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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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265회 작성일 2017-06-04 07:17본문
시편51:10-13 주의 성령
오늘은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 주신 성령 강림을 기리는 주일입니다.
본문에 다윗은 성령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11절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왜 성령이 떠나게 됩니까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회개하지 않을 때 성령은 떠납니다.
하나님을 원망할 때 성령은 노합니다.
하나님을 욕할 때 성령은 탄식합니다.
성령은 나와 항상 함께 하는 것인데, 내가 이런 연유로 끝까지 성령을 배반하게 되면 내게서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죄란 흔히 윤리적인 의미에서 생각할 때가 많다.
윤리적으로 사회적으로 다른 이들에게 해를 끼칠 때 이를 죄라고 말한다.
다윗이 저지른 죄는 윤리적이면서 사회적인 죄를 저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하나님께 철저한 회개를 한다.
그 이유는 윤리적이고 사회적인 죄를 저지른 것 또한 불신앙에서 오는 결과이기 때문에 먼저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한다.
그러므로 죄는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는 상태 즉 하나님을 신앙하지 못하는 불신앙 자체가 죄라할 수 있다.
하나님을 떠나 있음으로 인하여 발생됨으로 인해 윤리적이고 사회적인 죄를 저지르게 된다.
다윗 역시 죄를 저질렸습니다.
다윗이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죄를 책망 받았을 때에 이렇게 고백을 하였습니다.
사무엘하12:13상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다윗이 죄가 지적 되었을 때에 자신의 그 어떤 조건으로 변명하거나 피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여자가 대낮에 목욕을 하며 유혹을 하였습니다.
아니 이래뵈도 내가 부하의 아내 하나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최고의 권세를 가진 왕입니다.
이게 속죄의 요소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설령 여자가 유혹을 하였다고 해도
왕으로서 얼마든지 권세로 카바할 수 있어도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죄를 지었습니다.
왜 이 사실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고백이 없을 때에 그 죄가 나 자신의 즐거움을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시32:3-4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죄를 회개한 사람들의 나라이며 교회는 회개의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첫 외침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진실한 신앙인은 회개한 사람입니다.
회개는 믿음입니다.
교인은 많지만 회개하는 신앙인은 많지 않습니다.
죄의 특징은 감출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죄를 고백하라고 하십니다.
고백을 통하여 구원의 기쁨을 회복시키려고 합니다.
반면에 사탄은 죄를 감추라고 합니다.
의인인체 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스스로 의인인체 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죄를 감추고는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고 살수 없고, 죄를 감추고는 천국을 경험하며 살수 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지금도 나를 유혹하길 죄를 감출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죄는 고백하여야 합니다.
죄를 감추기 위해서 하는 수고는 헛수고이다.
그런 수고를 할수록 더 깊은 죄의 수렁으로 빠져들게 된다.
다윗은 간음죄를 감추기 위해서 살인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삶은 행복이 아니라 괴로움이었습니다.
점점 죄악의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 갔습니다.
죄는 감춤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회개함으로 없어진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죄의 속함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만 됩니다.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10절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정한 마음 정직한 영이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에게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합니다.
다윗은 이제 그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울 앞에서 변명하지 않고 흔들림이 없이 자기 자신을 봅니다.
자신의 얼룩진 범죄를 봅니다.
여기에 어떤 핑계도 변명도 없습니다.
3-4절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내 죄가 나를 고발하게 하는 것, 이것이 정한 마음 정직한 영입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죄를 낱낱이 얘기하자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인정합니다.
어떤 변명도 없었습니다.
단지 내가 여호와께 죄를 지었습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말은 죄의 원인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죄의 원인이 그 여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죄의 합리화가 내가 최고의 권력자이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는 자신 속에 도사리고 있는 죄의 뿌리를 보는 것입니다.
5절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울 앞에서 지난 삶의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오염되고 더렵혀진 자신의 삶을 봅니다.
다른 사람의 모습이 아닙니다.
내 모습만 보면 됩니다.
다른 사람 때문에 아닙니다.
나 때문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은 보지 못하고 남의 모습만 본다면 그 사람은 죄에서 자유함을 얻지 못합니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보기를 원한다면 다윗처럼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정한 마음, 정직한 영은 있는 그대로 자기를 성찰하는 심령입니다.
