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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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203회 작성일 2018-09-30 06:42본문
열왕기하6:10-17 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
아람 왕은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기 전에 국지전부터 계획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데 진을 치리라고 계획하기만 하면
이스라엘 왕이 그곳을 미리 경계하므로
그 때마다 아람의 군사 작전이 실패로 돌아갑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아람 왕은 궁궐 내에 이스라엘 왕과 내통하는 자가 있다고 생각 하는 중에
신복 중 하나가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침실에서 은밀히 하신 말이라도 알고 이스라엘 왕에게 고하나이다고 알려줍니다.
아람 왕은 엘리사부터 처리하기로 하고
그가 도단에 있음을 알고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 성을 에워싸게 했습니다
엘리사를 수종 드는 사환이 일찍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가 소리치며 달려왔습니다
아아 이 일을 어쩌면 좋겠는가
하며 공포감에 질려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똑같은 상황에서
엘리사는 두려워 할 일이 아니다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사람이 겁에 질리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따릅니다
나폴레옹 힐은 말하기를
두려움은 모든 이성의 판단력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자신감을 꺾어 버리고, 의욕을 없애 버리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이성과 자신감과 의욕을 제하여 버리는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 아닙니다.
디모데후서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주님은 제자들과 사람들을 만날 실 때마다 주시는 말씀이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하지 마라 내가 오히려 평안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사람은 주어진 상황에서 두려워 할 만큼 약한 존재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두려운데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음은
내가 믿는 하나님이 내가 처한 생활 가운데 함께 계시며 그리고 구원을 주십니다
예수가 그 이름이 무엇입니까
자기 백성을 두려움의 원흉인 죄 가운데 구원 할 자입니다
10-11절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의 사람이 자기에게 말하여 경계한 곳으로 사람을 보내 방비하기가 한두 번이 아닌지라
11 이러므로 아람 왕의 마음이 불안하여 그 신복들을 불러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과 내통하는 것을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하니
아람과 이스라엘의 관계 속에 엄연히 하나님은 계시며 구원을 말하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믿음의 사람만이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인식하는 삶과 그렇지 못함 삶의 차이는 너무나 큽니다
사환과 엘리사의 차이는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입니다
현실상황만 보는 눈을 가진 사람과 그 현실을 주관하는 하나님을 보는 눈의 차이 입니다
그야말로 이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현실을 무시하거나 외면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현실에서 구원을 논하면 방법이 없습니다
현실에 종이 되어야만 합니다
주어진 현실을 바라보면 그 현실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 후에 가나안을 향해 가다가 홍해 바다를 직면하여 막다른 골목에 갇힙니다
애굽 군대는 추격해서 그 거리를 좁혀오고
양 쪽은 산지로 피할 길이 없어 갇혀 버립니다
이 상황에서 죽겠다고 소리를 지르고 원망하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소리 지르지 말고 죽겠다고 하기 전에 믿음의 사람들은 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아야 합니다
출애굽기14:13-14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하나님의 구원을 보고 세상의 허상에 잡히기 말라
16-17절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17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자로 왔지만
세상을 살면서 자꾸 주어진 환경만 탓하다가
극히 부정적인 자가 되고 있습니다
나는 못한다. 나는 안 된다.
할 수 없다. 힘들다.
고통스럽다. 나는 지혜도 없다.
교육도 없다. 돈도 없다
주어진 환경에 어두운 면을 찾아보려면 끝이 없습니다
이걸 한마디로 요약하면 됩니다
내게 예수가 없구나 예수가 있으면 다 있습니다
하박국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나님이 오시면 마음에 평안과 안심을 가지고 오지만
마귀가 오면 두려움 불안을 먼저 가져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는 것을 훈련해야 되는 것입니다.
육안의 눈이 밝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인간에게 육신의 눈을 열어서 당신이 지으신 각양 오묘한 피조세계를 볼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 눈은 현실을 아무런 이해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보는 눈입니다.
이 눈은 모든 인간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육안입니다.
색깔, 모양, 크기, 깊이, 높이, 넓이, 원근을 직시하는 눈입니다.
