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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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113회 작성일 2019-08-11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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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8:31-36 진정한 자유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정문에는
독일어로 당시 나치 지배하에 일하면 자유로워진다고 적혀있습니다
누구를 위한 자유인가
그들은 자유를 가지고 무엇을 노렸는지
그리고 그 자유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나치를 위한 일을 독려하기 위한데 지유가 사용 되었습니다
일제 해방에서 자유를 갈망 했던 우리 민족이
아직도 일제에서 진정한 해방을 누리지 못하여 자유구가에 애쓰고 있습니다.
자유가 무엇입니까
자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산다.
영어에는 자유라는 뜻을 지닌 단어로 프리덤(Freedom)과 리버티(Liberty)두 단어가 있습니다.
한국어로는 똑같이 자유라고 번역합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상당히 틀림니다
Freedom은 아무 규제 없는 내 나름대로의 자율 상태를 말하고
어떤 간섭이나 억압이 없는 자유를 말하고
반면에 Liberty는 타율에 의해 주어지는 자유입니다.
법과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는 자유를 말합니다.
우화 가운데 늑대와 양 이야기가 있습니다.
늑대가 우리 안에 있는 양을 잡아먹으려고 하는데, 견고한 울타리가 있고 목자와 양치기 개가 지키고 있어서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늑대가 양에게 너는 왜 그렇게 자유를 잃고 우리 안에 갇혀 있니?
여기 바깥세상이 얼마나 자유롭고 좋은데
여기서는 네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도 있고
가고 싶은 곳으로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되고...
늑대의 말처럼 목자를 떠나 우리 밖으로 나간 양은 자유롭게 마음대로 다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길을 잃어버리거나,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 맹수를 만나 생명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진정한 생존하기 위해 추구해야하는 자유는 생명을 얻는 Liberty지
언제 생명이 뺏앗낄 줄 모르는 Freedom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자유는 내 마음대로 하는 Freedom이 아니라
무엇엔가 구속을 받는 Liberty가 진정한 자유입니다
본문에서도 예수께서 자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아는 것이 자유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진리는 예수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유는 예수를 아는 것에서 출발입니다
예수가 진리다
자유는 예수께 속박되어야 한다
무엇이 나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게 하는가?
정말 자유롭지 못한가?
아니면 그저 자유롭지 못하다고 믿을 뿐인가?
진리를 알면 자유롭다 진리를 알면 자유가 무엇인지 안다
32절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자유는 오직 진리를 아는 데서 출발입니다
억압하는 무엇에서 벗어남으로서 오는 것은 아니다
그 억압이 돈일 수도 있고
나라의 정치 체제일수도 있고
내게 힘들게 하는 그 무엇이라고 합니다
저 남편 저 아내 저 누구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벗어나야 비로소 자유하려고 합니다.
억누르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나서 얻는 자유라는 말이다.
얼마나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이제는 거의 포기 지쳐 버리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것에서 벗어나는 것도 당연히 자유다.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일,
또는 그러한 상태의 자유
자유가 얼마나 갈망했는지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그 만큼 자유 하고픈 것입니다
이것은 프리 덤입니다
본문의 자유는 벗어나서 얻는 자유를 말하지 않습니다
프리덤 벗어나서 제 마음대로 자유는 언젠가는 또 잃어버릴 수 있다.
어떤 것으로부터의 자유는 얻었지만 또 다른 어떤 것으로 속박 당하게 된다.
그것이 무엇이든 늘 거기에는 자기를 억압하며 속박하는 무언가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고, 계속해서 어떤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를 갈망하게 된다.
호주 시드니의 교도소에 수감된 한 죄수가 탈옥을 꿈꿨다.
그는 빵 배달차 안에 숨어들었다.
이윽고 차가 멈추어 차에서 내렸다.
그러나 배달차가 도착한 곳은 인근 교도소 구내였다.
그는 곧바로 붙잡혀 다시 교도소로 보내졌다.
그가 자유를 소망하며 탈출한 곳은 결국 다른 감옥이었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하면 우리 모두는 다른 감옥으로 탈출하는 어리석은 죄수일 수밖에 없다.
나를 옥좨는 죄의 감옥에서 완전히 벗어날 때 비로소 자유를 얻는다. 인생은 평생을 무엇에서 벗어나서 자유함을 얻으려면 점점 메일 뿐입니다
대통령 했던 분도 그 무엇의 억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스스로 그 짐을 안고 죽어야만 했고 국회의원 했던 분도 사장 회장 했던 분도 탑의 자리에 있지만
또 다른 무엇이 그들을 억압하고 있습니다
살아 갈수록 더 세게 더 강하게 더 무섭게
탈출구가 없는 것입니다
자유는 이런 어떤 무엇으로부터의 벗어나서 얻는 자유가 아니다.
