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롭게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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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222회 작성일 2018-04-28 17:38본문
로마서12:1-3 지혜롭게 생각하라
여기 주의 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지난 4월 첫 주부터 예배를 드렸는데
이 교회가 세워진 사실을 제일 먼저 신고를 받고 파악을 하기 위하여 국가 가관에서 먼저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교회는 목사도 노동자로 여겨 세금을 내어야 하기에 국가는 세금 징수에 예민해 집니다
또 이단이 먼저 알고 자신들의 모임에 참여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단은 어떡하든지 예수 그리스도께 드려지는 삶을 살지 못하도록 합니다
이단은 끊임없이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물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까지 시험을 하고 교회를 혼란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성도는 지혜롭게 생활을 해야 합니다
율법주의에 익숙한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에게 충실했습니다
은혜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부터는 그의 삶이 이제는 더 이상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지 않을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충실한 지혜롭게 사는 복을 성도들에게 일러 줍니다
지혜롭게 사는 지혜를 신약 성경에서 사도 바울이 쓴 서신서입니다.
바울은 신약의 서신서를 참 많이 썼습니다
본문의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 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등을 썼습니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지혜롭게 살자는 내용입니다
이제 구원을 받는 성도라면 삶의 어리석음을 버리고 지혜롭게 사는 복을 누려야 합니다
로마서의 주제는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다.
이 주제의 분류를 따라 3단락으로 나누면
로마서1-8장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다루는 교리적 부분입니다
아 구원은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이구나 말 그대로 원리입니다
9-11장 구원은 하나님의 섭리하심 즉 하나님의 뜻이다를 다룹니다
12-16장 구원받은 자의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정말로 그 구원이 내 삶 속에서 적용되는 것입니다
이게 지혜로운 자의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영적인 예배라고 합니다
곧 내 자신을 위하여가 아니라 내 자신을 드리는 삶입니다
1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영적 예배에서 예배라는 말에 사용된 헬라어 명사는 섬김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예식, 의식, 의무라는 뜻 모두를 내포합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예식 의식에 메여 있지 않습니다.
예배에는 자신을 드리는 봉사도 함께 있습니다
예배의식과 봉사활동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봉사 없는 예배는 온전한 예배가 아닙니다
봉사 없는 예배를 좋아합니다
나는 예배만 드릴 거야 상당히 교만한 마음입니다
예배가 없는 봉사는 역시 온전한 봉사가 아닙니다
역시 이런 봉사는 자신의 의를 드러내게 됩니다
또한 영적이라는 헬라어 형용사로 영적이라고 번역되지만
헬라어의 원뜻은 동사의 생각하다와 관계가 있는 단어로, 어떤 것의 참되고 핵심적인 본질에 부합하다는 의미의 진정함을 뜻합니다.
그래서 예배는 마음의 태도에서 시작하며 그 결과로 본질에 맞는 봉사활동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영적 예배는 삶의 모든 영역을 제물로 드리는 태도를 의미하는 말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배와 삶이 구분되는 것이 그 차이가 없습니다
예배가 생활이요 생활이 예배입니다
내 가정과 사업터 학교가 예배장소가 되며 일상적인 모든 활동 즉 노동, 안식, 교제등 삶의 모든 부분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됩니다.
예배에 대한 이러한 모습이 사회에 영향을 미칠 때 교회는 존재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러한 삶은 곧 내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이 됩니다
율법적인 예배가 될 때는 산 제물을 죽여 죽은 짐승만 드려졌습니다
그러니 짐승만 죽이는 예배만 드렸지 그들의 삶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내 잘못 되신 짐승이 대신 죽어 주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을 구약시대는 제사를 드린다고 했습니다.
제사에는 반드시 제물이었습니다.
그때는 죄지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사죄의 은총을 입기위하여 살아있는 흠 없는 가축을 제물로 삼아 성소의 제사장 앞에 끌고 옵니다.
그리고는 그 짐승에게 안수하여 자신의 죄를 전가하고 그리고는 짐승을 도살합니다.
