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로 돌아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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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258회 작성일 2017-10-01 07:21본문
사도행전 14:8-18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나면서부터 발을 쓰지 못하는 걸어 본적이 없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일어나 걸었다고 합니다.
10절 네 발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걸었다고 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기적이 일어났으니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그래서 소를 잡고 꽃으로 장식하고 바울과 바나바에게 제사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신이 사람의 형상을 입고 강림하였다고 하며 제사를 드리려고 한 것입니다.
거기가 지금 터키 그리스 지역입니다.
그들의 그리스로마 신화 속 최고의 신인 제우스신이 내려왔다 하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의 아들 웅변의 신. 헤르메스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의 배경이 된 루스드라는 B.C 6년경에 로마 식민지로 흡수되었고 로마황제 아우구스도는 이곳으로 직업군인들과 그 가족들을 이주시켜 로마의 변방도시로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지배계층은 로마의 직업군인들이었고 원주민 루가오니아인들은 자기네 언어를 사용했지만 대부분이 교육을 받지 못한 자들이었다고 합니다.
이곳의 교육이나 상업의 주도권은 소수의 헬라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말씀 내용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루스드라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래전에 루스드라에 쓰스와 허메라는 신이 내려왔는데 마을사람들이 그 신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예배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노하여 루스드라를 멸망시켰다는 것입니다.
지금 자신들이 잘 살지 못한다는 그런 의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바울과 바나바가 나타나 앉은뱅이였던 사람을 고치게 되자 쓰스와 허메가 강림한 것이 아닐까 하여 야단이 난 것입니다.
11-13절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12.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13.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루스드라 사람들이 너무 충격을 받아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당시 바울은 헬라어로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로 살던 이 사람이 갑자기 일어서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니까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놀라서 충격을 받은 상태에서 자신들도 모르게 지방 방언이 뛰어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심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에게 제사를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이 때에 바울은 옷을 찢으면서 하나님을 소개 했습니다
14-15절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15.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옷을 찢은 의미는 회개를 뜻합니다
우상 숭배의 헛된 일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였습니다
헛된 일을 하는 것만큼 후회가 되는 것이 없습니다 헛된 일 즉 우상 숭배가 무엇입니까
그 사람의 삶 속에 하나님을 인지하지 못하는 삶은 헛된 삶이 됩니다
일찍이 솔로몬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1-2절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헛된 인생살이를 하게 됩니다.
어거스틴은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향해서 살도록 창조하셨으므로 내 마음이 주님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는 편안하지 않습니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향해서 예배 하면서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사는 삶은 방황하고 혼돈되는 인생살이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로마서1:18-23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본인은 지혜 있고 똑똑한 척 하지만 그가 선택하고 행동함에 하는 인생을 보면 어리석기 짝이 없고 허탄하고 허무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지하는 삶이 될 때에 인생을 잘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인생의 방향과 목적이 분명한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살아갈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음으로 삶에 가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왜 우상숭배를 하게 됩니까
근본적으로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에 두려움에 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참으로 두려운 세상입니다.
방향과 목적을 없으면 자신감이 없어지고, 참으로 두려움에 빠집니다.
이성적인 판단도 어렵게 되고, 따라서 합리성도 잃어버리게 되고 두려움에 빠집니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하고는 그 두려움을 가지고 가는 곳이 우선 의지할 곳을 찾아가게 되는데 그것이 우상입니다.
그 우상으로 자신들이 만족을 얻으려고 합니다.
인간의 능력은 한계가 있고 내가 이루려는 소원은 가능성이 없고 무슨 말만 들어도 솔깃해지는 것입니다.
