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 받을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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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147회 작성일 2019-05-05 10:06본문
마가복음10:13-16 축복 받을 아이들
한창 사랑을 받으며 즐거운 인생을 펼칠 소녀아이가 비명에 갔습니다
이건 우리 사회의 문제이지만
오늘날 모든 어른들의 문제입니다
30대 계부와 친엄마가 12살 된 중학생 딸을 살해하고 시신을 저수지에 버려 사회적 공분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무속인 이었던 친모와 계부가 소녀 A양을 지속해서 학대하고 무당으로 키우려 했다
평소에 무당 교육 한다며 학교도 제대로 안 보내
혹시 아이 죽음을 볼 때에 그들만의 종교의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친모는 세 번의 결혼을 했는데 첫 번째 남편 사이에 자녀가 있었지만 이혼을 했다.
또 두 번째 남편과 결혼해서 이번에 숨진 A(12)양과 또 남동생 두 자녀를 낳았다고
두 번째 남편과 이혼하고 A양을 자신이 키우고 아들은 친부가 키우기로 했다고 알려졌다.
범행을 저지른 세 번째 남편 김 모(31)씨하고는 2016년에 만났다.
세 번째 남편 사이에 태어난 자녀가 바로 범행 현장에 데리고 있던 13개월 아기다.
계부의 성추행 등을 경찰에 신고한 친아버지도, A양이 의지할 수 없는 존재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16년 A양은 친아버지의 상습적인 폭행을 견디다 못해 아동보호기관에 알렸고, 법원은 친아버지에 대해 접근금지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후 A양은 어쩔 수 없이 의붓아버지와 친엄마 집으로 갔지만 여기서도 학대는 계속됐다.
A양을 마구 때리고 폭언하는 것도 모자라 성적으로 괴롭히기까지 했다.
양쪽 모두에게서 학대를 당한 A양은 결국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경찰도 A양을 지켜 주지 못했다.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이런 가운데 어린이 주일을 맞이해서 예수님이 어린이에 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 당시 사회에도 어린이는 대접을 못 받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사회와 달리 하나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14-15절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이가 소유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어린이는 하나님의 나라와 같이 받들어야 할 대상이라는 말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입니다
30대의 어른들이 이 아이를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소유라는 생각입니다
어린이의 불행은 소유물로 여기는 어른들의 사고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예수님께 데려와서 안수와 기도를 받게 하고 싶었다.
그리스도의 축복 속에서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로 인도해야 할 제자들이 참으로 놀라운 일을 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나무랐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성경이 분명하게 말하지 않지만
시대적인 배경을 놓고 추측해보면, 유대사회에서 어린 아이들은 여인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약자에 놓여있었다.
남편과 아비의 소유물입니다
그렇기에 여인들과 어린 아이들은 사람들을 헤아릴 때에도 사람의 수에서 항상 제외되었다.
마태는 유대인의 풍습에 따라서 여자와 어린이 외에 라는 표현을 늘 사용했다
마태복음14:19-21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유대사회에서 어린 아이란 보잘 것 없는 존재라 해서 인격적인 대우가 따르지 않아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아이들을 예수님께 와서 안수하고 기도해 달라는 것이 제자들이 볼 때에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불필요한 행동으로 느껴졌고
그렇기에 제자들은 사람들을 꾸짖었습니다.
13절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그러나 예수님의 관점은 꾸지람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주인은 바로 어린이라고 하십니다
14절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어린이만을 책망하는 어른들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있는 줄 아십니까
지배와 군림의 의식이 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셔야 한다는 고난의 예고가 있었지만
어른들은(제자들은) 두 번에 걸친 수난예고를 듣고 누가 더 크냐는 논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서 누가 크냐는 논쟁을 하니
아예 하나님의 나라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자격도 없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천국은 과연 누가 크고 작은가의 계급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세상 적인 사고방식에 물 들어서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잘 했나
그러면 항상 네가 잘못이요
나는 뛰어나다 입니다
어른들은 이런 생각에서 돌이키기를 원하십니다
돌이켜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하나님 나라에 아예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5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결단코…. 못하리라라는 말씀은 이중 부정으로 천국 입성을 절대 불허하시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은 천국에서 누가 크냐는 말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착각하고
그 나라에서 누가 크냐는 논쟁을 하고 있지만,
주님은 이들을 두고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아니라고 합니다.
