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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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230회 작성일 2017-08-1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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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46:1-11 피난처
북한이 미국령 괌 주변 해역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겠다고 위협한 가운데 괌 정부가 주민들에게 비상행동수칙 전단을 배포한 것으로 파악됐다
눈이 멀 수 있으니 섬광이나 폭발로 인한 화염을 절대 보지 말라
일단 방사성 물질에 노출된 의류는 비닐 백에 넣어 버리고, 피부를 긁어서는 안 되며 눈과 코는 물과 비누로 씻어내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기 위해선 제품을 가려 써야 한다고도 권했다.
예를 들어 머리를 감을 때 샴푸를 쓰는 것은 안전하지만, 컨디셔너를 쓸 경우 독성 물질이 엉겨 붙을 수 있어 위험하다는 것이다.
안전한 대피 장소로 벽돌 또는 콘크리트 구조물을 택하도록 했다.
또 비상상황 발생 시 최소 24시간은 대피소에 머무르도록 했다.
폭발이 먼 곳에서 일어났더라도 폭발 파장(blast wave)이 전해지는 데는 채 30초도 걸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도 명기됐다.
미국과 주위 일본 그리고 유럽 연합까지 심지어 호주 뉴질랜드 중국도 이 사실을 배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외교와 국방등 관계자 들은 나름대로 판단을 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겠지요
그런데 사실 바로 코앞에 있는 서울 수도권 주민들은 남의 나라 일인가 하고 있습니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왜 그럴까요
물론 설마 전쟁이 일어나겠나 라는 생각이 지배적 입니다
그런데 더 큰 이유가 잇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도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당하고 그냥 죽어도 서민들은 피 할 방법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지하철로 들어가야 하는데 라면과 물을 들고 들어가야 하는데 ...
피난처가 없습니다.
본시의 배경을 크게 두 가지로 봅니다.
이 두 가지 모두는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지금이나 옛날이나 전쟁의 위협입니다
하나는 모압과 암몬 연합군의 침략 앞에서 하나님을 믿고 찬양대를 앞세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적적인 승리를 거둔 남 유다의 여호사밧 왕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다른 하나는 앗수르의 침략 앞에서 풍전등화에 놓인 남 유다의 히스기야 욍 때 역시 하나님의 역시로 승리를 거둔 때를 배경으로 한다는 사건입니다.
둘 중 어느 것이든지 중요한 것은 여호사밧 왕 때나 히스기야 왕 때 남 유다 왕국의 운명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그 환란과 위기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의 절망적인 상황을 오히려 하나님을 경험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피난처가 있다는 것입니다
1-3절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3.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나 역시 우리 삶이 벼랑 끝에 선 것 같은 상황에 부닥쳐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에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현대인들은 전쟁이 문제가 아니라 너무나 힘든 삶 벼랑 끝 어찌 할 수 없는 생활에 다 지쳐있습니다.
육적인 것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방황하며 갈등을 느끼며 끝장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이 살다가 보면 이럴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피난처를 찾고 있지만 피난처를 찾지 못한데 에 있습니다.
어디에서 누가 나를 이 피곤한 삶 지친 삶에서 쉬게 하고 안식과 위로와 평안을 줄 수 있느냐 입니다
안식 할 수 있는 그 환난을 면하는 피난처가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피난처 이십니다.
하나님이 피난처가 되심은
환난 중에 큰 도움이 되십니다
환난은 근심과 재난을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인생은 환난을 위해 태어났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누구든지 피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고난의 아이콘이라는 욥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욥기14:1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며
출애굽의 명장 모세도 인생을 이렇게 논하였습니다
시편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더욱이 예수님은 인생을 보고 무거운 짐을 진 자로 말했습니다.
마태복음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그리고 방황하는 자로 보았습니다
목자 없는 양같이 유리하고 방황하여 측은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사실 다윗 왕 같은 이도 이런 경험을 하지 않았습니까
귀가 막힐 웅덩이 사망의 골짜기를 다녔다가 하지 않았습니까
사도 바울 역시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인생은 그 누구나 환난은 있다는 말입니다.