♬ 내 모습이대로 주 받아 주소서 낭 위해 돌아 가신 주 날 받아 주소서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의 출발점입니다.
정한 마음 정직한 영은 하나님 앞에서 나를 나로 제대로 볼 수 있게 하고, 하나님의 손길로 씻김을 받을 수 있게 합니다.
성령이 주관하는 정한 마음 정직한 영이 없다면 우리의 죄악은 그대로 남아 있고 아직도 나 그 무엇으로 살아 가려고 할 뿐입니다.
핑계하고 그리고 원망 자신의 그 어떤 조건을 내 세우면서 그렇게 할 것입니다.
여기에 무슨 치유가 있고 기쁨이 있겠습니까
성경은 죄를 나병에다가 비유하기도 합니다.
나병의 특징은 몸이 썩어도 통증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죄는 지어도 죄의 통증이 없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은 죄의 심각성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 자신이 죄인 됨을 발견하면 치유함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난 후에 자신이 죄인임을 알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의 사하심과 치유하심 그리고 그 즐거움에 거하게 됩니다.
다윗은 그 즐거움을 원하고 있습니다.
11-12절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죄가 무서운 것은 이와 같은 구원의 즐거움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면서 항상 즐거울 수는 없다.
삶의 무게로 인한 무기력감, 좌절감, 실패감, 우울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 등으로 인해 즐거움이 사라질 때가 많다.
이게 지옥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악이 성령의 소멸, 구원의 즐거움을 소멸이 성령의 내 속에 부재함 속에서 발생되었다는 것을 깊이 뉘우치고 있습니다.
성령이 없는 사람들은 버려진 자들입니다.
신학적으로 유기된 자들이라고 표현하며, 로마서에서 버림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24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6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8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정욕에 버리고 욕심에 버리고 타락한 대로 버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이 패인이 되는 것 보지요
아주 순간적입니다.
하나님께 버림받는 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다윗의 기도가 얼마나 절박함인지 알 수 있습니다.
11-12절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세상적인 것이 밀려 오면은 참으로 저 나락으로 떨어지는데 감당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 빨리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은 자의 삶의 특징은 기뻐하는 삶입니다.
로마서5:2-3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 세상에서 세상의 조건을 가지고 즐거워 하려고 하면 언제 즐거워 할 수 있겠습니까
평생에 즐거워 할 일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 은혜 아닙니까
이게 죄에서 자유함을 얻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의 특권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기쁨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시편4: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시편16: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편 30:11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시편 65:12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내 마음에 계시는 성령이 나를 주장하니 모두가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기쁨의 근원이 없으면 모두가 슬픔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를 바라보아도 자녀를 바라보아도 우울한 것입니다.
윤복이는 저 하늘에도 슬픔이 라는 말을 하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 아닙니까
다윗은 자신은 분명 죄인이며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야할 존재라는 것을 철저하게 인정했습니다.
그가 진정 기대고 의지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한결같으신 인자하심과 사랑, 긍휼과 자비뿐이라는 것을 인정했던 것입니다.
결국 다윗은 자신의 죄에 대하여 일체의 변명이나 합리화도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명백한 죄인임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했던 것입니다.
죄인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해야 합니까?
아무개가 죄인입니다 라고 해야 합니까?
사실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와 긍휼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나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죄가 많습니다.
사람 앞에 서니 아직도 내가 좀 더 의로운 줄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 삶은 행복이 아니라 괴로움이었습니다.
죄의 속함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만 되어집니다.
하나님께 이것 저것 구하는 것은 많았지만 내 자신을 내어 놓고 성령의 치유하심을 받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나를 참으로 힘들게 했던 나의 죄짐을 다 내려 놓고 가벼움을 얻고 구원의 기쁨을 가져오는 성령 강림절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구원을 받은 자의 삶의 특징은 기뻐하는 삶입니다.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주의 팔이 나를 안보함이요
내가 주의 큰 복을 받는 참된 비결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2. 나와 동행하시고 모든 염려아시니 나는 숲의 새와 같이 기쁘다
내가 기쁜 맘으로 주의 뜻을 행함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오늘은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 주신 성령 강림을 기리는 주일입니다.