죽어지는 짐승을 보고 죄인은 내 대신 죽은 짐승에 마음을 아파하며 자신의 죄의 참상을 봅니다.
죄지은 자신을 대신하여 피를 흘리며 죽어지는 짐승의 죽음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용서해주시도록 사죄의 은총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게 제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헌신을 뜻하는 번제와 감사의 제물로 드리는 소제, 서원제등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쳐지는 제물은 살아있는 짐승이 반드시 죽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은 수천 년 동안 율법을 따라서 계속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제물을 바치는 제사의 오랜 반복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제사 곧 예배행위가 형식화되고 동물제사 만능주의적인 사고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즉 동물 희생제사만 드리면 사회에 나가서 웬만큼 죄를 지어도 또 제물로 제사만 드리면 된다는 습관화된 제사의식에 점점 형식화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그런 제사의 무용론과 심지어는 폐지론을 내세우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제물 바치고 죄짓고 또 제물 바치고 죄짓고 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이제 나는 지겨우니까 제발 그런 희생제물을 그만 가지고 오라고 하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드리는 참 제사의 정신을 일깨우게 됩니다.
이사야66:1-4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3.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4. 나 또한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내 삶을 받으시려고 하심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주저하거나 억지가 되고 아까워하는 것은 항상 내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 것이라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내 것이 아닙니다.
1절에 그러므로 라는 접속어는 그 전장 마지막 부분을 결론적으로 받았으므로
무엇을 받았습니까
로마서11:33-36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모든 것이 주의 것임을 믿고 너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실 내게 속한 것 뿐 아니라 나 자신의 모든 것도 하나님이 주셔서 있는 것일 뿐 내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니 아까운 마음이 들고 드린다 해도 억지가 되고 의무감으로 드릴 수밖에 없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감사와 기쁜 마음으로 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윗의 신앙고백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가 성전 건축을 위하여 자신을 드릴 때에 생애에 수고한 전부를 드리며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역대상29:10-17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여 이르되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11.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13.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14.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15.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
16.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17.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사실 하나님 앞에 드렸다고 해도 그것은 내 것을 드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을 돌려 드린 것이요 결국은 하나님의 것일 뿐이니 드린 것이라 볼 수도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아무리 크고 많고 소중한 것을 드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렸다 해도 조금도 내 놓을 것도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거기 내 것은 조금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돌려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를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고 사랑하십니다.
결국은 예배는 나의 죽었음을, 죽어짐을 말합니다
나의 죽음은 결국은 내 가운데 주님이 사심이 됩니다
나 자신을 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제는 나도 없고 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주인이 되십니다.
육신으로만 살아가는 인생은 이것이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나와 내 것을 사수하고 고집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수가 내 가운데 사시도록 나를 어떤 모양으로든지 죽이십니다
자녀등 사랑하는 자들을 통해서 죽이십니다
지난주 추도 예배에 참여 했는데
그 가운데 신앙의 고백들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그런데 세상적으로 무엇하나 뛰어난 것이 있어서 나를 내 세울만한 것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다 죽게 되었습니다
아니 죽었습니다
내가 기대하는 것이 다 죽으니 이제 내가 살 수 있음은 더 이상 내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내가 살 수 있음은 예수 안에서 살 수 있는 나를 것을 발견하였으니
모든 것이 주의 은혜지
내가 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것이란 없습니다.
그래서 예배는 나의 죽음을 재확인하는 것입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내가 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동시에 나의 생명을 예수로 더불어 살아 있음을 재확인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인이 죽어지는 시간이요,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은혜 안에서 생명을 다시 찾는 시간입니다. 생명의 약속을 재확인 받는 것이 예배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범사의 생활에서 날마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2-3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지혜롭게 행함은
다른 모든 것보다도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기쁘고 즐겁습니다.
교회에서 섬기는 것이 즐겁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갈 때마다 감사함으로 나가갑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제사를 드려보십시오,
자신의 부족함과 죄를 깨달아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합니다. 하나님 앞에 긍휼과 자비를 구합니다.