인생의 삶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8-10절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9.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0.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믿음이 구원의 조건이지 인간의 그 어떠한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우상이 해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설교를 한 앉은뱅이가 굉장히 진지한 모습으로 말씀을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설교를 하다 보면 어떤 사람은 말씀이 쏙쏙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또 어떤 사람은 건성으로 듣고 있구나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말씀이 팅겨 나가고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마치 어떤 이는 그 마음이 길바닥 같고 어떤 이는 돌짝밭, 가시 밭같지만 어떤 이는 잘 받아 감당하여 100배 결실을 가져 오는 옥토 밭이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이지만 그러나 일어 설 수 있는 믿음이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나 역시 근본적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나를 날마다 내 삶의 현장에서 일어서게 하십니다. 할렐루야!
그 믿음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네 발로 일어서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그 즉시 벌떡 일어서더니 걷기도 하고 너무 좋아서 뛰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일상의 생활을 통하여 그의 존재하심과 능력을 보여 주십니다.
16-17절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17. 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특히 자연의 결실기를 통하여 하나님을 보여주십니다
믿음으로 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연이란 본래 저절로 생겨나서 저절로 생기고 저절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번 추석절 대단합니다.
10일간을 지낸다고 하니 이 기쁨의 결실이 조상에게 감사 할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 할 일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창세기1:1, 3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그리고 사람까지도 하나님이 만들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었습니다.
26-30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여러분은 컴퓨터를 만들 수 있나요? 아마 만드신 분도 계시겠지요.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이 만들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저절로 생긴 것이라고 고집한다면 어떨까요? 여러분은 웃으실 것입니다.
지금의 사람이 살고 있는 지구의 구조나 지구상에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많은 조건들 중에 몇 가지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지구는 정확하게 생명이 존재 할 수 있도록 적당한 공간과 거리와 속도와 무게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구는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무지 무지한 속도를 내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루에 한 바퀴씩 돌아가는 자전 시속 약1,670km과 일 년에 해를 중심축으로 해서 한 바퀴 도는 공전 시속 약108,000km을 계속하는데 이 구간을 라이프존 즉 생명선이라고 합니다.
만약에 이 생명선 구간을 벗어나게 된다면 지구상에 생명체는 순식간에 다 멸종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태양과 지구의 거리가 조금만 가까워진다면 극지방에 있는 얼음이 없어지고 다 타죽게 될 것이며 조금만 멀어진다면 추워서 다 얼어 죽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를 생각하면 이 거리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태양도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태양을 따라서 움직이는 지구는 그 거리를 유지하기가 더 어려울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태양계 안에 이 질서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무사고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과연 저절로 일까요?
성경은 하나님이 만드신 제품 설명서라고 하였지요
지금부터 약3,000년 전에 다윗 왕을 통하여
시119:91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라고 하셨고,
약3,500년 전에 욥을 통하여
욥38:4-6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5.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6. 그것의 주추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냐 라고 물으셨습니다.
지구가 23.5도 기울여 있는 것을 아십니까?
만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온 우주가 질서 있게 움직이게 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이것만 봐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말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우연히 라는 말은 해서는 안 되지요
그러면 여러분도 우연히 태어 낳고 우연히 살다가 우연히 죽습니까?
사람도 하나님이 만드셨기 때문에 사람의 제품 설명도 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우상을 섬기고 사는 것을 내버려두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옳기 때문에 내버려 두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하나님께서 오래 동안 참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야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적극적으로 온 세상 사람들을 불러서 예수님께로 나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가 예수님을 통해서 다 해결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이라면 살아 있기는 하지만 사실은 죽은 자와 방불한 것입니다.
솔직히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살기 위하여 사는 삶이 아니라 죽음을 향하여 가는 삶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로마서14:7-8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는 것이로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을 인식 할 때에 진정한 삶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이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양식으로 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인생의 일용 할 양식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또 다시 성경은 하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을 만족케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이 나의 삶이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자기의 생명을 지키려 해도 하나님의 섭리를 벗어날 수 없고 하잖은 참새의 생명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유한한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무한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생명의 길입니다
이번 추석에 또 허무하고 아무런 능력도 힘도 없는 사람의 생각으로 불신의 자리로 돌아가지 마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축복의 삶을 사는 기회가 꼭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면서부터 발을 쓰지 못하는 걸어 본적이 없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일어나 걸었다고 합니다.