본문에 다윗은 성령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11절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왜 성령이 떠나게 됩니까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회개하지 않을 때 성령은 떠납니다.
하나님을 원망할 때 성령은 노합니다.
하나님을 욕할 때 성령은 탄식합니다.
성령은 나와 항상 함께 하는 것인데, 내가 이런 연유로 끝까지 성령을 배반하게 되면 내게서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죄란 흔히 윤리적인 의미에서 생각할 때가 많다.
윤리적으로 사회적으로 다른 이들에게 해를 끼칠 때 이를 죄라고 말한다.
다윗이 저지른 죄는 윤리적이면서 사회적인 죄를 저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하나님께 철저한 회개를 한다.
그 이유는 윤리적이고 사회적인 죄를 저지른 것 또한 불신앙에서 오는 결과이기 때문에 먼저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한다.
그러므로 죄는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는 상태 즉 하나님을 신앙하지 못하는 불신앙 자체가 죄라할 수 있다.
하나님을 떠나 있음으로 인하여 발생됨으로 인해 윤리적이고 사회적인 죄를 저지르게 된다.
다윗 역시 죄를 저질렸습니다.
다윗이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죄를 책망 받았을 때에 이렇게 고백을 하였습니다.
사무엘하12:13상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다윗이 죄가 지적 되었을 때에 자신의 그 어떤 조건으로 변명하거나 피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여자가 대낮에 목욕을 하며 유혹을 하였습니다.
아니 이래뵈도 내가 부하의 아내 하나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최고의 권세를 가진 왕입니다.
이게 속죄의 요소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설령 여자가 유혹을 하였다고 해도
왕으로서 얼마든지 권세로 카바할 수 있어도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죄를 지었습니다.
왜 이 사실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고백이 없을 때에 그 죄가 나 자신의 즐거움을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시32:3-4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죄를 회개한 사람들의 나라이며 교회는 회개의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첫 외침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진실한 신앙인은 회개한 사람입니다.
회개는 믿음입니다.
교인은 많지만 회개하는 신앙인은 많지 않습니다.
죄의 특징은 감출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죄를 고백하라고 하십니다.
고백을 통하여 구원의 기쁨을 회복시키려고 합니다.
반면에 사탄은 죄를 감추라고 합니다.
의인인체 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스스로 의인인체 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죄를 감추고는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고 살수 없고, 죄를 감추고는 천국을 경험하며 살수 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지금도 나를 유혹하길 죄를 감출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죄는 고백하여야 합니다.
죄를 감추기 위해서 하는 수고는 헛수고이다.
그런 수고를 할수록 더 깊은 죄의 수렁으로 빠져들게 된다.
다윗은 간음죄를 감추기 위해서 살인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삶은 행복이 아니라 괴로움이었습니다.
점점 죄악의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 갔습니다.
죄는 감춤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회개함으로 없어진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죄의 속함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만 됩니다.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10절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정한 마음 정직한 영이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에게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합니다.
다윗은 이제 그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울 앞에서 변명하지 않고 흔들림이 없이 자기 자신을 봅니다.
자신의 얼룩진 범죄를 봅니다.
여기에 어떤 핑계도 변명도 없습니다.
3-4절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내 죄가 나를 고발하게 하는 것, 이것이 정한 마음 정직한 영입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죄를 낱낱이 얘기하자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인정합니다.
어떤 변명도 없었습니다.
단지 내가 여호와께 죄를 지었습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말은 죄의 원인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죄의 원인이 그 여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죄의 합리화가 내가 최고의 권력자이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는 자신 속에 도사리고 있는 죄의 뿌리를 보는 것입니다.
5절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울 앞에서 지난 삶의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오염되고 더렵혀진 자신의 삶을 봅니다.
다른 사람의 모습이 아닙니다.
내 모습만 보면 됩니다.
다른 사람 때문에 아닙니다.
나 때문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은 보지 못하고 남의 모습만 본다면 그 사람은 죄에서 자유함을 얻지 못합니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보기를 원한다면 다윗처럼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정한 마음, 정직한 영은 있는 그대로 자기를 성찰하는 심령입니다.
