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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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159회 작성일 2019-03-10 09:55본문
마태복음11:28-30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힘들어 하지 않는 사람이 없어요
과거에도 그러했지만 시대가 갈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도스토엡스키는 죄인에게는 산다는 것 그 자체가 수고로운 짐이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인생은 70이요 강건하면 80이지만 그 자체는 수고와 슬픔이라 했습니다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우리 인생을 향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쉬게 해 주겠다고 합니다
계속 쉬는 자에게 쉼은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쉼이란 수고가 있기 때문에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일을 많이 하고 짐도 많이 지고 있는데
요사이는 나이든 분도 힘드시지만 청년들도 엄청 힘들고 유치원 아이들도 나름 힘듭니다
힘든 만큼 합한 쉼이 없습니다
일을 나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입니다
많이 수고 하는 것 나쁜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수용한 만큼 따르는 안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게 슬픈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요한복음5: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그리고 하나님도 쉬시고
창세기2:2-3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예수님도 쉬셨습니다
마가복음4: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예수님은 쉼의 모범이십니다.
세상의 불안과, 풍랑과, 고민 가운데서도 편히 쉬시는 평안을 우리 주님은 누리고 계셨습니다.
이제 그 주님의 쉼이 필요합니다
인간 스스로 수고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휴식이라는 베케이션(Vacation)은 비울 때(Vacate) 할 때 얻어 지는 것입니다
나를 비우고 예수로 채우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런데 내 스스로 쉼을 얻기 위하다 보니
그냥 쉼이 없는 나만 가득차 있을 뿐입니다
자신이 감당이 되지 않으니 여러 가지
내 인격에 내 스스로 흠을 가져 와 나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열등감에 사로잡힙니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을 부적합하다고 여깁니다
늘 자신에게 부정적입니다
나는 좋지 못해 나는 어떤 것도 해낼 수가 없어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 알아주지 않아 왕따야
내가 손대는 것마다 잘 못 되었거든 이런 말을 늘어놓는 사람들이다.
열등감은 패배감과 실패 감으로 병들어 있다.
이 무거운 열등감 여기에서 벗어 날 수 있는
자신의 존재감을 얻을 수 있음은
그 누구도 벗겨 주지 못하고 예수님이 벗어 주실 것입니다
완벽주의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이다.
항상 완벽을 찾아다니고 항상 애쓰지만 항상 죄 의식을 느끼며 꼭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의식 속에 빠져 산다.
나는 이것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나는 저것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내가 좀 더 잘해야 되는데
계속 올라가고 싶지만 뒤만 돌아보는 결코 목표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도 율법의 하나님으로 여기고 구원에 부정적입니다
이 짐을 벗을 수 있음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신경과민
지나친 예민감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늘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으려고 하지만 오히려 인정받지 못하는 경험을 더 많이 하게 된다.
그 결과 마음속 깊은 곳에 상처를 많이 받는다.
모두 자신을 인정해주길 요구한다.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이 짐도 예수님이 벗어 주실 것입니다
두려움
공포 두려움으로 가득 찬 감정의 사람들도 있다.
만사를 의심과 부정으로 봅니다
남을 용서치 못함
죄책감,
원망하는 마음, 애쓰며 갈등하는 것, 근심하는 마음
이게 다 내 스스로 인생의 짐을 지고 간 결과물입니다
감당하지도 못하면서 내 육신으로 지고 가려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삶의 수고가 있고 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이 땅에 사는 동안은 짐을 지고 쉬지 못합니다.
이 짐을 내가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벗어야 쉼이 있습니다.
이 짐은 예수님만이 벗겨주실 수가 있습니다.
수고하고 라는 말은 사람은 스스로 많은 일을 하므로 계속해서 피곤에 지친 상태를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피곤하고 지치는 것은 자기 스스로가 만든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가 너무 많은 일을 해서 지친 것입니다.
