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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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112회 작성일 2019-07-28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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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3:12-16 달리는 인생
커피 체인점 스타벅스의 설립자는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1953년 뉴욕 브루클린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가진 것이 없는 그는 운동으로 성공을 하겠다고 생각하고 노던 미시간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미식축구 선수로 들어가지만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실패하고 맙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한때 제록스 회사의 세일즈맨으로 일을 시작하고
가정용품을 파는 해마플라스트(Hammarplast)에 취업을 해서 부사장 자리에 올라갔고
경제적으로 부요함을 얻었지만 만족이 없고 공허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시애틀에 출장을 갔는데, 한 커피숍에서 그윽한 커피 향을 맛보는 순간, 커피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시애틀로 가서 작은 커피숍의 매니저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합니다.
커피 구매로 밀라노로 출장을 갔다가 가게를 단순히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니라 신비와 로맨스의 문화를 파는 곳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웁니다.
바로 그 날이 스타벅스가 태어난 날이었습니다.
이제 이분이 미 대통령 출마를 고려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한잔의 커피 향에 이끌려 이런 역사를 가져 왔는데
본문의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 잡혔다고 합니다
12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커피 향에 끌린 것이 아니라
예수께 끌린 것입니다
잡힌 바라는 헬라어는 붙잡혔다, 포로가 종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본문 속에 반복되는 단어들이 있는데
잡으려고 달려가노라입니다
무엇에 잡혀있다는 것은 곧 그 잡은 대상에게 자신을 다 헌신하겠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좋아서 잡고자 하는 것보다는 할 수 없어서 무엇엔가 잡혀 사는 것이 사실이다.
직장도 내가 잡고자 하는 직장보다 어찌 어찌하다 보니 지금의 직장에 들어왔고 이제는 가족과 생계가 덜미가 되어 직장을 놓지 못하고 붙잡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의 고백이다.
결국 사람들의 삶은 능동적이기 보다는 수동적인 것이 사실이다.
내 마음에 원하는 것보다 마지못해 할 수 없어 여기까지 왔고
이게 얼마나 슬픕니까
혹시 내 인생 마지못해서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남은 삶도 부정입니다
앞으로도 어쩔 수없이 살아 갈 것이 뻔한 일입니다
이게 얼마나 불행 하고 끔찍합니까 종도 아니고
이런 직장생활 이런 부부생활 이런 일생 적지 않습니다
이런 가운데도 바울은 확신에 찬 고백을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감격
너무나도 긍정적입니다
그는 이런 말을 합니다
빌립보서4: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 역시 예수 그리스도에게 계속 붙잡히기를 고백합니다
자신이 세상에서의 종노릇 할 때를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4:8-9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하였더니
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노릇 하려 하느냐
이제는 다시는 세상의 종이 아닌
그리스도인은 예수 영에 붙잡힌 사람입니다
그 영으로 사는 자의 삶은 무한 긍정입니다
너무 즐거운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나를 붙잡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 품 안에 안기는 것입니다
아가서2:1-7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
2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도다
3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 내가 그 그늘에 앉아서 심히 기뻐하였고 그 열매는 내 입에 달았도다
4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칫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은 내 위에 깃발이로구나
5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하게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
6 그가 왼팔로 내 머리를 고이고 오른팔로 나를 안는구나
7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그 사랑이 너무 좋아 그래서 예수로 인하여 밤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도 흥분이 되는 것입니다
왜 잡으려고 달려가느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온전함을 이루기 위해
12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목표 없는 인생은 방황하는 삶이요.
또 도전할 일이 없다면 그것은 또한 무의미합니다
이 땅에 태어나기는 태어났는데
계속 방황만하다가 삶 또한 의미 없이 끝나지 않습니까
내가 그리스도인임에 확신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늘 그리스도를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가 더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라는 말을 합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그대여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누가 묻기를 보고 있는데 왜 보고 싶다는 거죠?
혹시 딴 여자가 보고십다는건가요?
계속 보고 싶다는 거죠
사랑하니까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데 보고 있지 않으면 어떻겠어요?