♬ 내 모습이대로 주 받아 주소서 낭 위해 돌아 가신 주 날 받아 주소서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의 출발점입니다.
정한 마음 정직한 영은 하나님 앞에서 나를 나로 제대로 볼 수 있게 하고, 하나님의 손길로 씻김을 받을 수 있게 합니다.
성령이 주관하는 정한 마음 정직한 영이 없다면 우리의 죄악은 그대로 남아 있고 아직도 나 그 무엇으로 살아 가려고 할 뿐입니다.
핑계하고 그리고 원망 자신의 그 어떤 조건을 내 세우면서 그렇게 할 것입니다.
여기에 무슨 치유가 있고 기쁨이 있겠습니까
성경은 죄를 나병에다가 비유하기도 합니다.
나병의 특징은 몸이 썩어도 통증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죄는 지어도 죄의 통증이 없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은 죄의 심각성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 자신이 죄인 됨을 발견하면 치유함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난 후에 자신이 죄인임을 알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의 사하심과 치유하심 그리고 그 즐거움에 거하게 됩니다.
다윗은 그 즐거움을 원하고 있습니다.
11-12절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죄가 무서운 것은 이와 같은 구원의 즐거움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면서 항상 즐거울 수는 없다.
삶의 무게로 인한 무기력감, 좌절감, 실패감, 우울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 등으로 인해 즐거움이 사라질 때가 많다.
이게 지옥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악이 성령의 소멸, 구원의 즐거움을 소멸이 성령의 내 속에 부재함 속에서 발생되었다는 것을 깊이 뉘우치고 있습니다.
성령이 없는 사람들은 버려진 자들입니다.
신학적으로 유기된 자들이라고 표현하며, 로마서에서 버림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1:24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6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8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정욕에 버리고 욕심에 버리고 타락한 대로 버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이 패인이 되는 것 보지요
아주 순간적입니다.
하나님께 버림받는 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다윗의 기도가 얼마나 절박함인지 알 수 있습니다.
11-12절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세상적인 것이 밀려 오면은 참으로 저 나락으로 떨어지는데 감당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 빨리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은 자의 삶의 특징은 기뻐하는 삶입니다.
로마서5:2-3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 세상에서 세상의 조건을 가지고 즐거워 하려고 하면 언제 즐거워 할 수 있겠습니까
평생에 즐거워 할 일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 은혜 아닙니까
이게 죄에서 자유함을 얻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의 특권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기쁨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시편4: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시편16: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편 30:11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시편 65:12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내 마음에 계시는 성령이 나를 주장하니 모두가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기쁨의 근원이 없으면 모두가 슬픔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를 바라보아도 자녀를 바라보아도 우울한 것입니다.
윤복이는 저 하늘에도 슬픔이 라는 말을 하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 아닙니까
다윗은 자신은 분명 죄인이며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야할 존재라는 것을 철저하게 인정했습니다.
그가 진정 기대고 의지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한결같으신 인자하심과 사랑, 긍휼과 자비뿐이라는 것을 인정했던 것입니다.
결국 다윗은 자신의 죄에 대하여 일체의 변명이나 합리화도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명백한 죄인임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했던 것입니다.
죄인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해야 합니까?
아무개가 죄인입니다 라고 해야 합니까?
사실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와 긍휼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나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죄가 많습니다.
사람 앞에 서니 아직도 내가 좀 더 의로운 줄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 삶은 행복이 아니라 괴로움이었습니다.
죄의 속함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만 되어집니다.
하나님께 이것 저것 구하는 것은 많았지만 내 자신을 내어 놓고 성령의 치유하심을 받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나를 참으로 힘들게 했던 나의 죄짐을 다 내려 놓고 가벼움을 얻고 구원의 기쁨을 가져오는 성령 강림절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구원을 받은 자의 삶의 특징은 기뻐하는 삶입니다.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주의 팔이 나를 안보함이요
내가 주의 큰 복을 받는 참된 비결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2. 나와 동행하시고 모든 염려아시니 나는 숲의 새와 같이 기쁘다
내가 기쁜 맘으로 주의 뜻을 행함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