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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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268회 작성일 2017-04-09 04:57본문
누가복음23:26-28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
오늘은 종려 주일이요 이번 주간은 고난 주간입니다.
많은 사람들과 여인들이 예수께서 가시는 모습을 보고 울고 있다.
그 모습이 충분히 많은 이들을 울게 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여인들이 울고 많은 사람들이 울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온갖 선한 일을 베푸신 그분이 왜 혹독한 형벌을 받아 형벌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왜 저분이 저렇게 되었지? 라는 다른 생각보다는 연민의 정을 느끼고 울고 있다.
그 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를 위해서 울라고 말씀하신다.
27-28절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예수는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무리들과 여인들은 왜 예수님 때문에 울었을까요?
그 때에 여인들은 왜 예수님이 이렇게 모진 십자가를 지셔야 하고 죽으셔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능력이 있으시고 죽은 자도 살리시고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이 이까짓 십자가쯤은 단 번에 내던져버리고 악한 자들을 능멸하실 수 있는데 왜 바보같이 그 고통과 수모를 다 당하시면서 가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여인들을 향해 예수님은 나를 위해 울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동정의 눈물이 필요치 않습니다.
참으로 그렇다면 예수님의 고난은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죽음을 당하시지 않으면 주님을 따르는 무리들의 죄를 사하실 수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모진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시지만 3일 만에 다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시고 이 땅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신다는 사실을 아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참고 견디시고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의 죄까지 용서하셨던 것입니다.
그 주님의 고난을 보면서 나 자신을 봐야 합니다.
성경에는 울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태복음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8복중 하나가 애통하는 자의 복입니다.
애통함은 자기 성찰의 시작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고백할 때 우리는 울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기를 상실한 사람은 울 줄도 모릅니다.
애통하는 마음은 곧 겸손한 마음이요, 진실한 마음이요,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마음입니다.
눈물과 울음은 마음과 생각을 정화할 뿐 아니라, 사람과 하나님의 위로를 얻게 합니다.
예수님은 여인들에게 이제는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너희자녀들을 위해 울라고 하셨습니다.
너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 울라는 것은 회개와 속죄를 위한 진정한 눈물을 흘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큰 구원을 이루어놓으셨지만 그 구원의 은혜는 참회하는 자들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자신과 우리자녀들을 위해 진정한 눈물을 흘려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고난과 흘리신 피와 죽으심이 우리에게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대로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셨고 고난을 받으시고 부활하여 다시 하나님에게로 올라가셔서 영광을 받으시지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남겨놓으신 구원의 영광을 누리는 것은 우리 인간들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가시면서까지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고 했을까요?
이 말이 무슨 뜻일까요? 그 이유는 임박한 심판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때가 약 AD 30년경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AD 70년에 멸망했습니다.
티투스라고 하는 장군이 이끄는 로마군대에게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성전이 파괴되었고 수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했는데, 심지어 어린아이와 여자들까지 죽임을 당하고 일부는 노예로 붙잡혀 갔습니다.
그 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 없이 자그마치 2,000년을 방랑하다가 20세기에 와서 겨우 독립을 했습니다. 자 그것이 바로 임박한 심판입니다.
주님은 바로 그 임박한 심판을 생각하시면서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자 그 날이 이르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29절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왜 그 날에는 자녀가 없는 것이 복입니까?
내가 고통당하는 것이 견디기 힘이 듭니까? 내 자녀가 고통당하는 것이 견디기 힘듭니까? 자녀가 고통당하는 것이 훨씬 힘이 듭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전쟁으로 고통당하는 심판 날에 자녀가 고통당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수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차라리 보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그들이 겪을 심판이 견디기 어려울 것이란 말씀입니다.
30절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오죽 괴로우면 산들이 우리 위에 무너져서 우리를 덮었으면 좋겠다고 하겠습니까?
그 죄가 중해서 산들이 넘어져 그들을 덮는 것이 차라리 심판을 당하는 것보다 낫겠다는 것이다.
그만큼 그들이 겪을 심판이 중하다는 것입니다.
31절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수분이 많은 푸른 나무는 태우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마른나무는 쉽게 불에 탑니다.
푸른 나무가 죄 없는 의인이라면 마른 나무는 죄인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의인이 이런 고통을 당한다면 불에 타기로 준비되어 있는 마른 나무와 같은 죄인들의 결국은 어떻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와 같은 심판을 미리 내다보고 계시기 때문에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특별히 한국 땅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우리와 우리 자녀를 위해서 더 나아가 우리민족을 위해 울 때라고 생각합니다.
