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주가 나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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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258회 작성일 2017-12-17 07:26본문
누가복음2:8-14 구주가 나셨으니
요사이 71년 만에 12월에 한강이 어는 추위가 찾아 왔다고 합니다
올해 무슨 재미가 있었습니까 아니면 무슨 재미있을 좋은 기대가 있습니까
올해는 유독히 우리나라는 전쟁의 불안감을 떨쳐 버리기 어려운 두려움이 있습니다.
가까이로는 오는 월요일 18일 전쟁이야기가 외국 군수업자들 사이에 있다고 합니다.
또한 아니면 3개월 안에 전쟁이 일어 날 가능성을 현재의 분위기로 점치기도 합니다
육이오 전쟁후 70년 만에 강추위가 찾아오듯이 또 다시 대한민국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 갈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일찍 자는 버릇이 잇습니다.
새벽기도에 일어 날 때에 피곤하지 않기 위함이 이유이기도 하나
또 하나는 오늘 하루를 무사히 잘 보냈으니
내일에 더 좋은 무엇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빨리 마무리 짓습니다.
하여튼 이렇게 역사는 흘러갑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한 해를 보내는 마음이 매우 초조합니다.
소히 한 것도 없는데 또 한해가 가내입니다
그러나 저는 얼마 전부터 세월을 보내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더 이상 가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나마 보내게 되어 스스로 대견하고 감사 할 뿐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음은 무엇인가 보상감과 기대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주를 믿는 믿음에서 오는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모든 것을 내 중심적으로 내 실력 내 능력 내 형편과 사정으로만 내 생각만으로 논하였던 삶을 하나님으로 이관되어 살아가는 법을 예수께로부터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좋으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나의 삶의 현장에 오셔서 나와 이 시간에도 함께 동고동락을 하십니다
그 주님을 의지합니다
역사 속으로 오신 주님은 2000년 전에 유대 땅에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탄생하셨습니다.
그 어머니 마리아는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였습니다.
당시의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토의 명을 받아 호적하러 길을 떠났습니다.
거의 출산이 가까운 마리아는 나귀를 타고 이 먼 거리를 여행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입니까?
그래도 가야했습니다.
이것이 그 시대에 주어진 식민지 백성들의 설움이였습니다.
추운겨울에 태아와 산모의 건강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고향으로 가야 하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슬프고 고통스러운 사건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왜 이렇게 어렵게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으로 이동해야 했을까요?
구약의 선지자 미가는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것을 이미 700년 전에 예언했습니다.
미가는 앗시라아에게 위협받고 있는 유대백성들을 격려하기 위해 베들레헴에서 메시야가 탄생할 것을 예언했습니다.
미가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하나님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을 예수 탄생 700년 전에 벌써 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 탄생이 가까운 때에 마리아는 나사렛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가능성은 거의 희박했습니다.
산달이 다 된 산모가 그 추운 겨울에 200킬로를 여행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였습니다.
누가 그런 위험한 일을 시도라도 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그 무시무시한 로마의 황제 가이사의 호적명령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저 북쪽의 김씨 같이 무서웠는지도 모릅니다
육신적으로만 보면 식민지 백성들의 힘없는 슬픈 삶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역사는 아니 나의 모든 인생의 삶을 하나님의 주관하심에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세상 권력자들이 자기 유익을 따라 이 세상을 주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모든 세상 역사의 이면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가 역사하고 계신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4대 강국의 구도 속에 약소국의 처지로 매우 불안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말합니다. 미국에 패싱 왕따 당하였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중국은 아직도 역사적인 소국으로 지방의 한 자치주 정도로 여겨 업신여기는 감을 주고 있습니다
일본은 우습게 보는 것 같습니다.
러시아는 기회를 보고 한 몫을 보려고 합니다
어디다가 한국의 장래를 기대 하겠습니까
국내 정치는 역사이래로 최고로 흑백을 가리는 것 같은 모습으로 흉융합니다
우리가 세상역사와 주위의 환경을 그냥 인간적인 눈으로 보아서는 기대치가 없습니다.
그 이면에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봐야 합니다.
곧 구주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그러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는 좋은 소식이요 기쁨이십니다.
하나님의 유일한 뜻은 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3:16-17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고생 끝에 요셉과 마리아는 베들레헴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왔기 때문에 빈방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문을 두드릴 때 마다 만원사레라고 외칩니다.
모두가 산모에게 방하나 내어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모두가 자신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작은 선이라도 베풀 여력이 없었습니다.
