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있는 첫 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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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255회 작성일 2017-05-14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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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6:1-3 약속있는 첫 계명
인류의 역사는 점점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로 나아가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구에서는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 이어진 Renaissance(문예부흥)는 고전문학 고전예술을 즉 그리스. 로마의 문화를 다시 부흥시키는 운동이었습니다.
당시의 기독교가 인간성을 억압하기 때문에 종교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Humanism(인본주의)운동이었습니다.
즉 인간과 하나님의 말씀을 떼어 놓는 운동이었습니다.
최근에 문예부흥 시대 이후 하나님을 떠나 인간 스스로 살아가려는 노력을 경주해왔습니다.
그 후, 19세기에 일어난 유럽대륙 중심의 이성주의와 합리주의 그리고 영국을 중심의 경험주의도 모두 성경과 인간을 떼어 놓고 인간 경험과 이성의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주장했습니다.
인간 역사 모두가 인본주의에 입각한 역사였습니다.
동양의 역사는 처음부터 중국을 중심한 중화문화권과 인도를 중심한 불교문화권이 지배해왔습니다.
중화문화권에서는 인간 중심의 성인(聖人)을 본받는 삶을 가르친 유교와 자연 질서에 따르는 삶을 가르친 도교가 지배했고, 불교 문화권에서는 인간의 노력과 힘으로 해탈의 경지에 다다라야 한다는 가르침이 지배했습니다.
이 모두가 인본주의에서 비롯된 역사의 전개였습니다.
이러한 동서양의 문화가 섞이는 인본주의 시대의 현대를 맞으며 인간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주인 되는 인본주의는 허무주의와 쾌락주의를 낳게 되었습니다.
허무주의와 쾌락주의는 인간을 절망으로 몰아갑니다.
하나님 없는 인간의 종말은 헛됨과 절망인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증거로 우리는 가정에서 부부의 관계나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가 깨지는 일이 거침없이 진행되는 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효도가 사라지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효도는 아주 골동품이 되고 효도한은 것이 이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부모들도 아예 효를 받을 생각하지 않고 병들고 늙었지만 자식에게 기될 생각은 아예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있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서 제일 인기 없고 제일 가난하고 제일 힘들어 하고 귀찮은 존재가 우리의 부모가 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은 힘이 가장 없는 늙은 부모들이 지금 하고 있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버림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인간은 복을 버리고 저주를 택하고 있습니다.
잠30: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인간의 복은 내 부모와의 관계에 달려 있다는 말입니다
1-3절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종교 개혁가 마틴 루터는 부모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대신하는 분이다고 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어떤 존재로 어떤 대상으로 생각하십니까
주안에서 그 분께 순종 할 분이십니다.
주 안에서 라는 말에 순종의 한계가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라는 말은 순종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수단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하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순종이 없이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는 말입니다.
부모를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부모의 권위는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부모라고 하는 권위는 어느 사람이 준 것도 아니고 어느 인간의 제도가 만든 것도 아닙니다.
부모의 권위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그 누구도 이 부모의 권위를 거역할 수 없는 것이며 하나님의 권위를 거역하면 곧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무식해도, 실수를 해도 또 부모가 자식을 호의호식 못 시키고 많은 교육을 받게 하지 못했어도 부모라는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반드시 순종해야 합니다.
통상 부모가 잘해 주었기 때문에 내가 잘 해 준다는 것이 통상의 개념입니다.
그래서 하나라도 잘 못하는 부모가 있으면 그 자녀는 부모를 절대로 용서해 주지 않음은 물론이요 철천지원수가 되어 있음을 봅니다.
이게 얼마나 잘못된 효의 개념입니까
잘한 부모만 부모가 아닙니다 못한 부모도 부모입니다
노아는 홍수 심판 때 유일하게 구원받은 의인이었지만 그도 실수를 범했습니다.
하루는 포도주를 많이 마시고 취해서 그만 벌거벗은 하체를 드러내놓고 잠을 자다가 셈, 함, 야벳 세 아들 중 가운데 함이 이를 보았습니다.
