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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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176회 작성일 2018-05-13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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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15:11-24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지난 3일 경북 구미의 한 주민의 신고로 구미시 봉곡동 한 원룸에서 부자가 나란히 누워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2달 전부터 월세를 내지 못했고 도시가스가 끊기고 숨진 아빠의 동거녀가 수개월 전 떠난 점 등은 이들이 독립적인 생활이 어려운 상황을 방증했다.
숨진 아빠가 병원에 다닌 진료 기록, 직장생활 여부, 외부인과의 접촉 등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개인 사정 때문에 사실상 은둔 생활을 해온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숨진 아빠는 주민등록이 말소돼 사실상 외부와 접촉을 끊고 살아 이웃 주민조차 이들의 생활환경을 전혀 알지 못했고, 2년이 다 된 아기가 출생신고도 되지 않아 구미시는 이들이 지역 내 거주하는 것조차 알지 못한 상태였다.
가정의 날에 참으로 안타까운 아버지 그리고 아들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아버지와 아들이 나옵니다
그러나 구미의 부자와 같은 안타까운 사연이 아니라 해피엔딩의 기분 좋은 장면입니다
아들이 집을 나갔다가 고생 진나네 하고 비로소 아버지 집으로 돌아와서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여기서 아들은 죄인 된 인간을 말하고
아버지는 은혜와 자비와 긍휼이 풍성한 하나님 아버지를 비유합니다
집을 나갈 때의 아들은 아버지를 무슨 구속과 억압의 대상으로 여겨 여기서 벗어나 자유하는 최대의 행복을 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죽지도 않는 아버지를 죽은 자로 만들고 재산 즉 유산을 챙기고 집을 나와 야 이제 자유다 라고 외치며 말 그대로 자유롭게 살기 시작했습니다
자유란 무엇일까요?
그 어떤 한계나 구속함이 없는 그런 상태를 말함일까요?
여기 집나간 아들과 같은 자유입니까
영국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John, S, Mill)의 자유론에서
자유를 연날리기에 비유하였습니다
연은 연줄에 매달려 있어야 창공을 날 수 있는데, 특히 그 연줄에 잘 조종될 때에 비로소 창공에 높이 올라가잘 나는 것처럼 진정한 자유는 연줄과 같은 한계가 반드시 전제될 때에 이뤄질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하셨는데, 그 자유는 아무런 통제나 제한이 없는 그런 무제한적인 자유가 아닙니다
창세기215-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모든 실과를 임의로 먹을 수 있으나 이것은 자유
그러나 그 자유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이것은 제한이에요.
모든 실과를 먹을 수 있는 자유의 보장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음으로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한을 둔다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라
계속적인 자유를 누리는 보장 장치가 되는 제한은 좋은 것입니다
둘째 아들은 자유로운 삶을 추구합니다
그는 아버지의 아들이지 종은 아닙니다
그런데 부자간의 그런 관계의 생활을 불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의 훈계도 들어야 하고 자식으로서의 도리도 지켜야 하고. 그래서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면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녀들이 볼 때에 누가 잔소리를 제일 많이 한다고 생각합니까
내 친 부모입니다
그래서 부모에게서 독립하자! 떠나자! 그리고 자유를 만끽하자!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 가지는 현대인의 자세입니다.
이제 자유를 사람들은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참담 했습니다
자유가 아니라 허랑방탕한 삶이 되고
유산으로 받은 재산은 다 허비하였습니다
13-14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이제는 허비 정도가 아니라 궁핍하여 배를 굶게 되었습니다
현대인은 이 아들이 추구했던 것과 같이 아무런 규제도 없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난 자유인이 되고 싶지만 오히려 아버지를 떠남으로 새로운 구속이 찾아 왔습니다
비로소 은혜를 떠난 자의 새로운 은혜의 귀함을 알게 됩니다
엄연히 살아 계시는 아버지를
죽은 아버지처럼 대접을 하며 살아 보니 이게 아닌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인격을 존중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고집을 피울 때에 안 된다고만 하지 않습니다
그냥 두십니다
그래 네 고집대로 해봐라 하지만 기다리고 계십니다
언젠가는 너는 내 아들이라면 돌아온다
아들의 유산 청구는 말도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래 하고픈 대로 해봐
고집대로 해봐
하지만 그게 아닌 것을 알게 될 거야
자녀를 이기면 안 됩니다
말씀만 하고 받아 드리지 못하면 그냥 두십시오
그래도 그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 부모입니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
극히 맞는 말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이기려고 하면 가정이 파탄이 됩니다
부모는 항상 그 자리에 계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자녀는 돌아옵니다
언제든지 돌아 올 수 있도록 문 열어 놓고 기다리십시오
이게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아담이 처음 죄를 지을 때 하나님은 먹지 말라는 선악을 알게 하는 과일을 따 먹음을 막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그 분의 자녀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자녀는 인격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신 동시에 인격이신 분이십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인간에게 무언가를 의지하고 결정할 자유는 반드시 있습니다.