스가랴12:10-14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11.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
12.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13. 레위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시므이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14. 모든 남은 족속도 각기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리라
참된 회계는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사도행전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너와 네 자녀를 위해 울라는 주의 일에 동참하지 못함을 울어야 합니다
멸시조롱만 했지 또 동정만 했지 참여는 없는 신앙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형집행은 도성 밖에서 진행됨으로, 죄수는 사형장까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야 했다.
보통 여기서 자기 십자가는 가로 막대로, 세로는 이미 사형장에 박혀 있었다.
예수님도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셨으나, 이미 그 앞의 엄청난 고통은 그에게 그 십자가를 지고 가기에는 무리였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에서부터 시작해서, 유다의 배반, 겟세마네의 기도, 제자들의 도망감, 산혜드린의 불법 법정에서 시달림, 베드로에게 부인당하심, 빌라도와의 대면, 그리고 채찍질 등 약 15시간에 걸쳐 숨 막히는 긴장과 아픔의 연속에 시달리셔야 했다.
더 이상 지고가지 못하고 쓰러지고 넘어집니다
당시 로마 군병은 군사적, 정치적으로 필요하면, 식민지 백성을 징발해서 강제로 노역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었고, 이 권한을 이용해 구레네에서 온 시몬이라는 유대인에게 대신 억지로 십자가를 지도록 했다.
구레네(Cyrene)는 현재 리비아 지역으로 당시에는 넓은 유대인 거류지가 있었다.
그들은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정기적으로 올라왔으며, 문헌에 의하면, 예루살렘에는 구레네 사람들의 회당이 있었다고 한다.
아무튼, 이 구레네 출신의 유대인 시몬은 전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것도 강제로, 억지로 십자가를 지도록 강요받았다.
아마, 그는 처음에는 스스로 상당히 재수가 없는 유월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덕분에,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에 도착했고, 그는 거기서 일어난 일을 목격하고 깊은 감명을 받아, 결국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전승에 의하면, 그는 후에 초대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
마가는 로마인들에게 복음을 쓰면서 시몬을 소개헸습니다.
로마서16: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마가복음15: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십자가는 결코 수치가 아니고 영광입니다. 패배가 아니고 승리입니다.
화가 아니고 축복입니다 죽음이 아니고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16:21-24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
요단 강을 건넌 후 무한 영광일세
오늘은 종려 주일이요 이번 주간은 고난 주간입니다.
많은 사람들과 여인들이 예수께서 가시는 모습을 보고 울고 있다.
그 모습이 충분히 많은 이들을 울게 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여인들이 울고 많은 사람들이 울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온갖 선한 일을 베푸신 그분이 왜 혹독한 형벌을 받아 형벌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왜 저분이 저렇게 되었지? 라는 다른 생각보다는 연민의 정을 느끼고 울고 있다.
그 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를 위해서 울라고 말씀하신다.
27-28절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예수는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무리들과 여인들은 왜 예수님 때문에 울었을까요?
그 때에 여인들은 왜 예수님이 이렇게 모진 십자가를 지셔야 하고 죽으셔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능력이 있으시고 죽은 자도 살리시고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이 이까짓 십자가쯤은 단 번에 내던져버리고 악한 자들을 능멸하실 수 있는데 왜 바보같이 그 고통과 수모를 다 당하시면서 가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여인들을 향해 예수님은 나를 위해 울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동정의 눈물이 필요치 않습니다.
참으로 그렇다면 예수님의 고난은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죽음을 당하시지 않으면 주님을 따르는 무리들의 죄를 사하실 수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모진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시지만 3일 만에 다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시고 이 땅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신다는 사실을 아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참고 견디시고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의 죄까지 용서하셨던 것입니다.
그 주님의 고난을 보면서 나 자신을 봐야 합니다.
성경에는 울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태복음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8복중 하나가 애통하는 자의 복입니다.
애통함은 자기 성찰의 시작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고백할 때 우리는 울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기를 상실한 사람은 울 줄도 모릅니다.
애통하는 마음은 곧 겸손한 마음이요, 진실한 마음이요,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마음입니다.
눈물과 울음은 마음과 생각을 정화할 뿐 아니라, 사람과 하나님의 위로를 얻게 합니다.
예수님은 여인들에게 이제는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너희자녀들을 위해 울라고 하셨습니다.