겸손해지는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찬미의 제사를 드립니다
예수 안에서 예수님과 새사람이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지혜로운 자의 삶입니다
여기 주의 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지난 4월 첫 주부터 예배를 드렸는데
이 교회가 세워진 사실을 제일 먼저 신고를 받고 파악을 하기 위하여 국가 가관에서 먼저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교회는 목사도 노동자로 여겨 세금을 내어야 하기에 국가는 세금 징수에 예민해 집니다
또 이단이 먼저 알고 자신들의 모임에 참여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단은 어떡하든지 예수 그리스도께 드려지는 삶을 살지 못하도록 합니다
이단은 끊임없이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물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까지 시험을 하고 교회를 혼란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성도는 지혜롭게 생활을 해야 합니다
율법주의에 익숙한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에게 충실했습니다
은혜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부터는 그의 삶이 이제는 더 이상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지 않을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충실한 지혜롭게 사는 복을 성도들에게 일러 줍니다
지혜롭게 사는 지혜를 신약 성경에서 사도 바울이 쓴 서신서입니다.
바울은 신약의 서신서를 참 많이 썼습니다
본문의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 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등을 썼습니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지혜롭게 살자는 내용입니다
이제 구원을 받는 성도라면 삶의 어리석음을 버리고 지혜롭게 사는 복을 누려야 합니다
로마서의 주제는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다.
이 주제의 분류를 따라 3단락으로 나누면
로마서1-8장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다루는 교리적 부분입니다
아 구원은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이구나 말 그대로 원리입니다
9-11장 구원은 하나님의 섭리하심 즉 하나님의 뜻이다를 다룹니다
12-16장 구원받은 자의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정말로 그 구원이 내 삶 속에서 적용되는 것입니다
이게 지혜로운 자의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영적인 예배라고 합니다
곧 내 자신을 위하여가 아니라 내 자신을 드리는 삶입니다
1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영적 예배에서 예배라는 말에 사용된 헬라어 명사는 섬김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예식, 의식, 의무라는 뜻 모두를 내포합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예식 의식에 메여 있지 않습니다.
예배에는 자신을 드리는 봉사도 함께 있습니다
예배의식과 봉사활동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봉사 없는 예배는 온전한 예배가 아닙니다
봉사 없는 예배를 좋아합니다
나는 예배만 드릴 거야 상당히 교만한 마음입니다
예배가 없는 봉사는 역시 온전한 봉사가 아닙니다
역시 이런 봉사는 자신의 의를 드러내게 됩니다
또한 영적이라는 헬라어 형용사로 영적이라고 번역되지만
헬라어의 원뜻은 동사의 생각하다와 관계가 있는 단어로, 어떤 것의 참되고 핵심적인 본질에 부합하다는 의미의 진정함을 뜻합니다.
그래서 예배는 마음의 태도에서 시작하며 그 결과로 본질에 맞는 봉사활동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영적 예배는 삶의 모든 영역을 제물로 드리는 태도를 의미하는 말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배와 삶이 구분되는 것이 그 차이가 없습니다
예배가 생활이요 생활이 예배입니다
내 가정과 사업터 학교가 예배장소가 되며 일상적인 모든 활동 즉 노동, 안식, 교제등 삶의 모든 부분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됩니다.
예배에 대한 이러한 모습이 사회에 영향을 미칠 때 교회는 존재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러한 삶은 곧 내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이 됩니다
율법적인 예배가 될 때는 산 제물을 죽여 죽은 짐승만 드려졌습니다
그러니 짐승만 죽이는 예배만 드렸지 그들의 삶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내 잘못 되신 짐승이 대신 죽어 주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을 구약시대는 제사를 드린다고 했습니다.
제사에는 반드시 제물이었습니다.
그때는 죄지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사죄의 은총을 입기위하여 살아있는 흠 없는 가축을 제물로 삼아 성소의 제사장 앞에 끌고 옵니다.
그리고는 그 짐승에게 안수하여 자신의 죄를 전가하고 그리고는 짐승을 도살합니다.
죽어지는 짐승을 보고 죄인은 내 대신 죽은 짐승에 마음을 아파하며 자신의 죄의 참상을 봅니다.
