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새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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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172회 작성일 2019-01-13 13:37본문
로마서14:6-9 바울의 새 출발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두 가지 철학이 있습니다.
첫째는 살아도 돈, 죽어도 돈이라는 철학입니다
또 하나는 살아도 자식, 죽어도 자식이라는 철학입니다
1956년 남미 에콰도르의 아마존 정글 유역의 와오다니 족 선교를 위해 아마존 정글에서 숨진 다섯 명의 미국인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창끝이 이들 선교사들의 추모 50주년을 기념해 미국에서 제작되었습니다
2005년에 된 영화는 숨진 다섯 명의 미국인 선교사를 대신해 아마존 원주민들을 찾아가 희생으로 돌보며, 끝내 그들이 하나님을 영접하게 한 5명의 선교사 부인과 그 가족들의 감동적인 희생의 실화를 담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폭력적인 부족으로 알려진 아마존 정글 와오다니 부족에 네이트 세인트, 피트 플레밍, 짐 엘리엇, 에드 맥컬리, 로저 유데리안 등 5명의 젊은 미국인 선교사들이 찾아갑니다
경비행기를 타고 와오다니 족 마을을 발견한 선교사들은 사랑의 바구니를 내려
그들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경비행기를 아마존 정글 쿠라라이 강가에 착륙시킨다.
와오다니 족에게 들려줄 말을 되뇌면서……. 부아비아 우늠부아(나는 당신의 친구입니다)
그러나 곤경에 처한 와오다니 족 중 한 명은 민카야니에게 모래사장에 도착한 이방인들이
그들 부족 여자 한 명을 납치하여 살해했다고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한다.
민카야니와 그의 부족 전사들은 단번에 모래사장으로 달려가 다섯 명의 미국 선교사들을 창으로 찔러 죽인다.
그런데 그들의 손에는 권총이 있었지만 아무도 이들에게 총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3년 뒤 순교자 부인들은 자신들의 남편이 미처 증거하지 못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다시 정글로 들어간다.
원주민 민카야니 내가 네 아버지를 죽였다
이 소리를 들은 네이트 세인트의 아들인 스티브 세인트는 정글서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고 말하는 민카야니에게 그 아무도 내 아버지를 해치지 않았습니다.
내 아버지는 그 분이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내어준 겁입니다라고 말하고
자신에게 복수를 할 줄 알았던 스티브는 오히려 그들과 살면서 아버지를 죽인 민카야니의 양자가 된다.
믿기지 않지만 오히려 이 공포스러운 곳을 죽은 선교사들의 가족들이 또 찾아가 원수인 부족들의 가족과 친구가 되어 줌으로 서 와오다니 족이 점차 폭력성을 줄여가며 평화롭게 살아갈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영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복음을 위하여 자신들의 전부를 기꺼이 드렸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다섯 명의 젊은 미국인 선교사들은 죽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고
그들의 가족들은 또 다시 죽음의 장소를 방문한 것은 그들이 죽어야만 하는 이유를 반드시 성사시키기 위하여 그 지역을 방문하였습니다
무엇을 위하느냐?
무엇을 위하여 사느냐
그리고 죽느냐입니다
본문은 당대의 최고의 시민인 로마인들을 향해 바울이 외치는 소리는
아니 자신에게 향하여 생사를 두고 크게 외치는 말입니다
7-8절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내 주위에는 있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항상 생사의 갈림 길이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잘 살아야 하기도 하고
또 한편 잘 죽기도 해야 합니다
잘 살길도 찾아야 하지만
잘 죽을 길도 찾아야 합니다
저는 요사이는 이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어떻게 남은 여생을 잘 살아야 할까도 있지만
어떻게 잘 죽어야 할까도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사는 것이나 죽은 것이나
별개가 아니고 하나입니다
잘 사는 사람이 잘 죽을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느냐
내 주어진 범사의 일생이 다 주를 위함입니다
6절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예수가 보이지 않으니 모든 주체는 나입니다
나 외에는 없습니다
예수를 만나고는 나가 아니라 이제 그 주체가 예수로 바뀝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자를 가리켜 그리스도인 즉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제 예수의 사람은 그 주체가 나가 아니라 예수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16:24-2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자기를 부인하고는 나는 나다가 아닌 나는 내가 아니다
내 모습이 내가 아니면 나는 누구란 말입니까?’
나는 주를 위해 살고 주를 위해 죽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내 삶은 소유 의식이 분명한 삶입니다.
8절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
인생은 누구의 것입니까?
주의 것입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 이라고 더 이상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너의 인생은 너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다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초대 교회 성도들은 분명한 소유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자신의 소유주를 위해 기꺼이 생명도 드렸습니다.