나에게만 나만 왜 이렇지 하지 마십시오
문제는 환난이 아니라 그 환난의 피난처가 하나님이 되십니다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자 이리오라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산위에 넘치되 두렵쟎네
이방이 떠들고 나라들 모여서 진동하나
우리 주 목소리 한번 발하시면 천하에 모든것 망하겠네
만유의 주 여호와 우리를 도우시니 피난처요
세상에 난리를 그치게 하시니 세상의 창검이 쓸데 없네
높으신 여호와 우리를 구하니 할렐루야
괴롬이 심하고 환난이 극하나 피난처 있으니 여호와요
하나님이 피난처 되심은 함께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7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환난이 힘든 원인 중에 큰 원인은 함께 해 줄자가 없다는 어려움입니다.
대화하고 정보를 교환하고 진정으로 말 할 수 있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현대인은 내 마음을 다 말 할 수 있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말해도 다른 이에게 짐이 되고 말 안한 것보다 나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 대신 해 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내가 고스란히 다 져야 하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끙끙 앓고 잇다는 것입니다
소히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천로역정이라는 유명한 책을 쓴 존 번연은 영국 베드포드 부근의 엘스토우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부모는 가난한 무학자였는데 번연이 17세에 입대하기까지 대장간 일을 도왔다.
그는 철저한 무신론자였으나 군에서 제대한 후에 1647년 독실한 기독 여성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녀의 기도와 전도로 번연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다.
1655년 그 해 네 자녀를 둔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번연은 슬픔을 딛고 교회의 집사로 안수 받고 말씀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는데 많은 사람이 그의 말씀을 듣고 구원 얻는 역사가 일어났다.
1660년 왕정이 복구되어 복음적인 설교를 금하는 법령이 발령되었지만 샴셀의 농장에서 설교하다가 체포되어 12년간 옥고를 치러야 했다.
그의 자녀들도 졸지에 고아가 되어 생계를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런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번연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피난처 삼았습니다.
하나님, 전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제가 주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만약 제가 여기서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저는 절망하지 않겠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번연의 마음에 감동을 주셨습니다.
너는 글을 쓰거라, 나는 너에게 글을 쓸 수 있는 달란트를 주었노라.
엎드려 기도하는 중에 이런 환상을 보였습니다.
주님의 나라를 향하여 걸어가는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던 것입니다.
그의 그 옥중의 12년이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환난을 당할 때는 혼자가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환난은 있지만 이 환란이 절망으로 몰아넣지만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님은 함께 계시며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라는 세 청년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게 되고, 믿음의 절개를 지키다가 풀무불 속에 던짐을 받는 환난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그들만 있지 아니하고, 불속에 누군가가 함께 있어서, 네 사람이 보였다는 것입니다.
다니엘3:24-27 그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하니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옳소이다 하더라
25.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26. 느부갓네살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가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에서 나온지라
27.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스테반 집사는 돌에 맞는 그 순간에도 그는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보았다고 합니다.
사도행전7:54-60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환난가운데 거기 계셨습니다
♬하나님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오 신실하신주 오 신실하신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이제 환난의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면 됩니다
10절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환난은 하나님을 체험하는 좋은 기회인 것입니다.
환난은 나로 하여금 무기력한 존재임을 알려주면서, 반면에 오직 하나님으로 새힘을 얻고 살아가게 합니다
너 자신감 어디서 나와 하나님이 내 자신감이야
마르틴 루터가 쓴 내 주는 강한 성이요라는 가사의 배경은 시편 46편 본문이었습니다.
그는 결코 강 할 수가 없었습니다.
1529년 로마공교회에 대한 이단자라는 심판을 받기 위해 웜스 의회에 올라갈 때에 많은 지인들이 올라가면 순교당할 것이라고 만류했지만 루터는 목숨을 걸고 올라갔습니다.
루터는 웜스에 모여드는 악마의 수가 그곳의 기왓장만큼 많을지라도 나는 갈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웜스 의회에서 루터가 말하고 저술한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공민권을 박탈하여 보호를 받을 수 없을 것이라 위협했을 때 루터는 성경과 자기 양심으로 주장한 것을 포기할 수 없다고 단호히 말하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Here I st. God help me!라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이 자신감 이 용기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이 이었습니다.
토마스 카라일(Thomas Carlyle)은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영어로 번역하면서 이 감격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 찬송은 알프스 산의 눈사태 치는 소리나 가까와 오는 지진 소리와 같다고 격찬했습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때도 힘을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2.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수 밖에 없도다
힘 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3.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나라 영원하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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