10절 네 발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걸었다고 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기적이 일어났으니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그래서 소를 잡고 꽃으로 장식하고 바울과 바나바에게 제사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신이 사람의 형상을 입고 강림하였다고 하며 제사를 드리려고 한 것입니다.
거기가 지금 터키 그리스 지역입니다.
그들의 그리스로마 신화 속 최고의 신인 제우스신이 내려왔다 하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의 아들 웅변의 신. 헤르메스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의 배경이 된 루스드라는 B.C 6년경에 로마 식민지로 흡수되었고 로마황제 아우구스도는 이곳으로 직업군인들과 그 가족들을 이주시켜 로마의 변방도시로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지배계층은 로마의 직업군인들이었고 원주민 루가오니아인들은 자기네 언어를 사용했지만 대부분이 교육을 받지 못한 자들이었다고 합니다.
이곳의 교육이나 상업의 주도권은 소수의 헬라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말씀 내용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루스드라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래전에 루스드라에 쓰스와 허메라는 신이 내려왔는데 마을사람들이 그 신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예배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노하여 루스드라를 멸망시켰다는 것입니다.
지금 자신들이 잘 살지 못한다는 그런 의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바울과 바나바가 나타나 앉은뱅이였던 사람을 고치게 되자 쓰스와 허메가 강림한 것이 아닐까 하여 야단이 난 것입니다.
11-13절 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12.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13.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루스드라 사람들이 너무 충격을 받아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당시 바울은 헬라어로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로 살던 이 사람이 갑자기 일어서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니까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놀라서 충격을 받은 상태에서 자신들도 모르게 지방 방언이 뛰어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심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에게 제사를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이 때에 바울은 옷을 찢으면서 하나님을 소개 했습니다
14-15절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15.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옷을 찢은 의미는 회개를 뜻합니다
우상 숭배의 헛된 일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였습니다
헛된 일을 하는 것만큼 후회가 되는 것이 없습니다 헛된 일 즉 우상 숭배가 무엇입니까
그 사람의 삶 속에 하나님을 인지하지 못하는 삶은 헛된 삶이 됩니다
일찍이 솔로몬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1-2절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헛된 인생살이를 하게 됩니다.
어거스틴은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향해서 살도록 창조하셨으므로 내 마음이 주님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는 편안하지 않습니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향해서 예배 하면서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사는 삶은 방황하고 혼돈되는 인생살이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로마서1:18-23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본인은 지혜 있고 똑똑한 척 하지만 그가 선택하고 행동함에 하는 인생을 보면 어리석기 짝이 없고 허탄하고 허무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지하는 삶이 될 때에 인생을 잘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인생의 방향과 목적이 분명한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살아갈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음으로 삶에 가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왜 우상숭배를 하게 됩니까
근본적으로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에 두려움에 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참으로 두려운 세상입니다.
방향과 목적을 없으면 자신감이 없어지고, 참으로 두려움에 빠집니다.
이성적인 판단도 어렵게 되고, 따라서 합리성도 잃어버리게 되고 두려움에 빠집니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하고는 그 두려움을 가지고 가는 곳이 우선 의지할 곳을 찾아가게 되는데 그것이 우상입니다.
그 우상으로 자신들이 만족을 얻으려고 합니다.
인간의 능력은 한계가 있고 내가 이루려는 소원은 가능성이 없고 무슨 말만 들어도 솔깃해지는 것입니다.