식민지의 삶에 익숙해 졌기 때문입니다.
민심이 흉융해져 있습니다.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숩니다.
예수님이 오셨다는데 영접하라고 하는데
이처럼 예수님은 자기 땅에 오매 아무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말구유에서 태어나셔야 했습니다.
이 시간에도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오셨음에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더욱이 영접하지 않습니다.
아예 관심이 없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조건을 말하면서 나의 삶에 충실하고 바쁘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문을 꼭 닫고 자기 중심적은 삶을 살아갑니다.
계시록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예수 자체가 기쁨이요 좋은 소식입니다.
목동들에게 일어 줄 기쁨과 좋은 소식의 요지가 무엇입니까
10-11절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삶이 왜 힘든지 아십니까 ?
왜 우리에게 이런 저런 아픔과 슬픔이 많이 있는 줄 아십니까 ?
바로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여기서 죄는 윤리적, 도덕적 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분리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나 사는 그 자체가 죽음입니다.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난 것이 가난입니다.
구원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난 것이 멸망입니다.
능력이신 하나님을 떠난 것이 무능력과 절망입니다.
진리이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윤리 도덕적인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없는 삶이 바로 죄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난 그 죄가 나로 하여금 고통스럽게 살아가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이 죄인을 하나님께로 이끌 수 있습니까
오직 예수 이십니다.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 할자 예수 이십니다.
이 예수가 구주로 오셨으니 보통 기쁨이 아니고 큰 기쁨이요
이것보다 더 좋은 소식이 어디 있습니까
이제 죄짐을 내가 지고 더 이싱 살아가지 마십시오
내 죄 짐은 내가 질 수가 없습니다
죄짐 보따리에 내가 깔려 죽습니다.
예수님이 지십니다
내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죄입니다
내 인생을 내가 책임질 수 있다는 거짓된 생각에 속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아십니다.
요한복음15:1-7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우리가 우리 인생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 날 때 선택해서 태어 났습니까
엄마 아빠 정했어요 출생 날짜를 택했어요 남녀 성별을 했어요 대한민국 전라도 경상도 정했어요
그냥 선택 받았습니다.
구원에 대해서 사람들은 말합니다.
왜 구원을 하나님이 마음대로 선택한다고 불만인데
구원만 아니고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 있습니다
나의 장래도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 밤에 자려고 하는데 대구 칠곡에서 목회하는 친구 목사님에게서 문자가 왔어요
안부 인사가 하고 보는데 그 내용을 보낸 사람은 친구가 아니라 그 친구의 아들이었습니다.
내용은 친구가 소천 하였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도 추운 날씨에 하나님이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마치 내가 세상일을 다 아는 것 같고 다 하는 것 같은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죄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살 수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 대신 살아주시기 위해 오신 것이 복음이요 은혜인 것입니다.
가만히 내 문제를 주께 맡기십시오
주님이 그 문제의 구원이 되십니다.
그리고 주님이 길을 내십니다
예수 없이 내 행위로 사니 힘든 것입니다.
예수없이 내 노력으로 사니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이제 이 모든 인생 짐을 우리의 주인 예수님께 맡겨드립시다.
목자들은 천사의 임재 시에 그들에게 찾아온 감정은 두려움입니다.
유추해 보면 삶 자체가 매우 불안한 두려움의 연속이었고 참으로 기쁨을 주는 좋은 경험을 해 보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려워 말라 좋은 소식이야 기쁨이야 할렐루야!
그 당시 목동들은 누구일까요?
가장 천한 직업, 가장 대책 없는 직업이 목동입니다.
순수했기 때문이 아니라 밤에 양을 지킬 정도로 충성한 자였기에 복음을 들려 준 것도 아닙니다.
가장 비극적인 자라 할지라도 말 그대로 온 백성이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망 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기쁜 소식은 무엇일까요?
경기가 회복되는 것일까요?
병이 고쳐지는 것일까요?
자녀가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 좋은 회사에 취업하는 것, 자녀들의 결혼일까요?
노후를 안전하게 준비하는 것일까요?
천사가 목자들에게 가져온 그 좋은 소식 예수 그리스도 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예수의 구원은 하나님께 영광이요
그리고 그 사실을 받아 드리는 자에게 기뻐하심을 입은 자는 평화입니다.
