 모든 믿는 이들에게, 아니 앞으로 오는 세대의 모든 믿는 이들을 향하여 지금도 권면합니다.
너희들도 나와 같이 산 제사를 드려라.
하나님의 제단에 너희의 온 삶을 부어서 바쳐라.
이제는 더 이상 나만을 위하여 산다는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이게 얼마나 어리석은 발상인지 모릅니다
이제는 그리스도를 위한 삶이 인생이구나를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어떻게 주를 위하여 살까
내가 어떤 모습으로 주을 위하다가 죽을까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자
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세대라고 함은 이 세상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주축이 되어 지배하는 이 세상을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창조 자체는 좋은 것이지만 이것을 더럽히고 타락하게 만드는 것이 인간들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1:20-32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따라서 이 세대는 멸망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세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세상의 삶의 양식을 따라 살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 세상의 삶의 양식은 앞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하나님 없이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자
변화를 받아라 마음의 새로움으로라고 합니다.
베푸신 은혜에 합당하게 내 자신을 드림으로 변화된 삶을 산다면 하나님이 너무 기뻐하십니다.
이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신앙인으로서 항상 고민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내 중심의 삶을 살고 있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있느냐 분별하는 삶이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