죄지은 자신을 대신하여 피를 흘리며 죽어지는 짐승의 죽음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용서해주시도록 사죄의 은총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게 제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헌신을 뜻하는 번제와 감사의 제물로 드리는 소제, 서원제등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바쳐지는 제물은 살아있는 짐승이 반드시 죽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은 수천 년 동안 율법을 따라서 계속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제물을 바치는 제사의 오랜 반복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제사 곧 예배행위가 형식화되고 동물제사 만능주의적인 사고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즉 동물 희생제사만 드리면 사회에 나가서 웬만큼 죄를 지어도 또 제물로 제사만 드리면 된다는 습관화된 제사의식에 점점 형식화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그런 제사의 무용론과 심지어는 폐지론을 내세우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제물 바치고 죄짓고 또 제물 바치고 죄짓고 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이제 나는 지겨우니까 제발 그런 희생제물을 그만 가지고 오라고 하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드리는 참 제사의 정신을 일깨우게 됩니다.
이사야66:1-4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3.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4. 나 또한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내 삶을 받으시려고 하심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주저하거나 억지가 되고 아까워하는 것은 항상 내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 것이라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내 것이 아닙니다.
1절에 그러므로 라는 접속어는 그 전장 마지막 부분을 결론적으로 받았으므로
무엇을 받았습니까
로마서11:33-36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모든 것이 주의 것임을 믿고 너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실 내게 속한 것 뿐 아니라 나 자신의 모든 것도 하나님이 주셔서 있는 것일 뿐 내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니 아까운 마음이 들고 드린다 해도 억지가 되고 의무감으로 드릴 수밖에 없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감사와 기쁜 마음으로 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윗의 신앙고백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가 성전 건축을 위하여 자신을 드릴 때에 생애에 수고한 전부를 드리며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역대상29:10-17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여 이르되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11.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13.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14.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15.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
16.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17.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사실 하나님 앞에 드렸다고 해도 그것은 내 것을 드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을 돌려 드린 것이요 결국은 하나님의 것일 뿐이니 드린 것이라 볼 수도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아무리 크고 많고 소중한 것을 드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렸다 해도 조금도 내 놓을 것도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
그것은 거기 내 것은 조금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돌려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를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고 사랑하십니다.
결국은 예배는 나의 죽었음을, 죽어짐을 말합니다
나의 죽음은 결국은 내 가운데 주님이 사심이 됩니다
나 자신을 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제는 나도 없고 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주인이 되십니다.
육신으로만 살아가는 인생은 이것이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나와 내 것을 사수하고 고집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수가 내 가운데 사시도록 나를 어떤 모양으로든지 죽이십니다
자녀등 사랑하는 자들을 통해서 죽이십니다
지난주 추도 예배에 참여 했는데
그 가운데 신앙의 고백들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그런데 세상적으로 무엇하나 뛰어난 것이 있어서 나를 내 세울만한 것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다 죽게 되었습니다
아니 죽었습니다
내가 기대하는 것이 다 죽으니 이제 내가 살 수 있음은 더 이상 내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내가 살 수 있음은 예수 안에서 살 수 있는 나를 것을 발견하였으니
모든 것이 주의 은혜지
내가 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것이란 없습니다.
그래서 예배는 나의 죽음을 재확인하는 것입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내가 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동시에 나의 생명을 예수로 더불어 살아 있음을 재확인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인이 죽어지는 시간이요,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은혜 안에서 생명을 다시 찾는 시간입니다. 생명의 약속을 재확인 받는 것이 예배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범사의 생활에서 날마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2-3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지혜롭게 행함은
다른 모든 것보다도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기쁘고 즐겁습니다.
교회에서 섬기는 것이 즐겁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갈 때마다 감사함으로 나가갑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제사를 드려보십시오,
자신의 부족함과 죄를 깨달아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합니다. 하나님 앞에 긍휼과 자비를 구합니다.
겸손해지는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찬미의 제사를 드립니다
예수 안에서 예수님과 새사람이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지혜로운 자의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