예수 없는 성탄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 백성 맞으라 온 교회여 다 일어나 다 찬양하여라 다 찬양 하여라 다 찬양 찬양 하여라
요사이 71년 만에 12월에 한강이 어는 추위가 찾아 왔다고 합니다
올해 무슨 재미가 있었습니까 아니면 무슨 재미있을 좋은 기대가 있습니까
올해는 유독히 우리나라는 전쟁의 불안감을 떨쳐 버리기 어려운 두려움이 있습니다.
가까이로는 오는 월요일 18일 전쟁이야기가 외국 군수업자들 사이에 있다고 합니다.
또한 아니면 3개월 안에 전쟁이 일어 날 가능성을 현재의 분위기로 점치기도 합니다
육이오 전쟁후 70년 만에 강추위가 찾아오듯이 또 다시 대한민국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 갈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일찍 자는 버릇이 잇습니다.
새벽기도에 일어 날 때에 피곤하지 않기 위함이 이유이기도 하나
또 하나는 오늘 하루를 무사히 잘 보냈으니
내일에 더 좋은 무엇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빨리 마무리 짓습니다.
하여튼 이렇게 역사는 흘러갑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한 해를 보내는 마음이 매우 초조합니다.
소히 한 것도 없는데 또 한해가 가내입니다
그러나 저는 얼마 전부터 세월을 보내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더 이상 가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나마 보내게 되어 스스로 대견하고 감사 할 뿐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음은 무엇인가 보상감과 기대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주를 믿는 믿음에서 오는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모든 것을 내 중심적으로 내 실력 내 능력 내 형편과 사정으로만 내 생각만으로 논하였던 삶을 하나님으로 이관되어 살아가는 법을 예수께로부터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좋으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나의 삶의 현장에 오셔서 나와 이 시간에도 함께 동고동락을 하십니다
그 주님을 의지합니다
역사 속으로 오신 주님은 2000년 전에 유대 땅에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탄생하셨습니다.
그 어머니 마리아는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였습니다.
당시의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토의 명을 받아 호적하러 길을 떠났습니다.
거의 출산이 가까운 마리아는 나귀를 타고 이 먼 거리를 여행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입니까?
그래도 가야했습니다.
이것이 그 시대에 주어진 식민지 백성들의 설움이였습니다.
추운겨울에 태아와 산모의 건강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고향으로 가야 하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슬프고 고통스러운 사건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왜 이렇게 어렵게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으로 이동해야 했을까요?
구약의 선지자 미가는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것을 이미 700년 전에 예언했습니다.
미가는 앗시라아에게 위협받고 있는 유대백성들을 격려하기 위해 베들레헴에서 메시야가 탄생할 것을 예언했습니다.
미가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하나님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을 예수 탄생 700년 전에 벌써 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 탄생이 가까운 때에 마리아는 나사렛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가능성은 거의 희박했습니다.
산달이 다 된 산모가 그 추운 겨울에 200킬로를 여행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였습니다.
누가 그런 위험한 일을 시도라도 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그 무시무시한 로마의 황제 가이사의 호적명령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저 북쪽의 김씨 같이 무서웠는지도 모릅니다
육신적으로만 보면 식민지 백성들의 힘없는 슬픈 삶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역사는 아니 나의 모든 인생의 삶을 하나님의 주관하심에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세상 권력자들이 자기 유익을 따라 이 세상을 주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모든 세상 역사의 이면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가 역사하고 계신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4대 강국의 구도 속에 약소국의 처지로 매우 불안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말합니다. 미국에 패싱 왕따 당하였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중국은 아직도 역사적인 소국으로 지방의 한 자치주 정도로 여겨 업신여기는 감을 주고 있습니다
일본은 우습게 보는 것 같습니다.
러시아는 기회를 보고 한 몫을 보려고 합니다
어디다가 한국의 장래를 기대 하겠습니까
국내 정치는 역사이래로 최고로 흑백을 가리는 것 같은 모습으로 흉융합니다
우리가 세상역사와 주위의 환경을 그냥 인간적인 눈으로 보아서는 기대치가 없습니다.
그 이면에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봐야 합니다.
곧 구주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그러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는 좋은 소식이요 기쁨이십니다.
하나님의 유일한 뜻은 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3:16-17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고생 끝에 요셉과 마리아는 베들레헴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왔기 때문에 빈방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문을 두드릴 때 마다 만원사레라고 외칩니다.
모두가 산모에게 방하나 내어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모두가 자신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작은 선이라도 베풀 여력이 없었습니다.