여기 누구든지 고집 없는 사람어디 있습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그 자유를 주시지 않으셨거나 그 자유를 구속하려 든다면 인간은 이미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할 수 없고 아들이 될 수 없고 종으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인격대 인격으로 주어진 의지로 하나님의 의지에 합하여 언제든지 생명과 구원과 축복을 알기를 원하시고
또 그렇게 이루어지도록 하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의 의지를 묵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알게 되도록 하십니다
14-17절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하나님으로 부터 떨어져 나온 인간은 당장 죽지 않습니다.
때로는 이전보다 더 잘 살게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 없는 인간의 삶은 그저 정처 없이 열심히 걷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삶에 대해 문제를 느끼지 못할 때는 이 세상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저 평화롭고 풍요롭게만 느껴집니다.
그러나 궁핍함을 처하게 될 때 세상과 그 속에 있는 것들의 도움을 절실하게 필요로 할 때가 되면 세상이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세상도 그 스스로는 전혀 해결할 수 없는 심각한 흉년으로 메말라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자기 몫을 챙겨서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없으면 그에게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우선 그는 아버지에게서 생명을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없으면 자신도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부인하는 것은 자신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몫이라고 챙겨 나온 재산도 결코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전부가 다 아버지에게서 받은 아버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에게서 독립하려고 하고 그래서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려고 하지만 실은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 생명도 그 생명의 유지에 필요한 모든 것들, 양식, 물, 공기, 태양... 그 모든 것들도 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심지어는 자기 힘으로 살아보겠다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부인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들까지 모두가 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그렇게 철저히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로마서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그럼에도 아버지와 상관이 없이 살아간다
얼마나 우스운 존재입니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무에서 만들어 낸 것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난 모든 것들은 결국 무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복음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인간은 결핍의 상황 고통의 상황에 대한 뼈저린 인식 없이 스스로 아버지의 은혜를 알기란 불가능합니다.
아버지를 떠난 자유는 더 이상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무서운 속박을 가져다 준 것입니다.
아버지는 항상 기다리는 은혜입니디
모든 것을 다 주시려고
아버지 떠나서 살아보니 지지리도 고생이요 아버지 안에서 사는 삶이 제대로 된 삶이요
이것이 진정한 자유임을 알았습니다
요한복음8:32-36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33.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사람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어요.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가는 인간,
그리고 하나님에게로 점점 가까이 돌아오는 인간이에요.
돌아서 오는 그 길에, 이미 아버지가 거기 계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멀리 하신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멀어진 것입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기다리십니다
가룟 유다와 베드로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은 마찬 가지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을 너무 잘 아십니다
약하다는 것
그래서 볼 때마다 측은 한 것입니다
집 나간 것 문제가 아닙니다
유다는 가책을 느끼고 자신이 책임을 지고 자실을 택하고
베드로는 아버지께로 돌아갑니다
죄 짓는 것은 아들의 몫
해결은 아버지 몫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궁핍함과 허무함, 그리고 실패와 절망을 경험해 왔습니다.
사람들도 세상도 우리를 온전히 만족시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실패, 실망, 그리고 궁핍함은 세상으로 향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하나님의 부요함을 바라보게 하는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더 이상의 실망과 궁핍함은 필요 없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실망스럽고 얼마나 궁핍한지 끝까지 경험해 보아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습니다.
아들의 길, 그 부요한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는 길로 나아오시기를 바랍니다.
거기에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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