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죽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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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228회 작성일 2018-04-22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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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34:1-8 내가 살고 죽는 것은
충북 증평에서 친언니가 세 살배기 딸을 살해하고 목숨을 끊은 것을 알고도 언니의 소유 SUV차량을 팔고 돈을 챙겨 도망쳤던 여동생이 구속됐다.
언니의 집에서 도장, 신분증, 휴대전화, 자동차 열쇠 등을 훔쳐 죽은 언니로 위장하여 중고차 업자에게 팔고 돈을 받고 인도네시아로 출국했다.
중고차 업자가 괴산경찰서에 사기죄로 고소하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지난 18일 인천공항으로 입국하다가 체포했다.
생과 사를 넘는 자들의 모습을 봅니다
더 이상 삶을 유지 할 이유가 없어 딸을 살해하고 자신도 죽은 언니, 그리고 그 시신을 보고도 살아야 할 이유 때문에 죽은 언니 행세하며 차량을 팔아서 돈을 챙겨야 살아야만 하는 인생을 봅니다
그 인생은 살아야 할 이유 죽어야 할 이유가 어떠한가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은 만들어 집니다
본문 신명기의 마지막 장에서 120년을 살다가 죽은 모세를 봅니다.
그는 죽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가 분명한 만큼 자신이 120년을 살아야 하는 이유도 분명했습니다.
살아야 하는 이유가 아름다운 만큼 죽음이 그의 인생을 더 아름답게 하였습니다
대체로 사람의 그 죽음은 그 인생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보여 주기도 합니다
사람의 시신을 검안해보면 이 사람이 왜 죽었는지를 어떻게 죽었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참으로 바른 삶은 내 인생은 하나님의 뜻에 있지 사람의 뜻에 의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크게 착각하고 사는 것이 인생은 내 마음대로라는 것입니다
결코 한번 살아 보면 내 인생 내 마음대로가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요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보면 더욱 내 인생 내 마음대로가 아닙니다
사람이 죽을 때까지 그 사실을 모르면
내가 왜 죽어야하지도 받아 드릴 수가 없습니다
내 마음대로라고 살다가 간 사람은 대체로 그렇게 무엇인가 해 보려고 하다가 저렇게 죽으니 불쌍하다고 합니다
죽으면 더 이상 자신을 위해서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주께 있음을 삶과 죽음을 통하여 실천적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이런 고백을 하지 않았습니까
로마서14:7-8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끝까지 모른다면 참으로 인생 방황하는 삶을 살다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느냐를 모릅니다
허둥지둥 허겁지겁 하다가 살아왔다면
죽음조차도 받아 드리지 못하고 아름답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떤 성도의 죽음을 보면서 그 사람을 보내면서 너무나도 힘이든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분명코 하나님은 그만 육신의 삶을 살라고 그 사람을 부르십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나는 이 세상에 미련이 있기 때문에 떠날 수 없다고 합니다
제가 하나님과 그 사람 가운데서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제발 걱정하지 마시고 눈을 감고 편안히 가십시오
아마 제가 한 이 말이 얼마나 서운해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천국 가서 생각하면 감사 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분명히 말했습니다
이제 죽어라고 하셨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안다면 그 인생이 그의 죽음도 아름답게 한 것입니다
너무 단순하다고 생각일까요?
자신의 인생에 대한 보상에 대해서도 할 말이 없습니다
자신의 개인적인 욕구와 목표에 대해서도 애착이나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아니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 앞에는 결코 자신의 변명이나 주장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모세가 자신에게 의미를 두지 못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욕구로 충만하다 못해 사람을 살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이 하나님을 인지하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 보니 자신에게만 의미를 둔 다는 것은 무의미함을 알았습니다
자신의 마지막 순간에 모세는 하나님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의 말년에 눈에 들어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약속하신 뜻이 이루어짐을 보는 것입니다
1-4절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2.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3.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
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땅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모세는 비스가 산 정상에 오릅니다.
거기서 그는 약속의 땅을 바라봅니다.
동으로는 길르앗 땅이요, 서로는 서해(지중해)요, 북으로는 단(이스라엘의 최북단)이요, 남으로는 남방(네게브)땅까지입니다.
모세에게 이 땅을 보게 해 주심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의지가 모세의 의지요 하나님의 열심이 모세의 열심이요
모세는 충성된 종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죽을 수 있습니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죽음입니다
죽음 앞에 당당히 죽을 수 있음도 진정한 자유입니다
죽음에 이르지 못함의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죽은 것도 아닌
존엄사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품위와 가치를 지키면서 죽을 수 있게 하는 행위.