어른이 상당히 고심되는 말이지 않습니까
어린아이를 막고 있는 제자들에게
어린 아이를 부모라는 자가 세상적인 이해타산을 두고
아이를 살해 유기 시켜 놓고
이 세상에서 더 무엇을 더 기대하는 지 이해가 가지 않지 않습니까
그냥 이 사건이 은밀하게 감춰졌다면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도 남을 일입니다.
주님은 지금 가지고 있는 어른들의 사고방식에서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입국 자체가 허락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심으로써 누가 높으냐는 논쟁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요사이 너무나도 잘난 어른들이 많아요
순진한 어린아이 다 죽게 생겼습니다
이 땅에 이루고 있는 어른의 욕망을 포기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더 높아지고자 하는 사고방식을 포기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십니다.
그 모델이 어린 아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역설적이지 않습니까
마치 현장에서 간음죄로 몰려 의기양양하게 돌을 들어 치려고 달려드는 어른들에게 너희가 죄인이야
그리고 그 여인에게는 정죄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시는 역설적인 모습
가만히 어린 아이들에게 배워 보십시오
요새는 아이가 아이가 아니라 어른 같은 아이가 있어요
더 이상 아이가 아닙니다
그런데 어른인데도 참으로 아이 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더 이상 어른이 아닙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인 줄 믿습니다
이제 어른들은 자신은 물론 내 사랑하는 자녀들은 무엇보다도 예수께로 나아오도록 해야 합니다
아니면 아이 키우는 것이 아니라 어른 키우고 있습니다
요사이 아이는 아이가 아닙니다
어린아이의 무엇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필수 조건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제자들의 더 큰 자 논쟁은 어린아이의 무엇과 상반되는 것입니까?
이것이 천국 백성의 핵심적인 사고방식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누가복음18:1-4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어린 아이는 자기를 낮추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어린아이가 어떤 의미에서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까
이런 의미입니다.
어린아이들은 본질상 연약하기 때문에 혼자 힘으로 살 수 없고 부모의 품 안에서만 평안할 수 있습니다.
절대로 부모를 떠나 살 수 없다는 인식입니다
진정한 어린아이는 누구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말합니다
♬주 없이 살수 없네 죄인의 친구여
생명의 양식이 여기 있는데 내가 어디로 가오리이까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를 잘 인도하는 자의 것이다
15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은 어린 아이처럼 받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받든 다는 말은 원어로 붙들다, 잡다, 취하다, 포옹하다, 영접하다, 받다, 얻다...등의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린 아이에게 하는 것 처럼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어린아이에 대한 지극한 보살핌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을 행여 배고플세라, 추울세라, 더울세라, 벌레에게 물릴세라, 다칠세라, 뜨거운 것에 델세라, 항상 시선을 집중하고, 밖에 외출할 때는 안거나, 엎거나, 아니면 손을 잡고 걷거나 하고, 혼자 걸릴 때에는 한 눈을 팔지 않고 시선을 집중하여 걸으며, 혹시나 잃어버릴까 여간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너무 약하고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시편139:1-10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5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6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주는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십니다
어린 아이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하듯 행여 잃어버릴까봐 전전긍긍하면서 한눈을 팔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는 누구하고 잘 사귑니까
어린아이입니다
금방 보자마자 사귑니다
어른들은 일 년이 가도 못 사귑니다
왜요 어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어린아이를 영접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3: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어린이는 하늘이 내려준 축복입니다
시편127:3-5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4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5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특히 아들은 곤란한 때의 힘이 되고
사후에 그 이름을 간직하며 집을 계승하므로 중요하게 여겼다
아이가 없는 것은 남편에게도 아내에게도 슬픔이었다
예수님은 특히 어린아이를 사랑하시고, 어린이와의 접촉이 많으셨는데, 이 사실은 놀랄만한 일이다.