당시에 나라의 왕이 나라의 주인 이였습니다.
그래서 왕을 주라고 불렀습니다.
영어로는 Lord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알고 보니 또 진정한 주인이 나타난 거예요.
Jesus Christ My Lord
이것은 당시의 왕권에 대한 도전입니다.
김씨 왕가에 도전하면 고사포로 날라 버린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번에 대통령 신년 기자 질문에 어떤 이예림이라는 여기자가 당신에게 이렇게 경제를 밀고 나가는 힘이 어디서 나오느냐 라고 물었다고
감히 대통령에게 이런 사가지 없는 질문을 했다고 뜨들고 있지 않습니까
대통령도 얼굴이 상당히 기뿐 나쁘다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그리스도인을 잡아 죽이는데 어떤 죄목으로 잡아 죽였냐면,
예수님을 믿는 다는 죄목으로 잡아가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었습니다.
국가에 대한 반역죄로 잡아 가두고, 사자의 밥이 되게 하고, 단두대에 목을 자르고, 화형에 살라 죽였던 것이 다 반역죄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예수 탄생 당시 로마의 분봉왕 헤롯왕이 동방박사에게 유대인의 왕의 탄생을 듣고
베들레헴 근처의 2살 이하 사내들을 다 살해 하지 않았습니까
당시에 서머나 교회 속사도신 폴리캅은 화형으로 순교 당하기 전에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주라고 한다면 당신은 살아 날 수 있다
이미 내 몸과 영혼의 주인은 주님이시기에, 가이사를 향하여 주라고 부를 이유가 없었습니다
폴리캅은 기꺼이 죽어도 가이사를 향하여 주라고 부를 이유가 없었습니다
내 평생 70년 동안 내 주가 되셨는데 내가 어찌 그를 부인 할까
물론 사도 바울 역시 주를 드러내다가 단두대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생사도 주를 위함에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가 할 수 없는 영역을
나를 위한 삶으로 산다면 헛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나를 위하여 살고 나를 위하여 죽지만 그것은 헛된 것입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그 생사의 수고가 너무나도 헛되고 말았습니다
누가복음12:16-21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구약 역대상하에는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이 주를 위한 영적 관계성을 기록하고 있는데
초대왕 사울을 소개하는데
간략하게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그 아들들과 싸우다가 죽었다고 하고 끝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빼버리면 사울은 다윗가 보다 훨씬 나은 가정입니다
다윗의 아들들은 집안에서 간음, 왕위의 자리를 두고 쟁투, 심지어는 아비 다윗의 왕좌를 노리고 아비의 목을 노리는 쿠데타까지 아들들이 서슴지 않았습니다
사울의 아들들은 아버지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함께 전사하는 부자지간의 의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다윗은 그의 이러한 삶에서도 모두가 주를 위한 삶으로 살아 왔고
사울은 그 왕권을 생애를 자신을 위함이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은 바꿔졌습니다
갈라디아서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주께서 주가 되시기에
더 이상 나를 위한 삶은 의미를 잃어 버렸습니다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잘 죽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For none of us lives to himself alone :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none of us dies to himself alone. :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none(=no+명사) 아무도~않다, 아무것도~않다. alone 혼자서, 홀로.
여기서 자기를 위하여 살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다는 표현은 남이야 뭐라 하든 자기 생각대로 살다가 죽는다는 뜻이다.
마치 이 세상에 자기 혼자만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남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것 말이다.
그러나 이 구절은 우리 중에는 즉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이런 사람들이 없다고 말씀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사는 사람이기에 남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는 가운데 남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내 삶을 내가 살아가는데 누가 상관하겠느냐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잘못이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If we live : 우리가 살아도
we live to the Lord : 주를 위하여 살고
if we die : 죽어도
we die to the Lord. : 주를 위하여 죽나니
So : 그러므로
whether we live or die : 사나 죽으나
we belong to the Lord. :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whether A or B : A든지 B든지. whether ~인지 어떤지, ~이든지(아니든지). belong to ~에 속하다.
주를 위해 살고 주를 위해 죽는 것이 설사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주님께서 우리를 보고 계시기 때문이다.
주를 위하여 하는 일이라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고 무슨 일이나 주를 위하여 하는 일이라면 그것으로 족하다.
왜 내가 살아 있는 것과 왜 내가 죽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자가 주를 위해 사는 자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주를 위해 사는 자입니다.
내가 가는 최종 목적지가 어딘지 아는 자가 주를 위해 사는 자입니다.