최선의 의학적 치료를 다하였음에도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르렀을 때, 질병의 호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이루어지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질병에 의한 자연적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안락사라는 말도 있습니다
질병에 의한 자연적 죽음이 아니라 인위적 행위에 의한 죽음이라는 점이 다르다.
안락사 중에서도 환자의 요청에 따라 고통을 받고 있는 환자에게 약제 등을 투입하여 인위적으로 죽음을 앞당기는 것을 적극적 안락사, 환자나 가족의 요청에 따라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영양공급이나 약물투여 등을 중단함으로써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소극적 안락사라고 한다.
좀 존귀하게 죽자
죽을 때 비참하지 말고 제대로 죽자입니다
살고 죽음에 의미를 둘 수 있는 살아야 할 때 살고 죽어야 할 죽을 수 있음은 삶도 죽음도 헛되지 않았다
모세가 죽을 때 나이 120이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사람이 노쇠하여 갈 때 제일 먼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 시력의 저하입니다.
그래서 안경이 없던 고대에서는 시력이 건강의 척도이었습니다.
이를 증명하는 말이 비스가 산꼭대기에 혼자 올라갔다는 말입니다.
비스가 봉우리(현재의 시야가 봉우리)는 해발 710m임으로 적어도 120세 노인이 홀로 등산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높이입니다.
그는 홀로 올랐다가 홀로 내려왔습니다. 건강합니다
건강하니 오래 살고 병들었으니 일찍 죽는다 성경적이지 않고 정답이 아닙니다
죽음은 일 함의 할 일을 다 함의 안식입니다
5-7절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6.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7.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모압땅에서 죽은 이유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형식은 므리바 사건의 혈기로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은 이유이었지만 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명이 여기까지였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의 삶이 의미가 없는데도 살아간다면
이게 삶의 가치는 아닙니다
삶의 가치를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모든 공력은 주께로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모든 것이 감동입니다
모든 것이 평안입니다
하나님을 힘입어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인간의 그 무엇을 자랑 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위대한 모세는 그의 육신이 묻혀 있는 무덤을 찾을 수 없습니다
육신의 업적을 기리는 사람은 얼마나 무덤을 크게 하고 명당을 찾고 심지어는 묘비에 휘황찬란하게 찬양의 글을 남겨 놓습니까
북쪽 김씨 일가는 아버지 시신도 할아버지 시신도 유리관에 넣어 놓고 언제까지 보관 될지는 모르지만 가서 숭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모세는 없습니다
모세는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께 있습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에 그의 제자들을 데리고 올라 갓을 때에 거기에 모세가 나타났습니다
마태복음17:1-4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거의 1500년 전에 죽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죽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분명히 죽었지만 그 묘는 아는 사람이 없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후세사람들이 신처럼 숭배할 까봐 그 묻힌 자취를 사라지게 했다는 설이 있지만 이 기사는 사명자의 운명을 대변해주는 것 같습니다.
사명자는 그 묘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영광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살아 왔기 때문입니다
모세에 대한 평가는 대단합니다
참으로 그를 숭배 할 만합니다
이스라엘에 그와 같은 선지자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는 평가입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과 대면하였던 자요,
애굽 땅에 보내져 이적과 기적을 행하였고
이스라엘 백성들 목전에서 권능과 위엄을 행하여 하나님을 증거한 자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율법을 하나님께로 받는 자요
그는 다른 선지자들과는 달리 마치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하듯이 하나님과 가까이 대면한 선지자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어떤 사람보다도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였고 직접 경험한 자이었습니다.
당연히 그는 하나님과 친밀하였습니다.
얼마든지 교만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자신은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다른 이들이 신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그의 무덤은 아직까지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신 것입니다
살아 있을 때도 그의 죽음조차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한 그 언약을 이루기 위하여 모세를 그 도구로 삼았다는 말입니다.
모세 당시 사람들은 70세, 강건하면 80세를 살았습니다.
모세는 그의 글 시편90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편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그는 다른 사람이 죽을 나이 80세에 부름을 받아 120세 때까지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이게 큰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이 나이에 부르시다니 하나님이 부르시는 부름이 있습니다
소명이 나로 하여금 존재케 하였습니다
내가 사는 것은 소명이다
소명과 명이 다 하는 날이 나의 죽는 날이다
그러나 죽는 것이 끝이 아니라 영원 삶을 사는 것입니다
더 이상 인생 우왕좌왕하지 말고 더 이상 죽음 앞에 허둥지둥 하지 말고
확실하게 살면 확실하게 죽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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