과부의 외아들, 야이로의 딸, 귀신들린 아이, 집 나간 아이, 등등
강퍅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어른들이 많은 세상 가운데서 어른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자리에서 살아가는 일을 멈추고
내가 먼저 아이가 되고 그리고 내 주위에 받들어야 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아이의 마음으로 아이를 돌보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룹시다
하나님 나라에 가면 내가 돌본 아이가 나를 보고 빵긋하고 웃어 줄 것입니다
한창 사랑을 받으며 즐거운 인생을 펼칠 소녀아이가 비명에 갔습니다
이건 우리 사회의 문제이지만
오늘날 모든 어른들의 문제입니다
30대 계부와 친엄마가 12살 된 중학생 딸을 살해하고 시신을 저수지에 버려 사회적 공분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무속인 이었던 친모와 계부가 소녀 A양을 지속해서 학대하고 무당으로 키우려 했다
평소에 무당 교육 한다며 학교도 제대로 안 보내
혹시 아이 죽음을 볼 때에 그들만의 종교의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친모는 세 번의 결혼을 했는데 첫 번째 남편 사이에 자녀가 있었지만 이혼을 했다.
또 두 번째 남편과 결혼해서 이번에 숨진 A(12)양과 또 남동생 두 자녀를 낳았다고
두 번째 남편과 이혼하고 A양을 자신이 키우고 아들은 친부가 키우기로 했다고 알려졌다.
범행을 저지른 세 번째 남편 김 모(31)씨하고는 2016년에 만났다.
세 번째 남편 사이에 태어난 자녀가 바로 범행 현장에 데리고 있던 13개월 아기다.
계부의 성추행 등을 경찰에 신고한 친아버지도, A양이 의지할 수 없는 존재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16년 A양은 친아버지의 상습적인 폭행을 견디다 못해 아동보호기관에 알렸고, 법원은 친아버지에 대해 접근금지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후 A양은 어쩔 수 없이 의붓아버지와 친엄마 집으로 갔지만 여기서도 학대는 계속됐다.
A양을 마구 때리고 폭언하는 것도 모자라 성적으로 괴롭히기까지 했다.
양쪽 모두에게서 학대를 당한 A양은 결국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경찰도 A양을 지켜 주지 못했다.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이런 가운데 어린이 주일을 맞이해서 예수님이 어린이에 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 당시 사회에도 어린이는 대접을 못 받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사회와 달리 하나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14-15절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이가 소유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어린이는 하나님의 나라와 같이 받들어야 할 대상이라는 말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입니다
30대의 어른들이 이 아이를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소유라는 생각입니다
어린이의 불행은 소유물로 여기는 어른들의 사고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예수님께 데려와서 안수와 기도를 받게 하고 싶었다.
그리스도의 축복 속에서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로 인도해야 할 제자들이 참으로 놀라운 일을 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나무랐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성경이 분명하게 말하지 않지만
시대적인 배경을 놓고 추측해보면, 유대사회에서 어린 아이들은 여인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약자에 놓여있었다.
남편과 아비의 소유물입니다
그렇기에 여인들과 어린 아이들은 사람들을 헤아릴 때에도 사람의 수에서 항상 제외되었다.
마태는 유대인의 풍습에 따라서 여자와 어린이 외에 라는 표현을 늘 사용했다
마태복음14:19-21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유대사회에서 어린 아이란 보잘 것 없는 존재라 해서 인격적인 대우가 따르지 않아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아이들을 예수님께 와서 안수하고 기도해 달라는 것이 제자들이 볼 때에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불필요한 행동으로 느껴졌고
그렇기에 제자들은 사람들을 꾸짖었습니다.
13절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그러나 예수님의 관점은 꾸지람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주인은 바로 어린이라고 하십니다
14절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어린이만을 책망하는 어른들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있는 줄 아십니까
지배와 군림의 의식이 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셔야 한다는 고난의 예고가 있었지만
어른들은(제자들은) 두 번에 걸친 수난예고를 듣고 누가 더 크냐는 논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서 누가 크냐는 논쟁을 하니
아예 하나님의 나라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자격도 없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천국은 과연 누가 크고 작은가의 계급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세상 적인 사고방식에 물 들어서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잘 했나
그러면 항상 네가 잘못이요
나는 뛰어나다 입니다
어른들은 이런 생각에서 돌이키기를 원하십니다
돌이켜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하나님 나라에 아예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5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결단코…. 못하리라라는 말씀은 이중 부정으로 천국 입성을 절대 불허하시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은 천국에서 누가 크냐는 말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착각하고
그 나라에서 누가 크냐는 논쟁을 하고 있지만,
주님은 이들을 두고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아니라고 합니다.