그만큼 그 사람에게 빠져들고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거겠죠
예수는 계속 필요하고 함께 하고 싶은 것입니다
달려가노라 함은 더 이상 낭비된 삶을 살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13-14절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이러한 자세에 방해되는 요소가 바로 자신이 이루었다고 여기는 것들이고
또 반대로는 실패한 것들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는 길에 장애를 만들지 말아야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지속적으로 계속해야 하고 도전해야 할 과제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라함은 주어진 삶이 안일함으로 정체되지 않고 전진하는 삶이되기 위해서다.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까지 지속해야 할 삶의 과제이다.
아니 내 숨이 다하기까지입니다
결코 후회가 없고
삶에 생기가 있습니다
언제나 자신의 부족함과 미완성을 인정하고 고백하지만 절망하는 탄식이 아니라
오히려 최선을 다하려는 고백과 도전입니다
날마다 도전입니다
얻었다, 이루었다 함의 수식어가 의미와 아직이 함께 하고 있다.
주께서 주신 것은 이미이지만 나 자신이 이루어 가는 것은 아직일 뿐이다.
아직 내가 필요해
아니 나는 필요의 인물이 될 거야
당신은 이제 그만입니다
나 이제 그만이야 가 아닙니다
이미 완벽하게 주셨지만 각자가 이루어 가는 것은 아직입니다
14절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푯대는 헬라어로 눈을 박고 보다, 보초, 정찰병, 목표입니다
정찰병처럼 눈을 떼지 못한다.
곁눈질 할 필요가 없이 눈을 둔 그것이 사라지지 않도록 바라보는 것이다.
이제 낭비할 시간이 없다
더 지체 할 시간이 없다
지나간 것으로 족하다
나는 일생에 있어 무엇에 붙잡힌 것을 가장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내가 달리는 이 걸음의 끝에서 얻을 것이 평생의 목표로 삼아도 후회하지 않을 영원히 영광스러운 상급임을 확신하는가!
주님께서 나를 붙드신 것처럼 나도 주님을 꼭 붙들겠다고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붙드는 데 방해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과감하게 던져버리겠다고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단순하고 가벼워야 잘 달릴 수 있습니다
본문을 쓴 사도 바울은 육신의 몸이 옥중에 감금 되어 있는데
이제 옥에 갖혔다를 말하기 보다는
감옥 안에서도 그는 예수께 붙잡혀 있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죽는 순간에도
예수께 붙잡혀 있고 예수를 붙잡는 자이십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이나 방주를 만들면서 왜 자기 자신의 생각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이 방주의 건축이 곧 자신의 구원임을 아는 것입니다.
진작 배가 다 만들고 심판이 가까워 왔을 때에는 그 누구도 그 배에 타지를 못했습니다.
그들 식구만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상은 열심히 달려온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의 존재의식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예수님께 포로된 존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그 나름대로의 생을 살아보고자 노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는 그 즉시 예수님의 포로가 되고 맙니다.
이렇듯 사도 바울은 인생의 목적까지도 바꾸어진 전혀 다른 운명의 생을 살아간 사람입니다.
그래서 깨달은 것은 그의 전 인생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자신은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미 주님의 포로로, 사도로 거룩히 구별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가 되기 위하여 주님께 택정된바 존재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아하 알고 보니 내 인생의 목적이 나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2: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다만 내가 모르고 있었지 내 인생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주님의 부르셔서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만이 있을 뿐입니다.
과거가 그렇고 현재가 그렇고, 앞으로의 미래도 응당 그럴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주님의 포로 됨을 거듭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7:23-24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죄인된 바울은 노예가 팔리듯이 주님께 분명히 팔린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에게 어떤 내용의 편지를 쓰든지 그 서두는 늘 예수 그리스도의 종 나 바울로 시작합니다
약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롬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의 옥중서신 가운데 있는 시 한 편을 소개하지요.
나는 어떤 자일까? 이 고독한 울음이 나를 비웃는다. 내가 어떤 자이건, 아! 하나님이여, 당신은 아십니다.
내가 누구이든, 선하든 악하든, 성공했든 실패했든, 건강하든 병들었든, 나는 분명히 당신의 것입니다.
도대체 나는 누구입니까?
나 자신도 나를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은 아십니다.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생을 어느 정도 살아왔다고 생각합니까?
내가 가는 길, 이것이 내가 선택한 것입니까?
오늘까지의 나의 운명, 이것이 내가 바라던 것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강권으로 나를 붙드시어 당신의 사람으로 이 자리에 있게 하신 것입니다.
남은 인생도 그러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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