식민지의 삶에 익숙해 졌기 때문입니다.
민심이 흉융해져 있습니다.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숩니다.
예수님이 오셨다는데 영접하라고 하는데
이처럼 예수님은 자기 땅에 오매 아무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말구유에서 태어나셔야 했습니다.
이 시간에도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오셨음에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더욱이 영접하지 않습니다.
아예 관심이 없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조건을 말하면서 나의 삶에 충실하고 바쁘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문을 꼭 닫고 자기 중심적은 삶을 살아갑니다.
계시록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예수 자체가 기쁨이요 좋은 소식입니다.
목동들에게 일어 줄 기쁨과 좋은 소식의 요지가 무엇입니까
10-11절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삶이 왜 힘든지 아십니까 ?
왜 우리에게 이런 저런 아픔과 슬픔이 많이 있는 줄 아십니까 ?
바로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여기서 죄는 윤리적, 도덕적 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분리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나 사는 그 자체가 죽음입니다.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난 것이 가난입니다.
구원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난 것이 멸망입니다.
능력이신 하나님을 떠난 것이 무능력과 절망입니다.
진리이신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윤리 도덕적인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없는 삶이 바로 죄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난 그 죄가 나로 하여금 고통스럽게 살아가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이 죄인을 하나님께로 이끌 수 있습니까
오직 예수 이십니다.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 할자 예수 이십니다.
이 예수가 구주로 오셨으니 보통 기쁨이 아니고 큰 기쁨이요
이것보다 더 좋은 소식이 어디 있습니까
이제 죄짐을 내가 지고 더 이싱 살아가지 마십시오
내 죄 짐은 내가 질 수가 없습니다
죄짐 보따리에 내가 깔려 죽습니다.
예수님이 지십니다
내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죄입니다
내 인생을 내가 책임질 수 있다는 거짓된 생각에 속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아십니다.
요한복음15:1-7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우리가 우리 인생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 날 때 선택해서 태어 났습니까
엄마 아빠 정했어요 출생 날짜를 택했어요 남녀 성별을 했어요 대한민국 전라도 경상도 정했어요
그냥 선택 받았습니다.
구원에 대해서 사람들은 말합니다.
왜 구원을 하나님이 마음대로 선택한다고 불만인데
구원만 아니고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 있습니다
나의 장래도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 밤에 자려고 하는데 대구 칠곡에서 목회하는 친구 목사님에게서 문자가 왔어요
안부 인사가 하고 보는데 그 내용을 보낸 사람은 친구가 아니라 그 친구의 아들이었습니다.
내용은 친구가 소천 하였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도 추운 날씨에 하나님이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마치 내가 세상일을 다 아는 것 같고 다 하는 것 같은 착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죄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살 수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 대신 살아주시기 위해 오신 것이 복음이요 은혜인 것입니다.
가만히 내 문제를 주께 맡기십시오
주님이 그 문제의 구원이 되십니다.
그리고 주님이 길을 내십니다
예수 없이 내 행위로 사니 힘든 것입니다.
예수없이 내 노력으로 사니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이제 이 모든 인생 짐을 우리의 주인 예수님께 맡겨드립시다.
목자들은 천사의 임재 시에 그들에게 찾아온 감정은 두려움입니다.
유추해 보면 삶 자체가 매우 불안한 두려움의 연속이었고 참으로 기쁨을 주는 좋은 경험을 해 보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려워 말라 좋은 소식이야 기쁨이야 할렐루야!
그 당시 목동들은 누구일까요?
가장 천한 직업, 가장 대책 없는 직업이 목동입니다.
순수했기 때문이 아니라 밤에 양을 지킬 정도로 충성한 자였기에 복음을 들려 준 것도 아닙니다.
가장 비극적인 자라 할지라도 말 그대로 온 백성이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망 없는 사람들에게 가장 기쁜 소식은 무엇일까요?
경기가 회복되는 것일까요?
병이 고쳐지는 것일까요?
자녀가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 좋은 회사에 취업하는 것, 자녀들의 결혼일까요?
노후를 안전하게 준비하는 것일까요?
천사가 목자들에게 가져온 그 좋은 소식 예수 그리스도 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예수의 구원은 하나님께 영광이요
그리고 그 사실을 받아 드리는 자에게 기뻐하심을 입은 자는 평화입니다.
예수 없는 성탄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 백성 맞으라 온 교회여 다 일어나 다 찬양하여라 다 찬양 하여라 다 찬양 찬양 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