어른이 상당히 고심되는 말이지 않습니까
어린아이를 막고 있는 제자들에게
어린 아이를 부모라는 자가 세상적인 이해타산을 두고
아이를 살해 유기 시켜 놓고
이 세상에서 더 무엇을 더 기대하는 지 이해가 가지 않지 않습니까
그냥 이 사건이 은밀하게 감춰졌다면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도 남을 일입니다.
주님은 지금 가지고 있는 어른들의 사고방식에서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입국 자체가 허락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심으로써 누가 높으냐는 논쟁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요사이 너무나도 잘난 어른들이 많아요
순진한 어린아이 다 죽게 생겼습니다
이 땅에 이루고 있는 어른의 욕망을 포기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더 높아지고자 하는 사고방식을 포기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십니다.
그 모델이 어린 아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역설적이지 않습니까
마치 현장에서 간음죄로 몰려 의기양양하게 돌을 들어 치려고 달려드는 어른들에게 너희가 죄인이야
그리고 그 여인에게는 정죄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시는 역설적인 모습
가만히 어린 아이들에게 배워 보십시오
요새는 아이가 아이가 아니라 어른 같은 아이가 있어요
더 이상 아이가 아닙니다
그런데 어른인데도 참으로 아이 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더 이상 어른이 아닙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인 줄 믿습니다
이제 어른들은 자신은 물론 내 사랑하는 자녀들은 무엇보다도 예수께로 나아오도록 해야 합니다
아니면 아이 키우는 것이 아니라 어른 키우고 있습니다
요사이 아이는 아이가 아닙니다
어린아이의 무엇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필수 조건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제자들의 더 큰 자 논쟁은 어린아이의 무엇과 상반되는 것입니까?
이것이 천국 백성의 핵심적인 사고방식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누가복음18:1-4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어린 아이는 자기를 낮추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어린아이가 어떤 의미에서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까
이런 의미입니다.
어린아이들은 본질상 연약하기 때문에 혼자 힘으로 살 수 없고 부모의 품 안에서만 평안할 수 있습니다.
절대로 부모를 떠나 살 수 없다는 인식입니다
진정한 어린아이는 누구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말합니다
♬주 없이 살수 없네 죄인의 친구여
생명의 양식이 여기 있는데 내가 어디로 가오리이까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를 잘 인도하는 자의 것이다
15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은 어린 아이처럼 받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받든 다는 말은 원어로 붙들다, 잡다, 취하다, 포옹하다, 영접하다, 받다, 얻다...등의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린 아이에게 하는 것 처럼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어린아이에 대한 지극한 보살핌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을 행여 배고플세라, 추울세라, 더울세라, 벌레에게 물릴세라, 다칠세라, 뜨거운 것에 델세라, 항상 시선을 집중하고, 밖에 외출할 때는 안거나, 엎거나, 아니면 손을 잡고 걷거나 하고, 혼자 걸릴 때에는 한 눈을 팔지 않고 시선을 집중하여 걸으며, 혹시나 잃어버릴까 여간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너무 약하고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시편139:1-10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5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6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주는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십니다
어린 아이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하듯 행여 잃어버릴까봐 전전긍긍하면서 한눈을 팔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는 누구하고 잘 사귑니까
어린아이입니다
금방 보자마자 사귑니다
어른들은 일 년이 가도 못 사귑니다
왜요 어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어린아이를 영접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3: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어린이는 하늘이 내려준 축복입니다
시편127:3-5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4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5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특히 아들은 곤란한 때의 힘이 되고
사후에 그 이름을 간직하며 집을 계승하므로 중요하게 여겼다
아이가 없는 것은 남편에게도 아내에게도 슬픔이었다
예수님은 특히 어린아이를 사랑하시고, 어린이와의 접촉이 많으셨는데, 이 사실은 놀랄만한 일이다.
과부의 외아들, 야이로의 딸, 귀신들린 아이, 집 나간 아이, 등등
강퍅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어른들이 많은 세상 가운데서 어른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자리에서 살아가는 일을 멈추고
내가 먼저 아이가 되고 그리고 내 주위에 받들어야 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아이의 마음으로 아이를 돌보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룹시다
하나님 나라에 가면 내가 돌본 아이가 나를 보고 빵긋하고 웃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