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자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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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214회 작성일 2017-12-25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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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2:25-35 위로자 예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누가 내 인생을 위로해 준단 말인가?
누가 나의 이 아프고 힘든 현실을 알고 이해해 주며 위로해 준단 말인가?
풍부 속에 빈곤을 느끼며 난 혼자야. 난 외로워. 난 고독해 그래서 친구를 찾고 애인을 찾고 취미를 찾습니다.
그것으로도 안 되면 강아지나 고양이를 통해서 위로 받고자 하며 반려 견들을 부척 키우고 있습니다.
그것으로도 못하니 술을 찾고 마약을 합니다
미국 같은 경우는 이미 대마초 같은 향 정신제를 합법화 하여 팔고 있으며 집에서 양귀비를 몇 그루는 심어도 법적으로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근본적으로 나를 위로해 주고, 내 인생을 회복시켜 주고, 내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런 것들에 취향한 자들은 더 위로를 받지 못하는 어려움에 빠집니다
사람들의 우상인 인기인들이 오히려 우울함에 시달리다가 자살을 했습니다.
세상 그 어디도 진정한 위로 자가 되어줄 만한 참된 친구는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다 외로운 존재들이요,
위로가 필요한 고독한 존재들인지 모릅니다.
잘 사는 사람은 잘 사는 이유 때문에 못 사는 사람은 못 살기 때문에. 인기를 누리며 그 인기가 인정받지 못하고 별 볼일 없는 자신 때문에 다 그것들 때문에 나름대로 다 외롭고 고독하고 다 힘들게 살아갑니다.
반려 견은 그 반려 견에 물려 죽기도 합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의 진정한 위로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한 번도 나를 떠난 적도 그리고 버린 적도 없습니다.
이제 그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서 강보에 쌓여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구주탄생의 기쁜 소식은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임하였습니다.
목자들은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님을 확인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갔습니다.
또한 이방인 동방의 박사들도 황금과 유향과 몰약으로 예수께 경배를 하였습니다.
나 또한 우리 가운데 임하신 예수님을 확인 하신 줄로 믿습니다
본문에 또 한사람 시므온 이라는 사람도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다가 예수님을 본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시므온은 예수를 가리켜 이스라엘의 위로자로 알고 기다리던 자였습니다.
예수님의 태어나신 후 팔일이 되어 할례 할 날이 되었습니다.
그 이름을 천사의 말대로 예수라 지었습니다.
구약의 제사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율법에 기록된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었습니다
21-24절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일컬은 바러라
22.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이 때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기다리던 사람인 시므온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별의 인도함으로 들의 목자는 천사가 들려준 음성으로 시므온은 성령께서 일러 주었습니다
성령이 그 위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애굽으로 피신가지 않으시고 예루살렘으로 올라 오셨다는 놀라운 사실을 보게 됩니다
헤롯왕이 있지만 예루살렘으로 성전으로 오셨다니
누굴 만나려고 누구에게 위로를 주려고 시므온입니다
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까지는 10여 키로 남짓 합니다
이스라엘의 위로자가 예루살렘 성전으로 정결 예식을 하기 위해 온다는 감동을 들었습니다
그는 성령님이 충만한 사람으로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소히 신앙은 확신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일러 주었습니다
디모데후서3:14-15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그는 성령님의 감동으로 믿고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시므온은 너무나 기뻐서 아기를 안고 말했습니다.
시므온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는 뜻입니다
25-33절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33.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는데 하나님이 응답하였습니다.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위로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위로자이십니다.
예수가 위로가 되심은 우리의 구원이시기 때문입니다
30절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요셉과 마리아가 그들의 아기를 주 하나님께 바치려고 성전에 들어갔을 때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무리 중에 한 사람인 시므온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그 어린 아이가 구속자인 것을 계시하여 주셨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로 주께서 4세기 동안 침묵을 지키신 후에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한 것입니다.
때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노역의 때가 끝났다고 했습니다
이사야40:1-2 너희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노역이란 몹시 괴롭고 힘들게 일함. 또는 그런 노동
개역 한글판에는 복역으로 번역하기도 했는데
복역은 징역을 살다 군복부를 하다라는 의미로 다 힘든 것을 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온전히 회복되기 전에 아직도 커다란 환란이 남아있지만, 그 회복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실제적인 구원인 위로가 선포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로가 구원입니다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 준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노역이란 이스라엘이 역사 속에서 대적들로부터 당하고 겪어온 전쟁, 그리고 노예의 고통을 말합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적들이 사라지고 전쟁이 끝나고, 고통이 사라졌으니 위로하라는 것이다.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벌 받는 죄인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이스라엘을 징계하셨지만, 버리시지 않았다.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언약은 취소되지 않았고,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낮에 해가 비추고, 밤에 달과 별이 비추고, 바다에 파도가 일게 하시는 하나님의 규정, 그 질서가 사라진다면
이스라엘 자손도 하나님 앞에서 폐함을 입어 영영히 나라가 되지 못할 것이다.