인생의 삶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8-10절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9.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0.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믿음이 구원의 조건이지 인간의 그 어떠한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우상이 해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설교를 한 앉은뱅이가 굉장히 진지한 모습으로 말씀을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설교를 하다 보면 어떤 사람은 말씀이 쏙쏙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또 어떤 사람은 건성으로 듣고 있구나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말씀이 팅겨 나가고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마치 어떤 이는 그 마음이 길바닥 같고 어떤 이는 돌짝밭, 가시 밭같지만 어떤 이는 잘 받아 감당하여 100배 결실을 가져 오는 옥토 밭이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이지만 그러나 일어 설 수 있는 믿음이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나 역시 근본적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나를 날마다 내 삶의 현장에서 일어서게 하십니다. 할렐루야!
그 믿음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네 발로 일어서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그 즉시 벌떡 일어서더니 걷기도 하고 너무 좋아서 뛰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일상의 생활을 통하여 그의 존재하심과 능력을 보여 주십니다.
16-17절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17. 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특히 자연의 결실기를 통하여 하나님을 보여주십니다
믿음으로 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연이란 본래 저절로 생겨나서 저절로 생기고 저절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번 추석절 대단합니다.
10일간을 지낸다고 하니 이 기쁨의 결실이 조상에게 감사 할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 할 일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창세기1:1, 3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그리고 사람까지도 하나님이 만들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었습니다.
26-30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여러분은 컴퓨터를 만들 수 있나요? 아마 만드신 분도 계시겠지요.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이 만들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저절로 생긴 것이라고 고집한다면 어떨까요? 여러분은 웃으실 것입니다.
지금의 사람이 살고 있는 지구의 구조나 지구상에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많은 조건들 중에 몇 가지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지구는 정확하게 생명이 존재 할 수 있도록 적당한 공간과 거리와 속도와 무게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구는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무지 무지한 속도를 내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루에 한 바퀴씩 돌아가는 자전 시속 약1,670km과 일 년에 해를 중심축으로 해서 한 바퀴 도는 공전 시속 약108,000km을 계속하는데 이 구간을 라이프존 즉 생명선이라고 합니다.
만약에 이 생명선 구간을 벗어나게 된다면 지구상에 생명체는 순식간에 다 멸종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태양과 지구의 거리가 조금만 가까워진다면 극지방에 있는 얼음이 없어지고 다 타죽게 될 것이며 조금만 멀어진다면 추워서 다 얼어 죽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를 생각하면 이 거리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태양도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태양을 따라서 움직이는 지구는 그 거리를 유지하기가 더 어려울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태양계 안에 이 질서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무사고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과연 저절로 일까요?
성경은 하나님이 만드신 제품 설명서라고 하였지요
지금부터 약3,000년 전에 다윗 왕을 통하여
시119:91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라고 하셨고,
약3,500년 전에 욥을 통하여
욥38:4-6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5.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6. 그것의 주추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냐 라고 물으셨습니다.
지구가 23.5도 기울여 있는 것을 아십니까?
만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온 우주가 질서 있게 움직이게 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이것만 봐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말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우연히 라는 말은 해서는 안 되지요
그러면 여러분도 우연히 태어 낳고 우연히 살다가 우연히 죽습니까?
사람도 하나님이 만드셨기 때문에 사람의 제품 설명도 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우상을 섬기고 사는 것을 내버려두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옳기 때문에 내버려 두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하나님께서 오래 동안 참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야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적극적으로 온 세상 사람들을 불러서 예수님께로 나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가 예수님을 통해서 다 해결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이라면 살아 있기는 하지만 사실은 죽은 자와 방불한 것입니다.
솔직히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살기 위하여 사는 삶이 아니라 죽음을 향하여 가는 삶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로마서14:7-8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는 것이로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을 인식 할 때에 진정한 삶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이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양식으로 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인생의 일용 할 양식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또 다시 성경은 하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을 만족케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이 나의 삶이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자기의 생명을 지키려 해도 하나님의 섭리를 벗어날 수 없고 하잖은 참새의 생명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유한한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무한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생명의 길입니다
이번 추석에 또 허무하고 아무런 능력도 힘도 없는 사람의 생각으로 불신의 자리로 돌아가지 마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축복의 삶을 사는 기회가 꼭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