엘리사의 사환의 육안은 아주 건강했습니다
아람 군사들이 말과 병거를 거느리고 많이 와 있다는 말입니다
지안이라고도 하는 이성적인 판단의 눈도 있어야 합니다
사물의 이치를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 혹은 상황에 따라 의지와 행동을 규정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합니다.
엘리사의 종은 이성적인 눈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 결과 자기의 선생 엘리사에게 가서 어찌하리까라고 하는 절망의 탄성을 발한 것입니다.
육안으로 보니 왜 도단의 병사보다 많고 파워도 크다는 말이니
지안으로 보니 이제 우린 죽었구나 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의 눈만 가지고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자에게는 영안을 주셨습니다
엘리사의 종은 육안과 지안으로 충분히 판단하여 하는 소리는
한마디로 이제 우리는 다 죽었다 입니다
역사 이래로 이 세상에서 들은 소리는 이제 다 죽었다는 소리입니다
이것은 이성적으로 합당한 판단입니다
오늘날 이런 이성적인 소리를 냅니다
합당한 말이지만 결국은 죽겠다
못 살겠다 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다른 관점으로 말합니다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믿음으로 보는 눈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성적인 사고와 믿음적인 사고는 언제든지 충돌 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믿음의 눈을 뜨면 됩니다
사환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제 믿음의 눈으로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한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믿음의 눈을 감고 있지 말고
하나님이 열어 주실 것이니
열어 주시기를 원하십시오
여호와께서 눈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삶의 자세가 확 바뀌고 때깔이 달라 질 것입니다
태초에 에덴동산의 인간을 뱀이 밝은 눈을 조건으로 유혹했습니다.
뱀에게 유혹되어 마침내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를 여자가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눈이 밝았습니다.
그 눈은 신령한 눈이 밝아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악의 눈이 밝아진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사물을 보는데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각도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육의 눈은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를 받을 수 없습니다.
육의 눈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자기 세계를 보게 됩니다.
창조주 하나님에게 선과 악을 결정할 권이 있습니다.
인간은 선과 악을 정할 권이 없습니다.
선악의 결정은 하나님의 일인데 인간이 그 일을 하게 되면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인간의 기준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이성의 눈은 곧 합리적인 눈입니다.
이성의 눈은 제법 똑똑한척하지만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인간이 취하는 죄를 범할 뿐입니다.
바벨탑을 만들어 하나님 위에 서있습니다
당장 그 바벨탑이 무너지고
무너지는 고통이 곧 따를 것인데
사람은 육신의 눈도 밝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 통찰력이 있는 이성의 눈이 밝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문화적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눈이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믿음의 눈이 열릴까요?
로마서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을 읽고 듣고 그 가운데서 지키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말씀으로 믿음의 눈을 가집니다
바울 사도는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눈이 먼 뒤에 사흘 만에 다시 보게 되었는데 그때 무엇이 떨어졌느냐?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졌다고 그랬습니다.
영안이 열리려면 비늘이 떨어져야 됩니다.
눈 속의 비늘은 자기만의 눈으로 콩깍지 씌어 있었습니다
툭하면 눈에 보이는 대로 살기 쉽습니다.
평생을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인간적으로만 보이는 대로 살아가는 어리석음을 청산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적인 조건들을 선택하고 있음으로 인하여 당장은 축복을 받은 것 같지만 멀지 않아 축복이 아니라 바벨론 멸망의 조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 헛 살았다 후회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 볼 때에 동서남북 어디든지 사람의 조건으로는 합당치 아니하였지만 축복의 땅이었습니다.
성도들의 축복이 동서사방에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고난이 자신의 실수나 다른 이들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라 보기보다는 믿음으로 바라보지 않음으로 오는 고통입니다
곧 인생은 말씀으로 사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먹이신 양식은 무엇이었습니까?
광야 40년 동안 하늘에서 이슬처럼 내리시는 만나를 먹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3절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을 하시고 주리셨을 때에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마4:2-4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도 시험을 받을 때 오직 말씀으로 승리하셨음을 보여줍니다.
