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기 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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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평 댓글 0건 조회 250회 작성일 2019-12-08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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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6:1-8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 부름 받은 때는 남쪽 유다의 왕 웃시야가 병들어 죽던 해입니다
웃시야 왕은 기원전 792~740년입니다. 죽던 해니까 지금이 기원전 740년입니다.
웃시야 왕은 남유다에서 제2의 솔로몬이라고 불릴 정도로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왕이었고,
솔로몬 이후 기울어 가던 유다를 다시 중흥시킨 왕이었습니다.
한때 교만하여 제사장만 할 수 있는 분향을 직접 하려다가 하나님의 징계로 나병환자가 됩니다.
그는 별궁에 격리되었고 그의 아들 요담이 대신 통치하게 됩니다.
당시 세계의 정세는 앗시리아가 제패를 하고 있을 때입니다
웃시야 왕의 재직 시에는 유다는 안전하였으나
그런데 웃시야는 병들고 하나님의 치유를 기대했지만 죽고
그러니 백성들은 혼돈하고 더 이상 유다는 미래가 없어 보였기 때문에 절망하게 됩니다
선지자 이사야도 위기를 절감하게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위태로운 그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이사야1:2-8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2)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7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8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유다는 언제 어떻게 넘어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여전히 먹고 마시고 사고 파는 일에만 충실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께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 관심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의 위하는 일에는 영적인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자신들을 하나님 앞에 드려진다는 것은 관심이 없고
자신을 드리지는 못하면서
하나님은 나를 도와주신다는 막연한 믿음이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시기에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보여주시고 하나님의 소명을 일러 주십니다.
특히 새롭게 부름을 받은 직분 자들에게도 이러한 말씀을 보여 주심으로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내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난자의 모습은
인간의 나약함과 자신의 부족한 죄인임을 압니다
1-5절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이사야가 하나님을 본 이후에 자신을 보니
하나님을 만난 후에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이고 부정한 사람인가를 깨달았습니다.
아직도 자신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니 자신의 본 모습을 볼 수가 없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본 후에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한다고 고백했습니다.
다니엘도 하나님을 만난 후에 몸에 힘이 쑥 빠지고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베드로 역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고 고백했습니다.
주님을 만나야만이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나 자신이 누구인 줄 아는 것이
물론 하나님 앞에서 나를 아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제 분수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내 자신을 잘 알 때에 하나님이 절실히 필요하고
하나님을 잘 경외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모든 지혜의 근본입니다
주를 알고 나를 죄인인 줄 알면
주께로 죄 사함을 얻습니다
왜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여 있습니까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죄인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알 면은 예수가 절실히 필요하고
예수의 공로를 입을 수 있는데 말입니다
마가복음2:16-17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이사야가 나는 죽어도 마땅해 이런 못난 내가 있어 하는
그 고백이 놀라운 역사를 가져옵니다
5-7절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한 천사가 성전제단의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날아와서 이사야의 입술을 지지면서 죄가 사하여졌다고 선언하십니다.
내가 죄 사함의 증거가 무엇입니까
주의 음성이 들리고
그리고 그 분을 위하여 내 자신의 헌신을 생각합니다
말씀 앞에 내 자신을 드릴 수 있습니다
8절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지난 2007년 10월 21일 설교를 보는데
이런 내용이 있더라고요
지난 철야 시간에 에스더를 이야기 하는 중에
하나님의 뜻이라면 내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렇다면 죽으면 죽지 하는 자세를 가졌다고 하였습니다.
죽음도 구속시키지 못하는 자유입니다.
전모양은 아마 확실하게 이 말씀에 은혜를 받았는가 봅니다.
내가 죽어야하면 죽지 돈이 나가야 하면 나가야지 하고 집으로 가면서 몇 번이나 말하는데 여태까지는 그렇게 되면 내가 못살 줄 알았고 안 되는 것으로 알았으니 그것을 지키기에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야! 이제 나에게도 이런 것에서 자유 할 수가 있구나 할렐루야!
여태까지 내가 어떻게 될까? 하는 불안 속에서 죄를 짓고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만 생각하고 살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죽게 생긴 것입니다.
이제 주의 음성을 들어 보십시오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목사님이나 사모님이나 특별한 사람이야 해야 할 것입니다 라고 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믿음이 좋은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다윗과 다른 이들은 질이 좋은 믿음을 주시고
나는 하질의 믿음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나는 돈도 없고 나는 가진 것도 없고 그러니 나는 나만 위하여 열심히 살아가자가 문제입니다.
그러니 날마다 죽게 생겼습니다.
문제는 믿음입니다
제발 다른 분들이 해야 할 것으로 여기지 마십시오
바로 내가 할 일입니다.
나를 향한 주의 음성을 느껴야 합니다
♬주님 가신 길 십자가의 길 외롭고 무거웠던 길
골고다의 거친 언덕길 지치신 주님의 모습
오 나의 주님 용서하소서 죄인 위해 고난 받으셨네
이 세상에 생명 주시길 그렇게도 원하셨던 길
나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아야 할 영혼이 있습니다
한 알의 밀알
죽는 것은 아니라 많은 생명을 얻습니다
요한복음12:24-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대부분의 많은 사람의 신앙생활을 보면 자신이 어려우니 도와달라고 하고,
무엇인가 의지해 보려고 예수를 믿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뭐 나쁘다 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 모두 약한 존재들이요,
제한된 존재들이기 때문에 전능자의 도움을 구하고 바라는 것이 나쁠 수만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나고 보니
내 자신을 드림으로 오히려 내가 살게 되고
나만을 위하다 보면 내게 죽는 것입니다
다윗 군대가 블레셋 군대와 대치를 하고 있었는데 블레셋이 다윗의 고향마을인 베들레헴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모두 고향과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가 있지 않습니까?
다윗은 자기도 모르게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우물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라고 소원을 아뢰듯 말했습니다.
이 때 세 명의 용사가 블레셋 적군의 진영을 돌파하여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 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다윗은 그 물을 마시지 않고 여호와께 부어드립니다.
이 사실도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데
들려지는 그들의 최선 이니 물이 아니요 세 용사의 피였습니다.
이 화평교회는 주님이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의 최선으로 세워져 갑니다
저 역시 목회 하는 날까지 최선을 합니다
성경에는 두 명의 사울이 나옵니다.
한 명은 구약에, 다른 한 명은 신약에 나옵니다.
구약의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전에는 무척이나 겸손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들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하지만 그가 왕이 되고 난 뒤에는 교만해졌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방자하게 행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결국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신약의 사울은 무척이나 교만하고 사납고 살기등등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의 교만이 깨어지고, 그의 완악함이 깨어졌습니다.
지금까지 모든 기득권을 배설물처럼 여기며 버리고 낮아졌습니다. 겸손해졌습니다.
자신의 이름도 사울(원래는 ‘구하다’는 의미이지만 영적으로는 ‘크다’로 이해)에서 바울(작다)로 개명하고 일생을 주님의 일에 헌신하였습니다.
이렇게 겸손해진 바울을 통해 하나님은 그 나라를 확장해가셨으며 바울은 초대 기독교를 전 세계에 전파하는 가장 중요한 일에 쓰임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쓰실 사람이 필요합니다.
바로 그 사람은 우리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쓰시기 위해서 만나주셨습니다.
죄를 씻어주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하고 말씀하실 때 우리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고 응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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