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들어 바라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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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265회 작성일 2017-10-08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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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13:14-18 눈을 들어 바라보라
1867년 미국은 구소련 땅, 미국 본토의 1/5이 넘는 엄청나게 넓은 땅 알래스카를 720만 달러를 주고 샀습니다.
그 땅은 거대한 얼음덩어리로 쓸모없는 땅처럼 보였습니다.
그 땅을 당시 미국 국무부장관 윌리엄 수어드는 상원의원들을 설득했습니다.
여러분, 나는 눈 덮인 알래스카를 보고 그 땅을 사자는 것이 아니고 그 안에 감추어 있는 무한한 자원을 바라보고 사자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 세대를 위해서 그 땅을 사자는 것이 아니고 다음 세대를 위해서 그 땅을 사자는 것입니다.
미국은 알래스카를 산 지 30년이 지난 후인 1897년 알래스카에서 금광이 발견되었습니다.
1968년 에는 알래스카에서 대형 유전이 발견되고 그 외 많은 광물 자원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수자원 그리고 교통의 요지, 관광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소 냉전체제가 시작되자, 구소련 코앞의 알래스카에는 소련을 향한 공격 및 방어용 미사일이 배치되었습니다.
군사적 전술적으로도 미국을 방위하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본문의 아브라함은 자신의 자식같이 여겼던 조카 롯이 좋은 환경과 여건을 찾아 떠나갔습니다.
남은 것은 주위의 산지뿐입니다.
좋은 목초지를 주었으니 목축을 어떻게 이어가나 염려가 되었습니다.
당장 환경을 바라볼 때 생기는 것은 걱정 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눈앞에 주어진 환경에 압도당하는 주변만을 보고 사는 존재입니다.
누가 인생을 한 70년 가까이 살아 보고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인생을 먼저 살아본 선배들의 조언을 들었으면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오지 않았을 것인데 살아 와 보니 별 것 아닌데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 버렸다는 푸념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듣던 나도 아 그렀겠구나 하는 동감을 가지게 됩니다.
이런 환경에 놓인 이때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 나타나셨습니다.
아니 아브라함은 지금까지 자신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을 기대하고 있었다고 해도 좋을 듯합니다.
그러니 그의 귀에는 세상의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14절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눈을 들어 바라보라라는 말씀을 하심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심이었습니다.
눈을 들어 바라보라고 하심은 하나님의 시야를 가져 보라는 말씀입니다.
내게 주어진 세상을 사람의 시선으로만 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야를 보게 하십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모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소중한 것을 잃거나 기대가 무너지면 낙심이 되고 소심해집니다.
계시록을 기록한 사도요한이 나이 80세가 되었을 때에 잡혀서 로마 제국의 정치범들을 가두는 밧모 섬에 유배 되어 눈만 뜨면 돌을 깎고 옮기는 중노동의 생활이었습니다.
그때 그의 생각이 주어진 환경에 자신의 삶에 메이었다면 그 장소는 죽음의 장소, 내 모든 인생을 이렇게 끝이 나는구나 라는 생각에 지배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때에 새로운 비전을 하나님이 주심을 들었습니다.
요한계시록1:1-2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보고 들은 것을 책에 써서 일곱 교회에게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열악한 지옥 같은 환경에서 천국을 보게 된 것입니다.
더 이상 밧모 섬은 지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세계를 그 곳에서만 분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흥분과 긴장으로 지내다 석방되어 요한계시록을 쓰게 된 것입니다.
자칫하면 눈에 보이는 대로 거기에 묶여 살기 쉽습니다.
평생을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극히 인간적으로만 보이는 대로 살아가는 어리석음을 청산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인간적인 조건들을 선택하고 있음으로 인하여 당장은 축복을 받은 것 같지만 멀지 않아 축복이 아니라 멸망의 조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 볼 때에 동서남북 어디든지 사람의 조건으로는 합당치 아니하였지만 그 곳이 축복의 땅이었습니다.
성도들의 축복이 동서사방에 어디에 있습니까 한번 둘러보십시오
하나님이 주시는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어떤 시각으로 현실을 바라보는가?
거기에 따라 어떤 사람은 평안을 소유하며 어떤 사람은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실패를 보고 어떤 사람은 승리를 보게 됩니다
눈을 들어 바라보라고 하심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15-16절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이 말씀은 이미 아브라함을 처음으로 부르실 적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창세기12:1-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조카 롯도 바라보았고 아브라함도 바라보았습니다.
두 사람 다 자신들이 바라본 것을 얻었지만 말씀따라 바라본 사람과 말씀없이 욕심으로 바라본 결과는 정 반대였습니다.