이때 함은 허물을 덮어드릴 생각은 하지 않고 입을 삐죽이고 비웃고 떠들고 흉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그 사실을 알고 홑이불을 가져다가 아버지의 허물을 안 보려고 뒷걸음으로 들어가 허물을 가리고 덮어드렸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노아는 이 사실을 알고 저주하기를 가나안(함)은 종의 종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함은 아프리카의 선조가 되어 그 후손들이 종노릇하며 헐벗고 굶주리며 고생을 합니다.
노아는 이 사실을 알고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영적인 축복을 했습니다.
예수님도 셈족에서 태어났습니다.
또 야벳은 창대케 하시리로다 하고 물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노아가 실수한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무시하고 도전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요,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죄이기 때문에 노아가 윤리, 도덕으로 지은 죄보다 열 배 백 배 큰 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화가 어떻게 변하든지, 윤리, 도덕이 어떻게 바뀌든지 이 계명은 영원불변한 하나님의 명령이고, 이 계명을 지킬 때 그 가정과 그 나라가 잘 되고 장수하게 됩니다.
여기서 옳다는 말은 공의요 정의라는 뜻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일이 그 어떤 사회정의와 선행 보다 더 정의롭고 정당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자기 부모를 공경함 없이 어떤 사회적인 선한 일이나 의로운 일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크고 훌륭한 일을 하고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업적을 남긴다해도 자기 부모를 받들지 않고 불효하는 것은 그의 모든 일들을 무가치 하게하고 무익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효도는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사회적으로도 의로운 일이며 선한 일임을 깨달아야합니다.
또한 네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공경해야 하는데 매일 매일 공격하고 있지 않습니까
언어적으로 보면 공경이라는 말의 기본적인 뜻은 무거운(heavy)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권위와 관련 된 말이다.
이 말은 사람의 몸에 간장(肝臟)에서 나왔습니다.
히브리인은 사람의 신체 중에 특히 내장 중에서 간장이 제일 무겁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은 체중의 오십분의 일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이 간의 중요한 기능은 몸에 필요한 영양분을 저장하는 역할을 합니다.
인체에 제공되는 물질의 교체가 왕성하게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몸에 들어오는 독물이나, 몸 안에서 발생하는 독물을 해독시키는 작용을 하는 곳입니다.
소화기능에 절대 필요한 담즙이 만들어져 쓸개주머니로 공급되는 작용을 하는 곳입니다.
노폐된 적혈구를 파괴해주고 수분을 어느 정도 간직해서 전체기능의 균형을 조절해 주는 작용을 합니다.
그래서 간의 기능은 생명과 직결되며 사람의 건강을 유지시켜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부모님을 간과 같이 무겁게 여기라는 말 즉 공경하라는 말 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려면 먼저 부모님을 용서하고 용납해야 합니다.
용서는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 줌.
용납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남의 말이나 행동을 받아들임.
사람들은 누구에게 가장 크고 많은 상처를 받을까요?
부모님에게 가장 크고 많은 상처를 받습니다.
모든 분들이 자신들의 아픔과 상처를 내 놓고 나누는데 대부분 부모로부터 받은 큰 상처를 가지고 있더랍니다.
어떤 분들은 부모에게 받은 상처가 크고 깊어서 수 십 년이 흐른 뒤에도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이 부모님에게 받은 상처가 있다면 이 시간 용서하시기를 바랍니다.
부모를 용서하지 않고 공경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잘 된다는 약속입니다
의학적으로 보면, 부모님께 효도하는 사람은 부모님과의 관계가 좋으니 마음이 즐겁고 편안해서 몸의 모든 기능도 활발해지고 면역 기능도 강해진답니다.
사람의 몸에는 핏줄이 있는데 거기에는 500만 개의 백혈구와 적혈구가 떠다니면서 노폐물과 찌꺼기를 걸러내고 또 몸에 침입하는 병균을 잡아먹습니다.
그런데 효도하는 사람은 백혈구와 적혈구가 왕성하게 활동해서 아주 건강하게 된답니다.
그리고 사람의 심장은 1분에 육십-백번씩 펌프질을 하는데, 한 번 펌프질을 할 때 2온스의 피를 뿜어냅니다.
그 피가 구석구석에 스며드는데 효도하는 사람은 이 기능도 강해진답니다.
그러나 불효하는 사람은 부모님과의 관계가 좋지 않아서 늘 마음이 괴롭고 복잡하며 기쁘지 않으니 신체 기능이 저하되고 백혈구와 적혈구도 약해지고 심장도 약해져 일찍 죽는답니다.