이런 자유는 일시적이고 제한적이기에 완전한 자유가 아니다.
진정한 자유는 어떤 것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진리되신 예수를 알면 자유입니다
자유는 내가 쟁취하여 만드는 것이 아니고 예수가 주시는 것
이스라엘 사람이나 애굽 사람이나 도덕적으로는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의 집에는 어린양의 피가 칠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의 사자가 피가 칠해져있는 이스라엘의 집은 뛰어 넘었고
어린양의 피가 칠해져 있지 않은 애굽 사람의 집에 들어가 장자를 쳤습니다.
그래서 유월절(passover)입니다.
착하고 선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어린 양 피 아래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은 죄 값을 치루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보다 착하고 선하지 않습니다.
어떤 부분은 그들보다 더 합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이유, 십자가 아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죄 값을 치루지 않습니다.
바울이 이 사실을 깨달은 겁니다.
내가 그런 사람입니다
내가 얼마나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살았느냐는 그 다음 문제입니다.
죄는 누구나 어차피 짓습니다.
아무리 원치 않아도 원죄의 씨앗을 가진 인간은 죄 안 짓고는 못 삽니다.
그러나 십자가 아래에 있으면 정죄함이 없습니다.
착하게 살아서 죄가 없는 게 아니라 더는 나를 정죄할 법이 없는 겁니다.
로마서8:33-34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분명히 죄인인 것은 확신이가나 벌할 법 조항이 없는 것입니다
오직 무죄라는 근거만 있을 뿐입니다
이 놀라운 진리가 나를 자유케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유하십시오.
죄로부터 죄책으로부터 자유하십시오.
심지어 죽음에서 조차도 자유하십시오
진리를 안다는 것,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동침하다 라는 의미를 가진다.
부부 사이처럼 아주 친밀하게 아는 것을 말한다.
일심동체가 되는 관계
포도나무 비유에서 보면
요한복음15:4-7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예수를 안다는 것은 피상적으로 아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예수와 교제를 가진 상태에서 그와 사귐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believe in or believe into이다.
그 분안에 거하는 것이다.
그 예수가 내 안에 거하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재판하는 로마의 총독 빌라도가 예수를 향해 진리가 무엇이냐? 물었습니다.
인류의 역사 가운데, 끊임없이 물어온 질문이고, 아직도 묻는 질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길이 어디냐
이걸 진작 알았다면
더 이상 이 세상에 묶어 있지 않습니다
그 나라와 의를 구할 것입니다
모든 것에서 자유합니다
모든 것을 유익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자유는 여유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만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자유를 다윗은 부족함이 없다고 했으며
사도 바울은 만족한다고 했습니다
세상은 무엇을 하든지 죄에 값을 정해서 그 값을 치르게 하여 자유에서 감금을 시켜 구속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죄의식에 사로잡혀 불행하게 사는 것입니다.
왜 언젠가는 내 죄가 드러나 정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죄의 값을 치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윤리요 도덕이요 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방의 세상 종교들이 죄 죄값을 치루는 방법도 참 다양합니다.
힌두교의 사제는 벗은 몸에 온갖 색칠을 하고 평생 사원 마당에 앉아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태국의 불교 승려들은 아침마다 맨발로 거리를 돌면서 탁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속죄를 받고 다음 세상에서 보다 나은 존재로 탄생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개혁을 한 루터도 케토릭 사제로 있을 때 무릎으로 계단을 올라가며 속죄를 하지 않았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극기와 고행, 자선 행위를 합니다.
그것으로 자신의 죄업이 가벼워지고 운명이 나아지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롬3:23-2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정죄는 인간 스스로 벗어나거나 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판단하시고 결정하실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모든 정죄로부터 풀어주시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하셨습니다.
죄의 값을 인간 스스로가 갚을 길이 없고 하나님의 아들에게 대신 갚도록 하신 것입니다.
다시는 정죄되지 않습니다.
내가 비록 아직 덜 거룩해지고, 옛날 습관을 다 버리지 못하고 불쑥불쑥 죄가 들어 난다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그 공로로 나는 정죄에서 이미 해방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사람은 누구든지 끊임없이 자유를 추구하는데 자유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져 갑니다.
사람들은 자기 앞에 놓여 있는 다양한 구속과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의 자유를 얻으려고 합니다.
소리를 달라고 칩니다 예수님만이 진정한 자유를 주십니다
33-36절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거하나니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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