너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 울라는 것은 회개와 속죄를 위한 진정한 눈물을 흘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큰 구원을 이루어놓으셨지만 그 구원의 은혜는 참회하는 자들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자신과 우리자녀들을 위해 진정한 눈물을 흘려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고난과 흘리신 피와 죽으심이 우리에게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대로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셨고 고난을 받으시고 부활하여 다시 하나님에게로 올라가셔서 영광을 받으시지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남겨놓으신 구원의 영광을 누리는 것은 우리 인간들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가시면서까지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고 했을까요?
이 말이 무슨 뜻일까요? 그 이유는 임박한 심판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때가 약 AD 30년경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AD 70년에 멸망했습니다.
티투스라고 하는 장군이 이끄는 로마군대에게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성전이 파괴되었고 수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했는데, 심지어 어린아이와 여자들까지 죽임을 당하고 일부는 노예로 붙잡혀 갔습니다.
그 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 없이 자그마치 2,000년을 방랑하다가 20세기에 와서 겨우 독립을 했습니다. 자 그것이 바로 임박한 심판입니다.
주님은 바로 그 임박한 심판을 생각하시면서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자 그 날이 이르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29절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왜 그 날에는 자녀가 없는 것이 복입니까?
내가 고통당하는 것이 견디기 힘이 듭니까? 내 자녀가 고통당하는 것이 견디기 힘듭니까? 자녀가 고통당하는 것이 훨씬 힘이 듭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전쟁으로 고통당하는 심판 날에 자녀가 고통당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수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차라리 보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그들이 겪을 심판이 견디기 어려울 것이란 말씀입니다.
30절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오죽 괴로우면 산들이 우리 위에 무너져서 우리를 덮었으면 좋겠다고 하겠습니까?
그 죄가 중해서 산들이 넘어져 그들을 덮는 것이 차라리 심판을 당하는 것보다 낫겠다는 것이다.
그만큼 그들이 겪을 심판이 중하다는 것입니다.
31절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수분이 많은 푸른 나무는 태우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마른나무는 쉽게 불에 탑니다.
푸른 나무가 죄 없는 의인이라면 마른 나무는 죄인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의인이 이런 고통을 당한다면 불에 타기로 준비되어 있는 마른 나무와 같은 죄인들의 결국은 어떻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와 같은 심판을 미리 내다보고 계시기 때문에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특별히 한국 땅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우리와 우리 자녀를 위해서 더 나아가 우리민족을 위해 울 때라고 생각합니다.
스가랴12:10-14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11.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
12.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13. 레위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시므이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14. 모든 남은 족속도 각기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리라
참된 회계는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사도행전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너와 네 자녀를 위해 울라는 주의 일에 동참하지 못함을 울어야 합니다
멸시조롱만 했지 또 동정만 했지 참여는 없는 신앙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형집행은 도성 밖에서 진행됨으로, 죄수는 사형장까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야 했다.
보통 여기서 자기 십자가는 가로 막대로, 세로는 이미 사형장에 박혀 있었다.
예수님도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셨으나, 이미 그 앞의 엄청난 고통은 그에게 그 십자가를 지고 가기에는 무리였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에서부터 시작해서, 유다의 배반, 겟세마네의 기도, 제자들의 도망감, 산혜드린의 불법 법정에서 시달림, 베드로에게 부인당하심, 빌라도와의 대면, 그리고 채찍질 등 약 15시간에 걸쳐 숨 막히는 긴장과 아픔의 연속에 시달리셔야 했다.
더 이상 지고가지 못하고 쓰러지고 넘어집니다
당시 로마 군병은 군사적, 정치적으로 필요하면, 식민지 백성을 징발해서 강제로 노역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있었고, 이 권한을 이용해 구레네에서 온 시몬이라는 유대인에게 대신 억지로 십자가를 지도록 했다.
구레네(Cyrene)는 현재 리비아 지역으로 당시에는 넓은 유대인 거류지가 있었다.
그들은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정기적으로 올라왔으며, 문헌에 의하면, 예루살렘에는 구레네 사람들의 회당이 있었다고 한다.
아무튼, 이 구레네 출신의 유대인 시몬은 전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것도 강제로, 억지로 십자가를 지도록 강요받았다.
아마, 그는 처음에는 스스로 상당히 재수가 없는 유월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덕분에,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에 도착했고, 그는 거기서 일어난 일을 목격하고 깊은 감명을 받아, 결국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전승에 의하면, 그는 후에 초대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
마가는 로마인들에게 복음을 쓰면서 시몬을 소개헸습니다.
로마서16: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마가복음15: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십자가는 결코 수치가 아니고 영광입니다. 패배가 아니고 승리입니다.
화가 아니고 축복입니다 죽음이 아니고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16:21-24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
요단 강을 건넌 후 무한 영광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