부모님에게 효도해서 잘되고 장수하는 복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부모를 통해 자녀를 축복하십니다.
자녀란 누구입니까? 사실 부모님의 젊음과 청춘을 다 먹어 버린 자입니다.
부모님의 어깨에는 자녀들의 그 모든 것이 얹혀 있습니다.
부모들은 자녀들로 인한 상처가 많이 있습니다.
부모님들의 상처는 자녀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녀들을 위한 것이기에 오히려 부모는 그 상처도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날 때, 대부분은 하나님만 떠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 사실 그들은 모든 것을 다 버린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는 순간, 자유를 잃어버렸고, 삶의 가치도, 고귀한 신분도 다 잃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등지고 떠나면 인생의 소중한 것을 다 잃어버리는 자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흉년입니다
인생을 자기 힘으로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에겐 넘치는 감사와 기쁨이 별로 없습니다.
자기 힘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고집이 강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정죄의식이 강합니다.
그러나 부모의 은혜를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에게는 한량없는 삶의 기쁨이 있습니다.
이제 왜 부모님을 주셨는가를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아버지를 위로하십시오. 어머니를 축복하십시오.
부모님을 사랑하십시오.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효란 부모님을 자랑스러워하고 기뻐하면서, 부모님의 뜻을 살펴 헤아리는 것입니다.
참된 순종이란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아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경을 통해서 유익을 얻는 것은 공경 받는 자가 아니라 공경하는 자요, 순종하는 자라는 점입니다.
기독교에서의 공경은 본질적으로 억압을 위한 공경이 아니라 진정한 삶의 자유를 위한 공경입니다.
이제 공경은 이렇게 복된 것인데 실제로 성경 인물 중에서 공경을 통하여 사람을 복되게 산 자들의 삶을 살펴 봅시다
믿음의 사람들의 예를 통하여 실제로 부모님을 공경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성경에는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는 구체적인 예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을 통하여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부모님에게 대하는 삶 가운데 자연스럽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마음 헤아릴 줄 알았다.
아버지가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삼고자 했을 때 그것을 피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버지의 뜻을 따랐다.
하나 밖에 없는 사랑하는 아들을 희생의 제물로 삼고자 할 때 그 고통은 아들인 자신이 아버지 손에 자신의 생명을 맡기는 것 이상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라는 것을 헤아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부모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그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바로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다.
요셉을 통해서도 부모님을 공경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요셉의 부친 야곱이 죽기 전에 요셉의 두 아들들을 축복할 때 오른 손을 둘째 아들의 머리 위에 얹고 왼손을 첫째 아들의 머리에 얹었다.
오른손은 권위를 상징하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하면 첫째 아들에게 오른 손을 얹어야 했다.
그래서 요셉은 아버지가 실수로 그렇게 하시는 줄 알고 아버지께 바로 행하도록 말씀드렸지만 아버지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을 때 그는 아버지의 권위를 순종하여 상식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지만 아버지의 뜻을 따랐다.
그리고 아버지가 자신이 죽은 후 시신을 조상들이 묻혀 있는 가나안에 묻어달라는 유언했을 때 요셉은 장례를 위하여 많은 시간과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그의 시신을 가나안 땅 조상들이 묻혀 있는 곳에 매장했다.
요셉의 모습을 통하여 부모님을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님의 권위를 인정해 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룻을 통해서도 부모님을 공경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다.
룻은 형통할 때뿐만 아니라 시련의 때에도 언제나 시어미니와 함께 했고 또한 시어머니의 필요를 공급했다. 그가 이방여인으로서 시어머니와 함께 베들레헴에 온 후에도 시어머니를 공궤(供饋)하기 위하여 밭에 나가 이삭을 주었다.
젊은 여인이 낮선 땅에 와서 추수하는 밭에 나가 이삭을 줍는다는 것 자체가 자존감을 상하게 하는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를 공궤할 수 있는 일이 그것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는 그 일을 했다.
여기 룻은 부모님을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님을 공궤하는 것임을 말해 준다.
부모님을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 부모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 그리고 부모님을 공궤하는 것들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주님은 이것이 옳으니라고 즉 정의요 공의라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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