우리 부모 세대 그리고 지금의 어른들 역시 일만해서 쉼을 어떻게 하는지를 모릅니다
무거운 짐 진 자라는 말은 타인에 의해 무거운 짐을 지고 지쳐있는 자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타인에 의해서 마지못해 억지로 진 짐들을 너무나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내 짐을 벗고 예수가 지워주는 짐을 지자
29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단순히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55: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예수님은 단순히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런 대가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돈 없는 자도 오라 누구든지 오라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께 나아오지 못하는가
예수께 나아오면 또 새로운 짐을 하나 더 지은 것으로 여깁니다
예수께로 오면 짐을 지워주십니다
그러나 이 짐은 내 스스로 지고 있는 짐과는 다릅니다
세상의 짐을 가볍게 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를 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교회에서도 섬김을 짐으로 여깁니다
톨스토이는 어렸을 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소년 시절에 신앙을 떠나갔습니다.
그의 나이 55세가 되었을 때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나의 지나간 55년간 살아 오는 동안 내 인생의 최초의 15년간의 소년기를 제외하고는 나는 안식을 경험하지 못했다.
내가 18세 되던 나이 내 친구는 나에게 찾아와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고 나를 설득했다.
나는 그 말이 진리하고 생각했다. 심지어 종교는 속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나이 55세, 이제 나는 내가 버린 어머니의 품과 같은 신앙의 품으로 돌아온다.
나는 종교로 돌아온 것이 아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 왔다.
그리고 예수 안에서 나는 다시 참된 안식을 발견했다.
진정한 쉼은 마음에서부터입니다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의 마음을 본 받아야 곧 예수를 배워야 합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라는 말은 유대인 사회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의 훈육관계를 의미하며 관용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멍에란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 짐승이 같이 짐으로 혼자 지는 짐을 나눠 가볍게 합니다.
멍에란 둘이 하나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멍에를 나와 멍에를 함께 매자라고 하십니다.
또 예수님은 내 멍에는 쉽고 가벼움 이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예수님의 멍에는 쉽고 가볍습니까?
예수님께서 힘든 것을 다 지고 나는 그냥 예수님께 걸치고만 있으니 가벼울 수밖에 없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농부들은 밭을 간 경험이 없는 소를 훈련할 때 경험 많은 소에다 마구를 달아 멍에를 지도록 하였습니다.
경험이 있는 소는 마구를 단 끝을 단단히 하여 짐을 더 실리게 하였습니다.
경험이 없는 소는 느슨하게 멍에를 매고 있기에 같이 걸어가지만 짐이 가벼웠습니다.
이사야53:1-6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휴일(holiday)은 원래 성스러운 날(holy day)이란 뜻입니다.
이 날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모습을 되찾는 성스러운 날입니다.
쉼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거룩한 일입니다.
주후 321년, 최초의 그리스도인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가 주의 날인 일요일을 쉼의 날로 공표하였습니다.
주의 날을 쉼의 날로 정할 수 있는 것은 쉼의 의미를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주님께 나아와 예배하는 것이 안식하는 것임을 알아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독수리와 참새가 나는 방식이 다릅니다
참새는 오직 자신의 힘으로만 날기 때문에 계속해서 날개를 흔들어야 합니다.
반면에 독수리는 바람의 기류를 타며 납니다.
그래서 처음 얼마 동안만 기류를 타기 위해 힘을 쓴 후에, 기류에 몸을 맡기며 우아하게 비행합니다.
참새는 날개 치며 공중에 떠 있는 모습조차 안쓰럽게 보입니다.
하지만 독수리가 활공하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낼 만큼 아름답습니다.
이사야40:28-31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나비는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태양에서 얻습니다.
반면에 나방은 자기 힘으로 에너지를 얻습니다.
나비는 아침이 되면 가만히 앉아서 젖은 날개를 말리며 햇볕을 받습니다.
그러고 나면 힘을 얻어 우아한 자태로 하늘을 날아오릅니다.
하지만 나방은 오직 자기 힘으로 날기에, 날기 한참 전부터 힘을 다해 파닥거리며 에너지를 충전해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하나님을 아지만 그분의 무한한 자원과 힘을 공급받지 못하고 오직 자신의 힘으로만 살아가는 사람은, 사는 것 자체가 힘듭니다.
무슨 일을 당하든지 혼자 힘으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해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쉽게 절망합니다.