나의 삶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음을 아는 자입니다
빌립보서3:13-14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3)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두 가지 철학이 있습니다.
첫째는 살아도 돈, 죽어도 돈이라는 철학입니다
또 하나는 살아도 자식, 죽어도 자식이라는 철학입니다
1956년 남미 에콰도르의 아마존 정글 유역의 와오다니 족 선교를 위해 아마존 정글에서 숨진 다섯 명의 미국인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창끝이 이들 선교사들의 추모 50주년을 기념해 미국에서 제작되었습니다
2005년에 된 영화는 숨진 다섯 명의 미국인 선교사를 대신해 아마존 원주민들을 찾아가 희생으로 돌보며, 끝내 그들이 하나님을 영접하게 한 5명의 선교사 부인과 그 가족들의 감동적인 희생의 실화를 담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폭력적인 부족으로 알려진 아마존 정글 와오다니 부족에 네이트 세인트, 피트 플레밍, 짐 엘리엇, 에드 맥컬리, 로저 유데리안 등 5명의 젊은 미국인 선교사들이 찾아갑니다
경비행기를 타고 와오다니 족 마을을 발견한 선교사들은 사랑의 바구니를 내려
그들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경비행기를 아마존 정글 쿠라라이 강가에 착륙시킨다.
와오다니 족에게 들려줄 말을 되뇌면서……. 부아비아 우늠부아(나는 당신의 친구입니다)
그러나 곤경에 처한 와오다니 족 중 한 명은 민카야니에게 모래사장에 도착한 이방인들이
그들 부족 여자 한 명을 납치하여 살해했다고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한다.
민카야니와 그의 부족 전사들은 단번에 모래사장으로 달려가 다섯 명의 미국 선교사들을 창으로 찔러 죽인다.
그런데 그들의 손에는 권총이 있었지만 아무도 이들에게 총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3년 뒤 순교자 부인들은 자신들의 남편이 미처 증거하지 못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다시 정글로 들어간다.
원주민 민카야니 내가 네 아버지를 죽였다
이 소리를 들은 네이트 세인트의 아들인 스티브 세인트는 정글서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고 말하는 민카야니에게 그 아무도 내 아버지를 해치지 않았습니다.
내 아버지는 그 분이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내어준 겁입니다라고 말하고
자신에게 복수를 할 줄 알았던 스티브는 오히려 그들과 살면서 아버지를 죽인 민카야니의 양자가 된다.
믿기지 않지만 오히려 이 공포스러운 곳을 죽은 선교사들의 가족들이 또 찾아가 원수인 부족들의 가족과 친구가 되어 줌으로 서 와오다니 족이 점차 폭력성을 줄여가며 평화롭게 살아갈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영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복음을 위하여 자신들의 전부를 기꺼이 드렸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다섯 명의 젊은 미국인 선교사들은 죽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고
그들의 가족들은 또 다시 죽음의 장소를 방문한 것은 그들이 죽어야만 하는 이유를 반드시 성사시키기 위하여 그 지역을 방문하였습니다
무엇을 위하느냐?
무엇을 위하여 사느냐
그리고 죽느냐입니다
본문은 당대의 최고의 시민인 로마인들을 향해 바울이 외치는 소리는
아니 자신에게 향하여 생사를 두고 크게 외치는 말입니다
7-8절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내 주위에는 있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항상 생사의 갈림 길이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잘 살아야 하기도 하고
또 한편 잘 죽기도 해야 합니다
잘 살길도 찾아야 하지만
잘 죽을 길도 찾아야 합니다
저는 요사이는 이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어떻게 남은 여생을 잘 살아야 할까도 있지만
어떻게 잘 죽어야 할까도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사는 것이나 죽은 것이나
별개가 아니고 하나입니다
잘 사는 사람이 잘 죽을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느냐
내 주어진 범사의 일생이 다 주를 위함입니다
6절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예수가 보이지 않으니 모든 주체는 나입니다
나 외에는 없습니다
예수를 만나고는 나가 아니라 이제 그 주체가 예수로 바뀝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자를 가리켜 그리스도인 즉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제 예수의 사람은 그 주체가 나가 아니라 예수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16:24-2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자기를 부인하고는 나는 나다가 아닌 나는 내가 아니다
내 모습이 내가 아니면 나는 누구란 말입니까?’
나는 주를 위해 살고 주를 위해 죽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내 삶은 소유 의식이 분명한 삶입니다.
8절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
인생은 누구의 것입니까?
주의 것입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 이라고 더 이상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너의 인생은 너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다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초대 교회 성도들은 분명한 소유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자신의 소유주를 위해 기꺼이 생명도 드렸습니다.