하물며 연약한 인간들이 삶의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말씀으로 믿음의 눈이 열리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람 왕은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기 전에 국지전부터 계획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데 진을 치리라고 계획하기만 하면
이스라엘 왕이 그곳을 미리 경계하므로
그 때마다 아람의 군사 작전이 실패로 돌아갑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아람 왕은 궁궐 내에 이스라엘 왕과 내통하는 자가 있다고 생각 하는 중에
신복 중 하나가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침실에서 은밀히 하신 말이라도 알고 이스라엘 왕에게 고하나이다고 알려줍니다.
아람 왕은 엘리사부터 처리하기로 하고
그가 도단에 있음을 알고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 성을 에워싸게 했습니다
엘리사를 수종 드는 사환이 일찍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가 소리치며 달려왔습니다
아아 이 일을 어쩌면 좋겠는가
하며 공포감에 질려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똑같은 상황에서
엘리사는 두려워 할 일이 아니다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사람이 겁에 질리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따릅니다
나폴레옹 힐은 말하기를
두려움은 모든 이성의 판단력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자신감을 꺾어 버리고, 의욕을 없애 버리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이성과 자신감과 의욕을 제하여 버리는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 아닙니다.
디모데후서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주님은 제자들과 사람들을 만날 실 때마다 주시는 말씀이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하지 마라 내가 오히려 평안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사람은 주어진 상황에서 두려워 할 만큼 약한 존재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두려운데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음은
내가 믿는 하나님이 내가 처한 생활 가운데 함께 계시며 그리고 구원을 주십니다
예수가 그 이름이 무엇입니까
자기 백성을 두려움의 원흉인 죄 가운데 구원 할 자입니다
10-11절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의 사람이 자기에게 말하여 경계한 곳으로 사람을 보내 방비하기가 한두 번이 아닌지라
11 이러므로 아람 왕의 마음이 불안하여 그 신복들을 불러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과 내통하는 것을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하니
아람과 이스라엘의 관계 속에 엄연히 하나님은 계시며 구원을 말하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믿음의 사람만이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인식하는 삶과 그렇지 못함 삶의 차이는 너무나 큽니다
사환과 엘리사의 차이는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입니다
현실상황만 보는 눈을 가진 사람과 그 현실을 주관하는 하나님을 보는 눈의 차이 입니다
그야말로 이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현실을 무시하거나 외면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현실에서 구원을 논하면 방법이 없습니다
현실에 종이 되어야만 합니다
주어진 현실을 바라보면 그 현실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 후에 가나안을 향해 가다가 홍해 바다를 직면하여 막다른 골목에 갇힙니다
애굽 군대는 추격해서 그 거리를 좁혀오고
양 쪽은 산지로 피할 길이 없어 갇혀 버립니다
이 상황에서 죽겠다고 소리를 지르고 원망하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소리 지르지 말고 죽겠다고 하기 전에 믿음의 사람들은 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아야 합니다
출애굽기14:13-14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하나님의 구원을 보고 세상의 허상에 잡히기 말라
16-17절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17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자로 왔지만
세상을 살면서 자꾸 주어진 환경만 탓하다가
극히 부정적인 자가 되고 있습니다
나는 못한다. 나는 안 된다.
할 수 없다. 힘들다.
고통스럽다. 나는 지혜도 없다.
교육도 없다. 돈도 없다
주어진 환경에 어두운 면을 찾아보려면 끝이 없습니다
이걸 한마디로 요약하면 됩니다
내게 예수가 없구나 예수가 있으면 다 있습니다
하박국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나님이 오시면 마음에 평안과 안심을 가지고 오지만
마귀가 오면 두려움 불안을 먼저 가져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는 것을 훈련해야 되는 것입니다.
육안의 눈이 밝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인간에게 육신의 눈을 열어서 당신이 지으신 각양 오묘한 피조세계를 볼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 눈은 현실을 아무런 이해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보는 눈입니다.
이 눈은 모든 인간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육안입니다.
색깔, 모양, 크기, 깊이, 높이, 넓이, 원근을 직시하는 눈입니다.