하늘이 측량되고 땅의 기초가 탐지된다면 이스라엘의 죄로 인해 그들을 다 버릴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하신 우주의 질서가 존속하는 한 이스라엘은 반드시 나라를 회복할 것이며, 결코 버림받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아31:35-3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셨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정하였고 바다를 뒤흔들어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36. 이 법도가 내 앞에서 폐할진대 이스라엘 자손도 내 앞에서 끊어져 영원히 나라가 되지 못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위에 있는 하늘을 측량할 수 있으며 밑에 있는 땅의 기초를 탐지할 수 있다면 내가 이스라엘 자손이 행한 모든 일로 말미암아 그들을 다 버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내 백성, 나의 종, 나의 택한 야곱,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칭하시고, 하나님 자신을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왕 이라고 칭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그 어떤 것과도 끊지 않으셨고, 영원토록 끊지 않으실 뿐 아니라, 이전에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셨고, 지금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며, 영원토록 그러하시다.
스바냐도 이스라엘을 위로하고 이스라엘에 소망을 선포하는데, 이사야보다 더 구체적으로 위로한다.
스바냐3:14-17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15.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즐거이 부르며 기뻐 기뻐하시리라
이스라엘을 향해 위로를 선포해야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아직 두려워하고, 절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다 회복된 자에게 위로하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이뤄가고 계시며, 그에 앞서 이스라엘을 위로하라고 하신다.
그 위로자가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오늘의 시대는 모든 사람들이 위로가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극도의 개인주의로만 살아온 사람들이 이제는 저마다 자기 이외에 어느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아니 그런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은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자란 그런 것을 다른이에게 베풀 수 있는 능력도 없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받지도 못하고 주지도 못하면서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고통 받는 백성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심어주어야 할 예루살렘의 종교는 영적으로 침체되고 타락하여 기득권 계층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유대교는 십계명을 613개의 세부조항으로 나누어놓고 지키도록 했습니다.
율법을 하라는 계명 365개, 하지 말라는 248개로 세분하여 놓고 백성들에게 맹목적인 복종만을 강요했습니다.
당시의 유대교는 서민의 종교가 아니었고 귀족을 위한 종교였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그리고 제사장으로 불리는 엘리트 계층을 위한 귀족 종교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유대교는 당시에 죄인으로 불렸던 세리와 창녀, 그리고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대하여 끊임없는 미움과 정죄만 했을 뿐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나 어떤 프로그램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오셔서 그들과 함께 먹고 교제하자 비난하였습니다.
사회에서 위로를 받지 못하고 더욱이 종교 자체도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당시의 유대교는 가난하고 병든 일반 서민들은 들을 수 없는 교훈이었고 지킬 수 없는 무거운 계율만이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율법이었습니다.
은혜의 진정한 위로자가 필요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고난과 위기 가운데서 허덕이며 부르짖을 때 구원으로 다가오셨던 예수님은 진정 위로자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구원이야말로 이스라엘이 경험했던 최상의 위로였지요.
이것이 이스라엘 민족이 살아온 역사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 이스라엘의 위로가 분명하게 나타났던 때를 몇 번 꼽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예가 되어 고통 속에서 부르짖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구원자 모세를 보내셔서 그들의 고통과 슬픔을 위로하셨습니다.
또 유대족속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머나먼 타국으로 붙잡혀간 적이 있었습니다.
국가공동체는 붕괴되었고 하나님의 언약공동체가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상처입고 무너진 이스라엘의 마음을 하나님은 어떻게 위로하셨습니까?
고레스라는 페르시아 왕을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삼으셔서 그들을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하셨던 것이지요.
시므온이 살던 역사의 현장 역시 하나님이 위로해 주셔야만 회복될 수 있는 절박한 현실이었습니다.
세계제국인 로마가 등장하게 되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의 자존심과 긍지는 여지없이 박살나고 말았습니다.
로마의 꼭두각시인 헤롯 왕조는 이스라엘 변방의 별 볼일 없는 이두메 족속 출신이었습니다.
이러한 때,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자가 필요로 했던 것입니다.
애굽 땅에 모세를 보내셨던 것처럼,
바벨론에서 고레스 왕을 사용하셨던 것처럼,
이제 하나님이 그의 메시야를 보내실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자기 백성을 위로하실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토록 고대하던 메시야, 하나님의 구원, 이스라엘의 위로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주의 위로를 기다려야 합니다. 내 인생과 이 민족을 위로해 주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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