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일체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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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275회 작성일 2017-07-09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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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410-13 삶의 일체의 비결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항상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항상 감사하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나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제일 부유한 사람은 내가 가진 것을 만족하는 사람이라는 명언이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본문의 사도 바울은 세상에서 제일 부유한 사람입니다.
스스로 자족하는 사람입니다
11절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여기서 자족은 많은 수련과 노력이 필요한 교육이 즉 배워야 한다.
통상 모든 이가 생각하는 내 부족함을 채워서 비로소 만족을 가짐이 아니다
인간은 그 근본 마음이 밑 빠진 독과 같아서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자족하는 것이 인간의 본래의 성향이 아니다
최초의 인류가 에덴의 만족을 모르고 탐욕을 부리고 불만을 품으며 원망하는 것이 인간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불만해라 불평하라고 가르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 교육을 받지 않아도 어느새 인간의 본성을 따라서 불평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족함과 자족은 훈련을 통하여 배워야 합니다
배운다는 말은 전에는 자족하는 법을 몰랐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다는 말도 엄격히 말하면 예수를 배워야 합니다.
호세아6:1-3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예수를 모르기 때문에 돌아오지 못하고 안다면 돌아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2:6-8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영어성경에는 비결이 secret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삶의 조건에 상관없이 그리스도로 만족할 수 있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비밀입니다
이 예수는 창세전에 감춰진 비밀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격적인 주님을 만나면 주님과 연합이 이루어지며 주님이 주인이라는 신앙고백이 자연스럽게 나오며 일체의 비결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는 스스럼없이 고백합니다
♬주 없이 살 수 없네 나 혼자 못서리
그런데 이 비결을 배울 수 있음은 삶의 고통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그 위대한 진리의 신비를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배운다는 것은 그저 학습(learning)만 한다든가 훈련은 하지 않고 배우기만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저절로 행사될 수 있는 어떤 능력이 아니라 삶의 훈련을 통하여 얻어지는 것입니다.
이 만큼의 믿음 그냥 생긴 것 아닙니다.
내 삶의 다윗의 고백과 같이 죽음의 골짜기 같은 생활을 통해서 얻어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냥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 아닙니다.
고향 산천을 떠나고 심지어 가족 친지로 헤어짐, 100세에 겨우 얻은 아들까지도 제물로 드려야 하는 그런 여정에서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평탄한 길을 가게만 하지 않습니다.
풍랑 위를 걷도록 풍랑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주님 안에 거할 때 풍랑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내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입니다.
한눈 팔면 물속으로 꼬르륵 들어가 그냥 죽습니다.
세상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들이 어디 한 둘입니까
자족함은 세상에 한눈 팔지 않음입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에 관해서 상황이나 환경, 사람들의 눈치나 시선, 말 등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내 길을 걷겠다는 것입니다.
♬세상 풍조는 나날이 갈리어도 나는 내 믿음 지키리니 인생살다가 죽음이 꿈같으나 오직 내 꿈은 참되리라
♬아무 일을 만나도 예수 의지 합니다
사람들이 만족하지 못하는 공통적인 약점이 남과 비교하는 한 눈을 판다는 것입니다.
사실 나 보다 공부 잘 하고, 돈 많고, 예쁘고, 잘 나가는 사람 있을 수 있지요. 그런데 꼭 그런 사람과 비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나와 비교해서 나를 슬프게 만들기 위하여 있지 않습니다.
물론, 경쟁 대상이라는 관점에서 그로 인해 내가 성장하고 진보하기도 하지만, 그로 인한 유익보다는 비교의식으로 인해 잃어버리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남들 보다 조금 나으면 우쭐대고, 조금 못 하면 좌절하는 여러분 안에 있는 비교의식에서 자유로움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르는 모짜르트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최고의 명성을 떨쳤던 왕궁의 실내 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짜르트의 등장으로 열등감에 시달려 미쳐갑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자살로 추측되는 쓸쓸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살리에르에게 음악적 기질이 오히려 자신을 파멸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만족하였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왕이지만 민족하지 못하고 평생을 불만 속에 살다가 역시 자살로 추측되는 왕이 있는데 누굽니까
사울 왕입니다.
최악의 골리앗을 죽인 다윗을 축복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교의식 가운데 제거해야 할 경쟁자로 생각하고 자신의 모든 정력과 시간을 다윗을 죽이는데 투자하지 않습니까?