엘리사의 사환의 육안은 아주 건강했습니다
아람 군사들이 말과 병거를 거느리고 많이 와 있다는 말입니다
지안이라고도 하는 이성적인 판단의 눈도 있어야 합니다
사물의 이치를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 혹은 상황에 따라 의지와 행동을 규정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합니다.
엘리사의 종은 이성적인 눈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 결과 자기의 선생 엘리사에게 가서 어찌하리까라고 하는 절망의 탄성을 발한 것입니다.
육안으로 보니 왜 도단의 병사보다 많고 파워도 크다는 말이니
지안으로 보니 이제 우린 죽었구나 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의 눈만 가지고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자에게는 영안을 주셨습니다
엘리사의 종은 육안과 지안으로 충분히 판단하여 하는 소리는
한마디로 이제 우리는 다 죽었다 입니다
역사 이래로 이 세상에서 들은 소리는 이제 다 죽었다는 소리입니다
이것은 이성적으로 합당한 판단입니다
오늘날 이런 이성적인 소리를 냅니다
합당한 말이지만 결국은 죽겠다
못 살겠다 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다른 관점으로 말합니다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믿음으로 보는 눈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성적인 사고와 믿음적인 사고는 언제든지 충돌 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믿음의 눈을 뜨면 됩니다
사환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제 믿음의 눈으로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한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믿음의 눈을 감고 있지 말고
하나님이 열어 주실 것이니
열어 주시기를 원하십시오
여호와께서 눈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삶의 자세가 확 바뀌고 때깔이 달라 질 것입니다
태초에 에덴동산의 인간을 뱀이 밝은 눈을 조건으로 유혹했습니다.
뱀에게 유혹되어 마침내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를 여자가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눈이 밝았습니다.
그 눈은 신령한 눈이 밝아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악의 눈이 밝아진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사물을 보는데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각도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육의 눈은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를 받을 수 없습니다.
육의 눈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자기 세계를 보게 됩니다.
창조주 하나님에게 선과 악을 결정할 권이 있습니다.
인간은 선과 악을 정할 권이 없습니다.
선악의 결정은 하나님의 일인데 인간이 그 일을 하게 되면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인간의 기준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이성의 눈은 곧 합리적인 눈입니다.
이성의 눈은 제법 똑똑한척하지만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인간이 취하는 죄를 범할 뿐입니다.
바벨탑을 만들어 하나님 위에 서있습니다
당장 그 바벨탑이 무너지고
무너지는 고통이 곧 따를 것인데
사람은 육신의 눈도 밝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 통찰력이 있는 이성의 눈이 밝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문화적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눈이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믿음의 눈이 열릴까요?
로마서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을 읽고 듣고 그 가운데서 지키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말씀으로 믿음의 눈을 가집니다
바울 사도는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눈이 먼 뒤에 사흘 만에 다시 보게 되었는데 그때 무엇이 떨어졌느냐?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졌다고 그랬습니다.
영안이 열리려면 비늘이 떨어져야 됩니다.
눈 속의 비늘은 자기만의 눈으로 콩깍지 씌어 있었습니다
툭하면 눈에 보이는 대로 살기 쉽습니다.
평생을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인간적으로만 보이는 대로 살아가는 어리석음을 청산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적인 조건들을 선택하고 있음으로 인하여 당장은 축복을 받은 것 같지만 멀지 않아 축복이 아니라 바벨론 멸망의 조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 헛 살았다 후회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 볼 때에 동서남북 어디든지 사람의 조건으로는 합당치 아니하였지만 축복의 땅이었습니다.
성도들의 축복이 동서사방에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고난이 자신의 실수나 다른 이들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라 보기보다는 믿음으로 바라보지 않음으로 오는 고통입니다
곧 인생은 말씀으로 사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먹이신 양식은 무엇이었습니까?
광야 40년 동안 하늘에서 이슬처럼 내리시는 만나를 먹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3절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을 하시고 주리셨을 때에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마4:2-4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도 시험을 받을 때 오직 말씀으로 승리하셨음을 보여줍니다.
하물며 연약한 인간들이 삶의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말씀으로 믿음의 눈이 열리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