당시에 나라의 왕이 나라의 주인 이였습니다.
그래서 왕을 주라고 불렀습니다.
영어로는 Lord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알고 보니 또 진정한 주인이 나타난 거예요.
Jesus Christ My Lord
이것은 당시의 왕권에 대한 도전입니다.
김씨 왕가에 도전하면 고사포로 날라 버린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번에 대통령 신년 기자 질문에 어떤 이예림이라는 여기자가 당신에게 이렇게 경제를 밀고 나가는 힘이 어디서 나오느냐 라고 물었다고
감히 대통령에게 이런 사가지 없는 질문을 했다고 뜨들고 있지 않습니까
대통령도 얼굴이 상당히 기뿐 나쁘다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그리스도인을 잡아 죽이는데 어떤 죄목으로 잡아 죽였냐면,
예수님을 믿는 다는 죄목으로 잡아가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었습니다.
국가에 대한 반역죄로 잡아 가두고, 사자의 밥이 되게 하고, 단두대에 목을 자르고, 화형에 살라 죽였던 것이 다 반역죄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예수 탄생 당시 로마의 분봉왕 헤롯왕이 동방박사에게 유대인의 왕의 탄생을 듣고
베들레헴 근처의 2살 이하 사내들을 다 살해 하지 않았습니까
당시에 서머나 교회 속사도신 폴리캅은 화형으로 순교 당하기 전에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주라고 한다면 당신은 살아 날 수 있다
이미 내 몸과 영혼의 주인은 주님이시기에, 가이사를 향하여 주라고 부를 이유가 없었습니다
폴리캅은 기꺼이 죽어도 가이사를 향하여 주라고 부를 이유가 없었습니다
내 평생 70년 동안 내 주가 되셨는데 내가 어찌 그를 부인 할까
물론 사도 바울 역시 주를 드러내다가 단두대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생사도 주를 위함에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가 할 수 없는 영역을
나를 위한 삶으로 산다면 헛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나를 위하여 살고 나를 위하여 죽지만 그것은 헛된 것입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그 생사의 수고가 너무나도 헛되고 말았습니다
누가복음12:16-21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구약 역대상하에는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이 주를 위한 영적 관계성을 기록하고 있는데
초대왕 사울을 소개하는데
간략하게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그 아들들과 싸우다가 죽었다고 하고 끝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빼버리면 사울은 다윗가 보다 훨씬 나은 가정입니다
다윗의 아들들은 집안에서 간음, 왕위의 자리를 두고 쟁투, 심지어는 아비 다윗의 왕좌를 노리고 아비의 목을 노리는 쿠데타까지 아들들이 서슴지 않았습니다
사울의 아들들은 아버지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함께 전사하는 부자지간의 의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다윗은 그의 이러한 삶에서도 모두가 주를 위한 삶으로 살아 왔고
사울은 그 왕권을 생애를 자신을 위함이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은 바꿔졌습니다
갈라디아서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주께서 주가 되시기에
더 이상 나를 위한 삶은 의미를 잃어 버렸습니다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잘 죽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For none of us lives to himself alone :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none of us dies to himself alone. :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none(=no+명사) 아무도~않다, 아무것도~않다. alone 혼자서, 홀로.
여기서 자기를 위하여 살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다는 표현은 남이야 뭐라 하든 자기 생각대로 살다가 죽는다는 뜻이다.
마치 이 세상에 자기 혼자만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남을 의식하지 않고 사는 것 말이다.
그러나 이 구절은 우리 중에는 즉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이런 사람들이 없다고 말씀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사는 사람이기에 남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는 가운데 남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내 삶을 내가 살아가는데 누가 상관하겠느냐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잘못이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If we live : 우리가 살아도
we live to the Lord : 주를 위하여 살고
if we die : 죽어도
we die to the Lord. : 주를 위하여 죽나니
So : 그러므로
whether we live or die : 사나 죽으나
we belong to the Lord. :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whether A or B : A든지 B든지. whether ~인지 어떤지, ~이든지(아니든지). belong to ~에 속하다.
주를 위해 살고 주를 위해 죽는 것이 설사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주님께서 우리를 보고 계시기 때문이다.
주를 위하여 하는 일이라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고 무슨 일이나 주를 위하여 하는 일이라면 그것으로 족하다.
왜 내가 살아 있는 것과 왜 내가 죽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자가 주를 위해 사는 자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주를 위해 사는 자입니다.
내가 가는 최종 목적지가 어딘지 아는 자가 주를 위해 사는 자입니다.
나의 삶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음을 아는 자입니다
빌립보서3:13-14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3)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