롯이 얻은 소돔은 인간의 정욕과 욕심과 이해타산으로 바라보니 축복인 줄 알았는데 재앙이 되었습니다.
말씀을 따라 바라본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 같았지만 모든 것을 얻은 자가 되었습니다.
화 인줄 알았는데 복이 되었습니다.
그의 마음이 약속의 말씀으로 시원해 졌습니다.
현실이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달라진 것은 아브라함의 마음입니다.
믿음은 말씀을 붙잡고 현재를 일어서는 것입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현실에서 주신 말씀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에게도 가나안 땅을 너와 너의 후손에게 주리라 하셨기 때문에 그는 그 땅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환경을 넘어 말씀을 바라볼 때입니다.
그래야 환경의 장벽을 넘을 수 있습니다.
눈을 들어 바라보라고 하심은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 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해 갈 때 광야에서 하나님을 반역하며 범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 죄에 대해서 심판을 내리셨는데 즉 진 중에 불뱀을 보내서 그 뱀들이 사람을 물어 죽게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뱀에게 물려 죽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그들이 구원받을 길을 예비하사 모세로 하여금 구리 뱀을 만들어서 장대에 매달아 그것을 바라보는 자마다 죽음의 심판에서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뱀에게 물려 죽어가던 사람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와서 그 구리뱀을 바라봄으로써 즉시 치료받고 나음을 얻었습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는 신령한 눈을 가진 사람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바라봄은 믿음입니다.
요한복음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고 세상과 자신만을 바라봅니다.
자신의 의로움과 선함을 주장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의롭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의는 하나님 앞에 의로울 수가 없습니다.
갈라디아서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우리의 눈에 보이는 세계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까지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영적인 세계가 실제로 존재합니다.
보이는 것은 사람이 하는 것 같고 보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영적 세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영안이 열려 하나님의 보좌에 게시는 영광을 보았습니다.
이사야6:1-3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초대교회 첫 순교자인 스데반 집사도 돌에 맞아 순교할 때 영안이 열려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사도행전7:55-56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이렇게 성경이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영안이 더 중요합니다.
영안은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삶이 역전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화라도 믿음으로 받아 드린다면 복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이든지 인간적으로 받아 드리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무엇이든지 믿음으로 하게 해 주세요 해야 합니다.
삶이 힘들 수록 인간적으로 하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힘들 수록 어려울수록 안 될수록 더욱 믿음이 필요합니다.
로마서4:18-21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올 한해 남은 시간은 이제 믿음으로 행 할 일만 있습니다. 아멘!
그렇지만 그 상황에서 이것저것 논하지 말고 믿음이 요구가 되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복입니다. 어디 있든지 가든지 복입니다.
내가 복입니다. 내 믿음이 복입니다.
창세기12: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세상을 비관하지 마십시오.
문제는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고든 맥도날드는 당신의 무너진 세계를 재건하리라는 책에서 이런 감동 깊은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래전에 영국의 어떤 목장지대의 시골마을에서 청년 두 사람이 절도하다 붙잡혔다고 합니다. 그래서 재판을 받아서 몇 년간의 감옥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4년 정도의 교도소생활을 하고 나오게 되면서 법원에서 다시는 절도행각을 하지 말라는 의미로 S자 문신을 새겨주었다고 합니다. 이 S자가 의미하는 것은 Stealing 즉 도둑질했다는 뜻입니다. 이 사람이 도둑이기에 사람들이 조심하도록 다시는 도둑질을 못하도록 S자를 새긴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한사람은 나는 이런 낙인을 받고 여기서 살 수가 없다면서 하늘을 원망하고 사회를 원망하고 그 마을에서 떠나가고 다시는 그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또 한사람은 그 낙인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벌이 마땅하다 나는 여기서 반드시 재기하겠다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하나님 앞에서 결심했다 고합니다. 그는 열심히 착하게 살면서 주위의 이웃들을 도왔습니다. 사람들은 서서히 그 사람의 과거를 잊어버리기 시작했습니다.
문신은 남아있었지만 사람들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한참 흘러가서 어느 날 이 분이 길에 지나가는데 어린 소년 두 사람이 지나가는 이 사람을 붙들고 보면서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저기 우리가 좋아하는 할아버지가 지나간다. 그런데 너 저 할아버지 이마에 있는 S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니? 이 때 옆에 있는 꼬마가 이런 대답을 하였습니다. 나는 그 S자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할아버지로 미루어봐서 저 S자는 SAINT(성자)의 아마 첫 번째 글자일거야 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이 청년은 자신의 생의 과정을 통해 완벽한 회복을 이룬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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