이제 예수께서 베풀어 주시는 힘으로 공급 받아
그 안에서 안식을 얻으시는 참된 쉼이 있는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힘들어 하지 않는 사람이 없어요
과거에도 그러했지만 시대가 갈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도스토엡스키는 죄인에게는 산다는 것 그 자체가 수고로운 짐이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인생은 70이요 강건하면 80이지만 그 자체는 수고와 슬픔이라 했습니다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우리 인생을 향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쉬게 해 주겠다고 합니다
계속 쉬는 자에게 쉼은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쉼이란 수고가 있기 때문에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일을 많이 하고 짐도 많이 지고 있는데
요사이는 나이든 분도 힘드시지만 청년들도 엄청 힘들고 유치원 아이들도 나름 힘듭니다
힘든 만큼 합한 쉼이 없습니다
일을 나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입니다
많이 수고 하는 것 나쁜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수용한 만큼 따르는 안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게 슬픈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도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요한복음5: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그리고 하나님도 쉬시고
창세기2:2-3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예수님도 쉬셨습니다
마가복음4: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예수님은 쉼의 모범이십니다.
세상의 불안과, 풍랑과, 고민 가운데서도 편히 쉬시는 평안을 우리 주님은 누리고 계셨습니다.
이제 그 주님의 쉼이 필요합니다
인간 스스로 수고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휴식이라는 베케이션(Vacation)은 비울 때(Vacate) 할 때 얻어 지는 것입니다
나를 비우고 예수로 채우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런데 내 스스로 쉼을 얻기 위하다 보니
그냥 쉼이 없는 나만 가득차 있을 뿐입니다
자신이 감당이 되지 않으니 여러 가지
내 인격에 내 스스로 흠을 가져 와 나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열등감에 사로잡힙니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을 부적합하다고 여깁니다
늘 자신에게 부정적입니다
나는 좋지 못해 나는 어떤 것도 해낼 수가 없어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 알아주지 않아 왕따야
내가 손대는 것마다 잘 못 되었거든 이런 말을 늘어놓는 사람들이다.
열등감은 패배감과 실패 감으로 병들어 있다.
이 무거운 열등감 여기에서 벗어 날 수 있는
자신의 존재감을 얻을 수 있음은
그 누구도 벗겨 주지 못하고 예수님이 벗어 주실 것입니다
완벽주의
또 하나의 무거운 짐이다.
항상 완벽을 찾아다니고 항상 애쓰지만 항상 죄 의식을 느끼며 꼭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의식 속에 빠져 산다.
나는 이것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나는 저것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내가 좀 더 잘해야 되는데
계속 올라가고 싶지만 뒤만 돌아보는 결코 목표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도 율법의 하나님으로 여기고 구원에 부정적입니다
이 짐을 벗을 수 있음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신경과민
지나친 예민감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늘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으려고 하지만 오히려 인정받지 못하는 경험을 더 많이 하게 된다.
그 결과 마음속 깊은 곳에 상처를 많이 받는다.
모두 자신을 인정해주길 요구한다.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이 짐도 예수님이 벗어 주실 것입니다
두려움
공포 두려움으로 가득 찬 감정의 사람들도 있다.
만사를 의심과 부정으로 봅니다
남을 용서치 못함
죄책감,
원망하는 마음, 애쓰며 갈등하는 것, 근심하는 마음
이게 다 내 스스로 인생의 짐을 지고 간 결과물입니다
감당하지도 못하면서 내 육신으로 지고 가려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삶의 수고가 있고 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이 땅에 사는 동안은 짐을 지고 쉬지 못합니다.
이 짐을 내가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벗어야 쉼이 있습니다.
이 짐은 예수님만이 벗겨주실 수가 있습니다.
수고하고 라는 말은 사람은 스스로 많은 일을 하므로 계속해서 피곤에 지친 상태를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피곤하고 지치는 것은 자기 스스로가 만든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가 너무 많은 일을 해서 지친 것입니다.