비교의식과 열등감이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자족하기를 평생에 배워 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사울에게 쫒기는 다윗은 자족을 삶의 훈련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세상에 그 어떤 것으로도 만족 할 수가 없음을 터득하고 오직 주께 있음을 고백하지 않습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로 하여금 푸른 초장에 눕게 하시니
잔잔한 물가로 잔잔한 물가로 인도 하시도다
진실로 선함과 인자하심이 인자하심이
나의 사는날까지 나를 따르리리
내가 내가 여호와 전에
영원토록 영원토록
영원토록 거하리로다
자족함은 어떤 변화에도 적응을 합니다
12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어떠한 상황(situation)이든 받아들였다.
수용했다
피하지 않았다
신세한탄하지 않았다
변화에 적응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그 상황은 돌발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도 잘 처해서 만족합니다.
추위도 더위도 추위는 추워서 쓸만하고
더위는 더워서 쓸만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글로벌 시대에 극히 지엽적 지방적이었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역시 글로벌 합니다
무슨 음식도 이제는 다 잘 먹지요
어떤 나라에 가서도 그들과 잘 지냅니다.
믿음도 글로벌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시려는 원대하신 계획과 뜻을 알고 믿었기에, 바울은 모든 상황을 훈련의 기회, 성장의 기회, 하나님 전할 기회로 삼았고 만족하고 자유 할 수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풍성한 삶의 비결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린도후서4:8-9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라고 하였습니다
자족은 예수의 능력으로 됩니다.
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왜, 만족을 못합니까?
자신의 실력과 수준만 바라보고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맨날 나는 이 정도 밖에 안 돼, 못 해, 내가 뭘 할 수 있어 부정적인 반응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나와 관계된 것이 모두가 부정으로 가득차면 불행합니다.
내 가정을 볼 때 모두가 부정적인 사람들의 모임입니까
가정이 지옥입니다
만족을 얻기 위한 수단이 내게서만 인간에게서만 조건과 환경에서만 찾으니 울화통이 터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평생 안고 갔던 간질병 혹은 위장병 혹은 안질이라고도 하는 이런 환자입니다.
이 서신을 쓸 때 노인은 그 무시무시한 로마 감옥에서 이 질고로 고생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그가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나 자신을 본 것이 아니라 능히 이기게 하시는 능력 주시는 자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12:9-10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자신은 약한 사람이지만, 오히려 나약함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게 되었고, 결국 내가 아닌 내가 의지하고 붙든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역사하심을 매 순간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약하고 부족하고 모자란 것이 인간입니다
왜 완벽한 체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너무 힘이 듭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부족한 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족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채우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채우려는 것은 율법이요
나를 예수로 채우는 것은 은혜입니다
은혜가 이 부족함이 나를 얼마나 기쁘게 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게 하는지 모릅니다.
바울은 자신의 고통스러움을 해결하기를 그렇게도 원했습니다.
그것이 자신을 굉장히 불편하게 만드는 것으로 초라하게 만들고 소히 쪽 팔리기까지 하는 것으로 여겨 그 가운데서 벗어나는 길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기도도 하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그 약점이 자신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머무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했던 일을 하고, 집을 사고, 승진을 하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 갈수록 자신이 이루어 놓은 것들을 그 상황을 즐기기는커녕 오히려 불편해 했으며, 항상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시달린 답니다.
목표를 달성하고 원하는 것을 갖게 되면 만족하는 것도 잠시, 곧바로 다음 해야 할 일을 찾았고, 그것이 끝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번 좌절 한번 실패를 가져 봐야지 실제로 만족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지금 만족해야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도 만족합니다
지금 만족하기 딱 좋아
만족이 결코 성취나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성품에서 나타나는 낮은 자존감 때문에 끝없이 불만족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자기 존중감이 낮거나 외부에서 인정을 구하고, 칭찬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상처를 받았을 때 만족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고 합니다.
환경여건은 모든 것이 갖추어져 남 보기에는 아주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지만 실질적으로 많은 열등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존감은 사람의 소유와 신분의 고하와 상관이 없이 실력이 없으면 불만에 휩싸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랑은 내 자존감이 죽고 그러면 예수님의 자존감이 사는 것입니다.
나는 내게 능력주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불만에 휘둘리지 않고 궁핍에도 처할 수 있고, 풍요에도 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배고픈 곳도 갈 수 있고, 배부른 곳도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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