우리 부모 세대 그리고 지금의 어른들 역시 일만해서 쉼을 어떻게 하는지를 모릅니다
무거운 짐 진 자라는 말은 타인에 의해 무거운 짐을 지고 지쳐있는 자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타인에 의해서 마지못해 억지로 진 짐들을 너무나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내 짐을 벗고 예수가 지워주는 짐을 지자
29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단순히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55: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예수님은 단순히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런 대가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돈 없는 자도 오라 누구든지 오라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께 나아오지 못하는가
예수께 나아오면 또 새로운 짐을 하나 더 지은 것으로 여깁니다
예수께로 오면 짐을 지워주십니다
그러나 이 짐은 내 스스로 지고 있는 짐과는 다릅니다
세상의 짐을 가볍게 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를 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교회에서도 섬김을 짐으로 여깁니다
톨스토이는 어렸을 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소년 시절에 신앙을 떠나갔습니다.
그의 나이 55세가 되었을 때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나의 지나간 55년간 살아 오는 동안 내 인생의 최초의 15년간의 소년기를 제외하고는 나는 안식을 경험하지 못했다.
내가 18세 되던 나이 내 친구는 나에게 찾아와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고 나를 설득했다.
나는 그 말이 진리하고 생각했다. 심지어 종교는 속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나이 55세, 이제 나는 내가 버린 어머니의 품과 같은 신앙의 품으로 돌아온다.
나는 종교로 돌아온 것이 아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 왔다.
그리고 예수 안에서 나는 다시 참된 안식을 발견했다.
진정한 쉼은 마음에서부터입니다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의 마음을 본 받아야 곧 예수를 배워야 합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라는 말은 유대인 사회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의 훈육관계를 의미하며 관용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멍에란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 짐승이 같이 짐으로 혼자 지는 짐을 나눠 가볍게 합니다.
멍에란 둘이 하나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멍에를 나와 멍에를 함께 매자라고 하십니다.
또 예수님은 내 멍에는 쉽고 가벼움 이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예수님의 멍에는 쉽고 가볍습니까?
예수님께서 힘든 것을 다 지고 나는 그냥 예수님께 걸치고만 있으니 가벼울 수밖에 없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농부들은 밭을 간 경험이 없는 소를 훈련할 때 경험 많은 소에다 마구를 달아 멍에를 지도록 하였습니다.
경험이 있는 소는 마구를 단 끝을 단단히 하여 짐을 더 실리게 하였습니다.
경험이 없는 소는 느슨하게 멍에를 매고 있기에 같이 걸어가지만 짐이 가벼웠습니다.
이사야53:1-6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휴일(holiday)은 원래 성스러운 날(holy day)이란 뜻입니다.
이 날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모습을 되찾는 성스러운 날입니다.
쉼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거룩한 일입니다.
주후 321년, 최초의 그리스도인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가 주의 날인 일요일을 쉼의 날로 공표하였습니다.
주의 날을 쉼의 날로 정할 수 있는 것은 쉼의 의미를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주님께 나아와 예배하는 것이 안식하는 것임을 알아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독수리와 참새가 나는 방식이 다릅니다
참새는 오직 자신의 힘으로만 날기 때문에 계속해서 날개를 흔들어야 합니다.
반면에 독수리는 바람의 기류를 타며 납니다.
그래서 처음 얼마 동안만 기류를 타기 위해 힘을 쓴 후에, 기류에 몸을 맡기며 우아하게 비행합니다.
참새는 날개 치며 공중에 떠 있는 모습조차 안쓰럽게 보입니다.
하지만 독수리가 활공하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낼 만큼 아름답습니다.
이사야40:28-31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나비는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태양에서 얻습니다.
반면에 나방은 자기 힘으로 에너지를 얻습니다.
나비는 아침이 되면 가만히 앉아서 젖은 날개를 말리며 햇볕을 받습니다.
그러고 나면 힘을 얻어 우아한 자태로 하늘을 날아오릅니다.
하지만 나방은 오직 자기 힘으로 날기에, 날기 한참 전부터 힘을 다해 파닥거리며 에너지를 충전해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하나님을 아지만 그분의 무한한 자원과 힘을 공급받지 못하고 오직 자신의 힘으로만 살아가는 사람은, 사는 것 자체가 힘듭니다.
무슨 일을 당하든지 혼자 힘으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해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쉽게 절망합니다.
이제 예수께서 베풀어 주시는 힘으로 공급 받아
그 안에서 안식을 얻으시는 참된 쉼이 있는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